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당신의 임무는 이 기괴한 극장에서 탈출하기 전 순시리가 설계한 일련의 숙제를 푸는 것입니다. 그 숙제 안에 그녀의 정체가 나와 있습니다. 이제 시작합니다. 타이머는 작동되었습니다. 행운을 빕니다."설명과 함께 손목에는 수갑이 채워진다. 한 시간 안에 이 수갑을 풀고 방에서 탈출해야 한다. '순시리'가 걸어놓은 계략이 곳곳에서 도사리고 있는 방에서 말이다. 극장 좌석에는 순시리가 '온 우주의 기운을 모아' 벌써 사람들을 꼭두각시로 만들었다는 의미로 인형들이 놓여있다. 닭 인형도 한 마리가 보인다.
부산 해운대의 한 방 탈출 카페가 2일부터 선보이기 시작한 '순SIRI 지상 최대의 쇼'는 이렇게 시작이 됐다. 각종 숫자와 알파벳을 조합해 밀실에서 탈출하는 여느 방 탈출 게임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이지만, 곳곳에 부적과 박근혜 대통령, 최태민씨의 사진 등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대한 풍자가 숨어있다.
만약 제 시간 안에 탈출하지 못한다면 게임 참가자는 순시리의 꼭두각시가 되어 살아야 한다. 무사히 방을 탈출하게 되면 참가자를 맞이한 직원이 "저 닭은 영원히 이곳을 벗어나지 못하고 꼭두각시인 채 살아갈 것"이라며 닭 인형을 들어 보인다. "바로 순시리는 현재 혼란스러운 시국의 원흉"이란 설명과 함께.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마켓에서는 흔히 찾아볼 수 있게 된 국정농단 풍자 게임이 오프라인으로 번져온 셈이다. 방에서 무사히 탈출하는 사람들에게는 치킨 교환 상품권을 준다. 카페 관계자는 "만 오천 원 남짓한 게임에서 만 원짜리 치킨을 주고 나면 우리는 남는 것도 없어요"라고 웃었다.
어쩌다 이런 게임을 만들게 되었을까. 이 관계자는 "촛불집회에서 이전과는 달리 재기발랄한 방식으로 국정농단을 규탄하는 시민들을 보며 우리도 어떤 방식으로 참여해보자는 생각이 들어 기존의 방식을 변형해 이 게임을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물론 이 '노골적'인 게임에 대한 주변의 우려와 만류도 있었다고 했다. 카페의 말레이시아 본사조차 "말레이시아에서는 이런 게임을 만들면 큰 문제가 된다"면서 "이런 걸 만들어도 괜찮겠나"고 걱정했다.
광고를 하겠다고 하자 광고 대행사 측에서 난색을 보여 광고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카페는 다른 게임을 하는 손님들에게도 국가정보원의 간첩 조작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자백>의 다운로드 이용권를 제공할 예정이라고 했다.
업체 측은 "최순실씨의 재산을 환수하는 날은 전체 게임을 무료로 참여할 수 있게 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부산에서는 앞서 박근혜 대통령이 하야하게 되면 숙박비를 받지 않겠다는 호텔이 등장해 화제를 모으는 등 국정농단을 규탄하는 색다른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