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폭력 집회? 게다가 집회에 쓴 스티커까지 다 치우고 가? 우리 국민 노예 근성.""폭력 집회는 안 된다. 또 이렇게 망칠 순 없어!"'국정농단 공범' 박근혜 대통령의 막무가내식 태도와 무너져가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걱정하는 사람들 수십만 명이 매주 토요일마다 집회를 열고 있다. 동시에 집회 현장에서의 '비폭력 시위'와 관련한 논쟁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에 기자는 유럽에 거주하는 두 사람을 초대해 집회·시위에 관련한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한 명은 파리에서 기자와 같은 대학 석사과정을 준비하고 있는 이탈리아 유학생 '노에미 떼싸우로'라는 청년이고, 또 다른 한 명은 프랑스 파리서 10년 넘게 살고 있는 한 한국 교민이다.
이 두 사람으로부터 이탈리아·프랑스의 집회 문화와 이를 둘러싼 여론들 그리고 이들이 바라본 한국의 집회 문화에 대한 의견을 들어보기로 했다. 아래는 인터뷰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질문자인 기자의 말은 파란색 글씨로, 노에미 떼싸우로씨는 편의상 N으로, 한국 교민은 P로 표기한다.
"프랑스 집회와 한국 집회의 차이점은..."-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하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 한국의 독자들과 해외 사례를 공유하고,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논쟁에 시사점을 던지고자 한다. 편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씀해주시면 될 것 같다. N : "내가 더 고맙다(웃음). 편안한 마음으로 답하겠다."
P : "원래 인터뷰에 잘 응하지 않는 편인데…(웃음). 그래도 이 주제가 재미있어 보이니 성실히 답하겠다."
- 감사하다. 그럼 첫 번째 질문을 드리겠다. 현재 한국에서는 10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민주주의 정상화와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집회를 매주 토요일마다 열고 있다. 전국적으로 10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모이는 건 한국에서는 이례적인 일이다.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는 집회가 자주 열리나? 열린다면 주로 어떤 이유로?P : "익히 알려진대로 프랑스는 집회와 파업이 잦다. 사안은 주로 노동에 관한 게 많은 것 같다. 프랑스 노동조합인 CGT가 주도해 열리는 집회들이 많다. 올해도 '엘 코므리 법'(엘 코므리 프랑스 노동부장관이 주도해서 만든 법안들을 프로젝트로 묶어 진행한 것들로, 여기에 프랑스 사회 노동시스템의 기틀이 돼왔던 주 35시간 노동 제한과 엄격한 해고 제한을 완화하는 내용들이 포함돼 있어 논란이 됐다)과 집권 여당 사회당이 이 법안을 직권상정한 것에 대해 분노한 시민들의 집회가 상당히 많았다. 그래도 집회는 주로 평화행진 형태로 이뤄졌다. 각자 하고 싶은 말을 피켓에 적는 식으로 의견을 표현한다."
N: "이탈리아에선 집회가 자주 있는 편은 아닌 것 같다. 이유야 너무 다양해서 하나를 꼬집어 말하긴 힘들 것 같다. 그래도 뭔가 인상적인 게 있다면 대학생들이 스스로 집회를 조직해 여는 일이 종종 있다는 점이다."
- 좀 더 자세히 들어보고 싶다. 그럼 프랑스나 이탈리아에서 주요한 집회들은 어떤 방식으로 열리는가. 그리고 그 추이는 어떤가. N: "일단 우리나라(이탈리아)에서 대부분의 집회는 평화적으로 열린다. 무엇보다 그 집회의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 집회 참여자 모두의 '대화'와 '소통'을 함께한다. 그러나 그런 원칙에도 불구하고 가끔씩 집회에서 폭력적 요소가 등장할 때가 있다.
그 가운데 부상자·사망자들이 나오는 등 위험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집회에 방송용 차량을 등장시켜 집회 참여자들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위험 상황을 공유하는 데 집중한다. 또한 집회의 의미에 대해 꾸준히 이야기한다.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P : "4년 전 파리 젊은이들의 중심가 중 하나인 바스티유에서 대규모 집회가 열렸는데, 이 집회가 노동절과 시기가 겹쳤다. 좌파전선(Front de gauche, 장 뤽 멜랑숑을 중심으로 한 프랑스의 급진적인 좌파정당)을 중심으로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당시 동네에 사람들이 거리에 가득 찼는데, 가족 단위 참가자가 많았다. 각계 노조들도 깃발을 들고 나섰다.
아빠들이 아이들을 어께 위에 목마를 태우고 집회에 참여하는 등 인상적인 모습을 봤다. 많은 사람들이 참가했음에도 질서 정연하게 집회가 진행됐다. 그러면서도 집회에 참여하다 지치면 빠지거나 참가자들끼리 수다도 떨고 자기들끼리 즐기는 등 무겁지 않은 분위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차량에 마이크를 설치해 선전전을 하는 조직도 있었는데 한국과 차이가 있다면 중앙 무대에서 문화제 등 공연 일정이 없었다는 점이다. 중앙 무대에선 주로 연설, 발언 등이 주를 이뤘다. 각 정당 대표들 나와 연설하고, 각 노조 대표들도 나와 이야기했다. 무엇보다 일반 시민들이 자유롭게 나와 의견을 공유하곤 했다. 집회 마지막엔 다함께 인터내셔널가를 부르거나 프랑스 국가인 '라 마르셰예즈'(민주공화국을 상징하는 의미)를 부르곤 한다.
"집회, 시민들의 고민이 오가면서 새로운 의식이 창조돼야"- 대화와 소통. 굉장히 중요한 지점들인 것 같다. 프랑스의 집회는 지금 광화문 등에서 진행되는 집회 양상이랑 크게 다른 것 같지 않다. 한국 시민들도 그만큼 많이 성숙한 걸까(웃음). 물론 프랑스 시민들이 100% 이상적이라는 것은 아니지만. 자, 이제 다른 질문을 해보겠다. 한국 SNS 등에선 서울 광화문 등지에서 열리는 집회의 방향성에 대한 격렬한 논쟁이 오가고 있다. 주로 경찰과의 충돌에 대한 이야기다. 한쪽에서는 경찰이 청와대로의 집회 행로를 막고 있으므로 충돌은 불가피하고 청와대까지 나서야 한다는 이야기를 한다. 또다른 한쪽에서는 경찰과 충돌해서 청와대까지 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이야기를 한다. 이들은 시민들의 자유발언과 문화제에 더 집중해 더 많은 시미들이 한국의 민주주의를 이야기해야 한다는 주장을 한다. 이 두 입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N : "폭력성 여부를 논하기에 앞서서 나는 먼저 집회가 서로 경청하고 시민들의 고민이 오가는 과정에서 새로운 의식(conscience)이 창조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와 관련해 효과적인 전략을 연구하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 지금의 집회 방식이 그런 데에 더 가까울 수 있다면 그 방식에서 조금 더 고민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하나 우려되는 건 경찰 장벽에 굳이 가까이 다가서야 할 필요성이 있느냐는 것이다. 아까 말했듯 집회에선 위험한 상황이 일어날 수 있다. 만약 집회 도중 사상자나 부상자가 발생한다면? 이를 어떻게 우리가 책임질 수 있을까.
정부의 잘못으로 돌리는 과정에서 뭔가 놓치는 것이 있는 건 아닐까? 정부를 두둔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특히 한국의 사례는 민주주의 붕괴에 저항하기 위해 집회에 나서지 않았나. 그러려면 집회에서 그런 모습을 넘어서려는 노력과 실천 등이 필요하다. 그런데 무력 충돌 등에 의한 피해를 감수하면서 나선다는 게 뭔가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구도는 뭔가 위험하다. 나는 대체적인 경우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고 본다."
P : "나도 N과 생각이 비슷하다. 우선 난 비폭력으로 보다 많은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폭력적 요소가 있을 경우, 언론이라는 필터에 의해 현장이 왜곡돼 되레 역효과가 발생, 더 안 좋은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물론 저항이 누그러지고 그 프레임에 길들여지는 것에 대해서도 경계해야 한다. 시민의 저항권은 여러 가지로 이야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상황 속에서 무엇이 더 많은 성과를 만들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시국이 어떻게 변할지 불안할 것 같다. 일부 과격시위가 일어나면 집회의 이유가 아닌 '폭력적 상황'에 초점이 맞춰질 것이다. 그리고 여론이 휘둘리게 될 것이다. 우리는 그럴 수록 더 건강하게 집회를 이끄는 게 필요하다. 건강한 집회 문화를 정착시켜 시민들 스스로가 마타도어가 틀렸음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여기엔 한국 언론의 잘못이 크다.
프랑스 역시 그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뭘 했는지, 어떤 충돌이 있었는지도 이야기하지만, 이유나 맥락 등의 팩트가 부재했던 적이 없다. 한국은 폭력 하나로 모든 걸 무용지물로 만들지 않나. 그리고 이에 모두가 동화되는 게 현실이다.
그러니 수구보수 언론의 이런 프레임으로부터 어떻게 하면 영리하게 이길 수 있을까에 집중해야 한다. 그리고 언론이 보다 더 맥락을 잘 전달할 수 있게 만들지, 그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 더군다나 이번엔 박근혜 대통령의 불통으로 집회가 장기화 할 전망이니 조금 더 천천히 호흡을 이어나갈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의경도 명령에 따라 왔을 뿐... 스티거 붙이는 것도, 떼는 것도 좋다"
- 두 분 모두 다르면서 비슷한 관점의 이야기를 해주셨다.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해보자. 지난 19일 광화문 집회 때 사용됐던 꽃 스티커가 경찰차에 가득 붙었는데, 집회 참가자들이 이를 뗐다. 의경들을 배려하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이 일 이후로 집회 때 '경찰도 국민이니 서로가 서로에게 피해주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러므로 여러 가지 저항 방식에 대한 고민을 하자'는 여론이 등장했다. 어떻게 생각하나. P : "나는 전적으로 그분들의 마음에 동감했었다(웃음). 나는 경찰이 정확하게 우리의 적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공권력의 입장에 서 있으나 그건 개인의 의사가 아니지 않나. 그들도 명령 때문에 온 것이다.
물론 험한 짓을 할 수밖에 없는 경찰의 권위적인 시스템은 정말 문제지만. 고 백남기 농민의 사례와 같은 경찰의 과잉진압은 당연히 처벌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경찰들까지 우리가 두둔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발패를 든 의경들에게까지 다짜고짜 반감을 가질 이유는 없는 것 같다. 의경들도 그런 집회 참가자들에 의해 마음을 달리 먹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과정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가 돼 시민의 연대로 정권을 이룰 수 있다고 본다.
개인적으로 그런 예쁜 스티커를 붙이는 것도, 떼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나중에 청소를 해야 하니 서로 배려한다고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상대의 태도와는 무관하게 우리는 또 우리 나름대로 선의를 말할 수 있다고 본다. 주먹을 휘두르는 것만 저항이 아니지 않나.
'왜 우리가 경찰이 만들어준 선 안에서 놀아야 하느냐, 뚫고 나가야 하지 않겠느냐'라는 질문이 있다. 청와대에 가면 뭐가 있나. 할 수 있는 게 무엇인가. 일정 정도의 '상징'을 갈망하는 건데 그건 과거의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시대가 변했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 노래 부르고, 즐기면서, 의견을 말하는 것은 더 큰 변화와 더 좋은 문화를 생산할 수 있다. 한국 시민들은 멋지게 잘하고 있다."
- N의 생각은 어떤가. N : "민주주의는 각각의 시민들의 참여와 생각의 공유를 내포한다. 우리가 진짜로 민주주의를 갈망한다면 그에 맞게 민주적인 방식으로 집회를 하면 되지 않을까. 나도 P의 의견과 비슷하다."
- 이렇게 용기 내 일어선 한국의 시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N : "사실 나는 한국인이 아니고 한국어를 몰라 세세한 내용을 알지는 못한다. 그러나 나는 언론 보도 등을 통해 한국인 스스로가 민주주의 사회 아래서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일어났다고 들었다. 사회 정의를 위해 일어난 한국인들을 환영하면서 보다 현명하고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서 좋은 변화를 이끌어내길 바란다."
P : "쉽게 지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잘하시리라 믿는다. 난 '누가 먼저 지치는가'의 싸움이라고 본다. 말문이 막힐 정도로 황당한 일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시민들은 풍자와 해학으로 응수한다. 나는 여기서 희망의 힘을 느낀다. 이 정국을 이겨내려는 하나의 저항 방식으로 본다는 이야기다. 힘든 상황을 함께, 서로 보듬어나가면서 여유롭게 싸웠으면 좋겠다. 나 역시 한국 밖에서나마 열심히 싸우겠다."
N과 P와의 인터뷰를 통해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살아가고 있는 시민들의 생각을 들을 수 있었다. 우리나라와 같으면서도 다른 모습들을 포착했다. 하지만, 단 하나 공통적인 것은 한국의 시민들고, 프랑스의 시민들도, 이탈리아의 시민들도 불의에 저항할 줄 아는 뜨거운 심장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점, 그리고 더 나은 삶을 꿈꾸는 사람들이라는 점일 것이다.
이 인터뷰가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논쟁에 시사하는 바가 있길 바란다. 나는 우리에게 중요한 건 더 많은 시민들이 발언권을 갖고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이 모이고 모여 다채로운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길 바란다.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고 이해할 수록 공동체는 더 성숙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