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어린 아이들과 지내다 보면 아이들 세계에서도 사랑의 어떤 법칙이 존재하는 것처럼 여겨진다. 아니 어쩜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다는 것은 본능적인 감정일지도 모른다. 이제 겨우 잘 넘어지지 않고 달리기를 할 수 있는 어린 아이일 뿐인데, 본능적으로 사랑을 받은 만큼 아끼는 대상에게 수줍고도 어여쁘게 애정을 줄 수 있다는 게 놀라울 때가 많다.
특히 큰 아이가 동생에게 베푸는 작고 소소하면서도 깊은 사랑은 가끔씩 어른들을 감동케 했다.
꿈같은 사랑
반복적인 일상 속에서도 해사한 웃음이 지어질만한 깜짝 선물과도 같은 이야기가 등장한다. 아들의 일과가 끝나는 오후가 되어 딸아이와 어린이집 현관 앞에서 꽤 설레는 가슴으로 기다리는 날의 반복. 갑작스런 그 날의 깜짝 선물은 현관에 아이 손을 잡고 나오신 어린이집 담임선생님의 "어머님, 들어보세요!"라며 다소 고조된 목소리로 시작되었다.
"오늘 체육시간에 체육선생님이 막대사탕을 아이들에게 하나씩 선물해 주셨는데, 우리 꼬맹이가 동생 건 없어서 어떻게 하냐며 걱정이 가득 하더라구요. 동생 사랑이 지극해요."그렇게 말씀하시며 동생에게는 사탕 대신 포도를 선물하는 건 어떻겠냐며 내 앞에서 아이를 설득시키시고는, 딸아이를 위해 작은 봉지에 포도를 조금 싸오신 것이다. 동생에게는 아무것도 주지 못하고 혼자만 사탕을 먹는다는 게 미안했던 걸까.
큰 아이는 가방에 고이 넣어둔 사탕을 집에 와 그제야 먹었다. 사람에게 감동받았던 적이 기억에서 까마득한데, 그 날은 내 아이에게 사람에 대한 감동의 전율을 오랜만에 느꼈던 날이다.
사람에게 질려있는 현실 속에서 아이의 서슴없는 사랑을 보며, '이건 현실이 아니라 꿈인가' 생각하기도 했다.
사람에게서 떼어놓을 수 없는 것들 중엔 사랑도 있다는 본능적인 진리를 엄마에게 다시금 깨닫게 하려는 듯 말이다. 특히 집 밖에만 나가면 남매의 사랑은 남들 사이에서 더 돈독해지고, 자기들끼리 무언의 약속을 한 듯 특별해지는 것이다.
집에서는 아웅다웅 다투는 일이 사랑하는 일보다 더 잦다가도, 밖에만 나가면 세상 부러울 것 없는 사이좋은 남매지간이 된다. 큰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 있는 동안 떨어져 있는 시간이 둘 사이의 그리움을 유발하는 것일까.
하루 중 꽤 많은 시간을 떨어져 있는 동생을 향한 그리움은 동생에게도 맛있는 간식을 나눠주고 싶은 사랑으로 번졌을 것이다. 가족 역시 적당한 거리를 둔 관계 속에서 더 사랑이 싹트는 걸까.
담임선생님을 통해 어린이집에서 큰 아이가 동생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애틋했던 이야기를 전달받으면 피식 웃음이 나기도 하다가 이내 가슴이 떨릴 정도로 감동의 소용돌이에 휩싸인다.
어른의 세계에 살며 아득바득 현실을 지탱하느라 애틋한 그리움과 사랑 혹은 우정 등의 감정들이 옅어진지 오래이다.
'나는 언제 누구를 그리도 애틋하게 그리워했고, 사랑했을까.' 기억하기 어려운 과거를 전부 들추어 감정을 헤집어 보기엔 그 때의 나와, 지금의 나 사이의 간극이 너무 큰 것 같았다. 아이를 통해 느끼는 안정적인 사랑의 행복감이 내게 유독 크게 다가왔다는 것이 그 때문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사랑의 바통터치어느 날은 같은 반 친구가 자신의 사촌 동생 이야기를 하는 와중에 큰 아이가 끼어들며
"내 동생은 점점 더 예뻐지는데."라고 동생 자랑에 목소리가 높아졌다는 것이다. 선생님께서 맞장구 쳐주시니 더욱더 신이 나서 동생이야기는 오래도록 끝이 나지 않았다고 한다. 둘이 함께 했던 놀이에 관한 내용으로 확장 전개된 이야기를 한참 더 들어주셔야 했다는 말을 듣고는, 재밌어서 선생님 앞에서 손뼉을 치며 박장대소를 했었다.
또, 예쁘게 차려입고 온 여자 친구를 보며 선생님께서 "친구 오늘 예쁘지?"라고 물으니 문을 열고 밖에 나갔다가 다시 교실에 들어와 그 친구를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아니, 내 동생이 더 예뻐." 라며 묻지도 않은 말이 예상치 못하게 툭 튀어나오는 아들의 여동생 사랑은, 이렇게 있었던 일들을 글로 늘어놓다 보니 정말로 깊고 지극한 것 같긴 하다.
며칠 전 어린이집 요리놀이시간에 만두를 두 개 만들고는 집에 돌아와 동생에게 한 개를 나누어 준다며 들뜬 눈빛으로 팬에 구워주길 재촉하던 아들. 나란히 식탁에 앉아 한 개씩 나눠먹으며 오빠 노릇을 해서 기쁜 것 마냥 내내 웃음이 가시질 않았던 아이 미소의 여운이 내내 가시질 않는다.
'네 사랑이 동생에게 흐르기 전부터 엄마의 사랑이 널 향해 흐르고 있었어.'사랑이라는 것이 물과도 같아서 자꾸만 아래로 흐른다. 내가 널 사랑한 흔적이 네가 동생을 사랑하는 마음이 되었구나. 깊은 곳에서도 연이어 흘러가는 물처럼 우리 사랑이 바통터치가 되어 흐른다.
덧붙이는 글 | 개인블로그 http://blog.naver.com/rnjstnswl3 중복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