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7일 새벽 4시. 오늘 시험을 치를 한 여학생으로부터 전화가 걸러 왔다.
"선생님, 주무시는데 죄송해요. 시험을 앞두고 잠이 오지 않아 이렇게 전화드립니다. 지금까지 열심히 했는데 떨리고 자신감이 없어집니다. 고사장에 들어가기 전에 선생님 얼굴 한번 봬야 시험을 잘 볼 것 같아요."
녀석이 이른 새벽에 전화한 것을 보면 시험을 앞두고 많이 초조하고 긴장이 되는 모양이었다. 사실 녀석은 지난 9월 수시 모집 네 군데 지원하여 세 군데는 떨어지고 한 군데는 1단계에 합격해 지난달에 면접을 보고 왔다. 그리고 최종 합격을 위해서는 반드시 수능 최저 학력을 맞춰야 하는 상황에 있었다. 순간, 녀석의 건강이 신경 쓰였다.
"OO아, 잠은 좀 잤니? 몸 상태는?"
"괜찮습니다. 다만 잠이 오지 않아서요."
시험 시간이 몇 시간 남지 않았지만 우선 녀석에게 잠깐이라도 잠을 청할 것을 주문했다. 그리고 마음을 편히 갖고 평상심을 잃지 말 것을 이야기하고 난 뒤, 고사장이 어디인지를 물었다.
"OO아, 고사장은 어디니?"
"OO여자고등학교 입니다."
"그래, 아침 7시 30분에 그곳에서 보자."
"네. 선생님. 감사합니다."
우선 녀석과 고사장 정문에서 만나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녀석의 고사장이 우리 집과 멀리 떨어진 곳에 있어 아침 일찍 서둘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전 6시. 녀석과의 약속 때문일까? 생각보다 일찍 잠이 깨었다. 밖은 어두웠다. 새벽바람이 다소 차기는 했으나 입시 한파는 없었다. 주차장은 수험생 자녀를 시험장까지 태워주려는 아파트 주민도 간혹 눈에 띄었다. 다소 이른 감이 있어서인지 시험장으로 가는 거리는 비교적 한산 했다.
오전 6시 30분. 고사장에 도착했다. 고사장 앞에서 수험생을 찾아볼 수는 없었지만, 모교 출신의 수험생을 응원하기 위해 각 학교에서 나온 후배들이 좋은 자리를 잡기 위해 미리 진을 치고 있었다. 그리고 수험생을 위한 응원을 준비하고 있었다.
오전 7시. 경찰의 교통통제가 시작됐다. 학부모의 차를 타고 일찍 도착한 소수의 수험생이 시험장으로 다가오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후배들의 힘찬 응원이 시작됐다. 수험생들 또한 함께 파이팅을 외치며 고사장으로 들어갔다.
오전 7시 30분. 점점 더 많은 수험생이 고사장에 속속 도착하자 후배들의 응원 소리가 더욱 커졌다. 선생님은 학교에서 준비한 선물을 수험생들에게 나눠주며 격려의 포옹을 해주었다.
녀석과 만날 시간이 돼 고사장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사방을 둘러보아도 녀석이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전화를 걸었으나 연락이 되질 않았다. 순간, 나의 머릿속은 녀석의 생각으로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오전 8시. 고사장 입실 시간이 10분이 남았다. 수험생 대부분이 고사장으로 입실한 듯했다. 녀석의 입실 여부가 걱정되어 고사장 앞을 서성거렸다. 그러나 녀석의 입실 여부를 알 방법은 없었다.
바로 그때였다.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부르며 헐레벌떡 뛰어왔다. 녀석이었다. 가방 하나를 들고 대충 옷을 차려입은 녀석의 모습은 도무지 수험생이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녀석은 늦잠을 잤다는 변명을 늘어놨으나 시간이 촉박하여 녀석의 변명을 들어줄 시간이 거의 없었다.
우선, 시험을 잘 보라는 의미로 녀석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그러자 녀석은 연신 감사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입실 10분을 남겨놓고 만난 녀석과 긴 이야기는 나누지 못했지만, 나를 보면 시험을 잘 볼 것 같다는 녀석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어 다행이었다.
오전 8시 10분. 학교 측에서 나온 두 사람이 시험장 문을 서서히 닫기 시작하자, 고사장 앞에서 응원하고 있던 아이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교문에 대고 넙죽 큰절을 올렸다. 그리고 수험생을 격려하기 위해 나온 학부모와 선생님은 닫힌 철문을 바라보며 아이들의 '수능 대박'을 기원했다.
철문이 닫힌 뒤에도 일부 학부모는 자리를 떠나지 않고 고사장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나또한 그간 녀석의 노력이 실력으로 발휘되기를 고사장 앞에서 간절히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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