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이겼다. 그간 접한 뉴스로는 쉽게 이해 가지 않는 결과지만, 내용마저 압도적이라니 살짝 당황스럽다. 아침까지 힐러리의 무난한 당선을 예측했던 수많은 여론조사·사전예측은 예상을 크게 빗나갔다. 결과를 접하고 나니 이유가 더욱 궁금하다. 트럼프의 승리와 수많은 여론조사와 예측들이 빗나간 이유 둘 다 말이다.
결과 예측도 그렇지만, 선거의 과정 전반을 좌지우지할 정도의 위력을 가진 게 여론조사다. 하지만 요즘은 위상이 예전만 못하다. 잦은 오류 때문이다. 지난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의 몰락도 그렇고, 브렉시트 역시 예상을 빗나갔다.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을 만큼 숫자와 통계에 집착하는 미국에서도 오류에서 자유롭진 못한 모양이다. 유일하게 '이번 미 대선의 진정한 패자는 여론조사기관이 될 수 있다'는 예측만 맞아떨어졌다.
여론조사가 빗나가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측정기법의 문제거나 측정하는 대상인 '대중'의 행간을 읽지 못하는 경우다. 전자의 오류엔 충분한 표본 수의 확보나 응답률의 개선, 무선전화의 비율 재조정 등 여러 가지 방법이 있어서 고민이 크지는 않다. 소요비용 정도가 가장 현실적인 고민에 가깝다. 문제는 후자의 오류다. 작정하고 의견을 숨기면 어쩔 수 없기에 뾰족한 방도가 없다.
침묵이 짙어지면 실패한다사회심리 메커니즘을 설명하는 대표적 이론으로 침묵의 나선(the spiral of silence)이라는 이론이 있다. 1972년 독일의 노엘레-노이만(Noelle-Neumann, 1916~2010)이라는 학자가 발표한 연구로, 사회적으로 우세한 목소리와 자신의 의견이 일치하면 적극적으로 표현하지만 반대의 경우 침묵하려는 성향이 있다는 내용이다. 대표적으로 정치인들이 흔히 말하는 '숨은 표'는 여기에 기인한 일종의 믿음인데 이외에도 실생활에서 이를 뒷받침할 사례는 많다.
이 침묵의 나선효과는 선택이 완벽히 두 갈래로 나누어지며 사안의 성격이 민감할수록 위력을 발휘한다. 자신의 주장을 드러내기 어려운 선택일수록 침묵의 정도가 짙어지는 식이다. 노이만의 가설검증에서도 낙태정책을 두고 반대 측의 거센 주장에 밀려 찬성 측이 소수로 밀렸지만, 조사에서는 정반대 결과가 나왔던 사례가 있다. 짙어진 침묵이 여론을 왜곡하는 경우인데, 이 경우 여론조사 역시 실패할 가능성이 짙어진다.
지지하지만 드러낼 수는 없다이번 미 대선을 조심스레 복기해보면 이런 흐름을 찾아볼 수 있다. 지난해 연말에 NBC·서베이몽키·에스콰이어가 공동으로 미국인들의 분노를 조사한 온라인 여론조사를 보자. 미국 내에선 공화당을 지지하는 백인여성이 58%로 가장 많이 화가 나 있는 걸로 소개가 되었지만, 공화당을 지지하는 백인남성의 분노도 49%로 그에 못지않았다. 백인남성 분노의 배경은 극심한 불평등이었다.
1979년 이후 소비자물가지수(CPI)가 반영된 미국 노동자의 실질 소득은 17%, 의료보험 혜택(PCE)까지 포함하면 38%가 올랐다. 35년의 기간을 감안하면 수치 자체도 높지 않지만 성별, 학력 수준별로 나누어 보면 그 격차가 확연히 드러난다. 아래의 표에 나타난 것처럼 저소득 중년 백인 남성이라면 박탈감을 느끼기에 부족하지 않은 수치다.
우리가 기억하는 트럼프의 언사는 거칠었지만, 그럼에도 그는 이 문제를 분명하게 파고들었다. 몰락한 공업단지인 러스트 벨트에서 일자리를 위해 FTA를 뜯어고치겠다는 식이다. 결과론적 관점에서 트럼프의 거칠지만 직설적인 언사는 열심히 일하며 살아가지만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있던 저학력 백인 남성 노동자 계층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는 게 목적이었던 걸로 보인다. 히스패닉이나 여성에 대한 거친 표현도 비슷한 맥락이다. 어차피 그것이 진심인지는 지지자나 트럼프에게나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차마 입 밖으로 내뱉기 어려울 만큼 거칠었던 트럼프의 언사나 기행을 떠올려보면 지지자의 입장에서 당당하게 찬성 의견을 드러내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다른 종교를 비하하고 수많은 성추행 피해자들을 양산하며, 18년간 1조 원이 넘는 소득세를 내지 않았다는 부분은 미국 사회 통념상 쉬이 받아들일 수 있는 사안도 아니다. 상대진영의 강력한 비난을 사게 된다.
논란이 가해질수록 대중은 둘로 갈라진다. 그럴수록 열세인 쪽은 아예 입을 다물거나 끊임없이 주변의 의견을 모니터링하다가 동조해주는 척을 하는 게 비교적 손쉬운 선택이다. 이른바 그늘이 잘 갖춰진 선거인데, 이런 선거는 여론조사로 그 변화까지 읽어내기엔 무리가 있다.
앞으로도 여론조사는 틀릴 수 있다전체인구의 모집단을 표본에 정확하게 반영하고, 의도에 맞는 설문을 설계해서 진행하는 통상적인 여론조사가 무척 편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미 대선과 같은 왜곡현상들은 여론이 반드시 합리적이지는 않으며 옳고 그름에 따라 좌우되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점점 사회가 양극화되고 그에 따른 민감한 이슈가 다양하게 불거질수록 왜곡의 빈도는 늘어날 것이다. 단순한 기법의 문제와는 분명 결이 다르다.
비합리적이고 감정적인 결정을 수시로 내리는 대중의 행간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선 다양한 비정형 데이터나 사전징후 등을 함께 보며 결정의 흐름을 읽는 노력이 필요하다. 수치가 대부분을 투영할 때도 있지만, 극히 일부분만을 투영할 때도 있다. 언제든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는 것처럼 여론조사 역시 예외는 아니다.
덧붙이는 글 | 정치를 숫자로 풀어내는 상상력, 상수동전략그룹에 함께 게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