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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고용노동부는 '지진재난 위기대응 실무매뉴얼'을 만들고 지진 발생 시 지방고용노동관서는 화학공장과 건설현장, 조선업체 등을 대상으로 '여진 대비 사업장 근로자 진입방지 조치'와 '작업중지 및 노동자 긴급대피 지시' 등을 실시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경주 강진 이후 지난 한 달간 470차례가 넘은 여진이 발생했지만 이 같은 지시는 한 차례도 없었다. 지방노동관서에 지진 관련 피해와 공정안전보고서(PSM) 대상 사업장 피해 발생 보고를 요청하는 공문을 9차례 보내고, 피해 상황 파악에만 주력했던 사실이 지난 10월 13일 정의당 이정미 의원실을 통해 밝혀졌다. 

이처럼 무방비 상황일 때 작업을 중단한 딱 한 곳이 있었다. 바로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이다. 이마저도 노동조합의 요청으로 작업중지가 결정되었다고 하는데,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 고선길 노동안전보건실장님을 만나 당시 자세한 상황을 들어보았다. - 기자 말

9월 12일, 진앙으로부터 직선거리 32㎞에 위치한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은 지진이 발생했을 때는 야간조가 한창 작업을 하고 있었다. 진도 5.1의 지진에 이어 한 시간 만에 발생한 5.8의 강진은 현장 곳곳의 건물을 뒤흔들었고 작업자들은 지진에 대한 생경함과 두려움으로 술렁대기 시작했다.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으로 쉴 새 없이 문의 전화를 해왔다.

"두 번째 지진 때, 현장에서 엄청난 강도의 지진을 느꼈습니다. 건물에 균열이 생기고, 물건이 떨어지고, 빔이 휘어졌다는 제보가 노동조합에 빗발쳤습니다. 이후 추가로 발생 가능한 강진에 대한 두려움, 작업을 중지시켜야 한다는 요구와 가족에 대한 걱정으로, 회사의 조치와 노동조합의 대책을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9월 19일 발생한 지진으로 현대자동차 울산2공장 2라인에 있는 자재히터가 휜 사진이다.
9월 19일 발생한 지진으로 현대자동차 울산2공장 2라인에 있는 자재히터가 휜 사진이다. ⓒ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오후 7시 44분 진도 5.1의 지진이 발생한 후 노동조합은 바로 회사에 재발 우려가 있으니 대책을 세우자고 제안하였다. 진도 5.8의 두 번째 지진이 발생하자, 라인을 중지하고 현장 안전점검을 해야 한다고 수차례 요구하였다. 하지만 회사는 시간을 끌며 회사 독자적인 자체점검을 통하여 생산가동에 큰 문제가 없으니, 작업중지는 안 된다는 입장만 반복하였다.

"조합에서는 오후 8시 50분부터 우선 작업을 중단하고 노사 합동 안전진단을 통해 현장 상황을 점검하자고 회사에 수차례 요구하였습니다. 하지만 회사는 10분만, 10분만 하면서 시간을 끌었고, 30~40분이 지나도 답변은 같았습니다. 심지어 회사는 일방적인 자체 진단을 한 결과, 작업을 중지할 만큼의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었습니다. 회사의 자체 진단은 생산이 가능한 지에 대한 확인뿐이었고, 작업자의 불안과 두려움, 여진에 대한 가능성은 배제한 것이었죠."

시간 끌던 회사, 처음으로 전 공장을 멈춘 노동조합!

공장별로 부분적인 작업중지를 한 경험은 있었지만 전 공장에 작업중지권을 행사한 사례는 조합 설립 이후 29년 만에 처음이다. 전 공장의 작업중지 조치가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작업자의 안전보다 생산과 이윤에 목숨 거는 회사의 비인간적인 행태를 거부하기 위해서라도, 무엇보다도 현장 조합원들의 작업중지에 대한 요구가 있었기에 이러한 조치가 가능했다고 한다.

"결국, 오후 9시 50분까지 작업을 중지하지 않으면 노동조합이 작업중지권을 발동시키겠다고 회사에 통보하였습니다. 그리고 비상연락망을 통하여, '안전점검이 필요하니 라인을 정지해라, 모든 책임은 노동조합이 지겠다'라고 전달하였습니다. 결국, 9시 50분부터 전 공장이 멈추었고, 전반적인 안전점검을 위해 다음날 오전 8시 50분까지 작업을 중지하였습니다."

9월 19일 오후 8시 30분경 또다시 진도 4.8의 지진이 발생하였다. 이 지진으로 자재히터가 휘어지는 사고가 발생한 승용2공장 라인이 다시 멈추게 된다. 지진 안전대책, 지진 발생 시 작업자 즉시 대피권 요구 1968년에 설립된 현대자동차는 대부분 건물에 내진설계가 되어있지 않고 노후화된 설비가 많아 전반적인 지진 안전대책이 필요하다. 두 번의 지진과 작업중지 이후 9월 21일 개최된 임시 산업안전보건위원회(이하 임시 산보위)에서 합의된 사항은 아래와 같다.

"현대자동차 울산 공장에서 내진설계가 된 건물은 200여 개 중 15여 개입니다. 대부분 무방비 상태인 거죠. 중·장기적인 매뉴얼 마련이나 사전대책도 필요하지만, 즉각적인 대피가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회사는 작업자의 대피권 보장에는 소극적입니다. 결국, 지진 발생 시 즉각적인 대피를 시키지 않으면, 노동조합에서 작업중지와 함께 즉시 대피시키겠다고 통보하고 임시 산보위를 마쳤습니다."

이번 지진으로 한국이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것이 드러났다. 특히 경주~양산~부산에 이르는 '양산단층'은 활성 단층으로, 진도 5.8 이상의 지진이 발생할 가능성이 확인되었다. 다른 여러 현장에서도 이러한 위험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 중·장기적인 지진 대응 매뉴얼을 제대로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진 발생 시 위험 노출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작업자의 즉각적인 대피권 보장과 노동조합의 작업중지권 행사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지진#작업중지#현대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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