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광운대 가을축제 때 학교 정문 앞에 서 있었다. 민주노총 서경지부 광운대분회의 세 간부들과 함께였다. 길을 가다, 간부들과 우연히 만났다. 간부들은 광운대분회의 미래를 한참 상의하는 중이었다. 왜 정문에서 이야기하느냐고? 변변한 노조 사무실이 없는 탓이다. 학내 어디든 광운대분회 조합원들이 모이는 곳이 곧 노조 사무실이다. 오늘은 학교 정문이 어쩌다 선택된 것이었다.
대화가 거의 끝날 때쯤이었다. 최수연 분회장님이 잠깐 말을 끊고, 다른 곳을 바라봤다. 학내 보건소 쪽에서 걸어오는 한 중년 여성에게 시선이 고정됐다. 낯선 얼굴이었다. 나는 누구일까, 생각해봤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마땅한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중년 여성은 은색 빛깔의 자전거를 끌고 우리 쪽으로 왔다. 간부들은 모두 아는 분 같았다.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분회장님은 뻘쭘하게 서 있는 나에게 중년 여성이 누구인지 소개해줬다. 이번에 새로 광운대분회에 가입한 조합원이었다. 이름은 황보경씨였다. 입사한 지는 3달 정도 됐다고 했다. 아하, 얼마 전에 "우리 분회에 조합원이 새로 들어왔다"고 말해주신 분회장님의 이야기가 순간 떠올랐다. 나는 황보경 조합원에게 정중히 인사를 했다.
분회장님은 보경 조합원에게 왜 늦게 퇴근하냐고 물어봤다. 이미 다른 노동자들은 모두 일터를 떠난 상황이었다. 나도 보경 조합원이 왜 늦게 퇴근하는지 조금 궁금했다. 무슨 일이 있으신가? 보경 조합원은 보건소에서 감기약을 좀 타느라 늦었다, 대답했다. 아이스링크장에서 일을 하고부터 계속 으슬으슬 춥다, 첨언했다. 나는 보경 조합원이 청소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몸에 좀 무리가 오셨나, 생각했다. 그렇게 우리 다섯은 잠깐 대화를 하다 곧 헤어졌다. 그게 보경 조합원과의 첫 만남이었다.
아이스링크장의 아침
1개월여가 지나갔다. 지난 11월 28일 아침 7시, 광운대 아이스링크장 1층 로비에서 보경 조합원과 재회했다. 그녀의 얼굴에는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그녀는 팔소매로 무심하게 땀을 한 번 훔쳐냈다. 이내 다시 로비와 계단을 대걸레질했다.
"조금 전에 사무실 4곳을 다 청소했어요. 그런데 지금 일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에요. 세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을 지금 두 사람이 하고 있거든요. 요즘은 아침에 엄청 빡세요. 그래서 출근 시간보다 20~30분 정도 더 일찍 나와요. 출근카드 찍기 전에 미리 와서 청소 준비를 해놔야, 일이 좀 수월해지거든요. 청소도구 꺼내는데도, 시간 꽤 잡아먹어요."그녀는 웬만하면 자전거를 타고, 출근한다. 5시쯤이면 일터에 도착한다. 집에서 15분가량 걸린다. 오늘도 어김없이 일터까지 자전거 페달을 힘껏 밟아서 왔다. 새벽, 영하의 날씨에도 거침없었다. 한겨울 찬바람에 연신 "아, 추워"를 반복한 나의 모습과 정반대였다.
바깥 공기는 여전히 찼다. 그녀가 계단 청소를 마친 후, 링크장 출입구 주변을 청소했다. 그때 출입문이 조심스레 열렸다. 어린 남학생이 쭈뼛쭈뼛하면서 링크장 안으로 들어왔다. 아이스하키 스틱을 들고 있었다. 아침 댓바람부터 아이스하키 훈련을 하나 보다. 그다음에는 빨간 유니폼을 입은 단발머리 남학생이 왔다. 몸집이 꽤 컸다. 아이스하키 보호구를 온몸에 착용한 듯싶었다. 잠시 눈치를 보다, 곧 계단으로 내려갔다.
그녀는 링크장 밖으로 나왔다. 링크장 건물의 창문틀을 손걸레로 닦았다. 주변에 있는 흡연실까지 청소를 마무리한 후에 링크장 안으로 들어갔다. 링크장에서는 어린 아이스하키 선수들이 각종 장비들을 착용 중이었다.
학생들은 곧 훈련을 시작했다. 빙판에서 자유자재로 미끄러져 갔다. 순간, 한 아이가 아이스하키 스틱으로 퍽(아이스하키의 공)을 쳤다. 하지만 골대를 한참 빗나갔다. 퍽에 세게 맞은 플라스틱판은 안 깨졌다. 플라스틱에는 검은색 자국들이 이곳저곳 나 있었다. 아이스하키 훈련 모습을 실제로 본 건 처음이다. 코치가 호루라기를 불자, 선수들이 소리의 진원지로 하나둘 모여들었다.
그때 그녀는 2층 남자화장실 청소를 준비 중이었다. 그런데 대변기 하나가 꽉 막혀 있었다. 누군가가 휴지를 대변기에 그냥 버린 채 물을 내린 것이었다. 그녀가 '뚫어뻥'을 가져왔다. '뚫어뻥'으로 대변기 안을 수차례 눌러댔다. 그러더니 곧이어 물을 내렸다. 이물질들이 시원하게 쑥 내려갔다.
그녀는 본격적으로 화장실 청소에 나섰다. 세면대부터 소변기, 대변기에 세제를 싹싹 문질렀다. 하지만 비누칠한 곳에 마음껏 물을 뿌리기 어려웠다. 그도 그럴 것이 일반 화장실 바닥 재질과 달라 보였다. 타일이 아니었다. 장판과 비슷했다. 바닥이 젖었다 마르면 장판의 구석 부분이 말려 올라간다고 했다. 그녀는 그걸 피하려고 '바께스'에 물을 담아서 세척할 곳에 조심스레 부어야 했다. 그녀는 물을 붓느라 걸레 세척대와 비누칠한 곳 사이를 자주 옮겨 다녔다.
여자화장실 청소까지 마무리했다. 그녀가 화장실에서 나오다 아이스하키 훈련 모습을 보더니, 이야기 하나를 해줬다.
"아이스하키 연습이 끝나면 바닥에 침이 한가득이에요. 그걸 또 우리는 닦아야 돼요. 안 닦으면 침 묻은 데가 하얗게 변하거든요. 그래서 아이들이 연습 끝날 때마다 대걸레를 들고 가서 한 번씩 바닥을 문질러줘야 돼요. 그리고 빙판에서 스케이트를 타다 밖으로 나오면 물이 또 흥건해져요. 그것도 닦아야 하고요. 어쨌든 (빙판 주변을) 자주 돌아봐 줘야 해요."산전수전 다 겪은 신입 노동자오전 8시 30분, 아침 휴게시간이 다가왔다. 새벽 일찍 나왔음에도, 아직 일을 다 끝내지 못한 상황이었다. 한 사람의 부재가 남긴 후유증이었다. 그녀는 담담하게 "조금 있다 하면 돼요"라고 말하면서 휴게실로 갔다. 휴게실은 2층 중앙통제실 내의 한쪽 구석에 있었다. 휴게실이란 푯말조차 없는 곳이었다.
청소노동자들은 휴게실에서 각자 싸 온 밥과 반찬으로 아침 식사를 했다. 보경 조합원이 말했듯, 밥 한 숟가락을 뜨는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젤 맛있는 시간"이자, "즐거운 시간"이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휴식으로 한층 여유로워진 청소노동자들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도 입을 뗐다. 그녀의 옛날이야기가 구전동화처럼 흘러나왔다.
"진짜 제 삶은 파란만장해요. 저는 시골에서 살다, 서울에 올라왔거든요. 그때부터 제가 택시 일을 했어요. 삐삐 있을 때요. 95년도에 택시면허를 땄고, 96년부터 4년 동안 택시를 몰았어요. 그러니까 2000년까지 했네요. 택시회사 운전수 182명 중에 저 혼자 유일하게 여자였어요. 그때는 정말 열심히 했죠. 당시에 저는 요금메타기(택시미터기)를 많이 찍었어요. 그만큼 손님을 많이 받았다는 거죠. 월별로 버는 요금이 다섯 손가락 안에 들었으니까요."밥을 먹으면서 들은 그녀의 직업 종류는 다양했다. 그녀는 "남자들이 주로 많이 하는 일"을 해왔다. 이를테면 택시는 물론이고, 용달 일도 해봤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그녀였다.
"언제는 아들이 그러더라고요. 왜 맨날 남자 일만 하냐고요. 아들이 그렇게 말했어도 여태 그렇게 일해서 지들 대학 다 보낸 거잖아요. 집도 장만하고요. 진짜 별의별 일 다 했네요. 참 바보같이 일만 한 것 같기도 하고요. 생긴 건 여자지만, 아들 말처럼 정말 남자같이 살았어요.제 친구들이 말해요. 니 인생이면 책 한 권을 써도 되겠다고요. 그런데 지금은 제가 무슨 일을 했는지 다 기억을 못 해요. 그거 다 기억하면 지금까지 못 살았을 것 같아요. 정말 힘든 일이 많았으니까요. 다 기억 못 하니까, 사는 거겠죠?"
꿀맛 같은 휴게시간이 끝나자마자, 보경 조합원은 아침에 못한 청소를 했다. 문화관 회의실 주변을 손걸레로 닦기 시작했다. 문화관 회의실 바로 반대편에는 빙판이 펼쳐져 있었다. 하얀 얼음알갱이에 비친 조명 불빛이 반짝반짝했다. 눈부신 은빛 빙판 위로 키 작은 꼬마아이들이 스케이트를 탔다. 한 초등학교의 학생들이 스케이트 강습을 받는 중이었다. 이어달리기 같은 게임을 하는 듯싶었다. 해맑은 웃음들이 곳곳에서 들려왔다. 정말 신 나 보였다.
보경 조합원은 한참 관중석 청소를 하다, 1층으로 내려갔다. 아이들이 스케이트를 타다 링크장 주변 간이의자에서 마침 쉬고 있었다. 친구들과 장난치는 모습이 천진난만했다. 간식을 꺼내 먹는 친구들도 간혹 보였다.
그녀는 대걸레를 들고, 꼬마 친구들 사이로 유유히 지나갔다. 원래라면 학생들이나 학부모들이 있을 때는 돌아다니면 안 됐다. 아무도 없는 시간대에 유령같이 나타났다, 사라져야 한다. 하지만 아침에 못한 일을 마치려면 어쩔 수 없이 지금 움직여야 했다.
그런데 초등학생들이 스케이트 날로 디디고 있는 바닥이 좀 특이했다. 광운대 내의 다른 건물 바닥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깔끄러운 고무 재질이었다. 신발로 바닥을 몇 번 비벼봤다. 잘 안 미끄러졌다. 대걸레질하기 진짜 어려워 보였다. 아마도 얇은 날로 돌아다녀야 하는 링크장의 특성상 빙판 바깥은 미끄럼방지용 바닥 재질을 사용한 듯싶었다.
"처음에는 뭣도 모르고 (대)걸레질을 했어요. 그런데 (대)걸레가 잘 안 미끄러지는 게 아니겠어요? 진짜 힘을 다해서 빡빡 문질렀어요. 그런데도 (대)걸레질이 안 되는 거 있죠? 정말 힘들었어요. 낑낑대면서 (대)걸레질을 하는데, 정애 언니가 왜 그렇게 (대)걸레질을 하느냐고 물어보더라고요. 바닥에 물을 끼얹고 (대)걸레질을 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물을 좀 끼얹고 하니까, 그래도 조금은 편하더라고요."보경 조합원이 입사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경험한 일화다. 링크장은 다른 건물들과 차이가 많이 났다. 이를테면 건물 구조나 바닥, 환경 등이 그렇다. 처음 그녀가 링크장에 와서 고생을 좀 겪은 이유였다.
"9월쯤에 링크장에 왔는데요. 적응을 못했어요. 9월이라도 밖은 아직 덥잖아요. 그래서 반팔을 입고 다닐 수밖에 없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입고 들어가면 링크장에서는 추워요. 스케이트 타려면 1년 내내 영하의 온도로 맞춰야 하니까요. 얼음 안 녹게 하려면요. 처음에는 면역이 안 돼서 엄청 추웠어요. 콧물이 막 나오더라고요. 기침도 많이 했고요. 정말 감기 걸리기 딱 좋았어요. 온도 차이가 많이 나잖아요. 그래서 다른 언니가 입었던 겨울용 근무복을 껴입고 일했어요. 여기서 스케이트 가르치는 선생님들도 더운데, 파카를 입고 다녔거든요. 처음에는 왜 그런가, 했어요. 이제는 이해가 되죠. 청소하기에는 진짜 겨울이 더 나은 것 같아요. 겨울은 안과 밖의 온도가 비슷비슷하잖아요."링크장은 원래 보경 조합원의 청소 구역이 아니었다. 병가로 휴식 중인 노동자를 대신해서 일하는 것에 불과했다.
보경 조합원은 처음 입사한 7월부터 계속 일손이 모자란 곳에 가서 "땜빵" 역할을 해왔다. 이를테면 그녀는 다른 동료들이 휴가 등으로 잠시 빠진 자리를 메워왔다. 주로 바닥 왁스칠 작업에 투입됐다. 7월이면 학교가 방학을 해서 대청소가 이뤄졌다. 대청소 말고, 일상적인 청소 일도 했다. 벌써 광운대의 모든 건물들을 거의 한 번씩은 다 돌아봤다. 그런데 "땜빵"도 고충이 있었다.
"저는 '땜빵'이라서 이곳저곳 돌아다녀야 해요. 일을 하려면 전날에 미리 보따리(청소도구들)를 다 챙겨서 다음날 제가 일할 곳에 싸 짊어지고 가야 해요. 그래서 미리 가져다 놓아야 해요. 그런데 정작 당일 새벽 때까지 어디에서 일하라, 연락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출근카드를 찍고 소장님께 전화를 하죠. 소장님한테 '저 어디로 가요?' 그러면 이번에는 저리 가라, 말해주시는 거예요. 이런 일은 자리를 옮길 때마다 매번 그랬어요. 미리 좀 말해주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런데 저도 그러려니 했어요. 어차피 '땜빵'이었으니까요. 지금은 줄곧 링크장을 하고 있으니까, 그럴 일은 없고요."그녀가 '떠돌이 생활'을 하는 건 업체의 청소 위탁업무 계약 시 인원과 현재 청소 일을 하는 노동자 수 사이의 괴리 탓이었다. 업체가 계약 인원을 맞추려고 보경 조합원을 뽑았는데, 현재까지 마땅히 일할 빈자리가 없는 상황이다.
사실 지금쯤이면 얼마 전 완공된 80주년기념관으로 자리를 옮겼어야 했다. 80주년기념관이 그녀가 일할, 유일한 빈자리다. 애초에 보경 조합원을 채용한 목적도 새 건물에 청소 업무를 맡길 생각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업체는 아직까지 말이 없다.
"처음에 소장님이 하는 말이 나는 임시로 링크장에서 일하고, 11월 4일에 새 건물(80주년기념관)로 보내준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때까지 연락이 없었어요. 그래서 전화했죠. 어떻게 됐냐고요. 왜 여태껏 연락이 없느냐고. 그러니까, 소장님이 11월 14일 아니면 22일에 알바생이 오니까, 그때까지 참으라고 하더라고요. 약속한 지 2~3주가 지났는데도, 여태 말이 없어요. 알바생도 안 왔고요. 그러더니만 12월 19일에 나를 보내주겠다, 저희 분회장님한테 이야기하셨나 봐요. 그런데 지켜질지 잘 모르겠어요.""노조라고 다 같은 노조가 아니에요"
점심식사를 마친 보경 조합원이 '아이스페리스'란 매점에 들어갔다. 그런데 매점에는 아무도 없었다. 썰렁했다. 출입문 바로 옆에 있는 주방은 조리기구 하나 없이 텅 비어 있는 상태였다. 달랑 탁자와 의자뿐이었다. 영업을 안 하는 듯싶었다. 지금은 피겨나 아이스하키 선수들의 훈련을 기다리는 학부모들이 잠깐 쉬는 쉼터로 바뀌었다고 그녀가 귀띔해줬다. 빙판이 가장 잘 보이는 만큼 아이들이 훈련하는 모습을 보기에 딱 좋은 곳이었다. 보경 조합원이 매점을 쓸고 닦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녀의 청소 모습을 보면 예전부터 일을 해왔나, 싶을 정도로 전문가의 자세가 느껴졌다. 전혀 신입처럼 보이지 않았다.
"뭐든 한 번 보면 금방 익히는 스타일이에요. 눈썰미가 좋다고 해야 하나요? 에어컨 필터 청소도 그래요. 서비스센터 직원이 와서 청소를 하잖아요. 그거 딱 한 번 보고 나서는 제가 다해요. 제가 일한 데서도 다 일 잘한다, 칭찬했어요. 몇 번 해보면 어떻게 일해야 할지 감이 오거든요.""맞어. 보경씨 일 잘해."옆에서 그녀의 이야기를 듣던 동료가 한마디 거들었다. 임정애 조합원은 광운대에서 한참 동안 일을 해온 청소 전문가 중 한 명이다. 그런 동료가 청소 일을 잘한다고 인정할 정도면 그녀의 청소 능력은 말 다했다, 싶다.
"청소는 광운대에서 처음 하는 게 아니에요. 몇 군데서 해봤어요. 대학에서 두 번 했고, 지하철역에서 한 번 했어요. 그런데 세 곳 다 근무환경이 엄청 열악했어요."첫 청소는 용달 일을 그만두고, 엉겁결에 시작했다. 아침 6시부터 오후 4시까지 일을 했다. 하지만 자신이 맡은 구역만 청소하지는 않았다. 감독이 업무 외의 일을 하라, 지시하면 무조건 해야 했다. 이를테면 여름이면 꽃밭이나 잔디밭에 가서 풀매기를 했다. 겨울이면 눈을 쓸었다. 큰 공연장 청소에도 동원됐다. 무슨 일만 생기면 출동하는 것이었다. '다른 일' 탓에 내 일을 못하는데도, 청소 감독은 또 엄청 심했다. 일을 몇 배로 해왔지만, 시급은 최저임금이었다. '노예'나 다름없었다. 민주노조가 만들어지기 전 광운대와 사정이 비슷했다.
다른 곳들도 대부분 비슷했다. 더 열악한 곳도 있었다. 바로 지하철 회차 지점의 전동차 내부 청소였다. 그런데 이게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무엇보다 고됐다. 24시간 근무였다. 하루 일하면, 하루 쉬는 구조였다. '빨간 날'에도 쉬지 못했다. 24시간 중에 총 19시간 반을 근무했다. 나머지는 밤 시간에 잠깐 잤다. 그런데 임금은 15시간으로 계산하는 거였다. 청소의 대가조차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물론 세 곳 다 노조가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냥 '무늬만 노조'였다. 현재의 열악한 현실을 노동자들이 타개할 버팀목은 아니었다.
"저는 노조를 잘 몰랐어요. 근로자로 살아온 적이 없으니까요. 그런데 처음에 들어간 대학에는 노조가 있더라고요. 그게 한노였어요. 옛날에는 민노(민주노총)가 있었는데, 없어졌다고 하더라고요. 그때는 노조가 하나밖에 없으니까, 저도 한노에 자연스럽게 가입됐죠. 그런데 노조가 있어도 일을 빡세게 하는 거 있죠? 열악한 근로조건이 전혀 안 바뀌었어요.그 다음으로 들어간 데서는 민노를 조직할 것 같다고 저를 아예 잘라버렸어요. 처음에는 왜 잘랐는지 몰랐죠. 그래서 이유가 뭐냐고 물어봤죠. 그러니까, 답을 해주더라고요. 뭐라고 했느냐면요. 제가 여기에 계속 둬서는 안 되는 사람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 말 들으니까, 어이가 없더라고요. 거기도 한노밖에 없었어요. 그때도 회사가 민노라면 치를 떨었어요.지하철 청소할 때는 아예 민노로 들어가 있었는데, 한노 사람들이 계속 자기네로 들어오라고 꼬드기는 거예요. 그래 봤자, 민노는 소수노조였어요. 가입한 사람이 적으니까, 노조로서 힘이 없었어요. 그런데도 계속 회유했어요. 민노를 아예 없애려고 한 것 같아요. 어느 날은 회사 계장이 '황보경씨는 왜 민노로 들어갔어요? 한노로 들어가야지.' 그러더라고요. 그런데 계장이면 노조 가입도 안 될 텐데, 왜 우리 쪽이라 했을까요? 민노에 있는 동안은 회사에서 아예 근로계약서도 안 써줬어요. 한노로 들어갈 때까지 억압하겠다는 거 아니겠어요?"
보경 조합원은 자신의 지난 세월을 "권리를 전당포에 맡긴 세월이었"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이제는 광운대에서 정말 '노조다운 노조'에서 노조 활동을 하는 중이다. 투쟁 사업장에도 자주 연대를 나갈 정도로 열심이다. 요즘은 정말 살맛 난다고 했다. 보경 조합원은 민주노총 서경지부가 일궈놓은 텃밭 위에서 광운대 청소노동자들의 권리도 한층 더 커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 (링크장에서 일하는) 언니가 병가를 냈잖아요. 민노가 없었다면 회사에서 병가를 허락했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봐요. 벌써 잘렸겠죠. 병가는 꿈도 못 꿨을 걸요. 제 경험상 그랬을 거예요. 어이없이 잘렸던 기억도 있으니까요. 들어보니까, 예전에 광운대도 엄청 열악했다 하더라고요. 제가 처음 일한 대학교와 비슷했대요. 지금 이렇게 근무환경이 나아진 건 서경지부가 만든 단체협약의 위력이라 하더라고요. 노조라고 다 같은 노조가 아니에요. 제가 몇 군데서 일해 보니까, 이제는 알겠어요. 내 권리를 당당히 말할 수 있는 곳이 진짜 노조라는 걸요. 그 점에서 민주노총 서경지부가 진짜 노조예요."매점 청소 도중에 한 여학생이 자신의 캐리어를 끌고 들어왔다. 한눈에 봐도, 피겨스케이팅 선수 같았다. 보경 조합원의 청소 모습을 보고, 흠칫 놀란 표정이었다. 이내 캐리어에서 짐을 꺼냈다. 줄넘기였다. 여학생은 줄넘기를 들고, 다시 밖으로 나갔다.
오늘 일과도 서서히 끝나갔다. 보경 조합원이 휴게실에서 퇴근 준비를 시작했다. 휴게실 밖에서는 피겨 선수들이 원형으로 설치된 안전 고깔들 안에서 훈련 중이었다. 그중에 점프를 하다, 엉덩방아를 찧는 아이도 있었다. 얼른 일어나서 다시 기본 기술들을 연습했다. 정말 열심이었다. 한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하나하나 기술을 가르쳐주는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한편 안전 고깔들 밖에서는 광운대 학생들이 자유롭게 스케이트를 탔다.
옷을 다 갈아입은 보경 조합원은 휴게실 밖으로 나왔다. 퇴근 도장을 찍으려고 학교 정문으로 발걸음을 옮기다, 자신의 꿈 이야기를 했다.
"제 꿈이 뭐였느냐면요, 캠핑카 타고 전국을 돌아다니는 거였어요. 제 친구랑 약속했었어요. 60살까지 일하고, 전국 일주 시작하자고요. 우리는 면허증이 있으니까요. 뭐, 먹을거리는 현지에서 조달하면 되거든요. 제가 농사도 지어봤으니까, 가는 지역에서 농사 (일을) 거들면 되고요. 여행경비도 알바하면서 벌면 되거든요. 지역마다 친구도 있으니까, 도움도 좀 받으면 되고요. 그게 저한테 주는 선물이었는데... 그동안 고생만 해왔으니까요. 그런데 막상 지금은 그렇게 안 되네요. 그래서 꿈인가 봐요."보경 조합원은 꽤나 낭만적인 꿈을 가진 노동자였다. 그녀의 꿈이 꼭 이른 시일 안에 실현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보경 조합원은 자전거를 몰고, 학교 정문 앞 출퇴근리더기 앞에 섰다. 방금 퇴근카드를 찍은 민주노총 조합원들과 마주하자 반갑게 눈인사를 했다. '다른 노조'에 가입된 광운대 청소노동자들도 보였다. 그녀는 어느새 자전거를 타고, 유유히 일터를 떠나갔다.
덧붙이는 글 | 2016년 11월 28일의 일을 기록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