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관광, 어떤 차이가 있을까? 왠지 뭔가 다른 점이 있을 것 같다. 정답은 아무 차이도 없다. 살던 환경과 현실을 잠시 뒤로 하고 낯선 고장이나 외국으로 유람을 떠나면 다 그것이 여행이고 관광이다. 그런데 왜 뭔가 좀 다른 것 같은 느낌이 들까?
관광차의 이미지 때문일까? 국내로 유람을 떠나면 관광일 것 같고, 외국으로 떠나면 여행일 것 같다. 며칠은 관광, 길면 여행, 영어를 하고 다니면 여행, 한국어 가이드만 따라다니면 관광, 혼자 다니면 여행, 단체로 다니면 관광일 것 같은 것이다. 마치 '봉다리와 봉지', '밀가루와 밀가리'처럼 본질은 변함이 없고 사투리나 희화적인 표현 차이가 있을 뿐인데 말이다.
그런데도 이번 길동무 여행 중에 유난히 관광을 온 것 같은 느낌이 들던 곳이 있었다.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에서 서쪽으로 28km 거리에 있는 도시 신트라(Sintra)가 그랬다. 신트라는 영국의 대표적인 시인 조지 고든 바이런 경이 '에덴의 동산'이라고 표현했을 정도로 아름다운 도시다. 산속에 있기 때문인지 동화 속 세상 같다는 말이 어울리는 도시다.
'에덴의 동산'이라는 별명을 가진 아름다운 신트라
그런데 왜 그 신트라에서 유독 관광 온 느낌이 들었을까? 신트라 시가지에 북적이는 여행 인파와 밀려드는 관광차 때문이었을까? 험준한 산마루를 타고 앉은 실로 오묘한 페나 성(Palácio Nacional da Pena)이 관광객으로 너무 혼잡했던 때문일까?
"우리 길동무가 페나 성을 고쳐놓고 갑시다." 불쑥 튀어나온 말이 아니었다. 공감할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우선 페나 성의 겉모습이다. 페나 성은 가파른 바위산 정상에 동화 속 배경 같은 성이다. 해발 529m 산 정상에 불거져 나온 기암들을 활용하며 산세 따라 하나가 되어있다. 정말 감탄사를 아낄 필요가 없는 성이요 궁이다. 그 성다운 성의 벽을 알록달록 빨강, 노랑으로 칠해놓았다. 가뜩이나 부착해놓은 조형물들이 많아 산만한 느낌인데, 벽까지 강렬한 원색 퍼레이드라니.
첫인상이야 곧 바뀔 수 있다. 그런데 성 내부가 그걸 해소해주지 못했다. 아니 더욱 부채질 했다. 연이은 방과 복도, 아치형 문들을 지나 육중한 구식 전화기가 설치된 거실까지 동선을 따라 돌고 도는 동안 계속되는 오밀조밀함이 그만 질릴 정도였다.
예컨대 의자나 탁자 다리는 모두 뱅글뱅글 꼬아 놓았다. 의자는 팔을 걸칠 부분까지 비틀어 놨고, 손잡이 부분은 웬 조각을 그리 많이 해놨는지 어지러웠다. 가구에 치여서 어찌 살았지 싶을 만큼 구석이란 구석은 다 가구들 차지였다. 그리고 그 가구들에는 송곳 꽂을 틈도 없을 만큼 갖가지 형상과 문양이 새겨져 있다.
게다가 사방으로 펼쳐진 그 수려한 경관을 바라볼 창문들은 어울리지 않게 작았다. 멋진 위치에 있는 성 내부가 한마디로 너무 답답한 분위기였다. 단순미와 여백을 사랑하는 한국인 정서를 탓할 수도 없다. 너무 거슬렸다. 길대장이 나섰다.
"이 성 주인 취향이 지나치게 아동틱한 거 아닐까요?""이 성은 페르디난트 2세가 그의 둘째 부인 엘레오노라 곤차가에게 선물하기 위해 이렇게 꾸몄다고 전합니다.""예? 둘째 부인을 위해서 이런 성을 꾸며요? 어쩐지 알록달록 파스텔 색조나 놀이동산에나 있을 법한 모양새들이 좀 그렇다 했더니. 그런 사연이 깃든 성이군요. 뭔가 길동무가 역할을 좀 하려고 했는데 작파해야겠네요. 이 성이 가진 개성을 그냥 높이 사겠습니다. 그나저나 이 성을 선물 받았을 때 그 부인의 기분이 어땠을까요?"
특별함이었다. 하긴 이 성마저 육중한 분위기로 일관한 여타 고성 같았다면 이리 유명할 것이며, 다녀간들 잘 기억이나 하겠는가. 성을 고쳐놓자는 제안에 길동무가 모두 "옳소"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몇 길동무의 예리한 미의식과 튀는 상상력, 행동력은 이 아담한 페나 성쯤은 최선으로 고쳐낼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어쨌든 장중한 궁전이나 엄숙한 성전 같았으면 그런 농담이나 상상을 했겠는가.
성 하나를 뚝딱 쌓기도 하고 고치기도 하는 길동무 여행은 그래서 늘 즐겁다. '길동무'라는 이름이 정해지기 전 일이다. 수려하고 청량한 고장, 꽃과 미인의 고장, 교육의 도시로 이름난 반둥(Bandung)에서 어울렸을 때다. 그때 맏언니요 맏형수인 장마마께서 불쑥 제안했다.
"우리 이 담에 반둥에서 모여 살면 어때요?"인도네시아에서 살기 좋은 곳으로 정평이 난 반둥인 만큼 모두 마음이 동했나 보다. 아무도 반대하는 사람이 없었다. 오히려 누군가 맞불을 놨다. 말로만 하면 안 되니 지금 당장 돈을 걷자고 나섰다. 일행은 그 즉시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가진 돈을 꺼냈다. 누가 들으면 "장난 나랑 지금 하냐?"고 할 적은 돈이 모였다. 하지만 여행 중에 토지 구매라도 해놓고 갈 태세였다. 물론 결과는 '장난 그때 한 것'으로 멈춘 상태지만, 그것이 바로 지금처럼 정기 여행을 하게 된 발로가 되었음이다.
우여곡절 겪으며 개성강한 곳으로 남은 페나 성
페나 성은 신트라가 자랑하는 랜드마크라 할 수 있다. 신트라를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곳이다. 창문이 작았던 것은 대서양에서 몰아치는 힘센 강풍에 대비함이었다. 언제 어디서나 중요한 것, 그리고 깊은 의미는 그렇게 숨어있게 마련이다. 성 내부의 조밀한 구조와 용품들은 꾸민 이가 심혈을 기울인 정성이었다. 어느 순간 그것이 바로 일관된 기도임이 느껴졌다. 어설픈 변화보다 훨씬 안정적이었다. 주방에 잘 정돈된 그릇이나 놋쇠 집기들도 과거 귀족들의 품격을 갖춘 생활의 한 단면이었다.
"유럽 대부분 명소들이 그렇지만 페나 성 또한 우여곡절을 겪어온 곳입니다. 16세기 제로니무스파의 수도원이었던 것이 한때 폐허가 되기도 했지요. 주인도 여러 번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건축 양식 또한 이슬람, 고딕, 마누엘 등 다양하게 혼합되어 있습니다. 어쨌든 페나 성의 다사다난한 역사가 이렇게 개성 강한 성으로 남게 했을 것입니다."페나 성에서 보고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많았다. 우선 세력을 가진 자들의 취향과 의식구조다. 물론 이점은 보는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엇갈릴 것들이다. 그 시대는 모든 것을 오직 인력으로 해결해야 하는 때였다. 그렇게 높은 곳에 성을 쌓은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내부 구조나 가구 등 생활 범주 안에 모든 것을 현대인이 감탄하도록 갖추기 위해 얼마나 많은 돈과 노력을 바쳤을까. 그러나 좋은 점 하나만 보기로 했다. 과정을 이겨내는 신념, 성취를 향한 집념을 높이 사기로 했다. 무한 훗날을 기약한 집념과 의지가 이 훌륭한 유물 하나를 길동무 여행 길목에 즈려 살피게 놓아두지 않았는가.
어디든 스쳐 지나면 그 의미를 찾기 어렵다. 신트라는 뭔가를 찾으려는 여행객에게 분명 그 이상을 제공할 곳이었다. '에덴의 동산'이란 평가는 오직 시인다운 평가에 그친 느낌이었다. 중세시대 왕족과 귀족들의 생활 박물관이라 해야 더 어울릴 것이다. 페나 성과 신트라 왕궁을 비롯한 몇 개의 크고 작은 왕궁, 엽서 그림 같이 숲속에 깃든 호사가들의 여름 별장, 이베리아 반도에서 가장 훌륭하다는 정원, 빼앗고 뺏긴 격동의 역사가 가슴 아리게 쌓인 무어인의 성 등 모두가 시간을 많이 소비해도 좋을 곳들이다.
특히 신트라 왕궁은 아줄레주(Azulejo) 장식의 정수를 보여주는 곳이었다. 사전은 아줄레주를 '광택을 낸 돌멩이에서 유래된 것이며 주석 유약을 사용해 그림을 그려 만든 포르투갈의 도자기 타일 작품이다'라고 설명한다. 포르투갈 문화의 특징적인 단면으로서, 라틴 아메리카와 필리핀 등 옛 포르투갈과 스페인 식민지에도 전래되어 아줄레주 생산이 전통으로 자리잡고 있다고 한다.
아줄레주는 포르투갈뿐만 아니라 스페인의 곳곳에서도 널리 활용되고 있었다. 페나 성의 내외벽이나 신트라 왕궁에서도 찬란히 빛을 발하고 있었지만, 가우디 건축물 등에서는 아줄레주를 기반으로 한 가우디다운 변형을 볼 수도 있었다.
신트라 왕궁의 또 하나의 특징은 청화(靑畵) 타일 그림이었다. 때로는 아줄레주와 조화하고 어떤 곳에서는 이질적이기도 했는데, 실로 그 규모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였다. 그중에서도 포르투 기차역의 대형 기록화는 기억에서 오래오래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청화의 활용은 한국이나 중국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철사, 진사와 함께 도자기에 사용하는 3대 물감 중 하나다. 철사나 진사가 구운 후 고열로 인한 발색을 가늠할 수 없는 반면, 청화는 섬세한 음영 표현과 속도감 있는 터치가 고열에 구운 후에도 굽기 전과 다름없이 그대로 살아난다. 이런 특징을 잘 살려 활용한 대형 유물을 포르투갈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은 미처 생각지 못한 소득이었다.
여행이란 아는 것과 존재하는 것에 관한 확인이 아니다. 여행은 몰랐던 것 낯선 것으로부터 자기만의 느낌을 얻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느낌이 풍부했던 신트라는 좋은 여행지였다. 길동무는 신트라에서 길동무와는 다른 두 가지 여행 스타일을 보았다.
하나는 리스본에서 홀로 버스를 타고 왔다던 한국인 학생이었다. 그는 길동무의 부탁에 가던 길을 지체하고 단체 사진을 몇 장 찍어주었다. 일정상 떠나야 하는 길동무와 달리 그는 신트라에서 1박을 할 예정이라 했다. 구시가지의 몬세라테 궁은 물론 젊은이답게 인형박물관도 가겠다고 했다. 신트라 구시가지 작은 골목길까지 천천히 살펴볼 것이라 했다. 그는 틀림없이 느끼는 여행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하나는 많은 분이 함께 온 단체 여행이다. 한눈에 봐도 한국에서 온 분들임을 알 수 있었다. 서두르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20분 전후가 소요되는 페나 성 오르막길, 5유로면 순환 버스를 탈 수 있는데 그냥 숨을 헐떡이며 올라왔다.
"의견이 다 달라서 페나 성 관람은 개인의 의사에 맡기기로 했어요. 몇 사람만 올라왔어요. 입구에서 기다리는 일행들 땜에 얼른 둘러보고 빨리 내려가야 해요. 사진 좀 부탁해요."길동무 또한 다소 서두를 수밖에 없었던 신트라 일정, 그래서 나는 눈을 지그시 감고 시방 그곳으로 다시 간다. 천천히 혼자서 신트라에 안긴다. 조금 익숙하다는 것은 편안함과도 상통한다. 나는 페나 성 입구에서 순환 버스를 타지 않는다. 버스로 오가며 눈여겨 둔 바위산 나무 숲길을 이젠 마음에 담는다. 느리면 느린 만큼 마음에 담을 것들이 많다. 오를수록 달라지는 주변 경관을 나긋나긋 즐긴다. 수시로 뒤를 돌아보며 신트라를 살핀다. 오른 만큼 변화하는 모습을 마음에 새긴다. 눈을 들어 점점 가까워지는 페나 성을 살핀다. 보일 듯 말 듯 숲 사이로 차츰 드러나는 페나 성 모습이 차에서 내려 갑자기 마주쳤을 때보다 매력적이다.
신트라는 산골 도시다. 걷기를 유혹하는 오솔길이 많다. 무어인들이 걷던 길을 따라 성곽도 오르고 작은 마을 길도 타박타박 아우른다. 왕가와 귀족들이 여름을 보낸 많은 곳, 시간이 흘러 달라진 것들을 이제는 떠나고 없는 과거의 그들 대신 현재의 내가 홀로 추억한다. 바로 여기, 바로 지금은 살아 있는 자가 누리는 복이다. 세계문화유산과 자연유산 두 군데 모두 등재됐다면 그 이유가 분명할 터, 내 눈과 마음으로 직접 보고 그 이유를 느낀다.
골목을 돈다. 광장에서 못다 한 이야기들이 오래된 골목에서 꽃으로 피어있다. 옛날보다 오늘에 더 근접한 이야기들이다. 기념품 가게를 만나면 신트라만의 작은 기념품 하나를 산다. 그날은 북적였던 골목 입구 레스토랑의 야외 탁자, 나이든 서양 여행객이 큰 접시에 그득 든 음식을 천천히 먹던 그 탁자다. 거기 앉아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저무는 신트라 거리를 스케치한다. 그때처럼 건너편 왕궁 앞 광장에선 밤 굽는 검은 피부의 아저씨가 연기를 피우고, 따가닥 따가닥 박자를 흘리며 마차 한 대 지나간다.
날이 밝기 전 눈을 뜨리라. 다시 무어인의 성에 오르리라. 솟는 해를 보리라. 이베리아 반도를 살찌우는 그 밝고 은혜로운 해돋이를 보리라. 고개를 돌려 저 멀리 아득한 대서양을 한눈에 담으리라. 그 찬란한 해와 바다의 조우, 소리 없는 대자연의 아우성을 마음으로 들으며, 그로 몸을 씻고 배 불리리라. 세상으로 난 길, 또 하나의 내 길도 거기 함께 있음을 크게 환호하리라.
덧붙이는 글 | 여행을 위해 ‘길동무’란 이름으로 뭉친 인도네시아에 사는 한국인 다섯 부부의 스페인 포르투갈 여행 이야기입니다.
이 글은 인도네시아 한인 경제신문 사이트 PAGI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