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희망의 종이학 프로젝트>는 후쿠시마 참사 5주기,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투하 71주기를 맞아 기획된 탈핵을 위한 프로젝트로, <희망의 종이학 프로젝트> 노동당 참가단은 후쿠시마와 히로시마 등 핵에 의해 희생된 이들의 목소리를 전하기 위해 지난 8월 3일부터 8일까지 6일간 일본을 방문했습니다. 그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인터뷰로 연재합니다. -기자말

우리는 핵폭탄이 투하됐던 히로시마를 거쳐 대표적인 군사기지가 있는 이와쿠니와 쿠레 지역을 돌았다. 이와쿠니와 쿠레의 중간에 평화를 상징하는 히로시마를 이으면 삼각형 모양이 된다.

 이와쿠니, 구레, 히로시마의 지도
이와쿠니, 구레, 히로시마의 지도 ⓒ 이경자

핵(원자)폭탄과 핵발전소, 미군 기지는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인지 의아해 할 지도 모른다. 직접 눈으로 보기 전의 나도 그랬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가 '과거'의 핵폭탄을 의미한다면, 핵발전소와 미군기지, 일본 자위대는 여전한 '핵의 현재진행형'으로, 곧 전쟁을 의미한다.

이 일정을 통해, 그리고 이곳에서 군사기지 확장을 반대하는 주민들을 만나면서 참가단은 현존하는 동북아 정세의 생생한 긴장 상태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와쿠니 미군 기지는 2006년에 체결한 '주일 미군 재편에 관한 로드맵'에 따라 이전한 동아시아 지역 최대 규모의 미군 주둔기지다. 이 기지에 스텔스 전투기 F-35B형 기체 배치계획에 의해 16기가 2017년 1월에, 6기가 8월에 배치되고 함재기 59대가 들어오면 최첨단 항공 전력을 지닌 전초기지로 거듭난다. 이 로드맵의 결과 1만명의 미군이 이와쿠니 기지에 주둔하게 되어 전체 주일미군의 1/4, 이와쿠니 주민의 1/10 규모로 아시아 최대 규모의 미군기지가 될 것이다. 

일본 서부 지역 야마구치현 이와쿠니 기지는 중국의 해양 진출과 북한의 핵개발이라는 상황에서 아시아태평양에서의 억지력을 높이려는 조치로 미일 동맹의 자연스런 선택일 것이다."

1만명이 주둔하게 될 동북아 최대의 전초 기지, 이와쿠니

"이와쿠니는 오키나와를 제외하면 일본 본토에서 유일한 미 해병대 기지가 있는 곳이다. 이곳은 예로부터 암국(岩國)으로 불릴 정도로 돌과 바위가 많은 척박한 곳이어서 농부들은 강과 바다가 만나는 하류의 삼각주를 일구어 농사를 지었다고 한다. 그런데 제국주의 시대 일본군이 한반도와 가장 가까운 지역에 주둔하면서 군사기지가 되었고, 일제 패망 후에는 미군 기지가 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직선거리로 40킬로 떨어진 곳에는 히로시마 '평화공원'이 자리하고 있다.

최근 미군은 삼각주를 추가로 매립해서 활주로를 새로 만들었다.(이 매립에 쓰인 흙이 뒤에 설명할 '아타고야마 개발'시 깎인 산 흙이다.) 물론 이런 흐름에 당연히 주민들은 반대표시를 했지만(2006년 미군기지 확대 반대 주민투표에 60%의 주민이 참여해 90%가 반대) 소용 없었다. 우경화된 아베 정권은 이를 추진했고, 지난 5월 히로시마를 방문한 미국 오바마 대통령도 이와쿠니 기지에 오래 머물렀다고 한다."

이 장면에서 제주도 강정마을에서 주민들의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밀어붙이고 있는 제주미해군기지 싸움이 떠오른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이와쿠니 기지 근처에서 안내를 받고 있을 즈음, 안내자는 뒤에 따라 오는 차량이 "공항에서부터 따라 온 미군 차량"이라며, 얼마 전에도 공산당에서 "외국인 안내를 하는 과정에서 1시간 정도 구금되기도" 했다는 에피소드를 들려 주었다.

 이와쿠니에 위치한 미군기지 맞은편 해안에서 일본에서 미군기지 반대 운동을 이어오고 있는 주민들과 함께 찍은 사진
이와쿠니에 위치한 미군기지 맞은편 해안에서 일본에서 미군기지 반대 운동을 이어오고 있는 주민들과 함께 찍은 사진 ⓒ 이경자

행동의 사진집, 도무라 요시토

이와쿠니 기지를 드나드는 전투기를 빠짐없이 찍는 도무라 요시토 선생을 만났다. 도무라 요시토 씨는 빽빽한 전투기 사진이 담긴 파일집을 보여 주면서 기종과 이름, 성능을 설명해 주었다. 민간항공기를 타고 기지를 촬영하거나 망원렌즈로 찍어서 그의 홈페이지에 올린다고 한다(도무라 요시토 선생의 홈페이지 http://tomura.lolipop.jp).

10년째 미 전투기 사진만을 찍는 그는 미군의 집요한 군비 증강 만큼이나 미군의 군사적 침략과 야욕을 집요하게 파고 들고 있었다.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그는 "이 일을 계속할 것이다, 그래서 미국의 동북아 침략에 대한 경고를 지속"할 거라면서 유쾌하게 웃었다. 위험하지 않는냐는 질문에 "그래서 나는 사진을 찍으면 바로 온라인 상에 공개해서 공식화한다, 그러면 괜찮다"라고 답했다.

하지만 우리는 열심히 싸우고 있다

"이와쿠니 기지 확장을 위한 매립에 쓰인 흙은 근처의 산에서 나왔다. '아타고야마 개발' 사업은 근처 언덕 위의 산을 옮겨 간척지를 만들고, 그렇게 조성된 평지는 5,400명이 살 수 있는 시민 주택단지로 만들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미군 주택지로 변경되었다. 당연히 이와쿠니 기지에 배치될 미군이 살 곳이 필요했을 것이다. 11만명의 서명 등 반대가 이어졌지만 정부는 규모를 약간 줄여서 강행하여 내년에 완성될 예정이다."
             
전쟁할 수 있는 나라, 일본

삼각형의 다른 꼭지점에 해당하는 쿠레 해상자위대를 찾았다. 희비극으로 운명을 마친 2차 세계대전 당시 최대 전함 야마토가 건조(建造)된 독(Dock)도 볼 수 있었다. 지금은 민간회사가 운영하고 있지만, 쿠레 조선소는 언제든 군함을 제조할 수 있는 설비가 완비되어 있다. 피스링크(Peacelink. 쿠레지역의 반전평화운동 단체. 작은 보트를 타고 자위대 함정에 다가가 자위관들에게 반전평화를 호소하는 활동을 주로 한다고 한다) 활동가가 해상자위대 기지를 안내해주었다.

 멀리서 촬영한 쿠레 해상자위대 기지
멀리서 촬영한 쿠레 해상자위대 기지 ⓒ 이경자

'역사가 보이는 언덕', 야마토 전함 만든 곳

언덕에서 내려다 보이는 바다에는 자위대함들이 일본의 추석을 맞아 정박해 있고, 멀리 보이는 해안가 쪽으로 군사시설과 탄약고가 많이 남아 있다. 여기서 만든 화약의 70~80%가 쿠레 해상자위대에 보급된다. 1991년 걸프전 당시 여기 탄약이 실제로 쓰이기도 했다. 패전 이후에 일 해군은 영국군에 의해 무장해제되었고, 영국군은 곧 철수했다. 쿠레는 국유지라서 해상자위대로 편입되었고, 나머지 지역은 미군에 의해 미군기지로 편입되었다.

"쿠레가 군항으로 자리잡게 된 이유는 섬이 많아서 해군 기지를 숨기기 좋기 때문이다. 잠수함도 있다."

왜 미군은 철수하지 않았을까?

"전쟁이 끝나면 종전협정 맺어야 하는데, 태평양전쟁 후 미일 사이에 1952년 샌프란시스코 강화(평화)조약에 의해 점령군이 사라지게 되었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은 미일가이드라인, 안전보장조약을 맺는데 미군 기지를 그대로 사용한다는 내용이 되었다. 그에 따라 나머지 지역에는 미해군 기지가 잔존하게 되었고, 육상자위대, 해병대도 남아 있다가 일본의 반대에 부딪혀서 오키나와로 옮겨가게 된 것이다."

전함 '야마토'는 2차 대전이 끝날 무렵 일본에서 야심차게 만든 세계 최대 규모의 전함이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야마토는 너무 큰 몸짓과 신 무기에 밀려 제대로 이용되지 못한 채 운명을 다하게 되었다. 일본인들에게 야마토는 군국주의의 부활의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일종의 아이콘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한다.

일본 평화헌법 9조는 '전쟁을 포기하고, 국가의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으며, 군대를 보유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일본 의회는 작년 9월 '신안보법'(일명 전쟁법)을 통과시켜 일본 자위대의 '집단자위권' 행사 허용함으로써 일본은 '전쟁할 수 있는 나라'가 되었다. 더구나 지난 7월  참의원 선거에서 2/3 이상 의석을 얻으며 압승한 아베 정권은, 평화헌법 9조마저 없애려고 하고 있다.

탈핵, 전쟁 종식과 평화를 위한 첫 걸음... 결국 민주주의 문제다

살고 있던 땅을 군사 기지로 빼앗기고, 아름다운 산은 깎여 나가 군대의 주택지로 쓰고, 평화로운 마을 공동체가 파괴되는 경험들은 한국과 다르지 않았다. 사회적 약자들의 의사는 철저히 무시된 채,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삶이 파괴되고, 그곳은 또 다른 공동체를 파괴하기 위한 전진기지로 사용되는 현장. 송전탑 싸움을 하는 밀양과 제주의 강정 마을은 일본 땅에도 있었다.

한국의 사드 배치와 일본의 미군 기지 확장은 동북아에서 북한과 중국을 염두에 둔 미국의 정치적 전략이라 볼 수 있다. 또 일본의 집단 자위권 허용은 미국이 군비 부담을 줄이면서, 일본의 힘을 빌어 중국을 봉쇄하려는 미국의 전략에 일본 정부가 편승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최근 일련의 상황은 한반도와 동북아에 긴장을 높이고, 전쟁의 위험을 가중시키고 있다.

모든 핵을 반대한다, 국제 연대와 반전 평화 운동으로

북한의 5차 핵실험에 이어, 경주 인근에서 이어지는 지진으로 혼란에 빠진 한반도는 핵폭탄과 핵발전소의 파괴적 위험을 한꺼번에 안고 있다. 물론 최근의 지진 경고로 노후 원전 폐쇄와 위험 지반 위의 건설 반대, 안전 점검에 대한 요구는 높아가고 있지만 근본적인 핵에 대한 반대 의지는 아직도 요원할 일이다. 

더구나 얼마 전부터 한국의 핵무장론이 또는 전술적 핵배치 주장이 정치권에서 나오고 있는 등 스스로 위험천만한 상황이 진행되고 있다.

핵발전의 '평화적 이용'이 불가하듯, 핵무기의 평화적 이용 또한 불가하다. 모든 핵을 반대하고, 핵 실험과 핵 발전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 북한의 핵무기를 반대하고, 한국의 핵 발전을 반대하고, 나아가 미국과 일본 등 모든 나라의 핵 보유를 반대한다. 세계 평화를 위해서도, 인류의 안전을 위해서도 모든 나라에서 비핵화를 약속해야 한다. 핵과 평화는 공존할 수 없고, 한 나라의 문제로만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 일정 내내 헌신적인 준비와 노력으로 한국의 탈핵운동과 일본의 생생한 현장을 이어주고, 연대의 절실함을 깨닫게 해 준 AWC(Asia-Wide Campaign against the U.S - Japaness domination and aggression of Asia) 활동가들에게 깊은 감사와 신뢰의 인사를 전한다. 이번 일정을 시작으로 한국에 작지만 의미있는 반전평화 운동의 씨앗을 뿌릴 것이다.


#이와쿠니#구레#미군기지#일본자위대#탈핵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