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위 말하는 '운동권'이다. 사회의 약자들과 함께하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는 그 운동권이 맞다. 그런데 최근에는 내가 정말로 약자들과 함께하고 있는지 회의감이 들 때가 많다. 예전에 인지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접한 후부터 말이다.
'여성주의'라는 단어를 처음 들은 때는 아마 운동을 만난 2014년 즈음이었다. 본인을 페미니스트로 자처하는 선배에게 들었고,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나는 페미니스트야.""그게 뭔데요?""여성주의자...? 그런 뜻이야."그 짤막한 대화 이후 '여성주의'는 내 머릿속에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별 관심이 없었고, 주변의 누구도 여성주의를 이야기하거나 공부하자는 사람이 없었다. 처음 운동을 접한 나에게 선배들이 꺼내든 책은, 운동권이라면 필수 코스(?) 쯤 되는 <마르크스 선집/저작>, <혁명사> 등이었다.
여성주의는 사회의 모든 차별에 저항하자는 이론
아직도 궁금하다. 왜 나는, 나아가 운동을 하는 우리는 사회의 모든 차별에 저항하자는 여성주의를, 그리고 그러한 차별을 가장 '쉽게' 느낄 수 있는 여성주의를 공부하지 않았는지. 여성주의 책을 처음 읽고 내가 했던 이야기는, "운동권은 처음에 이걸 읽어야 해!"일 정도였음에도.
그렇게 살아왔다. 두 마디 대화를 통해 여성주의를 접했던 나는 스스로를 꽤 괜찮은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것도 '여성주의적으로' 말이다!) 잘못된 사회를 바꾸기 위해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하는' 우리에게는 이미 그런 여성주의적인 소양이 충분히 갖춰져 있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내 안의 성차별을 깨닫고 여성주의 공부 시작노동조합에서 일을 시작하고, 안정된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 처음으로 나의 성차별적 태도에 대한 지적을 받았다. 여성(선배)을 대하는 태도와 남성(선배)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는 것이었다. 같은 피드백을 받아도 여성에게는 되지도 않는 꼬투리를 잡는 반면, 남성에게는 1초의 고민 없이 수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매우 호되게 혼이 나고 정신을 반쯤 놓은 채로 여성주의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나 자신을 돌아보는 동시에, 지금까지 내가 맺어왔던 관계들을 여성주의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과연 운동을 하는 우리들은 얼마나 여성주의적으로 살았나. 혹여 공통의 지향점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내부의 문제들을 깊이 있게 보지 못한 것은 아닐까. 처음에는 의문을 던지며 시작했지만 경험과 기억을 돌아보며 확신할 수 있었다.
운동사회의 '틀'운동을 접한 지 채 1년도 되지 않아 단체 일을 시작했던 나는 정말 외로웠다. 함께 일하는 단체 사람들은 나보다 10년 이상 나이 차이가 났다. 적응을 잘하지 못해 혼자 끙끙대며 매일을 술로 보냈다. 당시의 나는 강박적으로 '힘듦'과 '외로움'을 숨기려 했다.
'동지'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힘든 일들을 쉽게 토로하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무서웠다. 운동사회는 신기하게도(?) '강인하고', '지치지 않으며', '멘탈이 강한', 사람을 요구(또는 좋아)한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약한' 사람으로 평가되며, '쉽게 무엇인가 맡길 수 없는' 사람으로 이어진다.
이를테면, 운동권들은 종종 전국 순회를 다닌다. 어떤 중요한 사안이 있을 때 이를 알리기 위해서 말이다. 전국 순회에 단순 '참가'를 하느냐 마느냐 에서부터 평가가 시작된다. 참가를 하지 않는(또는 못하는) 사람에게는 "운동보다 본인이 더 중요한 사람",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사람" 등으로 평가된다.
주로 평가를 '받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힘들다고 이야기했을 때 나올 선배들의 평가가 무서웠다. 실제로 들었던 '나가떨어진다'라는 표현을 들을까 봐. 더 다양한, 많은 일들을 하지 못하게 할까 봐. 나에게 중요한 일을 맡기지 않을까 봐.
같이 운동을 하는 친구들에게도 말을 못했다. '동지'라는 것이 참 신기해서, 한 명한테 말하면 이야기가 돌고 돌기 때문에. 겨우 참다가 술김에야 말하고, 몇 달을 참다가 한 번 이야기해보고.
한 번은 못 버틸 것 같아서, 다른 지역에서 새롭게 시작해보겠다는 마음을 가졌다. 하지만 며칠 못 갔다. 여기서 도망치면 '약한' 사람이 될까봐. 기회가 주어졌지만, 걷어찼다. 그때 나의 심정은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버텼다. 나는 스스로를 운동 사회가 요구하는 '틀'에 끼워 맞췄다. 내 몸과 맞지 않는 틀이었으니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운동을 그만둘까도 수없이 고민했었다. 좋은 세상 만들자고 하는 일에, 내가 행복하지 못하면 다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재밌는 것은, 이런 고민들도 운동 사회의 '틀' 앞에서는 무력했다.
여성주의로 '틀'을 부수고 고통을 위로받다그런데 이후, 여성주의를 이야기하기 시작하면서 '틀'은 더 이상 '틀'이 아니게 되었다. '힘듦'을 토로하고 위로받을 수 있었다. 흔들릴 때 낙인찍기보다는 기댈 어깨를 내어주었다. 그렇게 점차 틀이 깨지기 시작했다.
여전히 운동 사회의 '틀'은 뿌리 깊게 존재한다. 대부분의 운동 조직의 대표는 남성이고, 그 아래의 직책은 여성이 맡는다. 구체적인 값을 낸 것은 아니기 위해 단순 나의 느낌일 수 있지만 정치적인 판단은 '남성'이 하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을 챙기는 것은 '여성'이 하는, 이보다 더 '틀'에 들어맞는 것이 있을까 싶다.
여러 예를 들 수 있겠다. 대표적으로 운동을 한다면 한 번 쯤은 해봤을 '농성', 말 그대로 밖에서 침낭 덮고 자는 일. 최근 나는 성별 분리 없이 관리도 안 되는 농성장에서 하룻밤을 자고 왔다. 이와 같은 공간이 '불편한 사람'은 또 다시 틀에 끼워 맞춰질 것이다. 언제까지 '농성하니까 어쩔 수 없어' 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버텨야 하는 것일까.
운동권 내 성폭력과 내부를 향한 외침
최근 SNS 상에서 '#운동권_내_성폭력'이라는 해시태그로 많은 이들이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그동안 이야기하지 못했던 경험들이 '틀'을 무너뜨리며 폭발한 것이라고도, 지금까지 운동 사회는 내부를 향한 외침이 없었다는 것으로도 해석해 보았다.
이런 상황에서 평소의 행실을 더 주의하게 되면서도, 나 자신의 과거를 돌이켜 보게 되었다. 그 '틀'에 억지로 몸을 끼워 넣으며, 나는 또다시 다른 사람들에게 운동권의 '틀'을 강요하지는 않았는지. 실제로 나의 부적절한 발화가 '여성'을 대상으로만 이뤄져왔다는 것도 깨달았다. 이제는 되풀이되는 운동권 '틀'에 끼워 맞추기를 멈춰야 할 때다.
누군가의 잘못을 비판하고 본인의 주장을 펼치기 위해선, 본인의 잘못을 먼저 들여다 볼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우리는, '운동' – 사회적 약자와 함께 한다는 – 을 한다는 대의 아래 외부만 쳐다본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때다. '꿘충'이라는 단어가 괜히 나왔을까?
내가 함부로 운동권을 대표해 운동권에는 이에 대한 고민과 성찰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가장 근처의 틀을 깨부수기지도 않은 채 어떻게 저 멀리 있는 틀을 없애자고 주장할 수 있을까. 나와 나의 동지들은 더 깊은 고민과 성찰을 통해서 운동권의 '틀'을 깨어나가는데 함께했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페미디아(www.femidia.com)에도 실렸습니다.
글쓴이 강태이님은 노동조합 활동가이자 노동당 당원으로, 노동당 여성위원회가 페미니즘에 대해 고민하는 남성 당원들과 함께 시작한 ‘남성성들: 남성 페미니스트 글쓰기 연재’에 참여합니다. ‘남성성들: 남성 페미니스트 글쓰기 연재’는 페미니즘에 대해 고민하는 남성 노동당원들이, 노동당 여성위원회와 시작한 글쓰기 시리즈입니다. 여기에서 ‘남성성’이란 R.W.코넬의 저작 『남성성/들』에서 인용한 것으로, 하나의 ‘남성성’이 존재한다기보다 만들어지고, 수행되는 개념으로서 한국사회의 남성성이 어떻게 실천되고 유지되는가를 성찰적으로 나누기 위한 개념으로 사용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