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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팬이다. 국가대표 서포터이고 대전시티즌의 시민주주인 데다가, '소시적'에는 야구팬들과의 신경전에 예민했고, 서포팅으로 선수들과 함께 뛰느라 땀에 젖은 유니폼이 자랑스러웠다. 시간은 흘러, 지금은 응원하는 팀의 선수들 이름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지만, 나는 여전히 피치의 열정이 반갑다. 이런 내가 놓칠 수 없는 책이 등장했다. 바로 <좌익축구 우익축구>다.

 니시베 겐지의 좌익축구, 우익축구
니시베 겐지의 좌익축구, 우익축구 ⓒ 한스미디어
'감독의 철학을 통해 살펴보는 좌파와 우파의 축구 사상사'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책의 표지에는, 과르디올라(전 FC 바르셀로나, 현 맨체스터 시티 감독)와 시메오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감독)가 인형 선수들을 나무에 끼워서 다투는 '축구 게임'을 하고 있다.

표지에서부터 누가 좌익의 축구를 하고 있고, 어느 팀이 우익의 축구인지 명료하게 짐작하게 한다. 과르디올라가 왼쪽에 시메오네가 오른쪽에 있는 걸 보니, 자연스럽게 바르셀로나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플레이가 좌/우로 구분되어 자리를 잡는다(개인적으로는 두 팀의 플레이가 모두 좋지만, 리오넬 메시의 팬이다).

"좌익 축구와 우익 축구가 있다."

1978년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를 우승으로 이끈 세사르 루이스 메노티 감독의 말이다. 이 책은 메노티 감독이 던진 '좌/우'의 구분에 기반하여 역사적으로 축구 전술의 전환기를 가져온 팀들의 전술을 분류하고 해설한다.

당시, 군부 독재 치하였던 아르헨티나에서 '정치적으로' 좌파였던 메노티 감독의 성향때문인지, '오직 이기는 것'에만 집중하는 '우익축구'에 대한 혐오감이 느껴지기는 하지만, 축구를 분류하는 신선한 관점이 매력적이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메노티의 구분에 의하면 '좌익축구'는 숏패스에 기반한 기교적인 공격을 추구하는 전략으로 FC 바르셀로나의 패스 플레이인 '티키타카'(1)를 떠올리면 쉽다. 이와 반대편의 플레이를 '우익축구'라고 하면 탄탄한 수비를 기본으로 최후방으로부터 시작되는 역습기회를 노리는 축구로써 전성기의 이탈리아 축구 '카테나치오'(2)를 떠올리면 쉬울 것이다. 이것이 표지에서 다투고 있던 과르디올라와 시메오네로 대표되는 전략의 대비이기도 하다.

(1) 티키타카: 스페인어로 '탁구공이 경쾌하게 왔다갔다 한다'는 뜻으로, 공의 소유를 최소화 하면서 짧은 패스로 공격을 주도하는 전술
(2) 카테나치오: 이탈리아어로 '빗장'을 뜻하며 강한 수비를 기반으로 실점을 최소화하는 전술

많이 알려진 얘기지만, 흔히 '진보=좌, 보수=우'로 대표되는  '좌/우' 구분의 기원은 무척이나 맥빠진다. 이는 혁명기의 프랑스 국민공회에서 의장석을 기준으로, 왼쪽에는 당시의 혁신을 주창하는 세력이 오른쪽에는 보수 세력이 앉아있었기 때문이란다.
"우익축구는 '인생은 투쟁'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희생을 강요한다. 선수는 강철이 되어야 한다. 승리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한다. 그저 승리만을 지향하며 유연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무기질적인 규율로 선수를 옭아맨다. (이와는 반대로) 좌익 사상은 민중의 곁에 있으며 축구와 함께 있다. 나도 사람들에게 행복을 줄 수 있는 좌익축구와 함께 있다. 풍만하고 예술적이며 숭배받는 축구야말로 좌익 축구이며, 나는 항상 좌익 축구와 함께해 왔다." - 세사르 루이스 메노티 (전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 감독)

메노티 감독은 '아름다운 축구'의 본질에 가까운 것이 좌익축구의 패스플레이라고 보고 있고, 창의적인 플레이에 기반한 '좌익축구'에 편파적인 애정을 보인다. 이와는 반대로 '안티풋볼'이라는 비아냥까지 들어야했던 무리뉴의 축구에서 보이는 '무조건 이기기 위한 축구'를 우익축구라고 설명한다.

이는 어딘가 많이 거친 분류이기도 하고, 개인적인 호감이 반영된 것이기에 객관적이라고 보는 것은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이 분류를 '축구를 보는 하나의 관점'으로 소개하고 싶다. 이를 통해 우리가 즐기는 '축구'의 의미를 한 번쯤 생각해 보는 기회를 제안하고 싶은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축구팀도 일반 회사와 마찬가지입니다. 개인의 자유가 존중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모두가 자유롭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법(규칙)이 필요합니다. 속박하기 위한 규칙이 아니라 모두가 자유롭기 위한 규칙 말입니다." - p.121 (아르센 벵거)

책을 통해 확인한 '좌익축구'는 분명 매력적이다. 좌익축구의 상징은 FC 바르셀로나의 현란한 패스플레이겠지만, 좌익 축구가 추구하는 궁극의 유토피아는 '아스널'에 있다. 프랑스인 벵거는 '지루한 축구'의 대명사이던 아스널을 창의적인 공격으로 무장한 '좌익축구'의 명가로 바꾸어 놓았다.

1996년에 '듣보잡'으로 부임한 후(처음에 그가 부임했을 때, "벵거가 누구야?"라며 의아해 했다고 한다) 스무해를 넘기면서 그는 '아스널-벵거 제국'이라는 '풋볼 유토피아'를 공고히 했다.

선수들은 그들이 만들어내는 '창의적'인 플레이에 만족스러워했고, 팬들은 11년이나 순위에서 밀린 채 헤메고는 있지만 '벵거를 믿는다'며 감독에 대한 지지를 포기하지 않는다. 비록, 최근에는 '이제 그만(Enough is enough)'이라며 조바심을 드러내는 일부 팬들의 압력은 있지만, 여전히 그는 아스널을 떠나지 않았다.

벵거는 분명 '특이한' 현상이다. 모든 팀들에게 벵거의 기적을 기대할 수는 없다. 축구는 분명 승패가 구분되어야 하는 '스포츠'이며, '패배'는 '실패'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벵거가 추구한 '프랑스인다운 자유의지'가 그 팀의 구성원들과 제대로 공유된 후, 그들 스스로 '즐기게' 된 상태에서 확인되는 '지속 가능성'을 우리의 사회에서도 기대하고 싶다면 욕심일까?

"축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창조성입니다." - 펠레

이런 '좌익' 축구는 국가대표팀의 '색깔있는' 플레이에서도 종종 발견된다. 전성기의 브라질 대표팀을 상징하던 '푸테보우 아르테(Futebol Arte, 예술적인 축구)'를 이끌었던 펠레의 말을 '좌/우'의 분류와 연결시키면, 그들이 추구했던 '창조성'에 의한 아름다움이 쉽게 연상된다.

하지만, '아름다운' 축구가 항상 '아름다운 승리'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현 세대 최고의 '축구 신'이라고 불리는 메시를 가졌으나, 한 번도 국가대표팀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리지 못한 아르헨티나의 플레이에 대한 당신의 인상은 어떤가? 메시의 플레이가 클럽팀 (FC 바르셀로나)에서와 왜 다른지 궁금하지 않은가?

"마스체라노는 동료들을 고무시키고 자신도 헌신적인 수비로 팀을 지탱했다. 특권계급인 메시를 뒷받침하는 진흙투성이 노동자의 리더였으며, 이 팀의 정신적 지주였다." - p.189

2014년 당시 아르헨티나의 감독은 '좌파' 페론주의자였던 사베야였다. 하지만, 그가 당시 팀에서 추구했던 축구는 마스체라노를 축으로 단단하게 지켜낸 수비라인을 기반으로 '이기는 축구'를 추구했던 '우익' 축구였다.

우익의 축구는 '희생'과 '투지'를 강조하는데, 아르헨티나의 팀플레이에 필요했던 선수는 '공격의 핵'인 메시라기 보다는 '희생적인 수비'의 축인 마스체라노였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전략적인 비교를 통해 보면, 메시가 소속클럽에서와 다른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던 차이가 이해가 된다. FC 바르셀로나는 '좌익축구'의 최전선에 있는 팀이지 않은가?

지금까지 축구에서 관찰할 수 있는 전략/전술의 차이를 기반으로 '좌익'의 축구와 '우익'의 축구를 비교해 보았다. 당신이 응원하는 팀의 축구는 어떤 모습인가? 아니면, 당신이 원하는 축구는 어떤 모습이기를 원하는가? 혹시, 축구를 좀 더 적극적으로 즐기고 싶다면, 지금부터 당신이 원하는 축구의 모습을 구단이나 감독에게 요청하는 것은 어떨까? 아무래도 내가 원하는 축구의 모습은 올해 고인이 된 크루이프가 추구했던 '이상적'인 좌익 축구인 것 같지만 말이다.

넘버 : 바르싸(FC 바르셀로나의 약칭)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철학은 무엇인가?
크루이프 : 공격적인 패스가 돌고, 아름다운 축구를 하는 것! 선수로서도 감독으로서도 '이상'을 지닌 채, 피치 위에서 실현되는 카리스마가 바르싸의 변화와 가능성을 말하는 것이다. ... 현대의 축구에서는 '즐거움'의 중요성이 점점 간과되는 것은 아닌가 한다. 물론, 누구에게나 '승리'는 당연히 중요하다. 하지만, 공격적인 패스가 활발히 돌고 있는 아름다운 시합을 보고싶다. 축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즐거움이 아니겠는가?

이 인터뷰는 크루이프가 작년 클럽월드컵 개막 전에 일본 스포츠지인 넘버와의 인터뷰에서 얘기한 축구 철학의 일부이다. 이 책의 저자의 분류에 따르더라도 크루이프는 '아름다운' 좌익 축구의 이상향이다. 그런 축구가 펼쳐지는 피치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벌써 설레인다. 이런 면에서 나 역시 (축구든 정치든) 좌파가 확실하다.

여러분에게 축구는 무엇인가? 나에게 축구는 '좋아하는 친구'를 만날 수 있는 계기였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희노애락'을 나눌 수 있던 자연스러운 '광장'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이 어떤 축구를 하고 있는지를 '분석'하는 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좋아하는 선수들의 '인상적'인 플레이에 환호할 수 있고, 응원할 수 있는 것에서 만족했다.

단지 그 정도의 거리에서, 그 정도의 관심으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그 정도의 거리로는 K-리그의 텅빈 관중석을 더 이상 채울 수 없음을, 이제는 느낀다. 야구팬들과의 신경전으로 '투쟁'을 불사하던 젊음으로부터 스무해를 넘어왔으나, 우리 축구팬들은 어쩌면 (나처럼) 그 정도의 거리에서 텅빈 경기장을 지켜보고 있는지도 모르니 말이다.

그렇다면, 좀 더 적극적으로 축구를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 저자의 관점이 그 '새로운 논쟁'의 작은 계기라도 될 수 있길 희망한다. 지금 내가 나의 팀이 '좌익'인지 '우익'인지 고민하는 것처럼 말이다. 결국, 그 짧은 고민은 '좌익'처럼 그럴싸한 '아름답고 창의적'인 플레이를 원하지만, 승부에 몰려 '이기기 위한 뻥축구'에 매달리는 것으로 결론이 나긴 하지만 말이다. 그러니, 우리 요구하고 물어보자. 팬들이 요구하고 관심을 가지면, 팀은 변한다. 물론, 관심은 많으면 많을 수록 좋다.

'감독님, 당신이 원하는 축구는 무엇인가요? 우리 팀에서 구현하는데 어떤 문제가 있죠?'

덧붙이는 글 | 책정보: <좌익축구 우익축구> 니시베겐지 지음/이지호 옮김/한준희 감수 (한스미디어)



좌익 축구 우익 축구 - 감독의 철학을 통해 살펴보는 좌파와 우파의 축구 사상사!

니시베 겐지 지음, 이지호 옮김, 한준희 감수,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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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책읽기#좌익축구 우익축구#펩 과르디올라#디에고 시메오네#당신의 축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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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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