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오전 8시 서울대 장례식장 앞에 마련된 '밥차'에 많은 이들이 줄지어 섰다. 머리가 부스스한 사람들은 밥차에서 내준 된장국, 컵라면, 김치를 들고 바닥에 앉았다. 영상 10℃ 안팎의 쌀쌀한 날씨인 탓에, 된장국과 컵라면에서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났다.
이들은 백남기씨의 시신이 있는 서울대 장례식장에서 밤을 새운 '시민지킴이단'이다. 오전 6시에 자리에서 일어나 결의대회와 창경궁로 앞 손팻말 시위를 한 후, 아침을 먹기 시작했다. 이중에는 앳된 모습의 장서현(가명·19)씨도 있었다. 장씨는 다른 대학생들과 함께 안치실 앞 주차장 바닥에 앉아 아침을 먹고 있었다.
서현씨는 비수도권 지역의 교육대학 1학년생이다. 22일 오후부터 서울대 장례식장을 지키고 있다. 이날부터 중간고사가 시작된다. 하지만 장씨는 백남기씨에 대한 경찰의 압수수색검증영장(부검영장)의 효력이 끝나는 25일 자정까지 이곳을 지키기로 했다.
장서현씨는 "중간고사보다 백남기씨를 지키는 게 더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서현씨는 교수에게 "피치 못할 일이 생겼다"라고 말했다. 친구들에게는 백남기씨를 지키러 간다고 말했다. 서현씨는 "친구들이 '멋있는 일을 한다'라고 격려했다"라고 전했다.
그는 "백남기씨와 관련된 일들을 보면서, 국가와 경찰이 우리를 지킨다는 생각이 당연한 게 아니라는 걸 깨닫고 있다. 또한 국가와 경찰이 백남기씨를 국민이라고,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이 않아 배신감을 느낀다"라고 밝혔다.
서현씨는 23일 오전 경찰이 부검 영장 강제집행을 시도하자, 몸에 쇠사슬을 묶기도 했다. 그는 "경찰이 무섭기도 했지만, 저희가 잘못한 게 없고 같이 쇠사슬을 묶고 있는 시민·대학생을 믿으니 괜찮았다. 오히려 경찰이 더 무서워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대학교 새내기는 어떻게 해서 백남기씨 시민지킴이단을 자처했을까. 서현씨는 고등학교 2학년에 다니던 지난 2014년 4월의 일을 꺼냈다. 배를 타고 일본으로 가는 수학여행을 일주일 앞둔 날,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다. 서현씨는 같은 나이의 단원고 친구들이 세월호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것을 두고 큰 충격을 받았다.
'세월호 세대'인 서현씨는 "세월호 참사를 보면서, 경찰이 우리를 지키고 구해줄 것이라는 생각이 깨졌다"면서 "또한 박근혜 대통령의 해경 해체를 보면서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고등학생 입장에서도 정부가 하는 일을 이해할 수 없었다"라고 말했다. "이후 우리가 참여해야 사회가 바뀐다는 것을 깨달았다"라고 덧붙였다.
서현씨는 "경찰이 부검영장을 강제 집행해 백남기씨의 시신을 가져갈 수 있다. 그 순간을 생각해보면, 강의실에서 시험을 치기 어렵다. 이곳에 남아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다"라고 말했다.
그는 "백남기씨를 모른 체 한다면, 공권력의 횡포가 앞으로도 반복되고 어쩌면 지금보다 더욱 심해질 수 있다"면서 "우리가 사는 세상이니 만큼, 우리가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