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파문의 수습책 일환으로 새누리당 비주류를 중심으로 '이정현 지도부' 사퇴론이 나오고 있다. 당 위기 때마다 나오는 비상대책위 구성 카드인 셈이다.
비박근혜 진영의 3선 이종구 의원은 YTN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이 4.13 총선 민의를 잘 받들어야 했는데, 대통령 주위에 바른말 하는 충신들이 많이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러한 총선 민의를 받들면서 국민들에게 낮은 자세로 다가가셨어야 하는데... 지난번에 새누리당도 친박 지도부가 들어섰잖아요. 그러니까 오히려 좀 오판을 하신 것 같기도 하고, 친박 지도부가 들어선 게 대통령에게는 약이 못되고 오히려 독이 되지 않았나, 오히려 본인하고 가까우신 분들에 둘러 싸이다보니까 많이 판단이 흐려지신 것 아닌가."이 의원은 "본인들이 필요하다고 하면 사퇴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비대위 체제가 되었든, 뭐가 되었든 현재의 체제로서는 조금 곤란하지 않냐"고 말했다.
"헛발질만 하고 존재감 없어", "아직도 청와대 비서관"비박의 재선 하태경 의원도 페이스북 글을 통해 "최순실 사건과 함께 정부와 당까지 패닉 상태가 되면서 사실상 무정부상태로 빠져들고 있는데, 새누리당 지도부는 헛발질만 하고 존재감이 없다"며 "지도부가 현 상황을 어떻게 진단하고 타개해 나갈지 대책을 제출해야 한다. 지도부가 대안을 내놓을 수 없다면 자신들의 거취에 대한 대승적 결단을 해야 한다"고 우회적으로 사퇴를 촉구했다.
'비박 대선주자' 남경필 경기지사도 페이스북에 "국민의 마음속에 대통령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며 "새누리당은 하루라도 빨리 비대위체제로 전환되어야 한다. 비상대책위원장과 비대위가 국가 리더십 공백을 메우는 데 핵심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것도 이정현 지도부 사퇴를 전제로 한 얘기다.
이정현 대표가 25일 "나도 연설문 같은 걸 쓸 때 친구 얘기를 듣곤 한다"며 박 대통령의 처지를 두둔한 것이 지도부 사퇴론에 기름을 끼얹은 측면도 있다.
역시 대선주자로 꼽히는 유승민 의원은 25일 서강대 특강 뒤 "지금 상황에 대해 너무 안이한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며 "당 지도부가 이 문제에 대해 청와대 눈치를 보고 쉬쉬하고 은폐하는 쪽으로 일관한다면 우리 당 의원들은 그냥 좌시할 수 없는 문제"라고 했다.
전날 대통령 사과에 비판적인 비박 의원(익명 요구)은 "처음부터 걱정했던 것이지만, 이 대표는 아직도 '청와대 비서관' 마인드를 버리지 못했다"며 "대통령이 정신 차리려면 이정현 지도부가 사퇴해야 할지 모른다"고 말했다. 민심 수습책으로 대통령 탈당이나 청와대 참모진 물갈이, 내각총사퇴 등의 얘기들이 나오고 있는데, 여당 지도부 총사퇴 정도의 충격파가 있어야 대통령이 피부에 와 닿는 대답을 내놓지 않겠냐는 얘기다.
비박계를 중심으로 불붙는 지도부 사퇴론은 멀게는 8월 9일 전당대회 직후부터 싹 텄다고 볼 수 있다.
당시 4명이 겨룬 당대표 선거에서 이정현 대표는 '비박 단일화 후보' 주호영 의원을 1만2000여 표 차이로 여유 있게 따돌리고, 최고위원 5명 중 비박 1명(강석호 의원)을 빼고 친박 계열이 싹쓸이했다. 이런 결과가 나오자 비박 의원들 사이에서는 "당심이 총선 민심을 뒤집었다", "대통령의 '오더 투표' 결과가 아니냐"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9월 국정감사 이후 정부여당을 뒤흔들고 있는 '최순실 국정개입' 파문은 비박들에게 자신들의 판단이 옳았음을 보여주는 '증좌'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전날 대통령의 사과 등으로 사기가 떨어진 친박 진영 의원들은 이 같은 목소리에 맞대응을 자제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26일 오후 최순실 국정개입 파문 수습을 위한 긴급 의원총회 소집을 예고했는데, 이 자리에서 지도부 진퇴를 놓고 주류와 비주류의 본격적인 힘겨루기가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