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서도소리포럼이 주최하고 재단법인 전통예술공연진흥재단 등이 후원한 사계축 성악예술 시연회가 지난 11월 10일 한국문화의집 코우스에서 열렸다.
우선 사계축이라는 다소 생소한 용어가 눈에 들어왔다. 국악계에서 '사계축'은 서울역 뒤쪽 만리동고개에서 청파동 일대를 일컫는 지역에서 활동하던 소리꾼들을 지칭하던 용어라고 하는데, 이날 사회자는 만기요람 군정편 등에 조선의 방계구분에 따른 방위구분시 지금의 용산은 청파일계부터 청파오계에 해당되었으며, 청파사계는 지금의 원효로와 용문동 일대라고 했다.
이 일대에 소리꾼이 많이 활동했던 이유는 남으로는 한강이, 인근은 논밭지대여서 상업과 농어업이 함께 발달하면서 큰 상권이 형성되었고 이 때문에 자연스럽게 예술인들이 정착하여 기틀을 잡은 것이라고 했다. 특히 이들은 '깊은사랑' 이라는 형태의, 겨울 한철 임시로 만들어지는 공동 사랑방에서 주로 풍류와 시조, 가사, 잡가를 불렀는데, 이날 시연 역시 이러한 '깊은사랑' 문화를 염두에 두고 진행되었다.
사계축 성악예술의 특징은 '좌창' 즉 앉아서 하는 소리가 많으며, 선비음악을 창조적으로 답습하는 능력과 자신들만의 레퍼토리를 만들어가는 능력이 뛰어났다는 점이다. 그래서 가사나 시조는 근엄하면서도 떨림음 즉 요성과 호흡에 많은 변화를 주어, 생동감이 강한 반면, 다소 긴 사설을 가진 잡가는 더욱 다이나믹한 느낌의 소리로 변하고, 잡가보다 다소 조잡한 소리인 잡잡가에 이르면 노골적이고 해학적인 사설이 중심되는 소리로 변하게 된다.
특히 잡잡가는 작창자의 창의적 사고가 많이 반영된 성악곡으로, 현실을 풍자하고 비판하는 곡조 예를 들면 한글사용이 어려운 일제강점기 초기 한글을 소재로 한 '국문뒤풀이'나, 서양담배가 급속히 유입되자 이를 풍자한 담바귀타령 등이 대표적이다. 또한 남녀상열지사를 거리낌없이 반영한 '범벅타령' 같은 잡잡가는 미풍양속을 헤친다는 이유로 일제강점기 금지곡으로 지정될 정도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이들 잡잡가는 1960년대까지 매우 인기가 많았는데 이러한 작품이 계속해서 나오고 인기를 끈 이유는 사계축 예술인들의 '자유영혼'과 또 일부 형식은 존중하면서도 지나치게 형식에 얽매이지 않은 음악정신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시연회는 공연콘텐츠로서의 활용가능성을 테스트해보는 테스트베드 측면이 중심이 된다는 점에서, 우선 '깊은 사랑'이라는 공연공간 자체가 하나의 콘텐츠로 성공할 수 있을지의 가능성을 상정해 볼 수 있다.
그동안 국악공연은 지나치게 큰 공연장을 고집하면서 규모화되는 측면이 있었다. 이 때문에 관객과의 거리는 더욱 멀어지는 한계가 노출되었다. 국악공연의 장점은 관객과 하나되고, 관객의 추임새나 반응에 따라 무대가 완성되는 특징이 있는데, '깊은사랑'은 공연장이 딱히 없던 시절 관객과 호흡이 가능한 우리의 전통적인 공연 공간으로 충분히 기능하고 있음을 알수 있었다. 깊은 사랑 형태의 공연장이 많이 만들어진다면 전통음악이 자연스레 활성화할 가능성이 커 보였다. 돈화문국악당이나 국립국악원 풍류극장이 이 '깊은사랑' 형태의 공연장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잡가나 잡잡가의 새로운 공연 콘텐츠로서의 가능성이다. 잡가나 잡잡가는 일반 민요에 비해 움직임도 없고, 사설도 어렵고, 비슷한 선율이 반복되는데다 언어 역시 고제가 많아 쉽게 이해되기 힘든 측면이 있어 콘텐츠로의 변신이 매우 까다롭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다. 그러나 잡가나 잡잡가가 단점만 있는 작품은 아니다.
우선 좌창이라는 형식을 과감히 탈피해 입창화해서 다이내믹한 움직임을 만들어내야 한다. 또 하나의 장점은 '서사성'이라는 것이다. 재미있는 스토리를 가진 소리가 많기 때문에 그 스토리를 창극이나 소리극 형태로 표현해낸다면 이야기는 달리진다. 특히 '바람피는 여성'의 심리를 잘 드러낸 범벅타령 같은 경우는 현대적 감성으로도 충분히 포용가능한 작품이어서 좋은 대본과 실력있는 소리꾼이 만난다면 레퍼토리 기근을 겪고 있는 민요계에 새로운 대안콘텐츠로서 멋진 작품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많은 예술인들이 창작의 고통을 얘기한다. 제한된 소재, 빈천한 지원 등등 열악한 환경에서 새로운 소재에 기반한 창작의 과정은 정말 어렵고 고통스럽다. 하지만 그 소재가 이미 존재하고 있는 기존의 작품들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너무 요원한 영역에서 창작의 소재를 구하는 것 보다 우리 곁에 묵혀있는 것들 일례로 사계축의 멋진 성악예술들 속에서 이러한 창작의 가능성을 찾는다면 훨씬 더 완성도 높은 작품들이 만들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들 작품 역시 근대시기 사계축 소리꾼들의 치열하고도 다양한 상상의 나래를 펴고 태어났던 창작품들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