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을 하며 점심 약속 장소로 가고 있었다. 베이지색 소형버스가 앞서간다. 그런데 '24시간 방문요양서비스'라고 써 붙인 차다. 더 지나가다 보니 새로 개장한 요양원 광고 플래카드가 보인다. 조금 더 가다보니 이번에는 어머니가 계셨던 요양병원 광고를 크게 붙인 버스도 지나간다.
우연 같은 필연이 느껴졌다. 반사적으로 어머니를 떠올렸다. 음악을 좋아하셨던 어머니를 생각하며 라디오를 켰다. 라디오에서는 최순실-박근혜 게이트 국정조사 청문회 방송이 흘러나오고 있다. '어머니와 라디오'가 오버랩 되면서, 치매 어머니로 인해 라디오 인터뷰를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처음엔 내키지 않았던 라디오 인터뷰
십수 년 전 일이다. <오마이뉴스>에 어머니에 대한 글을 쓰고 있는데, 갑자기 부드러운 음성의 낯선 전화 한 통을 받았다.
"MBC 라디오 '세상 속으로'의 작가 김OO입니다.""아, 네. 무슨 일이신가요?"치매 노인을 둔 가족을 위한 전화 인터뷰에 응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오마이뉴스> 속 어머나 이야기를 보고 나를 찾은 것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거절했다. '내가 특별히 나설만한 입장도 상황도 아니고, 나보다 더 힘들게 치매와 사투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내가 나서서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작가의 "어려운 가족들이 많이 듣는 방송입니다. 치매환자를 모시는 어려운 가족들에게 힘이 되기를 바랍니다"라는 말이 내 마음을 움직였다. 그렇게 인터뷰를 허락했었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치매 노인을 둔 가족들을 위로하려는 주제를 선택한 방송국 측에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인터뷰는 변창립 아나운서가 맡았다. 변 아나운서의 목소리는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내가 편하게 답하도록 대해줬다. 질문에 하나하나 대답하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다 흘러가 버렸다. 막상 판을 펼치고 보니 여러 가지 해야 할 말이 많았다. 메모해 놓고 '이 말은 꼭 해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놓친 것도 많았고, 잘못 대답한 것도 있었다. 생방송이라 되돌릴 수 없었다. 지금이라도 그때의 오류를 인터넷 신문을 통해, 변 아나운서와 작가 그리고 치매 가족들에게 사과하고, 바로 잡고 싶다.
그것은 변 아나운서가 "의사와 상의하고 병원 치료도 잘 받으시지요?"라는 질문에 나는 "아니요. 병원에 자주 못가세요"라고 답했다. 그렇게 답한 이유는, 그 당시 병원에서 처방해준 약을 어머니가 드시면, 거의 온종일 주무시고 거동도 못하실 때가 많았다. 그런 상황이 어머니를 더 모시기 어렵게 했고, 그런 어머니를 바라보면 안타까움이 더 커졌다.
그래서 약을 줄이고 내가 찾아낸 아이디어인 퍼즐하기, 책 읽기, 손빨래하기, 밤 까기, 음악 듣기 등을 할 때였다. 그런데 방송을 들은 치매 환자가족들이 잘못 들으면 병원치료보다 집에서의 생활치료가 더 좋을 것이라고 생각할까봐 걱정이 됐다. 당연히 병원치료를 해야 하고, 의사의 말을 따라야 한다. 그게 정답이다. 나아가 가족의 어려움도 상의하고 가족치료도 받으면 좋다. 생활치료는 보조수단이다.
치매라는 말 대신 '머릿속 지우개'
중앙치매센터에 따르면 우리나라 치매환자 수는 2014년 말 기준 61만 명을 넘어섰고, 2015년에는 64만 명이 넘었다. 법적·사회적으로 노인으로 분류되는 65세 이상만 살펴보면 10명 중 1명은 치매 환자다. 그러나 이는 통계로 확인된 숫자이기 때문에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2016년의 제주도민의 숫자가 64만 명이니, 2016년에는 치매환자가 제주도민 숫자를 넘어섰다.
2015년 1월 미국 캘리포니아대의 론 브룩마이어 교수는 "알츠하이머성 치매가 앞으로 전 세계 공중보건에 커다란 위험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단순히 10여 년간의 추이만 보더라도 2005년 알츠하이머 환자는 2573만 명에서 2015년 3526만 명으로 1000만 명 가까이 증가했다. 현재 치매 환자는 전 세계에서 4초마다 한 명씩 발생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67초, 우리나라에서는 15분마다 새로운 치매 환자가 생겨난다.
치매는 추억과 가족, 시간과 현실을 잊게 하는 나쁜 병이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치매는 환자 당사자보다 가족들의 진을 빼 놓는 그런 병이다. 나는 어머니를 보면서 치매의 행패를 인정하고 싶지 않아 '치매' 대신 '머릿속 지우개'라는 말을 썼다.
치매 노인 당사자들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들을 돌보는 가족들도 중요하다. 치매 노인을 뒷바라지해 보면 나처럼 같은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노인들 중에는 거칠고, 욕하고, 움직이는 행동반경이 넓고, 대소변을 못 가리는 노인들이 있다. 그렇다면 그 가족은 거의 초죽음이라고 생각해도 된다.
치매라는 병은 당사자에게도 아픔이지만 가족들에게도 큰 충격이요 아픔이다. 치매 노인을 모시는 가족들을 위로하고 그들의 스트레스를 풀어주려는 시각이 우리 사회 속에 공존했으면 한다. 위로와 격려가 없다면 혹여 가족 중 또 다른 환자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가족들을 조금이나마 위로하고 싶은 마음에 내가 경험하고 적용했던, 몇 가지 제안을 풀어 놓고 싶다.
치매 노인을 바라볼 때 가져야 할 7가지 마음가짐1. 치매 노인은 어린아이다. - 어린아이를 대하는 방법으로 치매 노인을 대하는 아이디어를 찾는다. 2. 치매에 질 수 없다는 강한 의지력이 필요하다. - 치매와 싸워라.3. 인격적인 환경을 만들어라. - 방문을 잠그지 말고 반복학습을 통해 교육(?)하라.4. 입장을 바꿔서 생각하라. - 인격적인 돌봄이 필요하다.5. 치매 노인을 감추지 말고 세상 속으로 보내라. - 사람들과의 접촉점은 기쁨이다. 6. 이상 행동에 과민 반응하지 말라. - 가족 중 또 다른 병자를 만든다.7. 노인들과 스트레스를 주고받지 말라. - 신경질적인 스트레스는 서로를 해친다.어머니에게 치매 증상이 나타날 때마다 나는 당황하지 않았다. 그저 그것을 일과로 받아들이고 '어떻게 하면 어머니가 좀 더 편한 마음을 가지실까?'를 생각했다. 그러면 좀 편해지고 스트레스가 줄어들었다. 치매란 완치되는 병은 아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사랑과 관심, 섬김으로 '머릿속 지우개'의 속도를 늦추는 것이다.
어머니에게 퍼즐 맞추기와 책읽기에 집중하시도록 하면 "어렵다, 어렵다" 하시면서도 퍼즐을 잘 맞추셨다. 그리고 성경책을 천천히 소리 내어 읽으시는 모습은 예쁘기까지 하셨다.
"어머니, 재미있으세요?""성경책 읽는 것이 좋아!""퍼즐은요?""아휴, 힘들어.""힘들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재미있다고 생각하고 하세요."어떤 때는 거의 강요 수준일 때도 있었다. 약이 쓰다고 안 드시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퍼즐은 아침과 저녁에 두 번 하시게 했고, 낮에는 거의 책을 읽으셨다. 그리고 음악을 듣게 해드렸다. 때론 이어폰이나 헤드폰으로 듣게 해드렸다. 거실과 모든 방에 찬송가나 잔잔한 음악을 거의 24시간 틀어놨다. 잔잔한 리듬과 음악기호들이 춤을 추며 온 집 구석구석에 가득 차도록 해놓았다.
이렇게 음악을 항상 틀어 놓으면 치매 노인들에게도 좋고, 가족들의 마음도 즐거워진다. 어머니가 주무실 때도 잔잔하게 음악을 계속 틀어 놓았다. 그러면 곤히 잠이 드셨다. 치매 노인을 모시는 가족들에게 음악을 틀어 놓으라고 권하고 싶다.
"독수리 가족들 파이팅!""음악을 사랑하며, 음악치료 해보세요."
덧붙이는 글 | 나관호는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 문화평론가, 칼럼니스트이며 북컨설턴트로 서평을 쓰고 있다. <나관호의 삶의 응원가>운영자로 세상에 응원가를 부르고 있으며, 따뜻한 글을 통해 희망과 행복을 전하고 있다. 또한 기윤실 200대 강사에 선정된 기독교커뮤니케이션 및 대중문화 분야 전문가다. 역사신학과 커뮤니케이션 이론, 대중문화연구을 강의하고 있으며, ‘자기계발 동기부여’ 강사로 기업문화를 밝게 만들고 있다. 심리치료 상담과 NLP 상담(미국 NEW NLP 협회 회원)을 통해 사람들을 돕고 있는 목사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