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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고록 ‘핵 벼랑을 걷다’((MY JOURNEY AT THE NUCLEAR BRINK, 창비) 한국어판 출판 기념으로 방한한 윌리엄 페리 전 미국 국방장관이 14일 오후 서울 마포구 창비서교빌딩에서 한 출판기념회 자리에서 말하고 있다.
회고록 ‘핵 벼랑을 걷다’((MY JOURNEY AT THE NUCLEAR BRINK, 창비) 한국어판 출판 기념으로 방한한 윌리엄 페리 전 미국 국방장관이 14일 오후 서울 마포구 창비서교빌딩에서 한 출판기념회 자리에서 말하고 있다. ⓒ 창비 제공

"한국에서 핵무장론을 주장하는 사람은 체스 두는 법을 모른다고 생각한다. 체스를 두는 사람들은 항상 다음 수를 고려한다."

윌리엄 페리 전 미 국방장관은 14일 한국의 핵무장론자들을 이렇게 비판했다. 1960년대 이후 자신이 참여한 여러 나라의 핵 협상 경험을 담은 회고록 '핵 벼랑을 걷다'((MY JOURNEY AT THE NUCLEAR BRINK, 창비) 한국어판 출판 기념으로, 이날 오후 서울 마포구 창비서교빌딩에서 연 출판기념회 자리에서다.

페리 전 장관은 1994년 1차 핵위기 당시 미 국방장관으로 북한 핵폭격을 검토하기도 했으나, 99년에는 대북조정관으로서 북미관계 정상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 등의 북핵문제 해결의 대안을 담은 '페리 프로세스'를 만든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이날 간담회에서 한국의 핵무장 주장과 관련해 "나쁜 아이디어, 정말 나쁘고 나쁜 아이디어(bad idea, really bad bad idea)"라고 강조하면서 "일본의 핵무장과 중국, 북한의 핵 능력 강화를 이끌어낼 것"이라고 말했다. 핵무장을 '최후의 한 수'로 여기고 추진하겠지만, 결국 핵도미노 현상을 초래할 것이라는 얘기다.

"트럼프, 대선 때 한 발언대로 정책 추구하면 큰 반대 부딪힐 것"

 9일(미국 현지시각) 뉴욕 힐튼호텔에서 대통령 수락연설을 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9일(미국 현지시각) 뉴욕 힐튼호텔에서 대통령 수락연설을 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 연합뉴스·EPA

그는 전술핵 도입 주장에 대해서도 "(기술적으로 전략핵과 별개의) 전술핵이라는 것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그는 "(2차대전때) 히로시마에서 터진 핵폭탄 규모 정도를 전술핵이라고 하지만 (그렇게 큰 파괴력을 가진) 그걸 어떻게 전술핵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통상, 폭파 위력이 수 km 이내로 주로 국지전에서 사용한다는 개념의) 전술핵과 전략핵의 구분이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이날 간담회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의 한반도 정책에 대한 전망도 주요 주제였다. 트럼프 당선자는 대선과정에서 북한에 대해 "김정은이 미국에 온다면 만나겠다. 회의 탁자에 앉아 햄버거를 먹으면서 더 나은 핵 협상을 할 것"이라고 말했고,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을 묵인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으며, 또 한국의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요구했다.

페리 전 장관은 이에 대해 "아직은 그의 대북정책을 판단할 근거가 없기 때문에 더 지켜봐야 한다"는 전제하에 "트럼프 당선자가 한미동맹의 가치에 의문을 품게 하는 말을 많이 했지만, 그런 발언들을 진지하게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미국은 민주주의 국가라 한 사람이 정책을 만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 외교가가 그의 대외정책에 많이 반대하고 있기 때문에 그가 선거 과정에서 말한대로 정책을 추구한다면 큰 반대에 부딪힐 것"이라고 전망했다.

"북핵 문제,  '비핵화'에서 '검증가능한 감축'으로 목표 낮춰 잡아야"

 북한이 정권수립일을 맞아 지난 9월 9일 오전 핵실험을 단행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정부 소식통이 밝혔다. 사진은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지난 3월 공개한 장면으로 김정은 북한 노동당위원장이 핵탄두 기폭장치 추정 물체 앞에서 핵무기 연구 부문 과학자, 기술자들을 만나 지도하는 모습.
북한이 정권수립일을 맞아 지난 9월 9일 오전 핵실험을 단행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정부 소식통이 밝혔다. 사진은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지난 3월 공개한 장면으로 김정은 북한 노동당위원장이 핵탄두 기폭장치 추정 물체 앞에서 핵무기 연구 부문 과학자, 기술자들을 만나 지도하는 모습. ⓒ 연합뉴스

그는 꽉 막혀있는 북한 비핵화와 관련해서는 자신이 "17년 전 (1999년에) 협상할 때 북한의 목적은  정권 보장, 국제 사회 인정, 경제 상황 개선이었는데, 그때 북한이 핵을 포기했다면 이 모두를 달성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회고하면서 "현재 북한은 핵무기를 갖고 있고 포기할 생각이 없다는 점에서 당시와 차이가 있으며, 정권 보장과 국제 사회 인정을 위해 경제를 희생해도 좋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현실적 목표를 비핵화가 아니라 '검증가능한 감축'으로 낮춰잡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추가 핵개발·성능 향상·핵확산 3가지를 막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국과 미국이 북한과 바로 협상을 시작해야 한다. 이게 우리가 가야 할 길이다. 대안은 얼마든지 만들 수 있지만 한미가 그걸 선택할지는 잘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페리 전 장관은 1994년 그가 국방 장관시절 거론됐던 '영변 핵시설 폭격설'에 대해서도 밝혔다. 그는 "당시 워싱턴포스트에 이에 대한 칼럼이 실리면서 북한은 나를 '전쟁광'이라고 비난했다"면서 "하지만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 작전이었을 뿐 정말 공격을 할 계획은 아니었기 때문에 클린턴 대통령에게 보고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미국이 그런 계획을 하고 있다고 북한이 인식한 것이 위기상황을 벗어나는데 도움이 됐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문정인 연세대 명예특임교수는 "페리 전 장관은 페리 프로세스를 '임동원-페리 프로세스'라고 표현한다"면서 "한국인들은 잊고 있지만, 이 프로세스 덕에 북한이 대외정책을 바꿨고 그 결과로 김대중 정부가 북한과 협상하면서 2000년 1차 정상회담을 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자리에는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과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창비 명예편집인)도 함께했다.


#윌리엄 페리 전 미 국방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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