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직접 조사했던 성매매 피해 여학생을 사적으로 만나 성관계를 맺은 지역 경찰관에게 징역 4년형이 선고됐다.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판결문에 따르면, 수원지방법원 제12형사부(부장판사 이승원)는 지난 4일 아동·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전직 경찰관 박아무개(37)씨에게 징역 4년을 선고하고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80시간 이수를 명령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박아무개 경찰관)은 피해자가 신고한 아동·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성 매수 등) 사건을 조사한 담당 경찰관으로서, 업무수행 과정에서 알게 된 청소년 피해자를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위력으로 2회 간음 및 피해자의 성을 3회 매수하였다"며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성적 수치심을 느낄 수 있는 신체 부위를 촬영한 것으로 죄질이 매우 좋지 않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특히 피고인은 피해자를 성실히 지도하고 보호해야 할 지위에 있음에도 오히려 지위를 이용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이는 일반적인 범죄에 비해 그 비난 가능성이 더욱 크다"며 "그럼에도 피고인은 피해자로부터 용서를 받지도 못했다, 피고인에 대한 실형 선고가 불가피하다"고 판시했다.
올해 초 A양을 대리해 이를 고발한 조진경 십대여성인권센터 대표는 선고와 관련해 "범죄 없는 사회를 만들어야 할 경찰이 오히려 범죄 행위를 한 것"이라며 "경찰관이 저지른 범죄는 대체로 감형되는 일이 잦은 편인데, 재판부가 고무적인 결단을 내렸다"고 말했다.
"경찰 지위 이용해 간음" 재판부, 위계·위력에 의한 청소년 간음 혐의 '인정'<오마이뉴스>는 지난 7월 검찰 공소장을 입수해 이를 단독 보도했다(관련 기사:
"돈 주면 나랑도 할래" 경찰이 피해 학생과 성관계).
경기 지역 경찰관 박아무개씨(당시 35세)는 2014년 9월 성매매 사건을 조사하면서 처음 알게 된 피해자 A양(당시 만 16세)에게 조사가 끝난 후 밥을 사준다며 따로 연락해 위계·위력에 의한 간음 등 성관계를 맺은 혐의를 받았다. 사건이 처음 일어날 당시 A양은 만 16세로, 민법상 미성년자였다.
재판부는 이 혐의를 모두 인정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당시 사건담당 경찰관이었던 박씨는 조사가 종료된 후 같은 해 11월, A양에게 선도를 핑계로 밥을 사준다며 따로 불러냈고, 본인의 BMW 승용차 안에서 A양에게 "아직도 조건만남을 하느냐"고 묻다가 "돈 주면 아저씨한테도 (성관계)해줄 수 있느냐"라며 성관계를 요구했다.
박씨는 2014년 11월 말부터 2015년 10월까지 모텔과 승용차 안 등에서 여행경비, 현금 5~7만 원 등 대가를 주고 5회에 걸쳐 A양과 성관계를 맺은 것으로 확인됐다. 박씨는 또 2015년 9월 말~10월경 A양을 한 펜션으로 데려가 "너 혼자 해 볼 수 있냐, 자위행위 한 번만 해줘"라고 부탁한 뒤 이를 몰래 휴대폰 카메라로 촬영했다. 이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 촬영)에 해당하는 범죄다.
이에 대해 박씨는 "처음 (성관계)한 것은 2014년이 아닌 2015년이며 그 과정에서 위력을 행사하지 않았다", "2015년 7월 성관계를 했지만, 대가로 돈을 준 적은 없으며 모두 합의 하에 했다"고 반박했다. 또 촬영에 대해서도 "피해자의 동의를 받아 촬영했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이를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위력'은 상대의 의사를 제압하는 유·무형적 힘으로 사회경제적 지위까지 포함되며, 이를 이용해 미성년자와 장애인 등을 간음·추행한 경우 강간죄와 같게 평가해 처벌한다. 특히 '위계·위력에 의한 간음'은 7월 논란이 됐던 부산 경찰관 김아무개(33)·정아무개(31) 경장에게 적용된 범죄 혐의와 같다.
재판부는 "위력 간음의 점과 관련, 피해자(A양)는 수사기관 및 법정에서 일관되고 구체적으로 진술했다"며 "피해자는 앞서 피고인의 성관계 요구를 거절했지만, 반복적인 요구를 더 이상 거절할 수는 없었다고 보인다", "통화 내역 등 연락 횟수 대비 성관계 횟수·빈도에 비춰 보았을 때 피고인은 피해자를 오로지 성적 대상으로 여겼을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경찰, 미성년자 피해자를 성적 대상으로... 신상정보 공개는 면제"재판부는 "다만 범행 과정에서 (해당 경찰의) 폭행 등 강한 유형력 행사는 없었던 점, 피고인에게 아무런 범죄 전력이 없는 점. 2010년경부터 경찰관으로 비교적 성실히 근무해온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피고인에게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한다"며, 통상 성범죄자에게 부과되는 신상정보 공개·고지 명령은 면제했다.
2년 전 일어난 이 일은 A양이 올해 초 청소년인권단체에 속칭 '조건만남' 알선자들을 신고하는 과정에서 뒤늦게 알려졌다. 이후 해당 경찰은 3월 말 긴급 체포·구속된 후 곧바로 파면됐다. 조진경 십대여성인권센터 대표는 고발 당시 경찰 조사 과정에서, 일부 경찰관들이 "여자애들은 화장하면 못 알아본다", "얼굴이 거의 성인이네"라는 식의 '가해자 두둔성' 발언하는 것을 듣기도 했다며 이를 비판했다.
지난 10일 박남춘 더불어민주당 의원(안정행정위원회 간사, 인천남동갑)이 각 지방경찰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4년~2016년 최근 3년간 성폭행, 성추행, 불륜 등으로 파면이나 해임된 경찰이 79명에 달했으며, 이런 경찰관들 중 3분의 1일인 28명은 현직에 복직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14일 <국민일보>에 따르면, 담당 학교 여고생과 성관계를 맺은 뒤 위계·위력에 의한 간음 등 혐의로 입건되는 등 논란이 된 부산 학교전담경찰관(SPO) 2명은 각각 혐의 없음·불구속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지난 7월 경찰청 특별조사단 발표 때보다 처벌 수위가 낮아진 것이다.
한편 피해자 A양은 호기심에 휴대폰 채팅 앱을 깔았다가 '조건만남'을 시작했다고 한다. 십대여성인권센터를 비롯해 전국 청소년·여성인권 255개 시민단체는 "누구나 쉽게 접하는 휴대전화(스마트폰) 채팅 앱을 통해 아동·청소년들이 강간·성폭행 등 성범죄 현장으로 유입되나, 제대로 된 법률·처벌은 미비하다"며 11일 관련 채팅 앱 운영자들을 공동고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