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22일 '쌀값 대폭락 박근혜 정권 퇴진 전국농민대회' 취재차 백남기 농성장을 다녀갔다(관련 기사 :
쌀값 마지노선 무너졌다... 농민들 "박근혜 퇴진"). 사흘 만에 다시 농성장으로 돌아왔다. 지난 24일 오후 7시 40분 백남기 대책위가 언론사에 배포하고 SNS에 올린 '검찰의 백남기 농민 부검 시도를 중단하라'는 내용의 긴급 보도자료를 보고 나서다.
아침 첫 기차를 타고 백남기 농민 농성장에 도착했다. 농성장은 백남기 대책위 자원봉사자 겸 활동가인 강필준씨 한 명뿐이었다. 정현찬 백남기 대책위 공동 대표를 비롯한 관계자들과 농성장에 있던 신부님과 수녀님들, 농민단체와 시민사회들은 25일 오전 11시 서울대병원 본관 앞에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긴급 기자회견에서 정현찬 백남기 대책위 공동대표는 25일 일요일 새벽 2시 경찰 병력 200여 명이 서울대병원 입구와 중환자실 인근 주차장에 배치된 상황을 언급하며 "백남기 농민 사망 시 부검 시도를 하려는 것으로 판단한다"고 규탄했다.
오후 1시 58분 (애초 발표는 오후 2시 15분) 백남기 농민께서 운명했다. 경찰의 진입을 우려하며 중환자실 주위에 대기 중이던 백남기 농민 가족과 대책위 관계자들 외에 농성장에 머물던 사람들은 모두 중환자실로 모두 이동했다.
2시 20분경 경찰 대열이 농성장 앞을 지나 서울대병원 후문방향으로 달려 황급히 달려갔다. 농성장에 대기 중이던 기자는 경찰들을 뒤따라갔다. 경찰들이 서울대병원 후문을 서너 겹으로 막았다. 맨 앞 열은 방패를 들었고 지휘관으로 보이는 경찰들이 대열 정비를 지시했다. 서울대병원 후문에 사람과 차량의 흐름이 차단되었다.
사람들은 경찰의 출입구 봉쇄에 당황하며 통행을 막는 이유를 묻고, 병원 안으로 들어가게 해달라고 항의했다. 경찰 봉쇄 대열 앞뒤에 선 지휘관들은 사람들의 복장과 외모를 보고 일부 사람들만 좌우측 작은 문을 통해 진입하도록 했다. 농민, 노동자,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대열 앞으로 접근하면 방패를 앞세우며 막아섰다. 병원 응급차, 택시, 마을 버스 진입은 허용되었다.
좌우 좁은 문에서 병원 방문객의 선별 진입을 허용하다 보니 줄이 길게 늘어섰다. 입원 환자 가족과 진료를 받기 위해 온 방문객들의 항의가 점점 거세졌다. 백남기 대책위의 호소문을 읽고 중환자실로 가려던 사람들 또한 경찰에 봉쇄 사유를 설명하고 진입을 허용하라며 큰소리로 항의했다. 몸싸움이 벌어졌다. 한 여성은 "아이가 수술을 받는 상황"이라며 "병원에 급히 들어가야 한다"고 애원했지만, 길이 막히자 소란이 일기도 했다.
경찰은 처음에는 대충 확인하고 선별적으로 사람들을 들여 보냈다. 경찰의 봉쇄가 시작된 지 30분 정도 지나자 서울대병원 후문은 길게 늘어선 방문객들, 봉쇄를 저지하며 피케팅을 하는 시민사회단체와 정당, 소란을 지켜보는 행인들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기자는 경찰 대열 앞에서 차량을 통제하는 지휘관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소속과 이름을 밝히고 봉쇄를 하는 이유를 설명해 줄 것을 요구했다. 처음에는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임을 밝히지 않고 농민이라고 말하며 대답을 요구했다. 경찰은 "공무집행 중이니까 방해하지 말라"는 등의 말만 할 뿐이었다.
이 경찰은 결국 반복되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경찰대열 뒤로 사라져 버렸다. 경찰 대열 앞에서 경찰들에게 소속과 이름, 봉쇄 사유를 말해달라고 큰소리로 외쳤다. 기자 옆에 있던 미디어오늘 기자도 진입 차단에 항의하며 "오전 기자회견에 참석했던 기자이니 들어가게 해달라"며 항의했다.
기자의 반복된 질문에 경찰대열 뒤에 서 있던 지휘관 한 명이 대답했다.
기자 : "소속이 어디입니까?"
경찰 : "52중대입니다."
기자 : "병원 후문 봉쇄 이유가 뭡니까?"
경찰 : "혜화경찰서의 연락을 받고 범죄행위 예방을 위해 출동했습니다."
기자 : "무슨 범죄행위를 예방하겠다는 겁니까?"
경찰 : "...."
이후에도 경찰은 소속과 이름, 봉쇄한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 기자 옆에서 한 남성이 큰 목소리로 경찰들에게 항의하고 있었다. 다가가 보니 민변 변호사이자 녹색당 전국공동운영위원장인 하승수씨다. 하승수 변호사는 기자와 마찬가지로 경찰의 "소속와 이름, 봉쇄 사유를 설명하고 불법 봉쇄이니 풀라"고 항의하고 있었다. 경찰은 하승수 변호사의 항의에도 입을 꾹 다문 채 일체 응답을 하지 않았다. 답답해하는 하승수 변호사에게 경찰의 봉쇄 행위의 적법성을 질문했다.
기자 : "제가 한 시간 동안 경찰들을 취재한 결과 경찰은 52중대 소속으로 혜화경찰서의 요청을 받고 범죄행위 예방을 위한 공무집행을 한다고 합니다."하승수 : "저에게는 일체 대답을 하지 않던데요. 경찰은 공무집행 시 해당 시민에게 소속과 이름을 밝히고 공무집행의 법적 근거와 사유를 설명해야 합니다. 이 경찰들은 봉쇄에 항의하는 방문객들에게 이를 설명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는 명백한 불법행위입니다. 또한 지금 보시듯이 방문객들의 신원을 요구하고 있는데요. 백남기 선생 조문객뿐만이 아니라 병원 방문객에게 신분 확인을 요구하고, 병원 방문 목적, 환자의 신원을 요구하는 것은 법률적으로도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습니다. 이는 경찰의 공권력 남용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상황입니다."기자 : "어떤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겁니까?"하승수 : "경찰의 불법적인 공권력 남용에 대해 법률적으로는 고소나 국가배상 청구를 할 수 있습니다."기자 : "기자의 질문에 한 경찰이 '범죄행위 예방' 공무 집행이라고 대답했는데요. 법적으로 타당한 행위인가요?"하승수 : "말도 되지 않습니다. 병원을 방문하거나 백남기 농민 조문을 오는 사람들을 막아설 어떤 법적 근거도 없습니다."
병원 방문객과 백남기 농민 조문객, 시민들의 거센 항의에도 경찰의 봉쇄는 풀리지 않았다. 6시 50분경 백남기 대책위 관계자가 경찰과 합의를 보았다며 서울대병원 정문은 봉쇄가 풀렸으니 확인 후 후문도 봉쇄를 빨리 풀어 달라고 경찰 지휘관에서 설명했다. 하지만 해당 경찰관은 상부에서 아무런 연락을 받은 바 없다며 봉쇄를 풀지 않았다. 서울대병원 정문 봉쇄가 풀려 후문으로 들어가지 못 하는 백남기 농민 조문객들은 정문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지속되었다.
날이 저물어 저녁이 되면서 서울대병원 후문으로 들어가려던 방문객들과 백남기 농민 조문객들과 이들을 막아선 경찰 사이에 실랑이는 계속되었다. 저녁 8시경 백남기 농민 조문을 위해 후문을 찾아온 백종덕 가톨릭농민회 동지회 소속 (전) 가농 전남연합회 부회장 역시 경찰의 봉쇄에 막혀 영안실로 갈 수가 없어서 발을 동동 굴렀다.
백종덕씨는 1987년에 가톨릭농민회 고흥보성연합회 총무로 재직시 백남기 농민을 가톨릭농민회에 가입하게 하고 30여 년 동안 농민운동을 함께 해온 사이다. 백씨는 빈소에 빨리 가고자 하는 급한 마음에 후문 인근 담을 넘다가 넘어져서 머리를 크게 다쳐 서울대병원 응급실에서 두 바늘을 꿰매는 치료를 받았다.
결국 오후 8시 반, 박남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서울대병원 후문을 방문하여 봉쇄 책임자에게 봉쇄 해제를 요구하고 나서야 사람들은 제약 없이 후문을 드나들 수 있게 되었다.
백남기 농민이 안치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과 빈소 주변은 밤새 팽팽한 긴장감이 지속되었다. 백남기 장례위원회와 대책위, 농민과 학생, 청년, 시민들이 날을 꼬박 새우기도 하고 새우잠을 자면서 백남기 농민을 지켰다. 이들은 오전 6시경 경찰의 강제수색영장이 기각되었다는 소식에 잠시나마 안도하며 환호했다.
26일 오후 1시, 서울대병원 출입구 봉쇄는 완전 해제된 상태다. 사람들은 예전처럼 평화롭게 출입구를 드나들고 있다. 경찰이 영장을 재청구하지 않겠다는 발표가 있기는 하지만 백남기 대책위와 장례식장에 모여있는 사람들은 언제 상황이 바뀔지 몰라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유문철 시민기자는 충북 단양에서 아홉해째 유기농 농사를 지으며 녹색당 농업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본 기사는 블로그 <단양한결농원의 유기농사 이야기>와 페이스북 (필명 유기농민)에도 게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