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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JTBC가 입수한 태블릿이 최씨 것이 맞지만, 그 기기로 문서를 작성하거나 수정하지는 않았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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앱 하나만 설치하면 태블릿이 아니라 휴대전화로도 문서를 작성하고 수정하는 것은 물론, 인쇄까지 할 수 있다.
기묘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비선실세'가 실체임을 자백한 후,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보수언론과 종편방송이 한 목소리로 '최순실 때리기'에 나선 것이다. 슬슬 눈치를 보던 한국방송(KBS), 문화방송(MBC), 연합뉴스까지 '대세'가 기운 것을 알고는 발가벗고 뛰어든 모양새다.
하지만 이들 언론은 최씨가 어떻게 막대한 자금을 횡령하고 정치 권력을 사유화했는가에 집중하기보다, '자기는 명품을 입고 대통령에게는 2만 원 짜리 옷을 입혔다'는 둥, '대통령 의상실에서 치킨을 시켜먹고 그 손으로 옷을 만졌다'는 둥, 그가 호스트바에서 만난 누구와 '그렇고 그런 관계'일 거라는 둥, 문제의 핵심과 거리가 먼 이야기들까지 시시콜콜 쏟아내고 있다. 이왕 도랑 치게 된 거, 가재까지 씨를 말리기로 작정한 모양이다.
선정주의 언론의 본색이 어디 가겠는가? 그래도 선정적이면서 권력에 빌붙기까지 하는 언론보다는, 선정적이어도 권력을 비판하는 언론이 나을 것이다. 물론 보수 언론에게는 박근혜 대통령이 갖는 유용성의 '유효기간'이 끝나가는 부분이 더 큰 동기지만 말이다. 이렇듯 진보, 보수할 것 없이 최순실을 파헤치자, 어리바리하던 검찰도 뭔가 하는 듯한 품새라도 보이기로 한 모양이다. 이들은 비장하게 '청와대 압수수색' 카드를 꺼내들었다.
놀랍지 않은가? '권언유착'으로 비난 받던 보수-관영 언론이 부패 권력의 실체를 폭로하고, '정치 검찰'로 지탄 받던 검찰이 타락한 권력의 목에 칼을 겨누는 기적이 일어나고 있으니 말이다. 여기에 경찰까지 나서서 강박적으로 밀어붙이던 백남기 농민 시신 부검을 포기한다고 선언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식물 상태'에 빠지자 오히려 사회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느낌이다.
하지만 안심할 일이 아니다. '청와대를 압수수색하겠다'며 한껏 폼 잡던 검찰은 청와대가 들여보내주지 않자 하염없이 기다리다 돌아왔다(보수언론은 이를 '대치'라 불렀다). 다음날 '재시도'를 했다는 검찰은 사무실에 진입하지 않고 경내의 연무관에 자리를 잡았다. 연무관은 경호실 체력단련장이 있는 곳이니, 나는 검찰이 '거사'를 치르기 전 몸이라도 풀려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이들은 거기 얌전히 앉아 청와대가 내주는 자료를 검토하는 방식으로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했다고 한다.
상대가 주는 물건을 받아오는 것을 '압수'라 하고, 안 주면 기다리는 것을 '수색'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지금 내가 사는 미국 도시에는 할로윈이 한창이다. 꼬마 아이들이 기괴한 분장을 하고 호박등을 켠 집의 문을 두드리면 주인이 나와 사탕이나 초콜릿을 나눠 준다. 한국식으로 말하면, 어린이들이 인근의 주거지를 '압수수색'하는 것이다.
거액 횡령·국가기밀 유출 혐의자에게 '천천히 오시라'는 검찰
최순실은 지난 일요일(30일) 오전 7시 30분쯤 인천공항을 통해 극비리에 귀국했다. 물론 '극비리 귀국'이란 국민들에게만 해당하는 말이다. 청와대와 검찰이 이들의 입국 계획을 몰랐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항공사는 '승객사전정보시스템(APIS)'을 통해 탑승객 정보를 법무부로 사전 통보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순조로운 귀국'을 보장받기 위해 청와대와 귀국 일정을 면밀히 조율했을 것이다. 검찰이 귀국한 최씨에게 '다음날 오후 3시에 출석하라'며 하루 반 넘는 말미를 준 느긋한 태도 역시 이 사실을 잘 말해준다.
많은 국민들이 최씨를 공항에서 체포하지 않은 검찰을 비판하고 있지만, 청와대가 골라주는 자료를 받아오는 것을 '압수수색'이라고 부르는 검찰 아닌가. 그들 기준에서는 하루 반나절 뒤의 자진 출두 부탁이 '긴급체포'로 보일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검찰이 늘 이렇게 여유롭고 관대한 조직은 아니었다.
2014년 말 정윤회의 국정개입 의혹이 담긴 청와대 문건이 유출되었을 때를 보자. 검찰은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문서를 무단으로 유출한 혐의로 경찰관 두 명을 긴급체포했고, 이들이 근무하던 서울 도봉경찰서와 서울지방경찰청 정보1분실을 압수수색해 각종 문서와 컴퓨터 하드 드라이브, 노트북, 소형 메모리 장치 등을 수거해 갔다. 검찰은 그 과정에서 정보1분실 소속 경찰관 17명의 휴대폰을 모두 압수해 가져갔다.
도대체 얼마나 중요한 문서이기에 검찰이 이 난리를 쳤던 것일까? 논란이 된 이 청와대 문건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은 "'찌라시'에나 나오는 그런 얘기들"이라고 잘라 말했다. 고작 '찌라시' 하나로 혐의자를 긴급체포하고 경찰청의 심장부를 압수수색한 셈인데, 이 수사 과정에서 경찰관 한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현재 검찰을 '상냥함의 화신'으로 만들어준 최씨는 대통령 연설과 인사자료 등의 기밀문서를 사전에 전달 받았고(대통령기록물 관리법 위반법, 공무상 비밀누설죄), 기업에 압력을 넣어 출연금을 받아냈으며(포괄적 뇌물죄), 재단 자금을 빼돌려 유용한(횡령) 혐의의 피의자다.
극에서 극으로 바뀐 검찰의 태도에 혼란스러워할 국민들도 있겠으나, 검찰은 사실 매우 일관되게 행동해 왔다. 2014년 비선실세 의혹에 검찰이 칼새처럼 대응한 것도 대통령을 보호하기 위해서였고, 2016년 최순실 스캔들에 나무늘보 같이 대응하고 있는 것도 대통령을 보호하는 데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최대 '대통령 하야', 최소 '식물 대통령'이 될 이번 사안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면 현 정권은 물론 차기 정권까지 날아갈 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도껏 해야지, 국민을 바보로 보듯 너무 속보이는 짓들을 한다. 정부-검찰-언론으로 이어지는 '마의 삼각지대'가 현재의 위기를 낳았는데도, 이들은 아무 뉘우침 없이 같은 과오를 되풀이하고 있다.
국민을 바보로 아는 검찰과 관제언론
최씨 귀국 하루 전, 문화방송(MBC)은 '단독보도'라며 검찰의 수사 진행 상황을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검찰은 JTBC가 입수한 태블릿이 최씨 것이 맞지만, 그 기기로 문서를 작성하거나 수정하지는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 태블릿에는 "문서를 작성하거나 수정하는 기능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는 것이다. 이 코미디같은 검찰의 주장을 아무 문제제기 없이 실어 나르는 언론의 보도를 보자.
"검찰 분석 결과 문제의 태블릿PC는 문서를 작성하거나 수정하는 기능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태블릿PC로 단순히 문서를 받아보는 것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최씨가 연설문을 수정했다고 단정 지을 만한 결정적인 증거는 아직까지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검찰은 최씨가 직접 수정한 문건을 태블릿PC에 담아서 본 것인지 아니면 제3자에 의해 고쳐진 것을 최씨가 본 것인지를 밝히는 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습니다." (MBC "태블릿 PC, 최순실이 쓰다 버린 것 맞다" 10. 29)"검찰 분석 결과" 최씨의 태블릿에는 문서를 작성하고 수정하는 기능이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다고 한다. 그것을 밝혀낸 검찰의 '분석' 기법이 설마 이런 것이었을까?
"어, 이 기계는 유리판만 있고 키보드가 없네?" "그럼 연설문을 고칠 수 없잖아?"이런 말까지 해야 하는 내 자신이 한심하지만, 앱 하나만 설치하면 태블릿이 아니라 휴대전화로도 문서를 작성하고 수정하는 것은 물론, 인쇄까지 할 수 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검사들에게 컴퓨터 교육 좀 시켜야할 것 같다(이번뿐 아니라, 2014년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당시 검찰의 답답한 수사 결과 발표를 보며 느낀 점이기도 하다). 그래야 억지를 부려도 말이 좀 그럴 듯하게 부릴 게 아닌가.
태블릿이 최씨 소유가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기기에서 이미 대문짝만 한 셀카 사진이 나온 데다, 위치와 이동 정보를 파악하면 집, 사무실, 제 3의 장소 등에서 어떤 용도로 사용되었는지 다 드러날 테고, 이 정보를 JTBC가 이미 파악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신 연설문을 고쳤을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만으로도 대통령이 입을 타격을 어느 정도 줄일 수 있을 거라고 믿은 듯하다.
검찰은 이미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 그렇다고 검찰 수사가 무의미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진실규명을 위해 특검이 필요하다는 사실, 국민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봐야 한다는 사실을 설득력 있게 호소한 것, 이것만은 검찰 수사의 커다란 성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