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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반의 위헌, 절반의 합헌

지난 4월 5일 한창 총선 열기로 뜨거웠던 그때, 헌법재판소 앞에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피켓과 마이크를 들고 기자회견을 하던 그들은 바로 4월 총선에서 마포을에 출마한 노동당 하윤정 선거운동본부(아래 선본)이다. 이들이 헌법재판소 앞에 모인 건 기혼자를 우대하는 선거법을 개정하라고 요구하기 위해서다.

현행 선거법은 후보자 명함을 돌릴 수 있는 선거운동원에 배우자와 직계 존비속을 포함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배우자와 직계존비속이 없는 후보를 차별하는 것이다. 이에 하윤정 선본은 선거법 개정을 요구하고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그로부터 어언 6개월이 지난 9월 29일, 헌법재판소는 결정문을 발표했다. '절반은 위헌, 절반은 합헌'이라는 내용이다. 선거운동 시 후보자 명함을 돌릴 수 있는 사람으로 '후보자의 배우자가 지정한 사람 1명'을 포함한 것은 위헌, '배우자와 직계존비속'을 포함한 것은 합헌이라는 결정이다.

간단히 말해, 후보자의 배우자는 명함을 돌려도 되지만, 배우자가 지정한 사람은 안 된다는 얘기다. 재판부는 기회 균등의 원칙에 반한다고 위헌 판결 이유를 밝혔다. 그런데 배우자는 명함을 돌려도 된다고 말한다. 그것은 기회 균등의 원칙에 반하지 않는다는 말일까?

우리는 헌법재판을 청구했던 하윤정씨를 만나 이번 결정에 관해 이야기 나눴다.

결혼하지 않으면 '어른'이 아니다?

 지난 4월 헌법재판소 앞 선거법 개정 기자회견 모습
지난 4월 헌법재판소 앞 선거법 개정 기자회견 모습 ⓒ 하윤정

- 안녕하세요. 지난 9월 29일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보셨을 겁니다. 이번 결정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처음 소식 들었을 때는 좀 얼떨떨했어요. 결정이 나는데 1년 정도 시간이 걸릴 거라고 생각해서 잊고 있었거든요. 부분 위헌결정이 났기 때문에 기쁜 마음이 반 정도는 있으면서도 핵심적인 부분인 배우자와 직계존비속에 대한 부분이 합헌결정이 나서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 그렇군요. 아직 많이 부족한 결정인 것 같습니다. 선거 때 결혼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겪은 또 다른 차별은 없었나요?
"선거를 거치면서 비혼, 청년, 여성, 원외 정당 후보 이렇게 네 가지 정체성이 만나자 여러모로 제약이 많았습니다. 직접적인 제약은 위헌청구를 한 것처럼 명함 배포 등과 관련한 것이 있을 것 같고요. 기본적으로 여성청년은 후보가 아닐 것이라는 강한 선입견을 유세하는 내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선거 기간 내내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이, '본인이냐' '몇 살이냐' '결혼은 했냐'와 같은 질문이었습니다. 정책이나 내용으로 소통하기가 쉽지 않았던 부분이 있었고, 초면에 반말을 하는 유권자들도 간혹 있었고, 제가 출마한 지역구의 전 국회의원은 저더러 수고한다며 어깨를 툭툭 치고 지나가기도 했습니다. 아마 저를 진짜 국회의원 후보로 생각했다면 그렇게 행동하지는 않았겠죠."

 헌법재판을 청구했던 하윤정씨 최근 모습
헌법재판을 청구했던 하윤정씨 최근 모습 ⓒ 각비

- 예. 결혼하지 않은 "젊은" 여성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이 많이 느껴지네요. 혹시 이와 관련된 또 다른 공약이 있었나요?
"현재의 다인가족중심 복지시스템을 1인 가구, 여성, 장애인 등에게도 열린 시스템으로 바꾸자는 공약을 걸었어요. '여성의 공간에 안전을'이라는 키워드로요. 사실 임대주택에 비혼이나 1인 가구가 입주하는 것이 만만치가 않거든요.

요즘은 서울시를 중심으로 1인 가구 청년들을 위한 협동조합형 주택이 보급되고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임대주택은 가난하고, 가족 수가 많아야 입주할 수 있는 확률이 높아요. 1인 가구 비율이 전체 가구의 25%를 넘어서는 현실이 반영되지 않은 거죠. 비혼 가구뿐 아니라 이혼이나 사별 등으로 특히 노년 1인 가구 수도 높아지고 있고요. 변화하는 가족형태에 따라 복지시스템도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 그렇군요. 하윤정씨가 결혼하지 않은 "젊은" 여성의 당사자이시기도 한데, 본인이 직접 겪었던 차별은 어떤 게 있었나요?
"일단 결혼을 하지 않으면, '어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요. 얼마 전 추석 연휴에 부모님과 대화를 나누다가 '어서 네가 결혼을 해야 더 이상 신경 안 쓰고 마음을 놓지'라고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리고 늦은 나이까지 결혼을 하지 않으면, 그 사람에게 뭔가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편견도 많은 것 같고요.

실제로 저도 어렸을 때는 결혼하지 않는 사촌 언니를 보면서 '왜 저 언니는 결혼을 안 할까'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사실 제도도 문제가 많죠. 앞서 얘기했듯이 기존 복지시스템은 대부분 가족중심이에요. 최근 인상된 주민세만 해도 1인 가구 세대주와 다인 가구 세대주가 같은 금액을 내죠. 집을 구하려고 대출을 받을 때도 신혼부부에게는 혜택이 있으니깐 비혼은 불리하죠."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위헌청구는 처음이었는데, 주변 사람들이 위헌결정은 쉽게 나지 않는다고 얘기들을 많이 해주셨어요. 그래서 사실 저도 큰 기대는 없었는데 해보지 않고는 모르는 거 같아요. 그리고 누군가는 시작해야 하구요. 다음번엔 꼭 합헌 결정이 난 배우자와 직계존비속 부분까지도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비혼에 대한 차별과 편견들은 여전하다

비혼(非婚)은 '결혼하지 않은 상태의 사람들'을 통칭한다. '원래 결혼은 해야 하는데 못했다'는 뜻이 반영된 미혼과 달리 '결혼은 당연히 해야 한다'는 통념에 대한 문제 제기도 담고 있다.

2015년 통계청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비혼 1인 가구 비율은 27.1%다. 2000년 15.5%였던 것과 비교하여 거의 2배 가까이 증가한 수치다. 이렇듯 비혼 1인 가구는 늘어나고 있지만, 제도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우리나라 1인가구 비율
우리나라 1인가구 비율 ⓒ 통계청

기획재정부는 지난 7월 28일, 출산에 대한 세제지원 확대 내용이 담긴 2016년 세법 개정안을 발표했다. 내년부터 둘째 아이를 낳으면 50만 원, 셋째 아이를 낳으면 70만 원의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다. 반면 비혼 1인가구에 대한 지원은 전무하다. 이는 복지·세제 등 사회시스템이 여전히 다인 가구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2006년 정부는 1~2인 가구에 대한 소수자공제를 폐지하는 대신 다자녀 추가공제를 신설했다. 당시 기획재정부 조세정책과 담당자는 "국가의 모든 구성 주체를 동일하게 생각할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정부는 이때부터 줄곧 저출산 해결을 위한다며 다자녀 추가공제만을 확대할 뿐 비혼 1인 가구 대책은 거의 내놓지 않고 있다.

비혼에 대한 사회적 편견도 만만치 않다. 지난 4월 <연합뉴스>는 "'비혼이 대세?'... 신붓감 없어 결혼 못 하는 농촌 총각엔 '비수'"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기사 본문에는 "외국 처녀라야 '총각딱지' 떼는 현실" "신부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농촌 총각들로서는 '비혼이 트렌드?'라는 시대상에 가슴이 멜 따름이다" 따위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농촌 총각이 결혼하지 못한 책임을 비혼에게 돌리는 것이다. 비혼은 저출산의 주범으로 비난받기도 한다.

비혼도 행복한 사회

지난 9월 29일, 헌법재판소는 명함 교부 주체에 '배우자와 직계존비속'을 포함한 것을 합헌이라 결정했다. 재판부는 이에 대해 "선거과열을 방지하기 위한 입법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적절한 수단"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기회 균등의 원칙에 어긋난다. 배우자와 직계존비속이 없는 비혼은 여전히 차별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흔히 비혼은 화려한 싱글, 골드미스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은 차별과 편견속에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결혼을 꼭 해야 하나요?'라는 그들의 질문은 하나의 가족구성방식만이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우리 사회에 새로운 고민을 안겨준다.

현재의 혈연중심의 가족제도만이 아니라 비혼이라는 새로운 삶의 방식이 인정될 때 우리 모두가 좀 더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비혼은 또 하나의 삶의 방식이다. 비혼도 행복한 사회를 꿈꿔본다.


#비혼#하윤정#헌법소원#헌법재판소#배우자_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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