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에 거주하던 장기수 이찬근 선생이 숙환으로 17일 오전 11시 40분에 운명했다. 향년 86세. 1930년 함경북도 명천군 서면에서 출생한 고 이찬근 선생은 1935년 만주로 이주해 해방을 맞았고, 1945년 4월 중국 모택동 군대인 '민주련군'에 입대, 1949년 방호산 사단장이 이끄는 조선인민군 6사단의 일원으로 북한에 입국했다.
고인은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함안 지역 전투에서 총상을 입고, 부산수용소를 거쳐 거제도수용소에 수용되었다. 1951년 6월 초순 경 수용소에서 탈출 후 경남 의령군 빨치산에 입대하였다가 1951년 말 경남지역 전투에서 중상을 입고 체포되었다. 고인은 진주 감옥에서 사형 선고를 받은 후 감형되어 1969년에 대전교도소에서 출소했다. 1970년 결혼하여 대전 목동에서 거주하다가 최근 건강 문제로 요양병원에 입원 중이었다.
6.15공동선언 합의에 의해 2000년 9월 비전향장기수 63명이 북송된 이후, 이창근 선생도 송환을 요구하였으나 정부로부터 거부당했다.
* 장례식장: 을지대학병원(대전) 장례식장 6호실(19일 발인)
<故 이찬근 선생 약력>
1930년 함경북도 명천군 서면 용동서 출생1935년 가족들과 함께 중국으로 이사1945년 4월 중국 모택동 군대인 '민주련군'에 입대1950년 함안 지역 전투에서 총상을 입고, 부산수용소에서 거제도수용소로 옮김1951년 6월 초순 수용소에서 탈출하여 경남 의령군 빨치산에 입대1951년 말 전투에서 중상을 입고 체포, 진주 감옥에서 사형 선고1960년 15년 감형1969년 7월 27일 대전교도소에서 출소1970년 결혼하여 대전 목동에서 거주2016년 11월 17일 운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