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북한의 조선노동당을 금융제재 대상으로 추가했다. 북한이 당이 국가를 지배하는 '당-국가체제'라는 점에서 사실상 북한 지도부 전체가 제재 대상이 된 것이다.
정부는 2일, 북한의 조선노동당, 국무위원회(국무위)를 비롯한 북한의 핵심기관 등 35개 단체, 김정은 조선노동당 위원장의 최측근인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과 최룡해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 김원홍 보위상을 비롯한 북한 지도부 핵심인사 등 개인 36명을 제재 대상에 포함시켰다.
이석준 국무조정실장은 이날 오전 서울 정부종합청사에서 외교부·통일부·기획재정부·해양수산부·금융위원회·법무부 등 6개 부처 관계자들이 배석한 가운데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우리 정부의 독자 대북 제재안을 발표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북한의 5차 핵실험에 대해 지난달 30일 대북 제재결의 2321호를 채택한 데 따른 후속조치격이다.
김정은은 제외... '다음 카드'로 삼은 듯북한의 핵심 인사들과 기관이 거의 망라돼, 김정은 위원장이 빠진 것이 오히려 눈에 띌 정도다. 정부는 향후 또 대북제재를 가할 경우 그를 포함시킬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 카드로 남겨놨다는 얘기다.
이번 제재 대상에는 대외건설지도국 등 해외노동자 수출과 관련한 단체도 포함됐으며, 특히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 관련 물자를 거래한 것으로 드러나 미국의 제재와 중국 당국의 수사 대상이 된 중국 단둥훙샹(鴻祥)실업발전과 마샤오훙(馬曉紅) 대표를 비롯한 훙샹 관계자 4명도 포함돼 눈길을 끌었다. 우리 정부가 북핵 문제와 관련해 중국 본토 기업과 중국인을 직접 제재 대상에 올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부는 대북 수출입 통제와 북한에 기항한 적이 있는 외국 선박의 국내 입항 조건도 강화했다. 기존에 북한에 기항한 후 '180일 이내'에 국내 입항을 하지 못하도록 한 입항불허기간을 1년으로 늘렸다.
이와 함께 북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능력 향상 저지 차원에서 잠수함 분야 감시대상품목(watch list)를 작성하고, 연간 8억불 수출 규모로 북한의 제2 외화수입원인 임가공 의류가 중국산으로 둔갑해 국내로 수입되지 않도록 수출입 통제도 강화하기로 했다.
또 국내에 거주하는 핵·미사일 관련 외국인 전문가가 방북해서 우리 국익에 저해하는 행위를 한 것으로 판단되는 경우 국내 재입국을 금지하도록 했다. 정부는 이와 관련된 문제 사안을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같은 '광범위한' 대북제재가 효과를 거두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이미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관광, 의류 임가공 등 경제적인 의미가 있는 남북간 교역은 다 끊겼기 때문이다.
이석준 국무조정실장은 "비핵화에 대한 북한의 의사가 분명하지 않은 이런 상황에서는 국제사회와 함께 제재와 압박을 할 수밖에 없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대화를 얘기하는 건 적절치 않다"고 선을 그었다.
"새 정부 운신 폭을 막아버리는 것"그러나 임을출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보수든 진보든, 새 정부는 북한과 새롭게 뭔가를 해보려고 할 것"이라면서 "사실상 북한을 봉쇄하겠다는 뜻을 가진 이번 조치는 새 정부의 운신의 폭을 완전히 완전히 막아버리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중국을 압박하려는 의도도 보이지만,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THAAD) 배치 문제 갖고 중국에 진출한 롯데 계열사들에 대해 세무조사 하는 것을 비롯해 보복하는 판에 효과를 얻을 수 있겠냐"고 지적했다.
정부의 이번 조치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휩싸인 박근혜 정부의 국내 정치용이라는 시각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외교안보전문가는 "이번 조치에서는 감정적인 분위기까지 읽혀지는데, 정당성을 상실한 정부가 이렇게 해도 되느냐"면서 "북한을 자극해서 뭔가 국면을 바꿔보려는 의도가 아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