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기얀또(가명)는 요즘 밥맛이 없다. 외국인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온 그는 내년 1월 10일이면 정확하게 3년이 된다. 결혼하고 아이도 없던 신혼 때 출국했던 수기얀또는 다른 사람들처럼 조금이라도 더 한국에 있고 싶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근로계약이 만기 되면 곧바로 귀국할 계획이다.
그런데 집에 가야 할 날짜가 다가올수록 수기얀또는 불안감을 감출 수 없다. 지난 3년 동안 이야기 한 번 제대로 한 적 없는 사장이 최근 몇 주 동안 월요일마다 사무실로 불러서 '인도네시아로 보내줄 수 없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면담이 있을 때마다 사장은 "3년만 일하고 돌아가면 너도 손해지만, 회사도 손해다. 그냥 가면 손해배상 청구한다. 1년 10개월만 더 일해라. 다른 사람들은 더 있어 달라고 해도 안 해 줬다. 그런데 너는 왜 그러냐?"며 수기얀또에게 윽박질렀다. 그 일로 수기얀또는 이주노동자쉼터에서 두 번을 상담했다.
첫 번째 상담에서 이주노동자쉼터에서는 "근로계약 연장은 사용주와 노동자 양측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자 본인이 귀국하고자 하면 전혀 문제 될 게 없다"고 분명히 말해 줬다.
"사장 말처럼 근로계약을 연장하고 싶어도 회사에서 해 주지 않아서 문제가 되는 경우는 왕왕 있다. 반면, 근로계약 만기된 이주노동자가 귀국하는 걸 막는 경우는 흔한 일이 아니다. 숙련 노동자를 바라는 회사 입장에서야 귀국을 막고 싶지만, '평안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이다'고 했다. 근로계약 연장을 강제하는 건 명백히 불법이라 회사에서는 아쉬움을 달랠 수밖에 없다. 귀국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첫 상담 후에 수기얀또는 사장에게 근로계약 연장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그러자 사장은 "너는 한국에 올 때 4년 10개월을 계약하고 온 거다. 그때까지는 절대 돌아갈 수 없다"며 귀국할 생각은 꿈도 꾸지 말라고 했다. 수기얀또는 다시 이주노동자쉼터에 상담을 의뢰했다. 이에 이주노동자쉼터에서 사장에게 연락해서 수기얀또의 뜻을 분명하게 전해 주었다. 그러자 사장은 "법을 알고 하는 소리냐!"며 노발대발하기 시작했다.
"고용허가제가 왜 있는지 알아요? 사람 구하지 못해서 인력난 겪고 있는 회사들 도와주려고 만든 제도야. 이제 뭐 좀 알고 일하겠다 싶은 사람이 귀국하겠다는데 좋아할 사장이 어디 있어. 그 친구, 더 있겠다며 벌써 계약 연장 끝냈다고. 이 사람아! 근로계약 파기하면 우리 회사는 외국인 더 못 받아. 그 손해 당신이 책임질 거야?"사장은 존대와 반말을 섞어가며 한참 소리 지르더니, 오히려 수기얀또를 설득해 줄 것을 부탁했다.
"그동안 우리가 잘해 주니까 3년을 있었던 거 아녜요. 그건 얀또도 잘 알거라고." 그러나 사장의 말은 사실관계를 분명히 해 둬야 할 부분이 있었다.
4년 10개월 계약했다고 말하는 게 억지인 이유
고용허가제법 어디에도 처음부터 4년 10개월 근로계약을 허락하는 조항은 없다. 고용허가제는 최장 3년+1년 10개월 동안 이주노동자에게 체류를 허가한다. 이주노동자들은 입국할 때 1년 혹은 3년 단위로 계약하며, 3년 계약이 끝난 후 1년 10개월 동안 계약을 연장할 수 있다.
입국 후 근로계약이 연장되지 않으면 이주노동자는 체류자격을 얻을 수 없다. 철저하게 고용주의 의지에 따라 근로계약이 연장되기도 하고, 체류자격이 주어진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이주노동자에게 근로계약 연장을 거부할 권리조차 없는 것은 아니다. 수기얀또의 사장은 그 점을 오해하고 있었다.
고용허가제가 왜 있는지 아느냐면서 사장이 한 말은 일정 부분 맞긴 하다. 고용허가제 기본 원칙 중 하나가 '내국인을 고용하지 못한 사업장에 외국인 고용을 허용'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원칙 중 또 다른 하나는 '노동관계법령 등을 내국인근로자와 동등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차별금지 원칙이다. 내국인이라면 근로계약이 끝나서 귀향하겠다고 할 때 회사 사정을 들어 퇴사를 막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런데 이주노동자라고 퇴사를 막겠다는 것은 차별금지 원칙에 어긋난다.
무엇보다 사장이 근로계약을 연장했다고 주장한 부분은 거짓이었다. 수기얀또는 근로계약 연장에 동의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이주노동자는 취업활동기간 만료 전에 체류기간 연장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때 사용자는 최소한 계약만료일 1개월 전부터 7일 전까지 이주노동자 재고용 신청을 해야 한다. 즉, 아직까지는 근로계약 연장을 할 수 있는 기간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장이 '회사 불이익' 운운하는 것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또 하나, 사장이 '근로계약 파기하면 외국인을 더 못 받는다'는 주장하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 고용허가제는 근로계약 체결 이후 사용자의 귀책 없이 이주노동자가 근로를 개시할 수 없게 된 경우, 고용허가서를 재발급받을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명확히 하고 있다. 이주노동자가 ▲ 고용허가기간이 만료되는 경우 ▲ 출국하는 경우 등이 그 경우에 해당한다.
고용허가제법에 따르면 사용자는 이주노동자와의 고용관계에 중요한 변동이 생기면 고용센터에 신고해야 하지만, 이 경우에는 하지 않아도 된다. 이처럼 근로계약 만기자가 근로계약을 연장하지 않는다고 해서 사용자는 피해 볼 일이 없는 것이다.
수기얀또는 사장이 억지를 부려도 너무 부린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사장이 퇴직금 성격의 출국만기보험이나 그동안 납부했던 국민연금 등을 돌려받지 못하게 훼방을 놓지는 않을지 걱정한다. 그가 귀국할 때까지 어떻게 견딜지 머리 아프다고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