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재벌 가문이 대통령과의 유착 관계를 앞세워 국정을 전횡하면서 격렬한 대통령 하야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AP, BBC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3일(현지시각) 남아공 국민권익보호원은 제이콥 주마 대통령과 인도계 재벌 굽타 가문의 부적절한 결탁과 국정 전횡 의혹을 조사한 부패 보고서 '스테이트 오브 캡처'(State of Capture)를 공개했다.
보고서에는 굽타 가문이 주마 대통령과의 특별한 관계를 이용해 여러 장관을 포함한 정부 고위직과 국영기업 사장 및 임원 인사에 개입하고, 정책 결정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사적 이익을 추구했다는 정황과 증거가 담겼다.
일례로 굽타 가문은 음케비시 조나스 재무부 차관을 불러 6억 랜드(약 500억 원)를 제시하며 재무장관이 되어줄 것을 요구, 사실상 경제 정책을 주무르려고 했다. 그러나 조나스 차관은 이를 거절했다.
지난달부터 불거진 주마 대통령과 굽타 가문의 부패 스캔들로 남아공에서는 국민들의 반정부 여론이 급격히 달아올랐고, 이날 구체적인 증거를 담은 보고서가 전격 공개되면서 마침내 폭발하고 말았다.
행정수도 프리토리아에서는 수만 명의 시민이 정부 청사로 행진하며 주마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 일부 시위대는 대통령궁 진입을 시도하다가 경찰과 충돌하기도 했다.
남아공 야권, 주마 대통령 불신임 표결 요구
양대 야당인 민주동맹(DA)과 경제자유전사(EFF)는 별도의 집회와 성명을 통해 주마 대통령 하야를 촉구했고, 남아공 초대 흑인 대통령이자 정신적 지도자였던 넬슨 만델라가 설립한 넬슨만델라재단(NMF)도 주마 대통령을 비판했다.
NMF는 성명에서 "주마 대통령은 사익을 위해 국가를 이용하며 민주주의를 심각한 위기에 빠뜨렸다"라며 "만델라가 세상을 떠난 지 3년 만에 남아공은 마치 바퀴가 빠진 수레처럼 돼버렸다"라고 주장했다.
남아공 야권은 오는 10일 열리는 의회에서 주마 대통령 불신임에 관한 표결을 요구했고, 주마 대통령이 속한 집권 아프리카민족회의(ANC)는 부패 보고서를 검토한 뒤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17세 때 ANC 무장조직에 가담해 아파르트헤이트(흑인차별정책) 반대 운동을 펼치다가 만델라와 같은 감옥에서 10년간 수감되기도 했던 주마 대통령은 지난 2009년 집권해 한 차례 연임에 성공, 오는 2019년 임기가 끝난다.
그동안 국고 유용, 뇌물 수수, 성폭행 등 수많은 의혹에 휘말렸던 주마 대통령은 이번 사태로 최대 위기에 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