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사람들은 어떻게 배우자를 만날까? 특히 청춘남녀들은 어떻게 연애를 할까? 북한의 연인들도 연애를 하며 껴안거나 키스를 할까? 연애는 주로 어떤 곳에서 할까? 아니 연애라는 것이 허용되기는 할까? 들리는 소문처럼 정말 당(정권)이 정해주는 사람과만 결혼하나?'누군가의 연애 이야기는 시대를 초월한 보편적인 흥밋거리다. 겉에 드러난 일부 사실 외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북한, 사실이라 알려진 것도 진실 여부 확인이 쉽지 않은 북한. 그런 사회라 막연히 북한 사람들의 일상 못지않게 그들의 연애나 결혼이 더더욱 궁금하기만 했다.
궁금해 하던 것을 주제로 한 책 출간 소식은 늘 설렌다. 꼭 읽어야만 한다. 당연히 책 설명을 보는 순간 선택해버렸다. 그리고 읽고 있던 책들을 모두 놓고 오로지 붙잡았고, 홀딱 빠져 읽었다. 북한 출신 한 북한 전문가가 '북한 청춘들의 연애와 결혼'에 대해 들려주는 <당신의 꽃은 어데서 피었습니까>(한울 펴냄)는 이렇게 읽은 책으로 기억하리라.
"나 이제 시집 다 갔어." 훌쩍거리며 떠듬거리는 명애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 아이들이 그녀를 둘러쌌다. 홍식동지가 "왜 시집을 다 갔냐?"고 물었다. "남자가 곁에 누워 있었으니 애가 생길 테고, 그러면 시집은 못가는 거 아닙니까?" 울음 섞인 목소리로 명애는 더 서글프게 흐느꼈다. 그 말을 들은 제대군인들이 시물시물 웃었다. 영문을 모르는 여학생들은 명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거나 몇몇은 따라 훌쩍이기도 했다. 스무 살을 넘긴 여대생들의 성 지식치고는 순진하다 못해 유치하기 짝이 없었지만, 당시만 해도 우리 반 여학생 대부분은 그녀처럼 생각했다. 남자가 옆에만 누워도, 남자가 손만 잡아도 덜컥 아이가 생기는 줄 알았다. ('농촌지원' 편에서)
저자 김영희. 프로필 사진이 낯익다. 북한 관련 방송에서 봤던 얼굴이다. 저자는 1965년 함경북도 길주군에서 태어났단다. '무수단 기지'와 함께 북한의 핵실험 장소 '길주군 풍계리'로 국제사회에 널리 알려진 그 길주다.
2002년 12월에 가족과 탈북했다. 탈북 전 '북한의 종합적 생산조직인 특급기업소의 재정회계 부문'에서 근무했다고 한다. 지금은 북한 관련 지식이 필요한 일에 종사, 통일 관련 활동과 북한 관련 글을 쓰고 있다. 몇 권의 책을 쓰기도 했다.
책의 배경은 저자가 6년 동안 다닌 원산경제대학(현재 정준택원산경제대학). 열일곱 살 소녀가 대학에 입학하고자 원산으로 가는 기차를 타는 것으로 시작, 북한 대학생들의 대학생활과 우정과 사랑, 그에 관한 자잘 자잘한 에피소드들을 들려준다.
'님'이란 표현은 '수령님' 또는 '장군님' 할 때나 쓰는 것으로 알아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 쓰는 것으로 감히 생각 못하는 북한의 대학생들. 기숙사에서 간식을 주로 해먹거나 다림질 등, 서로에게 필요한 것들을 도와주며 나누고 다지는 사랑, 6년이란 대학생활 내내 시시때때로 만나 마음 나누고 배우자로 점찍고서도 사랑한다는 말은커녕 좋아한다는 말 한 마디 하지 않고도 지속된 주인공 영희와 선영의 사랑 등 북한 대학생들의 애틋하고 풋풋한 사랑을 들려준다.
북한 대학생들에게 화장은 금기 사항이지만, 그들은 아무리 화장품을 압수당해도 어떻게든 또 마련한다. 또 학년이 올라갈수록 화장술이 나날이 좋아지는데 그 비결 중 하나가 좋은 '브랜드'를 쓰는 것이다. 신의주와 평양의 화장품은 생산량이 적고 대부분 세대별로 배당하는 터라 '빽'이 없으면 돈이 있어도 구하기 어려웠다. 화장품의 종류는 많지 않았지만 대부분이 수십 가지의 천연 약재와 추출물, 그리고 수질 좋은 샘물을 원료로 하는 최고급품이었다. 그쪽이 고향인 아이들은 방학이 끝나면 부탁받은 화장품을 한가득 갖고 학교로 돌아왔다.
유난히 고소한 맛을 자랑하는 속도전가루떡. 사서 먹는 것도 맛있지만 만들어 먹으면 더 맛있다. 한 호실에서 속도전가루떡을 만들면 그 냄새가 기숙사 한 층 전체로 퍼졌다. …… 집에서 가져온 속도전가루가 떨어진 호실에서는 학교 울타리 너머 아주머니를 통해서라도 떡을 사 먹고 나서야 밀린 공부를 하거나 잠을 청할 수 있었다.
'군복이 도둑질을 부추기다'란 소제목 글이 있다. '나는 교도대 훈련을 하면서 "군복을 입으면 도둑이 된다"라는 말을 실감했다. 사실 군사훈련을 받아본 대학생이라면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고 피해갈 수 없는 진실이었다'로 시작되는 글인데, 심지어는 군사차량을 유지하는 기름이나 건물을 짓는 철근, 식량 등 대학생들이 구하기 힘든 것까지 맡겨 도둑질로 채우게 하는 북한의 실정을 들려주는 글이다.
외에도 개인의 희생이 있어야만 가능한 방학과제나 군사훈련과 농촌지원, 여러가지 간식이야기, 해수욕장 풍경 등,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북한과, 북한 대학의 실상, 대학생들의 일상을 적나라하게, 그것도 로맨스보다 훨씬 많은 비중으로 들려준다. 이런지라 소소한 재미마저 느낄 수 있다. 저자의 대학생활이 바탕이 된 만큼 어떤 자료보다 날것 느낌이 강한 정보들이 많아 놓지 못하고 읽은 책이다.
같은 교실에서 공부를 하면서도 마음을 털어놓을 친구가 없어 외톨이처럼 생활하다가 결국 학교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많은 탈북 학생들. 그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에겐 아직도 '빨갱이','무장공비','북한 인간'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니는 현실, 게다가 북한의 도발 위협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어린 탈북 학생들이 받아야 할 상처와 고통을 떠올리자 한 엄마로서, 탈북민의 한사람으로서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이러한 문제의식 때문인지 나는 줄곧 사람냄새 물씬 풍기는 북한 사람들의 모습을 세상에 알리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서문'에서)
이 책을 읽기 시작할 무렵 김정은 건강·의료담당자가 탈북했다는 뉴스가 보도되더니 이 책을 소개하는 이 글을 쓰는 10월 12일 현재 러시아에서 외화벌이를 하는 북한노동자 10명이 탈북, 망명절차를 밟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불과 1주일 사이 접한 뉴스들이다.
탈북이 이어지고 있다. 이제 국내 탈북인 3만 명 시대. 하지만 안타깝게도 적응 못하고 탈남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목숨을 걸고 새 삶을 선택한 그들은 누구일까? 그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들과의 바람직한 소통과 나눔은?
어떤 책이나 자료보다 북한 사람들의 사고와 생활을 진솔하게 들려주는 이 책은 북한 사람들을 이해하는 유용한 힌트가 될 것이다. 자전적 소설 형식으로 이해 쉽게 쓴 데다가 (아마도)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이 많아 누구나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책이다.
덧붙이는 글 | <당신의 꽃은 어데서 피었습니까>(김영희)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16-09-02ㅣ정가 1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