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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스물여덟인 김아무개씨는 지난해 시력을 잃었다. 삼성전자 하청업체인 덕용ENG(현재 폐업)에 파견노동자로 들어가 스마트폰 부품을 만드는 일을 한 지 3주 만의 일이었다.
최저임금을 받으며 밤새 일한 대가는 가혹했다. 올해 스물여덟인 김아무개씨는 지난해 시력을 잃었다. 삼성전자 하청업체인 덕용ENG(현재 폐업)에 파견노동자로 들어가 스마트폰 부품을 만드는 일을 한 지 3주 만의 일이었다.
현재 그의 오른쪽 눈은 완전한 실명 상태다. 왼쪽 눈의 신경은 불과 10%만 살아남았다. 바로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윤곽 정도만 확인할 수 있다. 의사로부터 "시력을 회복할 수 없다"라는 얘기를 들었다. 치료가 무의미하다.
그가 시력을 잃은 것은 메틸알코올(메탄올) 때문이다. 지난해 1월 김씨가 덕용ENG에 들어갔을 때, 회사는 그가 하는 일에 위험물질인 메탄올이 사용된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를 이 회사로 파견한 파견업체 또한 마찬가지였다.
3주가 지난 같은 해 2월 김씨는 메탄올 중독으로 인한 호흡 곤란·시력 상실과 같은 증상으로 병원에 후송됐지만, 회사는 연락 한 번 하지 않았다. 이후 시력을 잃은 김씨가 할 수 있는 일은 집밖에 나서지 않는 것뿐이었다.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 게 불편했다. 바리스타의 꿈은 부스러졌다.
김씨는 쉽게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원망이 크고, 너무나도 화가 난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시력이 회복되기를 기다리기도 했고, 회사에서 일하다 다쳤지만 '회사와 싸워 이길 수 있을까' '변호사 비용을 부담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용기를 내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회사도, 파견업체도, 파견노동을 관리·감독해야할 정부도 김씨의 실명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지난 12일 김씨는 시력을 잃은 이후 1년 8개월 만에 세상에 나왔다. 지난 1월 시력을 잃은 파견노동자 전아무개씨(34)씨와 함께 국회 기자회견장에 섰다. 전씨도 삼성전자 하청업체인 BK테크(현재 폐업)에서 일했다. 그는 노선버스의 번호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시력을 잃었다.
전씨는 '제가 위험하게 일을 하는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라고 적힌 종이를 들었다. 김씨도 '영문도 모른 채 시력을 잃었을 추가 피해자를 찾아주세요'라고 적힌 종이를 내보였다. 두 사람 모두 "앞으로 저 같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기를 바라면서 용기를 냈다"라고 말했다. 기자회견 이후 두 사람은 기자와 만나 자신이 겪은 일을 털어놓았다.
회사도, 파견회사도, 정부도 책임 지지 않았다
올해 1, 2월 삼성전자·LG전자의 스마트폰 부품을 만드는 하청업체의 파견노동자 4명이 시력을 잃어 사회적으로 큰 파장이 일었다. 이번에 김씨와 전씨 등 2명의 추가 피해자가 확인됐다. 김씨가 지난해 2월 시력을 잃은 것을 감안하면, 이후 메탄올에 시력을 잃거나 다친 파견노동자가 많을 것으로 보인다. 파견노동자들의 연이은 실명은 불법적인 파견노동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준다.
1997년 'IMF 사태' 이후 우리 사회에서 노동유연화가 급속하게 진행됐다. 그 극단적인 형태가 파견노동이다. 기업들은 최저임금을 주고 채용과 해고를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파견노동의 확대를 요구했다. 노동계의 반대에도 정치권은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을 만들어, 파견노동을 합법화했다.
파견법은 무분별한 파견노동의 확대를 막기 위해 제조업 직접공정에는 원칙적으로 파견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제조업체들은 불법적으로 파견노동자를 사용했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단속에 나서지 않으면서, 불법파견이 널리 퍼졌다. 전씨는 "10년 전부터 인천에서 파견노동자로 일했다"라고 말했다.
제조업체들은 파견노동자를 직원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위험물질 사용 여부를 알리지도 않았고, 제대로 된 개인보호장비도 지급하지 않았다. 전씨는 "일하면서 알코올 냄새가 심하게 났다. 머리가 아플 정도였다. 하지만 회사는 그게 메탄올인지 알려주지 않았다"면서 "회사에서는 1회용 마스크만 줬는데, 그것으로는 안 될 것 같아서 마스크를 직접 샀다"라고 말했다.
회사는 사고 사실 숨기기에 급급... 사고 걸러내지 못한 정부사고가 일어난 뒤가 더 큰 문제였다. 파견노동자들이 쓰러져 시력을 잃었지만 회사는 책임지기는커녕 합의를 종용했다. 불법 파견인 탓이다.
전씨는 "회사에서는 산업재해 신청이 되지 않으니, 200만 원에 합의를 하자고 했다. 회사가 가족들에게까지 전화를 해서 큰 압박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김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김씨를 돕고 있는 노동건강연대 소속 박혜영 노무사는 "노동건강연대 쪽으로 회사의 압박 전화가 온다"라고 말했다. 김씨는 "사장이 제일 나쁘다. 사장은 제 전화번호를 알고 있었지만 한 번도 연락하지 않았다. 원망스럽고 화가 많이 난다"라고 말했다.
회사가 사고 사실을 숨기기에 급급했지만, 정부는 이를 걸러내지 못했다. 지난 1, 2월 파견노동자의 실명 이후 당시 고용노동부는 2, 3월 메탄올을 사용하는 업체 중 관리가 취약한 것으로 우려되는 사업장 3100여 곳에 대해 일제점검을 나섰다고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전씨와 김씨는 고용노동부로부터 어떠한 연락도 받지 못했다. 고용노동부가 사고가 발생한 업체에 대한 조사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두 사람은 주변의 권유로 노동건강연대에 연락해서야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두 사람은 국회에서 기자들을 만난 후, 산업재해를 신청했다. 전씨는 "더 이상 피해자가 없었으면 좋겠다"라는 바람을 남겼다. 김씨는 "다쳐보니까, (파견노동이) 위험한지 알았다"면서 "파견 문제가 해결됐으면 좋겠다"라고 밝혔다.
[관련 기사] 선대식 기자의 불법파견 위장취업 보고서(1~11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