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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 한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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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군의 날'에 평생 기억에 남을 이벤트로 군인인 아들에게 기쁨을 주려한 내 행동이 이런 결과로 이어질지 상상도 못했다.
매년 10월 1일은 국군의 날입니다. 그런데 저는 제가 겪은 그 사건 이후, '국군의 날'만 되면 속에서 끓어오르는 화가 삭지 않은 채 그대로 되살아나곤 합니다. 도대체 대한민국에서 군인의 부모로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국군의 날, 저는 대한민국 국방부에 할 말이 있습니다.

아들, 대한민국 군인이 되다

 2013년 10월 7일 아들이 입대했습니다. 집단생활에 익숙하지 않은 아들이 과연 잘 생활할 수 있을까 걱정했습니다.(사진은 영화 '미운 오리 새끼(2012)' 중 한 장면)
2013년 10월 7일 아들이 입대했습니다. 집단생활에 익숙하지 않은 아들이 과연 잘 생활할 수 있을까 걱정했습니다.(사진은 영화 '미운 오리 새끼(2012)' 중 한 장면) ⓒ 미운오리새끼(2012)

1993년에 태어난 아들이 '국가의 부름을 받고' 군에 입대한 때는 2013년 10월 7일의 일이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집단 생활에 익숙하지 않았던 아들이 과연 군에서 잘 생활할 수 있을까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아들은 306 보충대에서 거짓말처럼 군인으로 입대했습니다.

그리고 이날 이후 아버지인 저는 내내 걱정으로 마음을 끓였습니다. 혹여 우리 아들도 윤 일병처럼 참담한 일을 겪고 있는 것은 아닐지, 또는 자기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어떤 일로 인해 혼자 허우적 거리고 있는 것은 아닐지 걱정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어쩌면 이러한 저의 기우는 다른 부모보다 더 심한 가슴앓이였을지 모릅니다. 고백하자면, 일종의 트라우마 같은 것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인권 운동을 하며 군과 관련한 문제를 많이 접해 왔습니다. 그래서 군 복무 과정에서 아들을 잃은 500여명의 유족을 만나왔고, 그 하나 하나의 사연을 그 분들에게 들으며 함께 울고 또 분노해 왔습니다.

어떤 분은 또 그럴지 모릅니다. "요즘 군대, 참 좋아져서 모두가 다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아니니 너무 지나치게 걱정하지 말라"고. 네. 그렇습니다. 그 말씀도 맞을 겁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게 또 그렇지 않은 사연이 있습니다.

제가 만나온 500여 명의 군 사망사고 피해 유족에게는 놀라운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모두 다르고, 다른 하나는 '모두가 똑같은' 공통점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다른 것은 그들의 '피해 유형'이었습니다. 누군가는 육군이었고, 또 공군이거나 해군이었으며, 사인 역시 총상으로 인한 사망이나 또는 목맴, 혹은 익사나 사고사로 위장된 죽음 등등 그 억울함의 형태 역시 제각각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다 제각각인데, 놀랍게도 일치하는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내가 이 참혹한 일에 당사자가 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는 일치된 절규였습니다. 그랬습니다. 우리가 혀를 차며 "어떻게 저런 일을 당하지" 싶은 일을 당하는 분 역시 우리와 뭐가 달라서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제가 만난 어느 유족의 사례 역시 그랬습니다.

"아들이 자살했으니 빨리 부대로 오셔야 한다"

판문점에서 발생한 김훈 중위 의문사가 언론을 통해 보도될 때, 그 안타까운 사연을 뉴스로 접하며 한 어머니가 혀를 차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때 한 통의 전화가 집으로 걸려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전화를 받은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까무러쳤다고 합니다. 군대간 아들의 부대 주임원사가 전화를 통해 들려준 그 말, "아들이 자살했으니 빨리 부대로 오셔야 한다"는 전갈이었다고 합니다.

이런 사연을 수도 없이 접해 온 저로서는 언젠가부터 아들이 군에 가면 그저 무사히 제대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다행히 아들은 입대후 별 탈 없이 군 복무를 잘 해나가고 있었습니다. 훈련소 입소 후 6주간의 군사 훈련도 잘 마쳤고 이어 자랑스러운 이등병 계급장을 달며 퇴소하던 날, 부모에게 경례하는 제 아들을 본 뒤 기분좋은 배시시 웃음이 나는 것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이어 짧은 시간 허락된 영외 면회 덕분에 아들을 데리고 훈련소 밖으로 나왔습니다. 미리 양념에 재워온 고기를 굽고, 또 전화로 먹고 싶다던 치킨도 준비했습니다. 아내는 집밥을 먹이고 싶다며 누룽지가 붙은 밥을 수북이 담아 아들에게 내밀었습니다. 그렇게 아들 챙기느라 우리 입에는 때가 지나도록 밥 한 술 넣어 보지 못했지만 이상하게 배가 불렀고, 그저 잘 지낸 아들이 고맙고 대견한 마음만 가득했습니다.

하지만 훈련소에서 허락한 짧은 면회 시간 종료는 어김없이 다가왔습니다. 저는 아쉬운 마음이 가득했지만 이미 컴컴한 밤이 되어 버린 11월 어느 날 저녁 8시, 다시 아들을 부대에 반납(?)하기 위해 모 사단 훈련소 연병장으로 차를 몰았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아버지. 어머니. 이제 그만 내릴게요. 조심해서 돌아가세요."

누구도 먼저 입을 떼지 못한 채 차안에 침묵이 흐를 때, 아들은 이 말 한마디를 남긴 후 차문을 열고 내렸습니다. 훈련소 입소일 날 처음 헤어지고 다시 두 번째 헤어져야 하는 그 순간, 제 마음속엔 아들을 빼앗기는 듯한 절박한 심정 해일처럼 일었습니다. 그래서 돌아가는 아들을 마지막으로 안아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절박한 심정으로 운전석 문을 열고 따라 내리려 하던 제 귀에 날카로운 목소리 하나가 꽂혔습니다. "부모님은 차에서 내리지 말고 그대로 운전해서 밖으로 나가십시오." 딸칵하는 운전석 차문 여는 소리를 들었는지 훈련소 교관이 저를 보며 지시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멈칫했습니다. 마음은 내리라고 했지만 몸은 이미 그 교관의 지시에 따르고 있었습니다. 저는 끝내 아들을 안아보지 못한 채 그대로 돌아 나왔습니다.

마지막으로 아들을 한 번만 안아보고 싶다는데, 그것을 막아서는 교관이 그때 얼마나 원망스러웠는지 모릅니다. 지금 헤어진 아들과 다시 또 만날 수 있을지, 아니면 내일이라도 누구처럼  당신 아들이 방금 전 어찌 되었으니 지금 부대로 오라는 말을 듣게 되는 건 아닐지 알 수 없는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그 아들을 한 번만 안아 보겠다는데 이를 막아선 교관이 너무도 야속했습니다. 하지만 교관의 지시를 무시했다는 이유로, 혹여 아들이 제가 돌아간 뒤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내리지 못했습니다.

그날 밤, 저는 돌아오는 길 위에서 왠지 모를 서러움에 운전하면서 울었습니다. 뒷좌석에 앉은 아내와 딸이 알까 싶어 소리 내어 울지는 못했지만 두 눈에선 눈물이 한없이 주륵주륵 흘렀습니다. 대한민국 아버지라면 이 심정에 공감하지 않을까요? 그날, 그 일이 떠올라 또 눈물이 납니다.

국군의 날, 아들을 기쁘게 하고 싶었다

 국군의 날을 맞아 아들에게 깜짝 이벤트를 해주고 싶었다.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과자 중에서 인기가 좋은 것을 하나씩 샀다.(사진은 당시에 보낸 과자는 아닙니다.)
국군의 날을 맞아 아들에게 깜짝 이벤트를 해주고 싶었다.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과자 중에서 인기가 좋은 것을 하나씩 샀다.(사진은 당시에 보낸 과자는 아닙니다.) ⓒ 김대홍

그래서 준비한 일이 있었습니다. 아들이 입대한 2013년 10월 7일은 그해 국군의 날이 이미 지나간 때였습니다. 그리고 아들이 21개월간의 군 복무를 마칠 때는 2015년 7월. 그러니까 아들이 군인으로서 '국군의 날'을 맞이하는 것은 복무중 딱 한 번 뿐이었던 것입니다. 바로 2014년 10월 1일, 그날이었습니다.

저는 아들이 대한민국 군인으로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맞이하는 그 날을 기쁘게 해 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작은 이벤트를 고민했습니다. 그러다가 생각난 것이 '과자 선물 세트'였습니다. 군인이 되면 가장 먹고 싶다는 과자를 부대로 보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이를 받고 아들은 얼마나 놀라고 또 기뻐할까요? 결심을 바로 실행했습니다.

먼저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과자 중에서 인기가 좋은 것을 일일이 하나씩 샀습니다. 그렇게 종류별로 하나씩, 수십 봉지를 산 후 박스에 포장하여 아들에게 보냈습니다. 그러면서 "군인 생일인 국군의 날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선물로 이 과자를 보내니 함께 근무하는 부대원들과 나눠 먹으며 군인의 생일인 국군의 날을 행복하게 보내라"는 메시지를 함께 보냈습니다.

그리고 내내 기대했습니다. 아버지가 보낸 이 뜻밖의 선물을 받은 후 아들이 기뻐할 모습을 상상했습니다. 그러면서 고맙다는 전화를 아들이 해 주겠지 내심 기대했습니다. 그렇게 걸려올 아들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던 그때였습니다.

이럴 수가. 제가 기대했던, 그리고 제가 생각한 그 일이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는 악몽이 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이후 국군의 날만 되면 전 아들에게 미안해지고, 또 대한민국 군대만 생각하면 화가 납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아버지 때문에 저 벌점 받았어요"

'선물이 도착할 때가 되었는데...' 싶었던 그때, 마침내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꺅~ 아빠. 고맙습니다"라는 반응을 기대하며 받아든 전화,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환호성도 없었고, "고맙습니다"라는 옥타브 높은 아들의 인사말도 없었습니다. 대신 들려온 아들의 말투에는 두려움만 가득 배어 있었습니다. 그때 아들이 말했습니다.

"저, 아버지. 저에게 보내준 과자 소포 때문에 문제가 좀 생겼어요."

순간 불안감이 쓰나미처럼 저를 덮쳤습니다. 그리고 듣게된 어처구니없는 경위. 아들에게 커다란 과자 소포가 배달되자 당일 부대 당직 사관인 중사가 이를 문제 삼았다는 것입니다. '과자가 부대 취식물 반입 규정을 위반한 것'이라며 이를 받은 아들에게 벌점 부과와 함께 "당일 안으로 보내온 과자를 전부 먹으라"는 지시가 내려졌다는 것입니다. 애초에는 발송인에게 전부 반송 조치하려 했으나 그건 좀 심한 것 같아 취식은 허용했다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기가 막힌다는 말로도 다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국군의 날'에 평생 기억에 남을 이벤트로 군인인 아들에게 기쁨을 주려한 제 행동이 이런 결과로 이어질지 상상도 못했습니다. 더구나 동료와 나눠 먹으라고 보내준 그 엄청난 과자를, 혼자 당일 안에 다 먹으라고 지시했다니 이게 말이 되는 일인가요?

하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부대로 달려가 뭐라도 하고 싶었으나 그렇게 하면 혹여 부대측에서 군 복무중인 아들에게 또 다른 불이익을 줄까봐 그랬습니다. 그래서 울화통이 터지고 화가 났지만 저는 참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군대에 자식 보낸 오늘날 대한민국 군인의 부모 처지일 것입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봐도 그때 그 부대 당직사관의 주장은 말도 안되는 일이었습니다. 훗날 어찌어찌한 경위를 통해 부대측 해명을 들을 일이 있었는데 그들은 "반입된 취식물로 식중독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어 그랬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과연 이 해명이 타당한 일일까요? 부대 매점에서도 과자는 파는데 과자로 인해 무슨 식중독 사고가 일어난다는 것일까요?

하지만 이후 군을 제대하고 나온 아들에게 어느날 들은 뒷이야기는 더욱 그날의 일을 후회하게 했습니다. 아들은 "사실은 그날 저녁밥 대신 아버지가 보낸 과자를 먹어야 했다"면서 "당직사관이 '오늘 밤 안으로 보내온 과자를 다 먹으라'고 지시하여 '먹을 수 있을 때까지' 과자를 먹어야 했다"고 말했습니다. 아버지인 저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들에게 지금도 미안합니다. 국군의 날만 되면 그 일이 생각나 더 그렇습니다. 아들을 기쁘게 해 주고 싶어 아버지가 준비했던 몰래 이벤트가, 오히려 내 사랑하는 아들을 괴롭히는 일이 될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러면서 참 다행스럽고 고마운 일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저에게 아들이 하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군대, 다시 또 아들을 보낸다는 것을 상상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국군의 날, 만약  그때로 다시 시간이 돌아간다면 저는 그러한 이벤트를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냥 몸 다치지 않고 무사히 살아서 내 곁으로 돌아와 다오. 이 말만 하고 싶습니다.

다시 돌아온 국군의 날, 제 가슴에 또 불이 일어납니다. 대한민국 군대는 바뀌어야 합니다. 비상식적이고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벌어지는 곳이 군대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일로 인해 아들을 군인으로 보낸 부모는 자랑스러운 애국자가 아니라 '또 다른' 죄인처럼 살아갑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모든 군인의 부모님. 힘내십시오. 누가 뭐라고 해도 여러분이 진정한 이 나라의 또 다른 애국자입니다. 여러분의 아드님이 건강하게 다시 부모님의 품에 돌아가는 날까지 군인 인권 개선을 위해 함께 노력하겠습니다. 대한민국 의무복무중 군인 여러분의 건강을 기원합니다.


#국군의 날#군대#군인#훈련소#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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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운동가, 재야인사 장준하 선생 의문사 및 친일 반민족행위자의 재산을 조사하는 조사관 역임, 98년 판문점 김훈 중위 의문사 등 군 사망자의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저서- 중정이 기록한 장준하(오마이북), 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돌베개), 다시 사람이다(책담) 외 다수. 오마이뉴스 '올해의 뉴스게릴라' 등 다수 수상

공연소식, 문화계 동향, 서평, 영화 이야기 등 문화 위주 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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