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밑줄치고, 포스트잇 붙이며 읽은 책 <기본소득이란 무엇인가>
밑줄치고, 포스트잇 붙이며 읽은 책 <기본소득이란 무엇인가> ⓒ 이민선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마라"

기독교 전도자이며 신학자인 사도 바울이 신자들에게 보낸 편지에 있는 구절이다. 공산권에서는 이 구절을 정치 구호로 사용하기도 했다. 많은 사람이 진리이며 곧 정의라고 믿고 있는 글귀다.

책 <기본 소득이란 무엇인가>는 이 말에 '정말 정의로운가?'라고 의문을 제기한다. 도대체 어떤 간 큰 사람이 겁도 없이 수 천 년 동안 진리라 믿어온 이 말에 감히 의문을 제기했을까?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바울이 한 말에 의문을 제기한 사람은 다니엘 라벤토스(Daniel Raventios) 교수(스페인 바르셀로나 대학 경제학과)라는, 우리에게는 좀 낯선 인물이다. 책 <기본 소득이란 무엇인가>의 지은이다.

그렇지만 이 책을 번역한 사람은 무척 유명하다. 정부와 보수 세력에 대한 거침없는 비판으로 유명한 이재명 성남시장이다. 이 시장은 이 책을 이한주 교수(가천대 글로벌경제학과)와 함께 번역했다.

"사도 바울의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마라'라는 정의로운 원칙은 오직 가난한 사람에게만 적용된다. 부자들은 일하지 않는다고 해서 배고픔을 느낄 일이 없다." -책 속에서-

이것이 사도 바울이 한 말에 의문을 제기한 이유다. 풀어보면, 가난한 자에게만 해당하는 게 진정 정의로운 원칙인가 하는 의미다. 책은, '가난한 자도 부자들처럼 일하지 않고도 배고픔을 느끼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제한적이겠지만, '기본소득을 도입하면 이를 실현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가난한 자에게만 해당하는 원칙, 진정 정의로운가?"

<기본 소득이란 무엇인가>, 솔직히 쉽지는 않은 책이다. 대학 전공 서적이나 논문만큼 어렵다고 느낄만하다. 하지만, 지금과는 다른 세상을 원한다면, 좀 더 나은 세상을 원한다면 한 번쯤 꼭 읽어야 할 책이다. 읽고 나면 분명 남는 게 있다. 세상을 보는 새로운 눈을 뜨게 될 것이라 장담한다. '그래 바로 이거야' 하고 손뼉을 칠 분도 있으리라 자신한다.

책을 읽다 보면 이재명 시장이 어째서 정부와 각을 세우면서까지 3대 무상복지(산후조리, 교복지원, 청년배당)를, 특히 청년배당 추진을 위해 고군분투했는지 알 수 있다. 어째서 청년수당이 아닌 '청년배당'이라 이름 지었는지도 알게 된다.

책을 완독하고 난 며칠 뒤 이재명 시장을 만날 기회가 있어, 내친김에 이 책을 번역한 까닭을 물었다. 성남시청 부근 카페였다. 이 시장, 애독자 질문에 다음 일정을 슬쩍 미루고 친절하게 답변했다.

"저와 함께 번역한 이한주 교수가 기본소득에 아주 관심이 많아요. 원작자 라벤토스 교수는 성남에서 만난 적이 있고요. 이분 참 소탈해요. 꼭 농사짓는 분 같은데, 생각이 아주 깊어요. 기본소득에 대한 큰 이론가이기도 하고요. 기본소득이 우리 사회의 화두가 돼야 한다고 보는데, 이 분 저서가 이론적 근거가 될 수 있어요. 그래서 꼭 소개하고 싶었어요. 우리 사회의 새로운 출발을 고민하는 분들이 많이 읽고 이론적으로 자기 생각을 튼실하게 하는 그런 자료가 됐으면 좋겠어요."

 이재명 성남시장과 다니엘 라벤토스 교수, 저자와 역자의 만남
이재명 성남시장과 다니엘 라벤토스 교수, 저자와 역자의 만남 ⓒ 고강선

기본소득, 없는 사람에게 주는 수당과 달라

이제 책에서 말하는 기본소득이 무엇인지부터 알아보자. 기본소득은, 자신의 힘으로 살 수 없거나 살기 힘든 사람을 추려서 지원하는 수당(실업수당, 노인·장애인 수당 등)과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모든 사회 구성원 또는 거주자에게, 돈을 벌기 위해 취직을 하려는 의지와 상관없이, 가난하든 부유하든 따지지 않고 모든 개인에게 지급하기 때문이다. 시민권이나 공인된 거주권만 있으면 조건 없이 받을 수 있다.

이것이 이재명 시장이 청년배당을 청년수당이라 이름을 붙이지 않은 이유다. 성남시에 사는 특정 연령의 청년에게 조건 없이 지급하니, 청년배당이 합당한 이름이다.  

그런데, 이런 꿈같은 제도를 시행하는 곳이 정말 있을까? 존재한다. 지난 1982년 미국 알래스카에서 처음으로 실시했다. 알래스카에 거주하는 사람이면, 거주 기간에 상관없이 동등하게 지급했다. 지난 200년에는 모든 거주자에게 총 2000달러를 기본소득으로 제공했다.

인도 '마디야 프라데시주'에서도 지난 2012년~2014년 사이에 시행했고, 아프리카 나미비아 오미타라에서도 지난 2008년 1월~2009년 12월까지 실시했다. 세계 최고 행복 국가로 알려진 스위스에서는 최근 기본소득 도입을 위한 국민투표를 했지만, 아쉽게 부결됐다.

책은, 수당보다 기본소득이 훨씬 나은 제도라 강조한다. 우선 수당의 단점부터 살펴보자.

"수당은, 가장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필요를 충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추려낸다. 이런 사회 복지제도는 매우 모욕적이다. 스스로 생존 가능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아주 분명하게 구분 짓기 때문이다. 조건부 보조금이나 자산 조사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수급자들 다수는 이에 따르는 모욕적인 상황들 때문에 자존감이 매우 떨어진다.

또한, 빈곤과 실업의 함정도 발생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실업급여나 생활 보조금을 조건부로 지급하기 때문이다.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이 있으면 복지급여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 해서, 이들은 보수가 낮은 직업이나 시간제 일을 할 수 없다." -책 속에서-

수당이 안고 있는 이러한 불합리를 극복할 수 있는 게 바로 기본소득이다. 빈곤과 실업의 함정을 피할 수 있게 하고, 노동시장을 보다 유연하게 할 수도 있다. 책은, 이 유연성이 노동자를 강력하게 보호할 것이라 단언한다.

"조건부 보조금과 달리 기본소득은 조건 없이 주기 때문에, 기본소득을 받기 위해 취업을 포기하는 일 따위는 발생하지 않는다. 어떤 종류의 수입과도 완벽하게 양립할 수 있어서다. 또한, 기초·기본적인 필요를 충족하지 못하는 사람을 추려낼 필요가 없어, 자존감을 떨어뜨릴 이유도 없다.

기본소득이 노동관계에서 노동자의 힘을 강하게 해 협상력을 높일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자본가들은 더 높은 급여와 더 나은 근무환경을 제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노동자들이 파업할 때도 기본소득은 저항의 지원금이 될 것이다. 이것이 노동자의 협상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상상해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책 속에서-

 청년배당
청년배당 ⓒ 고강선

가난한 사람도 부자처럼 일하지 않고 먹을 권리 있어

책은, '빈곤한 자는 생존을 위해 하루하루 타인의 허락을 받아야 하기에 자유로울 수도 평등할 수도 없다'고 말한다. 기본소득이 이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생존을 위해 타인, 자본가에게 의존하지 않도록 하기 때문이다.

특히, 남성에 대한 여성들의 경제 의존도를 낮춰, 가정 민주화에 기여하는 것은 물론, 빈곤한 여성들 경제 상황을 개선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 강조한다.

그렇다면, 재원마련은 어떻게 할까. 한두 푼 드는 게 아닐 텐데. 책에서 제시한 가장 강력한 방법은 소득세법을 뿌리째 개혁하는 것이다. 많이 버는 사람이 더 많이 내고 적게 버는 사람이 적게 내는 방법으로의 개혁이다. 이밖에도 환경오염세를 거둬서 기본소득에 지원하는 방법 등을 소개한다.

알고 보니 기본소득은 보편적 복지와 비슷한 개념인데, 보편적 복지라는 말만 나오면 끼어드는 비판이 있다. 의존성을 키운다는, 즉 게으름뱅이를 만들 것이라는 비판이다. 책은, 이 비판을 눈을 번쩍 뜨이게 할 정도의 새롭고 파격적인 논리로 반박한다.

"지금껏 부자들의 특권이었던 무엇인가를 가난한 사람이 할 수 있을 때, 흔히 의존 혹은 기생이라는 비판이 따른다. 부자가, 상속받은 재산으로 일생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살 수 있는 것은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 가난한 사람이 어떠한 기여도 하지 않는 삶을 잠시라도 선택할 수 있다는 생각은 많은 사람에게 충격을 준다.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기본소득은 가장 부유한 극소수의 사람만이 할 수 있었던 것을 모든 사람이 할 수 있도록 한다. 어떠한 기여도 하지 않으며 생존하는 것이다." - 책 속에서-

가난한 자도 부자처럼 일하지 않고 먹을 권리가 있어야 한다는 말인데, 그렇게 되면 노동자들이 모두 일하기 싫어하는 게으름뱅이가 되지 않을까? 이 의문(비판)을 책은 '은퇴자들이 자발적으로 보수를 받는 일을 한다는 점, 더 높은 더 편안한 생활을 위해 많은 노동자가 추가 노동을 한다는 점'을 예로 들어 가볍게 비껴간다.

덧붙이는 글 | <기본소득이란 무엇인가>(지은이 : 다니엘 라벤토스, 옮긴이 : 이재명·이한주) | 주식회사 한솔수복(책담)| 2015-3-12 |15,000원



기본소득이란 무엇인가

다니엘 라벤토스 지음, 이한주.이재명 옮김, 책담(2016)


#이재명#기본소득
댓글7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