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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각사 관음전. 건축과 정원에 일가견이 있던 무로마치 막부의 8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마사가 노년의 은거처로 지은 것이 은각사다.
은각사 관음전. 건축과 정원에 일가견이 있던 무로마치 막부의 8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마사가 노년의 은거처로 지은 것이 은각사다. ⓒ 임은경

은각사 정류장에 내리니 마침 거기가 우리가 찾던 또 다른 코스, 철학의길이다. 길을 따라 주욱 올라가면 은각사란다. 졸졸 흐르는 개울물 옆에 나무를 심고 돌을 깔아 산책로를 만들어 놓았다. 옹기종기 살림집들이 늘어선 길가의 풍경이 평화로웠다. 아라시야마 만큼은 아니었지만, 은각사 앞길 역시 관광객을 상대하는 상점들이 즐비했다.

500엔의 입장료를 내고 은각사 구경. 이름은 은각사지만 절이라기보다 어느 귀족의 정원 같은 느낌이었다. 애초에 은각사는 무로마치 막부의 8대 쇼군이 자신의 은신처로 지은 것이다. 완벽하고 꼼꼼하게 인간의 손길이 닿은 일본식 정원의 끝판왕이다.

두터운 이끼가 낀 우아한 나무 지붕이며 나무와 바위의 구도 배치가 완벽한 인공 연못. 소나무 그늘 아래로 졸졸 흐르는 개울물까지. 눈 닿는 곳마다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었다. 인공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면서 산 위로 이어진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바위 아래 정갈하게 깔린 별모양 이끼는 지난해 가을 미국 요세미티 국립공원에서 발견했던 것과 똑같다. 아름다운 정원보다 더 인상적인 것은 관광객으로 북적거리는 그 와중에도 쉴 새 없이 정원을 다듬고 있던 인부들이었다. 이것을 유지하자면 누군가의 끊임없는 손길이 닿지 않으면 안 되리라. 우리가 낸 입장료가 모두 거기에 쓰이고 있는 것이다.

 어느 곳을 찍어도 화보다. 완벽한 구도와 배치를 자랑하는 일본식 정원의 끝판왕.
어느 곳을 찍어도 화보다. 완벽한 구도와 배치를 자랑하는 일본식 정원의 끝판왕. ⓒ 임은경

 후지산을 모방해 만들었다는 향월대. 정원 바닥은 하얀 모래(은사)로 정교한 무늬를 조성해놓은 곳이 많았다. 비바람에 모래가 제자리에 있을 리가 없다. 결국 사람의 손을 들여 다듬고 또 다듬고.
후지산을 모방해 만들었다는 향월대. 정원 바닥은 하얀 모래(은사)로 정교한 무늬를 조성해놓은 곳이 많았다. 비바람에 모래가 제자리에 있을 리가 없다. 결국 사람의 손을 들여 다듬고 또 다듬고. ⓒ 임은경

구경을 마치고 도로 내려와 이번에는 청수사(기요미즈데라)행 버스를 탔다. 그런데 버스가 교토 동물원을 지나 마침 헤이안 신궁 앞 광장을 돌아 나오는 것이 아닌가. 이때다 싶어 충동적으로 버스에서 내렸다. 지금이 아니면 다음번 기회는 없으니까. 헤이안 신궁 앞 너른 광장에서는 수십 명이 동원된 전통 공연을 하고 있었다. 

46개의 등을 매단 대나무 장대를 한 사람이 몸으로 지탱하며 버티는 것인데, 모두 네 개의 팀에서 각각 장대를 하나씩 들고 출전해 겨루고 있었다. 46개의 등에는 각 팀을 상징하는 글씨나 그림이 그려져 있고, 그 옆에서는 커다란 북을 치고 피리를 불며 응원전이 펼쳐졌다.

장대를 받친 사람들은 모두 남자, 음악을 연주하는 이들은 모두 여자였다. 마이크를 들고 추임새를 넣어가며 응원전을 북돋우는 중년 남자도 있었다. 그가 이 놀이판을 이끌어가는 수장인 듯했다. 가슴이나 등, 혹은 이마나 손으로 가느다란 장대 하나를 떠받치면서 쓰러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경기의 규칙인 것 같다.

▲ 아키타의 유명 축제 '칸토 마츠리'를 헤이안 신궁 앞 광장에서 운좋게 구경했다.
ⓒ 임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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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다가 힘들면 다른 멤버가 교대를 했다. 그러다가도 기회를 보아 대나무 장대를 하나씩 추가해서 장대를 더욱 높이 올렸다. 누가 더 높이 올리느냐가 경쟁의 관건인 것 같다. 알고 보니 이것은 일본 동북부 최대의 축제인 아키타(秋田)의 '칸토 마츠리'를 홍보하기 위한 행사였다. 십여 분간 동영상을 찍고 함께 박수를 치며 홀딱 빠져서 구경을 했다.

놀이판이 끝나고 헤이안 신궁 안으로 들어가 내부를 둘러보았다. 정문에서 정전까지 축구장만한 너른 마당이 자리 잡고 있는데, 정전 뒤편으로 그보다 훨씬 더 큰 정원이 조성되어 있다고 한다. 뒤편은 입장료를 내야 들어갈 수 있는 구역이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정전 안쪽은 사진을 찍을 수 없도록 경비원이 지키고 서 있다. 앞에 놓인 불전함이며 소원을 빌 때 치는 밧줄(?)도 그동안 보았던 동네 신사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다. 옻칠을 해서 온통 붉은 색을 띠는 위풍당당한 건물들을 둘러보고 나와서 다시 버스를 탔다. 원데이 패스를 참으로 알뜰하게도 쓴다.

 헤이안 신궁임을 알리는 표지석과 신궁 앞 광장
헤이안 신궁임을 알리는 표지석과 신궁 앞 광장 ⓒ 임은경

 헤이안 신궁 정문. 안에 들어가면 축구장만한 너른 마당이 있고, 별도의 입장료를 받는 정원은 그보다 몇배 더 크다.
헤이안 신궁 정문. 안에 들어가면 축구장만한 너른 마당이 있고, 별도의 입장료를 받는 정원은 그보다 몇배 더 크다. ⓒ 임은경

드디어 청수사가 있는 기온 거리다. 내리는 순간 시야에 들어오는 수많은 관광객과 상점들. 한눈에 유명 관광지라는 것을 알겠다. 청수사로 올라가는 길목은 그야말로 문전성시였다. 이번 일본 여행에서 최고로 사람 구경을 많이 한 곳이 이곳 기온 거리와 청수사였다. 길이 온통 사람으로 가득차서 제대로 걷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그 양옆이 조용할 리가 있으랴. 거리를 가득 메운 상점들에서 저마다 판매상품을 들고 나와 구매를 권한다. 대부분이 과자 등 먹을 것이었다. 말차로 만든 쿠키, 러스크, 전병처럼 얇은 모찌떡, 초콜릿을 입한 과자 등등. 너도나도 시식을 권하는 통에 돌부처처럼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주는 대로 받아먹었다. 하나같이 좋은 재료로 정성껏 만든 것들이었다.

팥소가 들어있는 얇은 쌀떡 야쓰하시는 거의 집집마다 팔고 있었는데, 교토의 명물이라고 한다. 교토는 본래 모찌가 유명하다는데, 그중에서도 가와라마치역 인근 상점에서 맛본 와라비 모찌는 단연 특이했다. 떡이라기보다 젤리 같은 쫀득한 식감의 비밀은 바로 고사리 전분이다.

고사리 전분으로 만든 투명한 떡에 인절미처럼 콩가루나 말차 가루를 묻혀서 먹는다. 소설에서만 읽고 궁금해 했던 와라비 모찌를 교토에 와서 먹어보다니. 하지만 식감이 낯설어서 돈을 주고 사먹고 싶은 정도는 아니었다.

 780년에 백제 도래인의 후손 사카노우에 장군이 창건한 교토 최고의 명소 청수사(淸水寺, 기요미즈데라)
780년에 백제 도래인의 후손 사카노우에 장군이 창건한 교토 최고의 명소 청수사(淸水寺, 기요미즈데라) ⓒ 임은경

 본당의 불전에 줄서서 참배하는 사람들. 굵은 나무 기둥과 청동등, 내부의 모든 것이 유서깊은 절임을 느끼게 한다. 불전 뒤로 돌아가면 일본 불상조각사의 명작이라는 28부중상(부처를 수호하는 신장들의 조각상)이 있는데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본당의 불전에 줄서서 참배하는 사람들. 굵은 나무 기둥과 청동등, 내부의 모든 것이 유서깊은 절임을 느끼게 한다. 불전 뒤로 돌아가면 일본 불상조각사의 명작이라는 28부중상(부처를 수호하는 신장들의 조각상)이 있는데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 임은경

허리가 아픈 종혁씨는 골목 안쪽의 찻집에서 쉬고 청수사 구경은 나만 다녀오기로 했다. 대나무 그늘 아래 평상이 놓이고 잔잔히 물까지 흐르는 마당이 아늑했는데, 이곳이 바로 유명한 프랜차이즈인 요지야 카페였다는군. 청수사 입장료는 400엔. 절의 대단한 아름다움에 비하면 저렴한 입장료였다. 

입구에서부터 빨간 옻칠을 한 일본식 목조 건물이 눈길을 끈다. 일본의 고찰을 볼 때마다 우리 둘 다 감탄했던 이끼가 끼고 세월의 더께가 켜켜이 내려앉은 나무 지붕, 그 옆에 붙은 녹슨 청동 장식. 본당에는 어김없이 일본식 불전함이 놓여있고 그 앞에서 소원을 빌고 싶은 사람들이 줄을 섰다.

어딜 가나 한국인과 중국인 천지였던 다른 관광지와 달리, 이곳만은 벽안의 서양인 관광객도 적지 않다. 기다리는 사람을 위해 빨리 다녀오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했다. 일단 사람들이 많이 가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좁은 길에 거의 줄을 서다시피 걷고 있는 사람들을 뒤쫓으니 전망이 멋진 산책로다.

 산책로 위쪽에서 본 풍경. 청수사 무대와 왼쪽으로 교토 시내 전경이 보인다. 가을에는 단풍으로도 유명한 뷰포인트.
산책로 위쪽에서 본 풍경. 청수사 무대와 왼쪽으로 교토 시내 전경이 보인다. 가을에는 단풍으로도 유명한 뷰포인트. ⓒ 임은경

 청수사의 기원이 된 오토와 폭포. 세 개의 물줄기는 각각 지혜, 사랑, 장수를 상징하는데 욕심내어 세 가지를 다 마시면 오히려 불운이 따른다고 한다.
청수사의 기원이 된 오토와 폭포. 세 개의 물줄기는 각각 지혜, 사랑, 장수를 상징하는데 욕심내어 세 가지를 다 마시면 오히려 불운이 따른다고 한다. ⓒ 임은경

청수사 건물을 배경으로 교토 시내 전경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산책로를 다 내려오니 지혜, 연애, 장수를 상징한다는 세 줄기 약수를 마시려는 사람들이 또 긴 줄을 서 있다. '맑은 물의 절'이라는 뜻의 청수사(淸水寺)라는 이름의 기원이 된 오토와 폭포다. 

청수사는 굵은 나무기둥을 못 하나 없이 짜 맞춘 높은 지지대 위에 세워진 '무대'가 유명하다. 이 무대에서 내려다보는 경치가 장관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 무대에서 뛰어내린 사람도 많다고 한다. 청수사의 고문서에는 1694년부터 1864년까지 170년간 234건의 투신 사건이 발생했는데 생존율은 85.4퍼센트였다는 기록이 남아있단다. 

나는 무대에서 내려다보는 경치보다 오히려 아래에서 무대를 올려다본 모습이 훨씬 더 인상에 남았다. 굵은 통나무를 마치 건축현장의 비계 쌓듯이 수십 미터 높이로 정교하게 쌓아올린 모습. 그 위에 새까맣게 달라붙어 경치를 구경하는 사람들. 그간 몇 차례 소실과 재건이 반복되었지만, 맨 처음 만들어진 때부터 세면 천년도 넘은 것이다.

 못 하나 쓰지 않고 나무 기둥을 짜맞추어 세운 청수사의 무대. 원래는 절을 짓기에 적합하지 않은 가파른 절벽 지형을 역이용한 독특한 건축 기법은 청수사를 교토 최고의 명소로 만들었다.
못 하나 쓰지 않고 나무 기둥을 짜맞추어 세운 청수사의 무대. 원래는 절을 짓기에 적합하지 않은 가파른 절벽 지형을 역이용한 독특한 건축 기법은 청수사를 교토 최고의 명소로 만들었다. ⓒ 임은경

 일본의 고찰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나무로 된 지붕. 세월의 더께가 앉은 나무 지붕과 그 위를 덮은 이끼, 녹이 슨 청동 장식 등은 특히 우리의 마음을 끌었다.
일본의 고찰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나무로 된 지붕. 세월의 더께가 앉은 나무 지붕과 그 위를 덮은 이끼, 녹이 슨 청동 장식 등은 특히 우리의 마음을 끌었다. ⓒ 임은경

청수사를 내려와서 종혁씨와 함께 니넨자카 거리를 걸어 내려왔다. 이 일대는 청수사를 찾는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한 찻집 거리로 발달한 곳이라고 한다. 오래된 목조 건물들이 많이 남아있어 거리 자체가 훌륭한 관광지였다.

1층에는 온갖 먹을거리와 기념품을 파는 가게, 찻집들이 즐비했다. 전통의상인 기모노를 입은 여자들도 많았다. 이 일대에서는 진짜 게이샤를 볼 수 있다는 말을 들었지만, 아쉽게도 우리는 만나지 못했다.

 일본의 옛 전통 가옥이 많이 남아있는 청수사 앞 니넨자카
일본의 옛 전통 가옥이 많이 남아있는 청수사 앞 니넨자카 ⓒ 임은경

오사카로 돌아와서 종혁씨의 친구인 김문철씨를 만나 저녁을 먹었다. 약속 장소는 관광객들이 잘 가지 않는 미나미카타(남방, 南方)역 인근. 한국인도, 중국인 관광객도 없는 곳에서 일본 직장인들이 퇴근 후 술 한 잔 걸치는 먹자 골목이다. 문철씨의 단골집이라는 선술집은 사시미, 덴뿌라, 쿠시카츠(오사카 명물이라는 꼬치튀김), 오뎅, 생굴 등 없는 것이 없었는데 가격이 상당히 저렴했다. 

덕분에 이날 일본의 온갖 해산물 요리는 질리도록 먹었다. 음식 못지않게 좋았던 것은 저녁에 진행된 '경매 쇼'였다. 그날 들어온 싱싱한 해산물을 테이블의 손님들을 대상으로 경매하는 것인데, 판매보다는 손님들에게 즐거운 시간을 제공하는 것이 주목적인 듯했다.

첫 번째는 싱싱한 갈치 한 마리, 두 번째는 초밥 세트, 세 번째는 참치 머리가 통째로 나왔다. 점원이 각 테이블을 돌면서 해당 상품을 미리 보여주고 경매를 시작했다. 우리는 경매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경매라는 떠들썩한 행사 덕분에 자연스레 옆 테이블과도 웃음이나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는 효과가 생겼다. 일본이라는 나라의 일반적인 분위기를 생각하면 정말 특별한 일이었다.

 미나미카타에서 저녁식사로 먹은 사시미와 튀김
미나미카타에서 저녁식사로 먹은 사시미와 튀김 ⓒ 임은경

퇴근 후 회식자리인 듯한 두 테이블 간의 경합이 특히 치열했다. 술김에, 장난 섞인 경쟁심에 경매가가 자꾸만 올라갔다. 하지만 애초에 100엔, 500엔 등 워낙 낮은 가격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낙찰가는 시중 가격에 비해 꽤 저렴한 편이었다. 경합을 벌인 두 테이블의 손님들은 어깨동무를 하고 건배를 나누는 등 금세 친해졌다.

한 젊은 여성은 다른 테이블의 남자를 오니상(오빠)이라고 부르며 술잔을 부딪쳤다. 한동안 이곳이 한국인지 일본인지 헷갈려 어리둥절했다. '오사카 사람들은 일본의 다른 지역과 달리 한국인처럼 화끈한 정서가 있다'는 문철씨의 설명이 단박에 이해되었다. 관광지가 아닌 일본의 진짜 모습을 조금 들여다본, 뜻밖에 재미있고 유쾌한 시간이었다.

덧붙이는 글 | 기사는 필자의 블로그 http://blog.naver.com/atree12fly에도 실렸습니다.



#일본여행#교토여행#청수사#은각사#헤이안신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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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 사람들을 무의식적인 소비의 노예로 만드는 산업화된 시스템에 휩쓸리지 않는 깨어있는 삶을 꿈꿉니다. 민중의소리, 월간 말 기자, 농정신문 객원기자, 국제슬로푸드한국위원회 국제팀장으로 일했고 현재 계간지 선구자(김상진기념사업회 발행) 편집장, 식량닷컴 객원기자로 일하며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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