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때 연평도에는 포탄 세 발이 떨어졌고, 이로 인해 군인 한 명이 사망하고 반시국씨네 소 한 마리가 죽었다'고 향토지 '연평도'에 기록돼있다. 연평도에서 한국전쟁은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그리고 2010년 11월 23일 북한이 해안포로 대연평도를 포격했을 때, 해병대 2명이 전사하고 민간인 2명이 사망했다. 또, 해병대 16명이 중경상을 입고 민간인 46명이 부상당했다. 연평도는 이때가 전쟁이었다.
한국전쟁 때도 총성이 없었던 평화로운 섬이 지금은 남북 간 군사대치로 가장 위험한 곳이 됐다. 한국전쟁 정전협상을 앞두고 유엔사령관이 남북 간 군사적 충돌을 막기 위해 그어놓은 북방한계선(NLL)은 이제 분쟁을 유발하는 선이 돼버렸다.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NLL 일대 서해5도는 한반도 최대 화약고가 돼버렸다. 국제규범에 의해 상선은 통과할 수 있었는데 그마저 전면 봉쇄됐다. 남북 간 핫라인마저 사라져 일촉즉발 상황이다. 그 사이 중국어선은 NLL을 타고 서해5도 수역 어장을 싹쓸이하고 있다.
23일 연평도 포격 6주기를 맞아 국회에서 '분쟁의 바다'를 '평화의 바다로' 만들어야 한다는 취지로 '서해5도 생존과 평화를 위한 인천시민대책위원회'와 인천평화복지연대,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은 공동으로 주최하고, '중국어선 불법조업 서해5도 대책위원회'와 국민의당 장정숙 국회의원, 국민의당 인천시당이 공동으로 주관한 '생존과 평화를 위한 10대 과제' 토론회가 열렸다.
서해5도에 10년간 9109억 지원? "집행율 당초 계획의 절반도 안 돼"
옹진군에 따르면, 2010년부터 올해까지 '서해5도 종합발전계획'으로 사업 78개에 총 2990억 원이 투입됐다. 국비 2291억 원, 지방비 630억 원, 민간자본 69억 원이다.
2010년 연평도 포격사건 이후 정부는 '서해5도 종합발전계획'을 발표하고, 10년간 총 9109억 원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올해 기준 지원한 사업비는 총 2990억 원에 불과, 집행율이 당초 계획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예산이 가장 많이 투입된 것은 주민대피시설 현대화 사업이다. 대피시설 42곳을 신축하면서 530억 원을 집행했다. 뒤를 이어 30년 이상 된 노후주택 개보수 사업(734개 동, 287억원), 정주생활지원금(1인당 월 5만 원, 총 209억 원) 등의 순으로 집행했다.
대피시설 신축에 가장 많은 돈을 썼고, 주민들의 기대치가 높은 노후주택 개보수 사업은 예산이 감소한 데다 대기자가 많다. 주민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것은 1인당 월 5만 원씩 주는 정주생활지원금 지급이다.
서해5도가 남북 접경지역이고 남북과 중국이 대치하고 있는 특수한 곳이라 '서해5도 지원특별법'을 만들었고 여기서 '서해5도 종합발전계획'이 나왔지만, 주민들은 불만이 많다. '이름만 지원특별법이고 종합발전계획'이라는 지적이다.
중국어선 불법조업에 따른 피해 보상과 대책 마련, 섬 접근성 강화를 위한 여객선 투입, 물과 전기 자립섬 구축, 수산물 보관과 운송 지원, 조업면적과 조업시간 규제 완화 등, 주민들의 삶과 직결한 사항을 수년째 요구하고 있지만 답보상태이기 때문이다.
이에 '서해5도 인천시민대책위'는 서해5도 생존권 보장과 평화를 위한 10대 과제를 선정하고, 각 과제를 해당 정부부처에 전달했다.
10대 과제는 ▲ 유사시 주민 피란 매뉴얼 수립 ▲ 해양경찰청(아래 해경) 부활과 전담 해양경비안전서 신설 ▲ 군사훈련과 해상사격에 따른 조업 손실 보상 ▲ 피폭 등에 안전한 안보에너지 자립섬 구축 ▲ 조업 면적과 시간 규제 완화 ▲ 어민소득 안정을 위한 수산업보장보험 시행 ▲ 안보와 정주환경 제고를 위한 연평도 신항 조기 건설 ▲ 한·중 해양경계 획정과 한·중 어업협정 개정 ▲ NLL 남북 해상파시 등, 남북 수산물 경협 추진 ▲ 특별법 개정과 종합발전계획 재수립이다.
"중·고교 지리부도에 서해5도 영해 표시 없어"
조현근 '서해5도 인천시민대책위' 공동간사는 "연평도 포격 때 전기가 나가니 지하수가 가동이 안 돼 불을 못 끄고 발만 동동 굴렀다. 포격 때 집집마다 있는 내연발전용 경유통과 가스통은 화약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서해5도에 에너지 자립섬을 구축하자고 산업통상자원부에 제안했는데, 토론회조차 불참했다"고 지적했다.
이어서 "안보가 중요하다면서 예산문제로 연평도 신항 건설을 미루고 있다. 해경 부활과 서해5도 전담 해양경비안전서 신설도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다. 경북 울진에 중국어선 불법조업을 막으려 해양경비안전서를 신설하면서, 전쟁터인 서해5도에 (해양경비안전서가)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비판했다.
조현근 '서해5도 인천시민대책위' 공동간사는 "연평도 포격 때 전기가 나가니 지하수가 가동이 안 돼 불을 못 끄고 발만 동동 굴렀다. 포격 때 집집마다 있는 내연발전용 경유통과 가스통은 화약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서해5도에 에너지 자립섬을 구축하자고 산업통상자원부에 제안했는데, 토론회조차 불참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중국이 지난 8월 아세안과 '남중국해 우발적 충돌 방지 행동강령(CUES)'을 체결한 것처럼, 남북도 서해5도에 이 행동강령을 채택해 우발적 충돌과 국지전을 예방해야한다"고 한 뒤 "국민들에게 NLL 이남은 모두 조업구역인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연평도 서측에서 백령도까지는 조업금지구역이다. 조업면적을 확대하고 조업시간을 연장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조 간사는 아울러 "농업의 경우 재해 등에 따른 농업수입보장보험이 있다. 어민 소득안정을 위한 수산업수입보장보험을 해양수산부(아래 해수부)가 적극 검토해줄 것을 요청한다"고 한 뒤 "나아가 한·중 어업협정을 꼭 개정해야한다. 외교부는 영해라고 하지만, '영해 및 접속수역법'상 영해는 옹진군 덕적군도 소령도에서 끝난다. 심지어 중학교 사회과부도와 고등학교 지리부도에 서해5도 일대는 영해 표시가 안 돼 있다"고 덧붙였다.
"중국어선 방지시설 우리한테 설치, 우린 어디서 조업해?"
장태현 백령도 선주협회장은 "오늘 2시 토론회인데 기상이 안 좋아 그제 나왔다. 인천에서 3박하고 내일 들어간다. 백령도(소청·대청도 포함)에 아침배가 없으니 뭍에 나가면 기본 2박 3일이고, 기상이 안 좋으면 3~4박이다. 개선이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이어서 "해수부가 중국어선 저인망 싹쓸이에 대비해 인공어초를 설치한다. 인공어초는 인공어초일 뿐이지, 그게 저인망 방지용은 아니다. 게다가 가격도 비싸다. 드넓은 바다에 인공어초 몇 개 넣어봐야 소용없다. 1억 원짜리 인공어초 1개로 방지시설 10개를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배복봉 대청도 어민회장은 "중국어선 저인망 방지용인데 우리 어민들이 조업하는 곳에 설치한다. 조업구역은 넓혀주지 않으면서 말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디 가서 조업하라는 거냐? 방지시설을 꼭 중국어선이 오는 길목에 설치해 달라"고 주문했다.
그는 이어서 "군부대도 사격훈련 전에 미리 알려 달라. 한창 조업 중인데 갑자기 사격한다고 한두 시간 만에 (섬으로) 들어오라고 하면, 기름 값만 버린다. 낭패다. 아울러 사격을 하더라도 어민들이 조업하기에 날씨가 좋은 날이 아니라, 조업하기 어려운 날을 택해서 하고, 군사훈련에 따른 조업손실도 보전해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태환 연평도 어촌계장은 "소연평도에 60억 원 들여 새 부두를 만들었지만, 간조 시 여객선이 접안할 수 없다. 부두 건설 당시 주민의견 수렴 없이 밀어붙였기 때문이다. 연평도 신항 계획도 마찬가지다. 저대로 건설하면 항내에서 선박이 회전할 수 있는 각이 안 나온다. 수정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최근 군사시설 방호벽 공사 때 나무 수천그루를 무단 벌목했다. 국방부 산이 아니라, 연평도 산림조합원 370명의 산이다. 그 누구도 벌목에 동의한 적 없다. 방호벽 공사 후 당연히 복구해야할 것 아닌가? 아울러 주민설명회 때는 지하공사 한다고 하더니, 버젓이 지상으로 올라왔다. 연평도 주민 알기를 이렇게 우습게 안다"고 지적한 뒤, "중국어선 불법조업 피해를 보상해달라고 했는데 여태 답이 없다. 그래서 NLL에 바지선을 띄워 남북 수산물 해상파시라도 열게 해달라고 했는데도 답이 없다"고 덧붙였다.
"지도에 기선 없어도 영해... 중국과 해양경계 협의 중"
'서해5도 인천시민대책위'가 정부에 요청한 10대 과제에 대해 정부부처 관계자들은 원론적인 수준에서 검토하겠다는 답변을 했다.
우선 임영훈 해수부 지도교섭과장은 "수입수산물 증가에 따른 우리 수산물 가격하락에 대비해 그 차익을 보전할 수 있는 보험을 연구용역 중이다. 요청한 수산물수입보장보험은 합리성과 필요성을 토대로 논의하겠다"고 답했다.
그는 또한 "연평도 신항 조기 건설은 반드시 필요하다. 해수부와 인천시, 옹진군 입장이 동일하다. 인공어초 사업의 경우 법률 조정이 필요하다. 검토하겠다"고 한 뒤 "군사훈련에 의한 조업손실은 '수산업법' 34조에 따라 제외 대상이지만, 서해5도 특수성을 고려해 '서해5도 지원특별법'을 활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장 확대 또한 필요하다고 보지만 국방부와 협의가 필요하고, 담보금(=중국어선 불법조업 벌금) 사용은 20대 국회에 관련법이 계류 중이다"라고 말했다.
최경문 국방부 북한정책과장은 "군사훈련에 따른 조업손실 보상은 해수부에서 답변했듯이 법률적 토대가 있어야한다. 조업면적 확대는 해수부에서 요청하면 군에서 의견을 내는데, 북핵 위험이 점증하는 현실에서 NLL 쪽으로 어장 확대는 불가능하지 않겠냐? 해수부에서 (어장 확대지역을) 요청하면 검토하겠다"고 덧붙였다.
황준식 외교부 국제법률과장은 서해5도 영해 논란과 한·중 어업협정 개정에 대해 "2014년 한·중 정상회담 이후 한·중 간 해양경계 획정을 위한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서해5도의 특수성 때문에 단기간에 결정내기 어렵다. 국익을 우선해 검토 중이다"라고 한 뒤 "기선을 지도에 따로 그리지 않더라도 12해리가 영해다. 지도에 기선이 없다고 지적한 것은 오해일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영해 논란에 대해 허선규 인천도서해양연구소 소장은 "'영해 및 접속수역법'에 덕적군도 소령도 앞 12해리까지만 영해로 돼있다. 12해리가 뭔지는 (어민들도) 다 안다. 외교부 설명대로 하더라도 백령도에서 12해리와 연평도에서 12해리 그 중간은 그럼 뭐냐. 영해인데 (한·중) 어업협정에 중국어선이 조업을 할 수 있게 돼있냐?"고 지적한 뒤, "국내법으로 영해를 확실히 규정하고, 이를 토대로 한·중 어업협정을 서둘러 개정해야한다"고 강조했다.
행자부, '서해5도 종합발전계획' 주민공청회 약속정부는 연평도 포격사건 이후 서해5도 주민을 위한 각종 지원 사업을 발표했다. 하지만 6년이 지나도 주민들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게 주민여론이다.
서해5도 종합발전계획은 결국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고 올해 초 수정작업을 시작해 현재 마무리 단계에 있다. 정부예산이 없어 옹진군이 수정계획을 작성할 정도로 서해5도 종합발전계획 관련 정부지원은 싸늘하다.
이날 토론회에서도 서해5도 종합발전계획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다. 행정자치부(아래 행자부)는 관계부처 1차 의견수렴을 마친 서해5도 종합발전계획(수정안)에 대해 서해5도 주민들의 불신이 팽배하자, 관계부처 2차 의견수렴 전에 '서해5도 인천시민대책위'를 포함한 서해 5도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공청회를 열겠다고 밝혔다.
박찬수 행자부 지역발전과장은 "수정계획에 대해 1차 관계부처 협의를 마치고 2차 의견수렴을 할 예정이다. 옹진군에서 작성한 계획을 토대로 부처별 사업을 수립하는데, 기획재정부가 다 해주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2차로 우선순위를 정할 계획이다"라고 한 뒤 "2차 관계부처 의견수렴 전 옹진군이 서해5도 대책위 등과 주민공청회를 열어 의견을 수렴하라고 하겠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사인천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