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미덕은 '나눔'입니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비움'과 '채움'에 있습니다. 여행은 홀로 떠나든, 함께 떠나든 간에 사람 및 자연 등과 서로의 '마음을 나누는 교감'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새로운 정신적 힘을 얻는 과정입니다. 이 과정에서 비움과 채움이 작용합니다. 비움은 '마음 내려놓기' 혹은 '나 버리기'이며, 이를 통해 새로운 자신과 만나는 채움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니까 여행은 주목적은 '정신적 갈증 해소'인 셈입니다.
그렇다면 '육신적 갈증 해소는 무엇으로 이뤄질까?'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이는 그동안 몸 안에서 부족했던 것을 채우는 식도락으로 나타납니다. 흔히 말하는 먹을거리에 대한 탐욕(?), 즉 먹방으로 해소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행의 절반 이상이 먹을거리에 있다고 보는 것이지요. 때문에, 맛집 탐방은 바로 육체적 갈등 해소 차원으로 해석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해장국 어디가 좋을까? 의외의 한방 '시래기 돌솥'
"해장국, 어디가 좋을까?""시래기 돌솥으로 가세. 보기와 달리 의외로 속풀이에 좋네. 관광객보다 제주 현지인이 많이 찾는 집이여."제주도 토박이 양진웅 씨와 제주에 눌러앉은 육지 것 김경호 제주대 교수가 서로 상의 중입니다. 여기서 의외의 한방을 먹었습니다. 해장국으로 시원한 콩나물국, 복어, 해물탕 등을 떠올렸는데, 차원이 다른 상상 밖의 '시래기 돌솥'이 등장했습니다. 무튼, 협상이 잘 끝났나 봅니다. 시래기 돌솥으로 유명하다는 '죽성고을'로 향했습니다.
점심시간. 어~, 주차 차량이 많습니다. 밖에서부터 북적인 걸 보니 안 봐도 비디옵니다. 사람들, 바글바글. 게다가 손님 연령대가 다양합니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찾는 집이네요. 다행입니다. 줄 서서 기다리지 않고 겨우 한 자리 잡았습니다. 이렇게 잘 되는 집이면 무슨 이유가 분명 있을 터. 식당 벽에 '시래기의 효능'이 붙어 있습니다.
"시래기에 들어 있는 식이섬유소는 위와 장에 머물며 포만감을 주어 비만을 예방하고 당의 농도가 높아지는 걸 예방합니다. 철분이 많아 빈혈에 좋고 칼슘 및 식이섬유소가 함유돼 있어 혈중 콜레스테롤을 떨어뜨려 동맥경화 억제 효과가 있습니다."조상들이 알게 모르게 시래기를 즐겨 먹었던 이유 중 하나지요. 가격은 시래기 돌솥 1만 원, 고등어구이 1만5000원, 옥돔구이 2만 원, 수육 2만 원, 가오리찜 3만5000원, 홍어삼합 5만 원 등입니다.
이 집을 강력 추천했던 지인에 따르면 "주 메뉴가 시래기 돌솥이요, 나머지는 곁가지로 시켜도 좋다"고 합니다. 영양 돌솥에 익숙한 나그네에게 시래기 돌솥은 어떨까? 싶습니다.
밥 먹기 전 벌어지는 '수다 삼매경'은 소화 촉진제
먼저, 썰렁한 탁자에 큼지막한 시래기 국과 그릇, 국자 대령입니다. 눈치로 보아하니, 알아서 떠 나눠 먹으랍니다. 음식은 나눔의 미덕이라는 것을 아는 게지요. 시래기 국으로 속을 달래는 사이, 밑반찬이 나왔습니다. 큰 쟁반에 올려 진 반찬 그릇이 장난 아닙니다. 아짐, 열심히 반찬을 놓습니다.
무생채, 열무김치, 가지나물, 호박무침, 김무침, 두부, 강된장 등에 간장게장까지 무려 11가지나 됩니다. 음식은 이때부터 먹기가 시작됩니다. 밥 나오기 전, 반찬 먹으면서 펼쳐지는 수다 삼매경은 음식 전초전의 핵심입니다. 수다 삼매경은 꽉꽉 막힌 무료한 일상에 대한 탈출구입니다.
이때 수다 내용은 대개 자신의 삶과 세상사에 대한 비판이 주류입니다. 이는 맛있게 먹고 난 후, 원활한 소화를 돕기 위함이지요. 왜냐면 먼저 이야기로 침샘과 속을 적당히 자극해 줘야 음식이 들어간 후 활발한 신진대사가 이뤄지는 소화 촉진제이기 때문입니다. 음식은 꼭꼭 씹어야 감칠맛이 우러나지요. 암요, 씹어야 제 맛이지요. 시래기 국물과 수다가 어울리니 속이 풀립니다.
여보, 미안해... 나만 맛있는 거 먹어서
시래기 돌솥이 나왔습니다. 위에는 온통 시래기입니다. 숟가락을 푹 쑤셔 올렸더니 그제야 밥이 보입니다. 흰쌀밥과 어울린 시래기 색깔이 어째 소담한 절집의 전각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밥을 싹싹 긁어 퍼낸 다음, 돌솥에 뜨거운 물을 붙습니다. 퍼낸 밥을 맨밥인 채로 맛을 봅니다. 상큼합니다. 그리고 강된장을 조금 넣고 밥을 음미합니다. 이어 양념장을 조금 떠 맛을 봅니다. 그 어느 것과도 잘 어울립니다.
강된장과 양념장을 함께 넣고 쓱싹쓱싹 비빕니다. 옆에선 이미 염화미소입니다. 맛있다는 거죠. 이럴 때, 생 유산균이 듬뿍 든 전통 '제주 막걸리'가 빠지면 허무하지요. 기어이 제주 막걸리 한 모금 들이키니, 막걸리가 목구멍을 넘어 식도를 타고 쑥쑥 들어가는 게 '쏴~아' 합니다. 이게 산자의 지극한 삶의 맛이지요. 이렇게 그릇은 비워지고 배는 채워집니다.
"가끔 여기 와서, 야채도 다듬고, 시래기도 다듬는데 고것도 재밌어."지인의 설명은 또 다른 양념입니다. 그는 언제부터 삶의 재미를 알았을까? 삶, 별 거 있던가요. 이런 게 삶의 소소한 맛이지요. 밥을 뚝딱 해치운 후, 돌솥에 불린 누룽지를 끌어당깁니다. 숟가락으로 살살 저으니 솥에 붙었던 누룽지가 금방 떨어져 나옵니다. 한 입 크게 떠 입에 넣습니다. 누룽지, 살살 녹습니다. 그런데 놀라웠던 건, 시래기 돌솥이 해장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먹으면서 땀을 흘렸으니까.
시래기 돌솥, 가족과 제주 여행 와서 다시 꼭 맛보고 싶은 음식이었습니다. '여보, 미안해. 나만 맛있는 거 먹어서!'라는 사과를 부르는 맛이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제 SNS에도 올릴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