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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보다도 소방관을 사랑한다는 홍성아 교수. 그녀가 움직이면 주변은 금세 긍정의 에너지로 가득 채워진다. 굳었던 소방관들의 얼굴에는 어느새 미소가 스며들고 지친 마음은 따뜻한 위로를 받는다.

일반인들이 평생 한번 목격할만한 사건·사고에 매일 노출되는 소방관은 여러 가지로 만성 직업병에 시달리고 있다. 우울증, 분노조절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가 대표적이며, 불면증, 식사 거르기, 교대근무로 인한 불규칙적인 생활패턴과 가족관계의 문제도 생겨난다.

처음 소방관이 되면 선배들로부터 자주 듣는 말이 있다. "현장에서는 절대 웃으면 안 된다"는 말이다. 사람들이 아파서 고통 받고 죽어가는 치열한 전쟁터에서 농담하거나 웃는다는 것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생활이 반복되다보면 소방관의 삶도 우울해지기 마련이다. 시민들이 기대하는 '영웅'이나 '슈퍼맨'이 되기 위해서는 스스로에게 더 강해져야 한다고 되뇌며 그냥 참는 것이 일상화되어 버렸다.

하지만 소방관도 사람이다. 인내를 넘어서는 상황이 반복되다 보면 어느 순간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하는 소방관도 생긴다. 해마다 순직하는 소방관 숫자보다 자살을 선택하는 소방관의 숫자가 많다는 통계가 이를 대변해 준다.

소방관의 아픔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예방하는 일에 함께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홍성아 교수다. 지난 11월 28일, 그녀를 만나 소방관 힐링 프로젝트를 포함한 미래계획도 들어보았다.

- 처음 소방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내가 먼저 소방에 노크했다. 평소 소방관이 여러 재난현장에서 겪는 어려움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가진 재능을 통해 그들을 위로해 주고 싶은 마음에 소방관을 위한 부드럽고 재미있는 '스트레스 관리프로그램'을 소방방재청에 제안하게 됐다. 다행히 그 제안이 받아들여져 소방과 인연을 맺게 되었으며, 처음 만난 분들이 바로 2008년 발생한 경기도 이천 물류창고 화재를 진압했던 소방대원들이다."

- 소방이라는 분야가 생소해서 접근하는데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다.
"평소 소방관을 존경했지만 업무적으로 자세히 모르는 부분들이 많아 힘들었다. 그러다보니 서재에서 새벽4시까지 소방에 대해 공부하는 날도 많았다. 현장을 더 자세히 알고 싶은 마음에 안산소방서 백석소방안전센터에서 1박 2일 소방차 동승체험을 하는 기회를 갖기도 했다."

- 소방 때문에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고 하던데.
"소방을 알아가면서 두 가지 이유로 운 적이 있다. 첫 번째는 우리가 자고 있는 시간에도 출동하는 소방관에 대한 고마움 때문이었고, 또 다른 이유는 그동안 그들의 노고를 잘 몰랐다는 미안함 때문이었다."

- 젊은 소방관들 사이에서는 '소방관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이해해 주는 누나 같은 존재'로 불린다. 기분이 어떤가?
"누나라고 불러주니 젊어진 느낌이 들어서 너무 감사하다. (웃음) 사실 소방관은 나에게 힐링 같은 존재다. 소방을 만나면서부터 내 까칠한 성격이 마치 사포에 잘 연마된 것처럼 다듬어져서 오히려 소방관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 소방관이 매일같이 받는 스트레스가 어떤 문제점들을 유발한다고 보는가?
"거시적으로는 소방관의 삶의 질을 무너뜨린다고 본다. 이를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개인, 가정, 사회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지속적인 스트레스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넘어갈 수 있는 소지가 높다. 특히 교대근무로 인한 불규칙한 스케줄과 형편없는 식습관은 암을 포함한 다양한 질병을 유발시킬 수 있는 원인이 된다.

가정적인 측면에서 보면 지속적인 스트레스가 부부간의 갈등과 아동학대로 이어질 수 있으며, 불안한 가정은 소방관 안전사고를 포함해서 소방의 기초를 무너뜨리는 원인이 된다.
마지막으로 스트레스로 인한 소방력 약화는 결국 우리사회의 조직붕괴를 초래한다."         

- 스트레스를 잘 관리하기 위해서는 정책도 중요하지만 소방관 개개인의 노력도 필요할 것 같다.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은가?
"하루에 단 10분만이라도 철저히 '이기주의자'가 되라고 권해주고 싶다. 다른 누구도 아닌 소방관 자신 스스로에게만 집중하는 시간을 가지라는 의미다.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통해서 지금 내 안에 존재하는 스트레스를 간파할 수 있고, 스트레스에 대응하는 자신의 반응을 읽어낼 수 있다. 그것을 읽어낸 다음에라야 비로소 건강하게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 그동안 일선에서 수없이 많은 소방관을 상담했다고 알고 있다.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례가 있다면?
"너무 많다. 그중에서도 특히 기억에 남는 일은 2012년 일산 플라스틱 공장 화재사고에서 순직했던 고 김형성 소방관의 동료였던 화재조사관 4명을 상담했던 일이다. 동료를 잃은 사고에 대해 미처 슬퍼할 겨를도 없이 같은 내용의 사건보고와 언론 대응을 한 달 동안 반복해야 했던 그들은 다른 동료들에 비해 사건충격지수가 가장 높았던 그룹이다. '너무 괴로워 미치겠다'고 호소하는 그들과 진행했던 특별 상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소방관의 힐링을 위해서라면 전국 어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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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적으로 강의요청이 많다고 들었다. 시간이 많이 부족할 텐데.
"모두 다 소화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본업이 강사이자 상담사이기 때문에 일정만 맞으면 대부분 스케줄을 맞추려고 노력한다. 간혹 다른 기관에서 요청을 받게 되면 강사료가 맞아야 출강할 수 있는 현실적인 부분도 존재하지만, 소방이라면 강사료에 구애받지 않고 출강한다."

- 그동안 가르친 소방관 제자들이 일선에서  '동료상담지도사'로 활동하는 모습을 보면 소감이 남다를 것 같다. 또 그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소방관 동료상담지도사는 정신과 전문의, 전문 상담사로부터 체계적인 교육을 받고 자격을 취득해 동료 소방대원의 정신건강을 보살피는 사람들이다. 필자 주)
"'동료상담지도사(Peer Counselor)'로 전문성을 더욱 키우기 위해 관련 분야에서 석사공부를 하거나 사회복지사 자격취득을 위해 노력하는 등 다양한 꿈을 키워가는 소방관이 늘어가고 있다는 점은 대단히 고무적이다. 또한 자신들이 배운 소통기술을 통해 가정과 직장에서 관계가 회복됐다는 말을 들으면 큰 보람을 느낀다.

한 가지 당부하고 싶은 이야기도 있다. '동료상담지도사'는 선경험자로 자신의 경험담을 알려주고 동료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필요할 때 전문가를 연결시켜주는 멘토 역할에 충실하면 좋겠다. 간혹 자신이 해결사가 되어야 한다는 지나친 욕심으로 자괴감이나 무력감에 빠지는 경우를 볼 때 안타까움이 있다."

- 직접 요리한 음식을 들고 소방서를 방문한 적이 있다고 들었다. 일명 '달려라 홍차'라고 불리던데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주말에는 소방서 주방을 담당하는 분이 없는 곳이 많아서 라면 등 인스턴트식품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일이 종종 있다는 말에 마음이 아팠다. 소방관은 정신 관리도 중요하지만 스트레스에 대한 면역력을 높이기 위해 영양관리가 필수다. 그래서 올해 11월 9일 소방의 날을 기점으로 시간이 날 때마다 영양가 높은 식단을 직접 준비해서 소방서를 방문하고 있다."

- 예전에 '벙커드릴챌린지'에 직접 도전한 영상을 보고 소방인의 한 사람으로써 감명을 받았다. 참여하게 된 계기는?
"개인적으로 재미있고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 일반 시민들도 소방관을 위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니 힘을 내라는 취지에서 참여했다. 제자 소방관 중 한 분이 비번 날에 직접 방화복을 가지고 우리 아파트까지 찾아오셔서 아파트 단지에서 촬영했던 기억이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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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방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미국에 비해 우리나라 소방관 스트레스 관리시스템의 현실은 어떻다고 생각하는가?
"아직은 여러 가지 분야에서 개선되어야 할 부분들이 존재한다. 사회복지 영역에서 보면 스트레스의 효과적인 관리는 견고한 사회적 지지서비스를 통해서 완성될 수 있다고 본다. 신임 소방관에서부터 체계적으로 스트레스에 대한 적극적 정보를 제공해 스트레스 면역력을 높여줘야 한다.

아울러 조직의 리더인 기관장과 소방관 가족에 대한 지속적인 교육, 그리고 불필요한 신고를 하지 않도록 시민들에 대한 미디어 홍보도 필요하다. 소방조직 내에서 충분한 소통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도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다. 결국 소통이 없는 조직은 불통이 되고 고통이 수반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홍 교수의 향후 계획이나 목표를 들어보자.
"두 가지 꿈이 있다. 첫 번째는 <이야기가 있는 카페>를 운영해 보고 싶다. 생생한 꿈이 이야기를 통해 현실화되는 드라마틱한 공간으로 만들어 보고 싶다. 두 번째는 119명의 소방관에게 수제 케이크를 선물하는 일이다. 현재까지 14명의 소방관에게 케이크를 전달했다. 이런 내 소방 사랑이 주변에 전파됐는지... 최근에는 단골 커피숍에서도 소방관에게 무료로 커피를 제공하고 있다. (울컥)"

- 마지막으로 전국에 있는 소방관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린다.
"균형 잡힌 삶을 살아가라는 조언을 드리고 싶다. 결국 균형 잡힌 삶의 축은 명확한 목표 설정이고 매 순간 꿈을 확인해가면서 행복한 소방관으로 살아가셨으면 좋겠다."

홍성아 교수는 현재 국민안전처 힐링캠프 상담사, 소방관 위기상황 스트레스관리프로그램 개발과 운영 총괄책임자, 경기소방, 인천소방 등에 외래교수로 출강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