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화지가 아닌 밤하늘에 그림을 그리는 일, 바로 불꽃연출가가 하는 일이다. 종이에 그린 그림은 그대로 보존되지만, 하늘에 그린 그림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만다. 짧은 순간에만 보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뇌리에 더 깊이 각인된다. 국내에 총 20여 명의 소수 불꽃연출가가 활동하고 있기에 이들을 이색 직업인이라고 부른다.
지금 만나볼 불꽃연출가 윤현근씨(35)는 우연히 지인의 소개로 불꽃연출을 접하게 된다. 그 세계에 매료되어 국내의 유명한 불꽃연출가를 찾아다니며 기술과 노하우를 쌓았다. 밤샘근무도 잦고, 아이디어 싸움에 힘들 법도 하지만 그는 자신이 준비한 불꽃쇼를 보며 기뻐하는 사람들을 볼 때 힘들었던 기억이 머리에서 깨끗하게 지워진다고 한다. 지난 10월 24일, 이메일을 통해 윤현근씨를 인터뷰했다. 그가 소개하는 화려한 불꽃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 불꽃연출가는 생소한 직업인데요, 어떤 일을 하는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불꽃연출가는 축제의 하이라이트인 불꽃쇼를 계획하고 설계하며, 모든 과정을 총괄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처음 불꽃쇼를 의뢰받으면, 현장 답사를 통해 관객들이 안전하게 관람할 수 있고 연출효과도 극대화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를 선정합니다.
관할 경찰서에 화약류 사용에 대한 허가를 받습니다. 본격적으로 축제의 테마에 어울리는 음악을 선정하여 믹싱(mixing) 작업을 거쳐 음원을 만들고, 그 음원에 어울리는 불꽃의 종류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컴퓨터 프로그래밍합니다. 이렇게 작업을 마치면 행사 당일 화약류 저장소에서 허가받은 화약을 양수받아 현장으로 이동해 축제를 준비합니다."
- 불꽃쇼는 어떻게 진행하는 건가요? "불꽃 연출용 화약(아래 꽃불류)에는 불꽃이 터지는 모양, 순서, 색깔, 터지는 시간 등이 적혀 있습니다. 이런 수많은 종류의 꽃불류가 재료가 되며 밤하늘이 캔버스가 되는 것입니다. 그림은 지워지지 않지만, 불꽃은 수초 이내에 화려하게 타기 때문에 음악과 어울리는 화약을 원하는 시간에 터지도록 배치하여야 합니다."
- 불꽃놀이는 하늘에서는 예술이지만, 땅에서는 폭탄이 될 수가 있습니다. 늘 안전에 신경을 써야 할 것 같은데, 일촉즉발의 순간이 있었나요? "수년 전 부산에서 바지선에서 불꽃 연출을 한 적이 있었는데요, 제조 당시에 많은 양의 습기를 먹은 제품이 수입되어 고도가 낮게 터진 일이 있었습니다. 바다 위에서 했기 때문에 별다른 피해는 없었으나 바지선 위에 있던 저와 스텝들은 옷에 구멍이 나고 머리카락 일부가 타기도 했습니다. 꽃불류 특성상 사전에 불량 유무를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언제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야 합니다."
-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인가요? "아무래도 안전과 효과 그 자체인 것 같습니다. 고객들께서는 무엇보다 최대한 가까운 곳에서 터지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지만, 저희는 안전을 첫 번째로 두고 가장 효과적인 연출을 기획해야 합니다. 모든 행사마다 각기 다른 현장 조건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가장 안전하면서 멋진 효과를 줄 수 있는 장소를 선정해야 하고 그에 따른 연출 방법도 달리해야 합니다. 이러한 모든 일련의 작업들이 불꽃연출가의 능력입니다."
- 언제 가장 보람되나요?"밖에서 보기엔 이 직업이 멋지게 보일 수 있지만, 5분간의 불꽃쇼를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짧게는 2주, 길게는 한 달의 시간 동안 준비를 합니다. 때로는 덥고, 춥고, 체력의 한계에 다다르며, 위험한 상황에 노출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직접 연출한 불꽃이 하늘 위에서 멋지게 터지며 관객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볼 때 그 짜릿함은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 '불꽃연출가'를 하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요?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교육기관은 현재 우리나라에 없습니다. 하지만 기본으로 갖춰야 할 자격증인 화약류 관리기사, 산업기사, 화약류 취급기능사 등은 산업인력공단에서 취득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자격증은 말 그대로 기본입니다. 자격증 취득 후 불꽃연출을 하려면 최소 3년 이상의 현장 경험이 필수적인데요, 안전하면서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설치 및 발사 기술 등 경험을 통해 축적해야만 불꽃연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 앞으로 윤현근씨에게 남겨진 과제는 무엇인가요? "불꽃으로 할 수 있는 좋은 일이 무엇이 있을까 늘 생각해 봤는데요, 몸이 불편해서 축제에 오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오직 아이들만을 위한 불꽃쇼를 전국을 돌며 해보려고 합니다. 한번 불꽃쇼를 진행하려면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부담되지만, 내년부터 하려고 계획 중에 있습니다. 불꽃으로 꿈과 희망을 줄 수는 없겠지만, 잠시나마 즐거움을 느끼게 할 수 있다면 그것 하나만으로도 저는 기쁠 것 같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월간 <세상사는 아름다운 이야기> 12월호에 게재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