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열여섯. 국경을 넘는 야간 버스와 우연한 만남 발틱역의 'LUX EXPRESS 정류장'에서 11시 50분에 출발하는 에스토니아 탈린(Tallinn)행 버스를 탔다. 국경을 넘는 야간버스라 잠잘 수 있는 넉넉한 좌석을 기대했지만 핸드폰 충전기와 커피머신, 간이화장실이 있다는 것만 빼면 우리나라 우등고속버스보다 열악하다.
고생 좀 하겠구나. 단단히 마음먹고 잠을 청하지만 좌석이 영 불편하다. 두세 시간 남짓 지났다 싶었는데 출국수속을 위해 정차를 한다. 여권을 챙겨들고 공항에서처럼 수속을 하는데 입국할 때 받았던 작은 비자종이를 회수해 간다. 잘 챙겨놓지 않았으면 고생할 뻔했다. 다시 탑승을 하고 본격적으로 잠을 청하려는데, 또 내리란다. 이번에는 에스토니아 입국수속이다. 이래저래 뒤척이다 보니 아침 7시 쯤 탈린 정류장에 도착을 했다.
퀭한 눈을 비비며 첫발을 디딘 탈린의 모습은 비교적 깔끔했다. 세수를 하기 위해 정류장 화장실로 갔다. 그러나 입구에 30센트 동전을 투입해야 바가 열린다. 여행 내내 화장실 인심이 정말 고약하다고 느꼈는데, 여기도 예외가 아니다. 루블에서 유로로 바뀐 화폐 단위에 센트 동전을 구하려고 자판기에서 초콜릿 하나를 산다. 초콜릿의 달콤함에도 씁쓸한 입맛은 잘 가시지 않는다.
정류장 식당에서 아침을 먹는데, 건너편에 익숙한 한국인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동양인 속에 섞여 있어도 이상하게 우리나라 사람은 표가 나는데, 쌍둥이 여학생이라 더 눈에 띄었다. 블라디보스톡에서 시작된 6개월 예정의 배낭여행이란다. 지난해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에서 만났던 여학생도 한 달 째 혼자 유럽여행 중이라고 했는데. 여자들이 훨씬 용감하다.
저만한 나이부터 함께 했던 집사람이 '젊으니까 좋다'며 부러운 눈길이다. 괜히 뜨끔하여 우리 젊은 시절을 떠올려본다. 용기는 있었으되 여유가 없었다고 변명하며, "네 젊음이 네가 받은 상이 아니듯이 내 늙음도 내가 받은 벌이 아니다"는 소설 <은교>의 대사를 되뇌어 본다. 우리도 용기있는 중년이라고 자부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러운 용기이고 빛나는 청춘이다. 여사들도 같은 또래의 아들딸을 생각하며 이것저것 먹거리를 사다가 챙겨주며 조심해서 잘 다니라는 잔소리를 건넨다. 고마운 마음이 그렁그렁 묻어나는 큰 눈망울이 오래 만나지 못한 엄마를 생각하는 눈치이다.
에피소드 열일곱. 에스토니아 자동차 여행 렌트를 하기 위해 버스를 탄다. 러시아 유심칩이 작동하지 않아 구글맵을 이용할 수가 없다. 더구나 일요일 아침이라 거리는 한산하여 물어볼 사람도 없다. 렌트카 회사 주소를 들고 간신히 주소 근처까지 왔으나 통 보이지 않는다. 큰 건물 쪽에서 사람이 나오는 걸 보고 물어보니, 씩 웃으며 손가락을 가리킨다. 사무실에 가서야 그 사람이 웃는 이유를 알았다. 간판도 없이 두 평 남짓한 좀은 방에 책상 하나를 두고 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어쨌든 찾았으니 다행이다.
그런데 풀커버리지 보험을 들었는데도 앞 유리와 타이어는 제외되니 별도로 이 보험도 드는 게 좋다고 은근히 협박이다. 빌뉴스에서 반납하므로 편도비 240유로와 추가보험 70유로에 세금 등을 합쳐 360유로, 보증금 250유로까지 결제를 하니 키를 건네준다. 검은 색에 우리나라 봉고 같은 사이즈. 모스크바에서 빌린 차와 크게 다르지 않다. 도로 사정은 러시아에 비해 굿이다. 다시 정류장으로 가서 일행을 태우고 탈린의 올드 타운으로 간다.
탈린의 올드 타운은 입구인 비루 게이트(Viru Gate)부터 갖가지 공사로 어수선하다. 밤새 버스에 시달리다 면도도 못하고 씻지도 못한 내 얼굴을 생각하면 차라리 마음이 편하다. 고운 색시 같이 말쑥했으면 내가 얼마나 위축되었을까 싶다. 시청사 앞의 라에코야 광장(Raekoja plats)에는 노점상이 가득하고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1991년에야 소비에트 연방에서 독립한 나라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자유로운 중세 유럽의 분위기이다.
올드 타운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만큼 세계 각국의 관광객들이 넘쳐나는데, 많은 수는 크루즈 투어 관광객들로 보인다. 영토의 50%가 숲으로 뒤덮인 국가답게 노점상에는 나무로 만든 각종 소품들이 많다.
올드 타운의 역사를 대변하는 한자 마을(Hanseatic town)은 14세기 중세 상업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한자동맹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한자동맹은 13~15세기에 독일 북부지역의 도시들과 발트 해 연안 도시의 상인들이 맺은 일종의 상업적 결탁으로서, 당시에 100여 개 도시가 참여할 정도로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지정학적으로 중간 지역에 있었던 에스토니아는 이 동맹에서 중간지점 역할을 했으며 탈린은 에스토니아의 수도로서 오랜 기간 연계도시의 임무를 맡았다. 인테리어나 조명은 물론 메뉴와 음식까지도 15세기의 것으로 재현한 이 곳 올데 한자(Olde Hansa)라는 식당의 유명세도 이 역사 덕분이다.
올드 타운을 나와 탈린에서 100킬로미터 남짓 떨어진 합살루(Haapsalu)로 향한다. 에스토니아는 인구 약 130여만 명에 한반도의 20%를 차지하는 영토를 갖고 있어서 전 세계에서 인가가 가장 드문 나라이다. 합살루로 가는 길은 그 말이 실감날 정도 끝없는 평원과 숲들이 펼쳐진다. 그러고 보니 여자가 남자보다 많고, 1인당 패션모델 수가 가장 많은 국가라고도 했는데, 탈린에서는 모델 같은 여자를 별로 못 본 것 같다. 그 명성은 북유럽의 베니스라 불리는 발트해 휴양도시 합살루에 와서 확인하게 되었다.
중세 성곽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합살루 캐슬(Haapsalu Castle) 주변에 들어선 노점상에는 일요일을 맞아 시장을 보러온 마을 주민이 붐볐고, 휴가철이 지나서인지 관광객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물건을 파는 사람이나 사는 사람이나, 남자나 여자나, 큰 키에 흰 피부를 지닌 모델급이다.
여사들은 이것저것 신기한 물건에 마음이 빼앗겨 있다. 귀걸이 한 쌍을 귀에 대고서 예쁘지 않느냐며 소녀처럼 웃는 집사람이 더 예쁘다.
합살루 캐슬은 군데군데 무너진 자리를 복원하지 않고 그대로 방치해놓았다. 그리고 성 안에 임시 물놀이장을 설치해 놓았다. 허물어진 중세 성곽과 울긋불긋한 물놀이 기구의 부조화가 그로테스크하다.
특이한 것은 좁은 시장터에 대낮인데도 노래 부르는 버스킹 팀이 많다는 것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13만 3000여 개의 민요를 보유한 국가라더니 가무를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람과 닮았다.
발트 3국의 민요는 독일, 스웨덴, 러시아 등의 오랜 지배하에 있었던 민중들의 애환을 대변해 왔으니, 에스토니아의 '바엡'이나 리투아니아의 '시엘바르타스'는 우리의 아리랑 같은 민요 정서를 말한다. 그러고 보면 스카이프를 만든 IT 강국이라는 점도 닮았다. 인구의 14%만이 종교를 가져 종교를 가진 국민이 가장 적은 국가라는 점은 다르다.
합살루 캐슬에서 좀 떨어진 노천 열차박물관(Esti Raudteemuuseum)은 1950년까지 운행되던 기차역이었다. 1907년 러시아 황제와 가족들의 휴양을 위해 합살루역을 만들고,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철로를 개통했는데, 214m의 플랫폼은 당시 북유럽에서 가장 길었다. 녹슨 철로 위에 그때 다니던 열차들이 버려진 듯 전시된 이 공간은 제정 러시아와 소비에트 연방 시절의 에스토니아 역사를 되새기게 한다.
이제 또 국경을 넘어야 한다. 들판과 숲이 배경이 되는 백야 막바지의 석양빛은 은은한 수채화라고 부르는 게 좋겠다. 무박 2일의 강행군 막바지임에도 한동안 모두 함께 풍경이 되어 감탄하고 찬미했다. 해가 완전히 넘어간 뒤에야 우리가 이미 라트비아에 들어왔음을 인지했다. 입국수속은 그렇다 치더라도 무슨 검문소라도 있을 줄 알았지만 그냥 한 나라 같았다.
오늘 숙소는 라트비아 리가(Riga)의 Rixwell Centra Hotel이다. 호텔은 리가 올드 타운 중심가에 있어서 별도의 주차장을 이용해야 했다. 모스크바 아르바뜨 거리 벽에서 본 빅토르 최의 그래피티 초상화를 떠올린 건 이곳이 그가 교통사고로 죽은 곳이기 때문이다. 체크인을 하고 컵라면과 햇반으로 늦은 저녁을 먹으니, 갑자기 피곤함이 몰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