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달 전, 처음 신형 그랜저를 봤을 때 말 그대로 감동을 받았다"
피터 슈라이어 현대차 디자인부문 사장의 말이다. 현대기아차 그룹에서 디자인을 총괄하고 있는 그는 "(현대차에 와서) 제품의 처음부터 끝까지 참여한 첫 번째 프로젝트"라고도 했다. 그의 옆에 서 있던 루크 동커볼케 디자인부문 전무 역시 "그랜저의 본질을 혁신적으로 계승시켰다"며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22일 오전 경기도 김포항공산업단지의 항공기 격납고에 마련된 특설무대. 슈라이어 사장과 동커볼케 전무, 그리고 이상엽 상무 등 이들 셋은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이 상무는 고급차 브랜드인 밴틀리에서 디자인을 도맡았고, 지난 6월부터 현대차에서 일하고 있다. 이들은 현대기아차 그룹이 최근 몇 년 새 디자인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외부에서 영입한 사람들이다.
신형 그랜저를 사이에 두고, 이들 셋은 새로운 현대차 디자인 철학을 설명해 나갔다. 슈라이어 사장은 "그랜저는 한국차의 랜드마크"라며 "카리스마가 넘치는 웅장함, 우아함과 역동성을 그대로 살려냈다"고 말했다. 동커볼케 전무도 "5세대에 걸친 그랜저의 성공사례를 최대한 살리면서, 브랜드의 정체성을 살리기 위한 새로운 시도를 했다"고 전했다.
커지고, 단단해지고, 완전히 달라진 그랜저... 피터 슈라이어 "첫눈에 감동"이들이 꼽은 것은 크게 세 가지. 하나는 자동차의 얼굴이라고 불리는 앞쪽 그릴 부분이다. 그동안 현대차가 추구해온 헥사고날 방식을 버리고 캐스캐이딩 모양의 그릴을 적용했다. 이상엽 상무는 "용광로에서 녹아내리는 듯한 쇳물의 웅장한 모습과 우리 전통 도자기의 곡선을 살렸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나올 현대차에 적용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두 번째는 차의 옆모습이다. 동커볼케 전무는 "현대차에서만 볼 수 있는 고유한 모습"이라며 "앞쪽 문에서 뒤쪽 트렁크까지 자연스럽게 넘어가면서 역동적이고 독창적인 라인을 그리고 있다"고 말했다. 슈라이어 사장도 "미래지향적인 모습"이라고 거들었다.
세 번째는 차의 뒷모습이다. 슈라이어 사장은 "뒤쪽의 좌우를 가로지르는 테일 램프는 그랜저의 새 모습을 상징한다"면서 "매우 독창적인 라인과 함께 과거 전통을 새롭게 해석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엽 상무는 신형 그랜저를 가리키며, "자동차 디자인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으면 한다"는 바램을 내비쳤다.
실내 디자인도 5세대에 비해 크게 달라졌다. 운전자 입장에선 훨씬 더 편하게 차를 다룰 수 있도록 했다. 넓은 시야를 확보했고, 각종 멀티미디어 화면과 조작 버튼 등은 훨씬 더 편하게 다룰 수 있게 했다. 내부 마감재도 고급스러웠다. 이 상무는 "실내 디자인은 가장 심플하고, 여백의 미를 강조한 것이 특징"이라며 "무엇보다 인간공학적인 설계에 초점을 맞췄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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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운전석에 앉아보니, 스티어링 휠(핸들)의 느낌부터 사뭇 달랐다. 예전보다 훨씬 고급스러운 감촉이었고, 내부 디스플레이 배치나 각종 조작 버튼의 배열 등은 깔끔했고, 조작도 쉬웠다.
디자인뿐 아니라 차체 강성도 크게 높아졌고, 각종 안전시스템도 대거 들어갔다. 정락 현대차 총괄피엠담당 부사장은 "고강성 차체를 기반으로 예전보다 평균 강도를 34%나 끌어올렸다"면서 "차체 구조 간 결합력을 높이는 구조용 접착제를 9.8배 확대하는 등 동급 최고수준의 차체 강성을 확보했다"고 소개했다.
현대차는 신형 그랜저에 지능형 안전기술인 '현대 스마트 센스"를 처음으로 적용했다. 운전자뿐 아니라 다른 차량과 보행자의 안전까지 감안한 기술이다. 최진호 상무는 "글로벌 경쟁 회사들이 준대형 차량에 적용하는 안전기술보다 한 단계 더 진일보한 기술을 장착했다"고 말했다.
이날 신형 그랜저 발표회장에는 현대차 고위급 임원진이 총출동했다. 그만큼 그랜저에 거는 기대가 크다. 양웅철 현대차 부회장은 "당대 최고의 기술과 열정을 쏟아부었다"면서 "30년 전통의 브랜드 전통을 계승하면서 새로운 혁신을 통해 국내뿐 아니라 세계 시장에서도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광국 현대차 국내영업본부장(부사장)은 "경기 하향 등 내수시장이 좋지 않음에도 지난 2일부터 사전계약 대수가 2만7491대였다"면서 "현대차 창사 이래 가장 많은 (사전) 계약 대수"라고 말했다. 그는 "신형 그랜저가 국내 준대형 시장을 이끌어 갈 것"이라며 "내년에만 국내서 10만대 판매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날 공개된 그랜저의 사양은 가솔린 2.4리터급과 3.0리터급, 디젤 2.2리터급 모델이다. 값은 가솔린 2.4리터가 3055만 원부터, 3.0리터 모델은 3550만원부터 시작한다. 디젤 2.2리터 모델은 3355만 원부터다.
실적 부진에 시달려온 현대차가 신형 그랜저로 위기를 탈출할 수 있을까. 대내외 시장 환경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소비자들의 평가가 사뭇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