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부터 진검승부다. 박근혜-최순실게이트에 대한 검찰 수사가 '삼성'을 정조준하고 있다.
지난 20일 검찰이 법원에 낸 최씨 등에 대한 공소장엔 삼성과 관련된 부분은 언급조차 없었다. 미르재단 등 모금과정에서 가장 많은 돈을 내고, 최순실씨 일가에 수십억 원에 달하는 돈을 직접 지원한 곳이 삼성이다. '삼성-최순실-박근혜'간의 비밀스러운 거래와 이를 둘러싼 온갖 특혜 의혹까지 불거져 왔다.
그럼에도 검찰의 중간수사 발표에서 삼성은 빠졌다. 물론 검찰은 '수사중'이라고 했다. 이미 삼성전자를 비롯해 제일기획, 그룹 미래전략실 등을 압수수색했고, 이재용 부회장을 비롯해 주요 임원진까지 소환해 조사했다. 하지만 공소장에선 삼성 관련 범죄 사실을 찾아볼수 없었다. 검찰 수사 결과로 박 대통령이 이번 사건의 '주범'으로 떠올랐지만, 한편에선 '재벌 봐주기'라는 비판도 나왔다.
특히 검찰이 최씨 등에 대해 뇌물죄 혐의를 적용하지 않으면서, 전경련과 주요 대기업 등에 대해선 법적 책임을 묻지 못했다. 게다가 박 대통령과 최씨쪽에선 검찰 수사에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여기에 검찰이 주요 재벌 총수들을 주말 촛불집회를 틈타 비공개 조사하자, 전형적인 구색맞추기 수사라는 비판까지 이어졌다.
최씨 일가 직접 지원한 유일한 재벌은 삼성, 51억 대가성 입증이 관건
이 때문에 23일 검찰의 뒤늦은 삼성 수사는 재벌과 권력간의 불법적인 유착 관계를 밝히는 신호탄이 될 가능성이 크다. 사실상 검찰이 박근혜 대통령과 최씨, 그리고 재벌에 뇌물죄를 적용하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이미 앞선 수사를 통해 상당한 진술과 정황증거를 확보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삼성 수사의 핵심은 '대가성'을 입증하는 것이다. 미르재단 등에 204억 원을 내고, 최씨 일가에 51억 원을 직접 지원한 과정에서 공직자를 상대로 한 부정한 청탁이 있었는지, 이를 통해 삼성이 어떤 이익을 얻었는지를 밝혀내는 것이다. 이것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삼성의 자금 출연은 단순히 자발적인 선의가 아니라 '대가를 바라고 건네준 뇌물'로 변할 수 있다.
삼성은 지난해 10월 미르재단에 125억 원, 올해 1월 케이스포츠재단에 79억 원을 냈다. 재벌 기업들 가운데 가장 많은 204억 원을 최씨 일가 소유의 재단에 기부했다. 이뿐만 아니다. 삼성전자는 작년 9~10월께 최씨 소유의 독일 회사인 코레스포츠(현 비뎃 스포츠)에 280만 유로(약 35억 원)를 보냈고, 매달 수십만 유로를 최씨 일가의 생활비로 송금한 의혹을 받고 있다. 또 최씨의 조카인 장시호씨의 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도 16억 원을 지원한 사실이 드러났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삼성이 미르재단 등에 돈을 낸 것과 별도로 최씨 일가에 35억 원을 직접 지원했고, 그 전후로 수백억 원을 지원하기로 한 계획까지 나왔다"면서 "당시는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이슈가 최대 쟁점이었던 때"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이재용 삼성부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가 걸려 있던 삼성물산 합병에 대해 세계 유수의 의결권 자문기구들이 합병 반대 권고를 냈었다"면서 "합병의 키를 쥐고 있던 국민연금은 이런 권고를 무시하고, 정상적인 절차도 거치지 않은 채 찬성표를 던졌다"고 소개했다.
결국 국민연금의 합병 찬성에 대한 대가로 삼성이 미르재단 등과 최씨 일가에 수백억 원을 지원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규명하는 것이 검찰 수사의 핵심이다. 검찰이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를 비롯해 삼성 2인자 최지성 부회장 등 미래전략실을 추가로 압수수색한 것도 이 때문이다.
국민연금 수사에서 반드시 들여다봐야 할 네 가지특히 검찰의 국민연금 수사에서 들여다봐야 할 것은 크게 네 가지다. 우선 삼성물산 합병 찬성을 위해 청와대와 문형표 당시 복지부장관이 홍완선 기금운용본부장 등 국민연금 관계자에게 압력을 행사한 사실이 있는지를 밝혀내야 한다.
이미 이같은 압력설을 뒷받침하는 증언도 나왔다. 최광 당시 국민연금관리공단 이사장은 <연합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합병 찬성의견을 주도한 홍완선 기금운용본부장을 경질하려 했지만, 정부 고위관계자의 압력이 들어왔다"고 말했다. 또 문형표 장관이 '청와대의 뜻'이라며 국민연금 전문위원 등에게 합병 찬성을 종용했다는 증언도 있었다.
둘째는 이런 압력에 따라 기금운용본부가 의결권 행사 전문위원회에 판단을 넘기는 등의 정상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홍 본부장의 주도로 투자위원회에서 단독으로 결정했는지를 구체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이를 통해 결국 국민연금이 삼성물산 합병 안건 통과에 적극 협력했는지를 밝혀내야 한다. 물론 국민연금쪽에선 전문위를 거치지 않고 투자위원회를 통해 결정한 것도 적법한 절차라고 해명하고 있다.
셋째는 삼성이 국민연금 지원 대가로 정부와 최씨 일가 등에 거액의 자금을 냈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다. 특히 삼성의 지원이 그룹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진행됐는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최고위층의 지시 하에 이뤄졌는지도 밝혀져야 한다.
삼성전자와 크게 관련도 없는 승마사업에 사장급 인사가 직접 개입해 최씨 지원을 이끌었고, 게다가 그 지원이 정유라씨라는 특정 개인에게 이뤄진 점, 금액도 수십억 원에 달하는 점을 봤을 때 그룹 최고위층의 지시 없이는 집행되기 어렵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삼성 쪽에선 여전히 승마협회 차원에서 지원했을 뿐이며, 최씨 일가의 일탈 역시 뒤늦게 알고 지원을 중단했다는 입장이다.
마지막으로 이같은 삼성과 최순실 사이의 거래에 박근혜 대통령이 어느 정도 개입했는지도 중요하다. 검찰 수사를 통해 삼성과 청와대, 최순실 등과의 연결고리가 드러나고, '대가성'이 입증되면 이번 사건은 전혀 다른 차원으로 번질 수 있다. 박 대통령과 삼성쪽에 뇌물죄(제3자 뇌물수수) 혐의가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성진 변호사(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소장)는 "이번 사건은 국가권력을 사적 소유물처럼 취급한 것으로 시작해서 뇌물을 통해 국가권력의 공공성을 팔아치운 행위로 귀결되고 있다"면서 "최고 권력과 금력의 유착을 통한 국가 권력의 매매를 검찰이나 특검에서 철저히 밝혀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