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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중총궐기 대회가 열린 지난 2015년 11월 14일 오후 서울 종로1가 종로구청입구 사거리에 설치된 경찰 차벽앞에서 69세 농민 백남기씨가 강한 수압으로 발사한 경찰 물대포를 맞은 뒤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시민들이 구조하려하자 경찰은 부상자와 구조하는 시민들을 향해서도 한동안 물대포를 조준발사했다.
민중총궐기 대회가 열린 지난 2015년 11월 14일 오후 서울 종로1가 종로구청입구 사거리에 설치된 경찰 차벽앞에서 69세 농민 백남기씨가 강한 수압으로 발사한 경찰 물대포를 맞은 뒤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시민들이 구조하려하자 경찰은 부상자와 구조하는 시민들을 향해서도 한동안 물대포를 조준발사했다. ⓒ 이희훈

지난 2015년 11월 14일, 민중총궐기 집회에 참가했던 농민 백남기 선생은 물대포에 맞고 쓰러졌다. 이후 백남기 선생은 317일이 지난 2016년 9월 25일 오후 사망했다.

지난 민종총궐기 당시, 백남기 선생은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 이행을 촉구하기 위해 서울행 버스를 탔다. 쌀시장 개방으로 쌀값은 계속 떨어졌고 농민들의 삶은 피폐해졌다. FTA가 종국적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나는 자세히 알지 못한다.

다만, 그것이 누군가에게 분명한 이득을 가져다 줬다면 그만큼 누군가의 삶을 가난하게 만들었다는 건 안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출마 당시 쌀값 수매가를 17만 원에서 21만 원으로 올려주겠다고 했다.

이후 정부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쌀값은 10만 원을 겨우 웃도는 수준까지 떨어졌다. 결국 민중총궐기 당시 백남기 선생은 서울행 버스를 탔다.

백남기 선생은 '미안하다'고 했다. 한 평생 제 삶을 제대로 돌아본 적 없는 사람이 하는 말로는 화가 날 정도로 슬프고 야속한 말이다.

백남기 선생은 대학 시절 유신철폐시위를 주도하다 학교에서 제적되고 오랜 수배생활을 했다. 박정희가 죽고 '서울의 봄'이 찾아와 복교했지만 박정희의 빈 자리를 채운 건 전두환이었다. 그냥 눈 한번 딱 감고 행복하게 살아도 되었을 텐데, 백남기 선생은 그러지 못하는 분이었 것 같다.

백 선생은 신군부 반대시위를 벌이다 끌려가 고문을 받았다. 이때의 고문으로 평생을 고생했다. 감옥을 나온 뒤 학교를 그만두고 보성으로 내려왔다. 그는 잠시도 제몸 편하게 못두는 사람이었다. 야학을 열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농사법을 연구해 밀 재배를 시작했다.

당시엔 한국에서 밀 재배가 흔하지 않았다. 그런 그가 아쉬웠는지, 주변에서는 그에게 보상을 권유했다. 자리를 제안했다. 하지만 백 선생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나 그런 거 받으려고 운동한 거 아니다. 죽은 사람들도 있다. 나는 멀쩡히 살아있는데 내가 무슨 자격으로 그걸 받느냐."

그렇게 살아온 사람이다. 그런데 하는 말이 고작 미안하단다.

자기가 평생을 바쳐 싸워온 세상이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고. 내 자녀들이, 후손들이 조금 더 나은 세상에서 살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싸워왔던 건데, 그러지 못해서 미안하단다. 누가 누구에게 가져야 할 부채감인지 나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는 그 부채감 때문에 스스로에게 모질게 굴었나보다. 서울로 올라가셨다. 그를 기다린건 지난 40년, 그가 싸워왔던 유신이 남겨둔 딸이었다. 그리고 그가 만든 정권은 백 선생에게 물대포를 쏘았다.

그 노인이 그렇게 땅바닥에 나부라졌는데, 거기다 대고 조준사격을 했다. 그만하라는 시민의 고함도 듣지 않았다. 누군가는 마치 게임을 즐기는 듯했고, 누군가는 목숨만 겨우 부지한 채 중환자실로 이송되었다.

'백남기 농민이 돌아가셨습니다' 지난해 민중총궐기 도중 경찰 물대포에 맞아 사경을 헤매던 백남기 농민이 317일만에 사망한 가운데 25일 오후 서울 대학로 서울대병원 입구에서 한 시민이 고인의 사망을 알리는 피켓을 들고 있다. 경찰이 병원 출입문을 막고 시민들을 통제하고 있다.
'백남기 농민이 돌아가셨습니다'지난해 민중총궐기 도중 경찰 물대포에 맞아 사경을 헤매던 백남기 농민이 317일만에 사망한 가운데 25일 오후 서울 대학로 서울대병원 입구에서 한 시민이 고인의 사망을 알리는 피켓을 들고 있다. 경찰이 병원 출입문을 막고 시민들을 통제하고 있다. ⓒ 권우성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면 적어도 사람이라도 죽이지 말아야지. 사람이 죽었다면 책임감을 느껴야지. 나는 치가 떨리고 화가 난다.

백남기 선생의 사망 이후, 서울대 병원에는 수백 명의 경찰 병력이 배치됐다. 서울대 병원에서 난리가 일어날지도 모른단다. 일단 그곳으로 가야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백승호 시민기자의 브런치(https://brunch.co.kr/@quidlesf/34)와 <허핑턴포스트코리아>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송고를 허용합니다.



#고 백남기 농민#쌀값 수매가#박근혜 대통령 공약#백남기 농민 사망#서울대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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