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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 배에 있는 아기가 귀엽다. 캥거루같이 보이지만 호주에서는 월라비(Wallaby)라고 부르는 작은 캥거루다.
 엄마 배에 있는 아기가 귀엽다. 캥거루같이 보이지만 호주에서는 월라비(Wallaby)라고 부르는 작은 캥거루다.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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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그마한 항구 도시 스트라한(Strahan)에서 유람선을 타고 멋진 구경을 했다. 다음 목적지, 예약한 숙소가 있는 호바트(Hobart)를 향해 떠난다. 

산등성이를 타고 30여 분간 달리니 광산으로 파헤쳐진 민둥산이 발아래 펼쳐진다. 가파른 민둥산을 깎아 만든 도로에 자동차 한두 대가 한가히 달리고 있다. 조금 내려가니 전망대가 보인다. 퀸스타운(Queenstown)이라는 투박한 글자가 새겨진 거대한 철판이 광산 도시임을 상기시킨다.    

퀸스타운을 지나 국립공원에 들어선다. 울창한 숲속을 지나기도 하고 거대한 돌산을 만나기도 한다. 끝없이 펼쳐진 고산 지대의 키 작은 나무, 깨끗한 호수와 강, 흔히 보기 어려운 광경에 매혹된다. 두어 시간 집 한 채 보이지 않는 산길을 달리며 타즈마니아 광야를 만끽할 수 있는 드라이브 코스다.

숙소가 있는 호바트에 가까워지면서 날이 저문다. 대도시와는 비교할 수 없지만, 호바트도 자동차로 붐빈다. 낯선 도시의 밤거리를 조심스럽게 운전한다. 차선을 잘못 들어 헤매기도 하면서 늦은 저녁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에서 보이는 밤 풍경이 멋있다. 항구를 중심으로 도시의 불빛이 현란하다. 시골과 달리 마음을 들뜨게 하는 설렘을 만끽한다. 숙소 아래에서 자동차 달리는 소리가 들린다. 도시에 사는 사람에게는 익숙하겠지만 조용한 밤에 익숙한 시골 사람에게는 조금 심한 소음이다. 그러나 아침부터 밤까지의 여행과 포도주 한 잔 덕분에 세상모르게 잠에 떨어진다. 

오랜만에 도시의 소음을 들으며 일어난다. 멀리 보이는 호바트 항구와 자동차 붐비는 거리를 바라보며 아침을 준비한다. 오늘은 동해를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 와인글라스 베이(Wineglass Bay)를 둘러볼 예정이다.

늦은 아침을 먹고 길을 떠난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궂은 날씨다. 차창 밖으로 심한 비바람이 간헐적으로 몰아친다. 오른쪽으로는 높은 파도가 친다. 심한 비바람에 익숙한 들풀과 작은 나무들은 바람 따라 흔들리면서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짓궂은 날씨의 풍경이지만 즐길 만하다.

와인글라스 베이에 도착했다. 주차장에는 차 몇 대만이 덩그러니 있다. 궂은 날씨 때문일 것이다. 자동차에서 나오니 귤을 먹고 있는 캥거루가 우리를 맞는다. 배에는 귀여운 아기가 있다. 사진을 찍으려 가까이 다가가도 거들떠보지 않는 사람에게 익숙한 캥거루다.

오락가락하는 비를 우산으로 막으며 산책길에 오른다. 바위가 많은 산이다. 자연이 오랜 세월 거쳐 조각한 돌덩이가 산책길 옆으로 줄을 서 있다. 칼로 자른 듯이 둘로 나뉜 거대한 바위를 본다. 커다란 바위에 또 다른 바위가 위태하게 올라있는 기이한 조각품을 카메라에 담기도 한다.

비바람 치는 궂은 날씨를 즐기는 사람들

 자연에서 자연스럽게 뛰노는 아이들. 멀리 보이는 바다가 와인글라스 베이.
 자연에서 자연스럽게 뛰노는 아이들. 멀리 보이는 바다가 와인글라스 베이.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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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 오르니 학교에서 단체로 온 어린 학생들이 시끄럽게 떠들고 있다. 비옷을 걸친 학생도 있지만, 대부분은 비를 맞으며 야외 활동을 즐기고 있다. 비를 맞으며 산속을 뛰어다니는 아이들에게 선생님은 특별히 신경 쓰지 않는다.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아이들이 보기 좋다.  

정상에서 와인글라스 베이를 사진기에 담는다. 움푹 들어간 만이 포도주잔을 연상시킨다. 포도주잔에 담긴 바다가 흐린 날씨지만 예쁘다. 

주차장에 내려오니 젊은 남녀가 우비를 입고 두툼한 배낭을 챙기며 등산 준비를 한다. 먼 거리 등산길을 떠나는 복장이다. 비바람 맞으며 텐트에서 밤을 지낼 것이다. 어려움을 찾아다니며 즐기는 독특한 커플이다. 힘든 여정만큼 남다른 경험도 많이 할 것이다. 

자동차를 타고 근처에 있는 등대를 찾았다. 비는 뜸하지만 바람이 심하게 분다. 등대를 향해 걸어가는데 사람이 날아갈 것 같다. 거친 파도가 낭떠러지 아래서 포효한다. 잔잔했던 와인글라스 베이의 바다 모습과 대조적이다.               

등대를 떠나 자동차로 야영장을 둘러본다. 비바람 속에 주인을 기다리는 텐트가 생각보다 많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데, 그래도 집에서는 얻기 어려운 그 무엇이 있기에 고단함과 불편함을 무릅쓰고 찾아 왔을 것이다. 일상적인 삶에서 벗어날 수 있는 여유가 부럽다. 

호바트, 도시 한복판으로 돌아왔다. 식당이 즐비한 호바트 밤거리를 배회한다. 화려하다. 식당과 술집은 사람으로 넘쳐난다. 내가 좋아하는 타즈마니아의 신선한 연어를 파는 곳도 있다. 미국 배우 메릴린 먼로(Marilyn Monroe)의 동상과 분수대가 사람을 유혹하기도 한다.

와인글라스 베이에서 만난 삶이 떠오른다. 두툼한 배낭을 짊어지고 산을 오르는 남녀 그리고 지금은 구차한 텐트 안에서 지내고 있을 사람들도 생각난다. 도시의 삶과 산속의 삶이 대조를 이룬다.

도시의 삶은 사람에 의지해 살고 시골의 삶은 자연에 의지해 사는 것이라고 한다. 어느 삶이 더 좋을까. 비교하지 말자. 나름대로 삶을 즐기면 된다. 어느 스님의 말씀처럼 '내가 내 인생의 주인으로...'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호주 동포 신문 '한호일보'에도 연재하고 있습니다.



#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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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에서 300km 정도 북쪽에 있는 바닷가 마을에서 은퇴 생활하고 있습니다. 호주 여행과 시골 삶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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