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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서울 시내 지하철역 곳곳에서는 '#불편해도 괜찮아'라는 제목의 대자보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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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도입하려는 성과연봉제는 신자유주의가 만들어낸 파생품이다. 신자유주의를 금과옥조로 여기는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빈곤한 노동 감수성이 빚어낸, 노동자의 발목을 옥죄는 또 하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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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이 불편을 감수하면서까지 철도 파업을 지지하는 이유가 뭘까. 시민들은 이번 파업이 '제 밥그릇 지키기'가 아님을 안다.
대자보가 다시 등장했다. 이번에는 대학교가 아닌 지하철역이다. 현재 서울 시내 지하철역 곳곳에서는 '#불편해도 괜찮아'라는 제목의 대자보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전국 철도·지하철 노조 파업을 지지하는 내용이 담겨 있는 이 대자보는 지난 2013년 말 신드롬을 일으켰던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를 연상시킨다.
'#불편해도 괜찮아' 대자보는 철도민영화와 부정선거 의혹, 밀양 송전탑 등의 시국 문제와 관련해 시민들의 무관심과 침묵을 비판하며 우리 사회에 신선한 충격과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보다 내용 면에서 한층 더 진일보한 모습이다.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가 정치에 무관심한 시민들의 성찰을 촉구하는 계몽적 성격이 강했다면, '#불편해도 괜찮아' 대자보는 시민들의 주체적인 자발성이 돋보이기 때문이다. 그 사이 시민들의 정치의식이 함양되었다는 방증일 것이다.
철도파업은 시민의 불편함과 직결된다. 서울 지하철의 하루 이용객만 720여만명(통계청, 2014년 기준)에 달한다. 철도파업으로 시민들의 발이 묶이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이 기꺼이 철도파업을 응원하고 지지하고 있다. 시민들이 불편을 감수하면서까지 철도 파업을 지지하는 이유가 뭘까.
'불법 노조' 프레임에 속지 않는 국민들전국 철도·지하철 노조 공공부문 노동자 6만여 명이 무기한 총파업에 나선 것은 지난 27일이다. 파업의 이유는 정부가 공공부문에 도입하는 성과연봉제 때문이다. 성과연봉제는 실적과 연계해 급여와 승진 등의 보상을 제공하는 인사체계다. 정부는 이를 통해 직무 효율성을 높이고 생산력을 증대시키며, 신규고용을 늘리겠다는 복안이다.
그러나 세부적인 내용을 들여다보면 많은 문제점이 노출된다. 성과연봉제가 성과미흡자에 대한 퇴출의 근거로 악용될 수 있다는 점, 공공부문의 성과를 계량화하기 힘들다는 점, 성과평가의 공정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점, 줄서기와 업무쏠림 현상 등 부작용이 속출할 수 있다는 점, 성과주의에 따른 개인이기주의가 만연해지고 노조의 기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점 등 갖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무엇보다 공공부문의 성과연봉제는 OECD의 경우에서 확인되듯 성공한 사례가 거의 없다. OECD의 보고서와 각종 연구결과에 따르면 현재 성과연봉제를 시행하고 있는 나라 중 공공 분야에서 이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는 나라가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국제공공노련(Public Services International, PSI)이 지난 5월 1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공공부문 성과연봉제의 문제점과 노동조합의 대응방향 국제토론회'에서 우리 정부의 성과연봉제 확대 도입에 깊은 우려를 표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당시 PSI는 공공성을 최우선의 가치로 생각하는 공공부문의 성과연봉제 도입이 오히려 역효과를 내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는 '#불편해도 괜찮아' 대자보에서도 바로 이 부분을 지적하고 있다. 시민들은 '지하철 노조가 파업을 돌입한 이유는 성과퇴출제 때문, 대한민국의 모든 일자리들이 하향 평준화되어야 하나?', '우리가 불편한 원인은 파업하는 노조 때문이 아니라 공공기관을 성과주의로 내모는 현 정권과 자본 때문' '성과연봉제가 공공기관에 도입되면 다음은 우리 차례가 될 것', '철도 지하철 같은 공공기관은 성과보다는 공공성과 시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야 하는 것. 평소엔 개돼지 취급하면서 파업할 때만 귀족노조. 이런 프레임 이젠 안 통해'라고 지적하며 정부가 도입하려는 성과연봉제를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이처럼 '#불편해도 괜찮아' 대자보는 그들의 역동성과 통찰력을 오롯이 드러내 보인다. 시민들이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공공부문의 성과연봉제에 맞서 총파업을 선언한 철도·지하철 노조에 대해 정부가 꺼내든 무기는 귀족노조 프레임이었다. 정부는 귀족노조가 시민들을 볼모로 '제 밥그릇 지키기' 파업에 나서고 있다고 여론전을 폈다. 이 전략은 노조 파업이 벌어질 때마다 등장하는 클리셰다. 그러나 시민들은 이번 파업이 '제 밥그릇 지키기'가 아님을 안다. 시민들은 바보가 아니다.
인간은 기계가 아니다
신자유주의가 가장 팽배해 있는 나라 대한민국에서 노동의 가치는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노동은 경제성과 효율성, 성과주의 같은 미혹의 언어를 계량화시키는 수단으로 전락했다. 치열한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성공과 신화로 교묘하게 포장되는 사이, 경쟁에서 밀려난 사람들은 낙오자, 패배자, 잉여인간이 되어야 했다. 인간은 경제성과 효율성이라는 미명 하에 이윤창출의 부품이자 부속, 도구가 되어 버렸다. 신자유주의가 초래한 비극이다.
정부가 도입하려는 성과연봉제는 신자유주의가 만들어낸 파생품이다. 신자유주의를 금과옥조로 여기는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빈곤한 노동 감수성이 빚어낸, 노동자의 발목을 옥죄는 또 하나의 덫이다. 적자와 손실은 용서할 수 없는 범죄이자 죄악이라 규정하는 신자유주의 속에서 이렇듯 '인간'과 '노동'의 가치는 설 자리를 점점 잃어간다.
그렇다고 희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무릇 변화는 작은 것에서 시작하고, 때로 역설에서 싹을 틔운다. '#불편해도 괜찮아' 대자보가 반가운 것은 그런 이유다. 자본과 권력에 의해 비겁하고 저열하게 왜곡되어온 노동현실의 본질을 시민들이 정확하게 꿰뚫어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부품이자 도구가 아님을, 인간은 기계가 아니라 그저 '인간'일 뿐임을 시민들 스스로가 각성하고 있는 것이다. 이 얼마나 고맙고 귀한 일인가.
인간과 노동의 가치는 아직 죽지 않았다. 지하철역 곳곳에 붙어있는 대자보가 이를 여실히 입증해주고 있다. 아직, 희망이 있다.
*서울시 지하철 노사는 투자기관 성과연봉제 관련 집단 교섭을 통해 성과연봉제 도입여부를 노사합의로 결정하고, 저성과자 퇴출제를 시행하지 않기로 하는 등의 합의안을 도출하고 29일 오후 6시를 기해 파업을 종료했다. 덧붙이는 글 | * 이 글은 국민뉴스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