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기나긴 고통의 세월이었다. 역사가 과거 유신시절로 돌아간 듯한 어둠의 시대였다. 우리가 이미 획득했다고 믿었던 그 민주주의의 원칙과 틀은 걷잡을 수 없이 무너졌다. 그러나 마침내 시민들은 이 어둠을 촛불로 몰아냈다. 독재자는 자기의 성에 유폐됐고, 우리는 광장에 섰다. 이제 우리의 임무는 무엇인가? 그것은 광장을 불살랐던 촛불의 열기를, 그리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그 뜨거운 외침을 진정한 민주주의의 제도화로 승화시키는 것이라 믿는다. 광장의 열기가 그저 추상적이고 선언적인 차원에서 머물러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하여 구체적인 법률과 제도로써 정립되고 실행돼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몇 가지 제안을 <오마이뉴스>에 연속 기고한다. - 기자 말 '대통령 박근혜'으로 인하여 나라가 들끓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가히 가장 큰 문제로 부각되고 있는 제왕적 대통령제는 어쩌면 이 '대통령(大統領)'이라는 용어 자체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대통령이라는 용어는 '클 대(大)'에 '통령(統領)할 통(統)' 그리고 '영도하다는 령(領)'이 합쳐진, 그리하여 왕(王)이라는 용어보다 더 권위적이고 봉건적인 이미지를 보여주며, 거의 황제(皇帝) 정도의 어감을 지닌다고 볼 수 있다.
흔히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한다. 우리가 평소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말'이란 실로 중요한 것이다. 공자도 "언불순 즉사불성(言不順, 則事不成)"이라 갈파하였다. 말이 순조롭지 못하면 곧 일이 이뤄지지 못한다는 것이다. 말로써 모든 일이 시작되고 이뤄진다.
'president'는 회의를 주재하는 사람... 탈권위적 용어대통령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대통령 개인 그 자신부터 그 주변 관료들 그리고 모든 국민들에게 부지부식 간에 대통령이라는 용어가 주는 이미지가 깊이 각인되고 세뇌시킨다. 예를 들어 'president' 본래 의미대로 '국가 의장'이라는 용어와 '대통령'이라는 용어를 비교해보면, 어감과 이미지가 전혀 달라진다.
잘 알려진 바대로, 'president'는 원래 'preside(회의를 주재하다, 의장으로 행하다)'로부터 유래된 용어이다. 본래 미국에서 최고통수권자의 호칭에 굳이 이 용어를 사용한 까닭은 시민혁명을 거쳐 유럽과 달리 신대륙의 실질적 민주주의를 지향한다는 자긍심을 가졌던 미국으로서 권위적이고 민중 위에 군림하는 성격을 지닌 '황제'나 '왕'이라는 용어 대신 민주적인 성격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였다.
반면, '대통령'이라는 용어는 강력한 지배와 통솔의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president'라는 용어를 사용하려던 원래의 취지와 완전히 상반되는 번역 용어라 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잘못된 번역어이다.
실제 자기 나라 최고 통수권자를 대통령으로 호칭하는 나라는 우리나라 외에 존재하지 않는다. 일본은 대통령이라는 번역 용어를 만든 나라이지만 내각 수상이 있을 뿐 정작 이 '대통령'이라는 직위가 없다.
대표적으로 잘못 번역된 '대통령'이라는 용어'대통령'이라는 용어는 '통령(統領)'으로부터 비롯된 말이다. '통령(統領)'이라는 용어는 일본에서 고대 시대부터 사용되고 있었다. 일본에서는 '통령'이라는 용어가 '무문(武門)의 통령', '사무라이 무사단의 통령' 등 '사무라이를 통솔하는 우두머리'라는 군사적 용어로 사용되었으며, "阿蘇氏 武家의 통령이 되었다"는 등에서 볼 수 있듯이 군사적 수장이나 씨족의 족장을 의미하는 용어로 매우 흔하게 사용되었다.
뿐만 아니라 여왕용(女王龍)의 신화 등에서도 그 여왕용을 수행하는 기사(騎士)를 '통령'으로 호칭하였다. 심지어 문제의 신사(神社)와도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데, 예를 들어 '비조(飛鳥) 신사(神社)'를 설명할 때에도 그 신사를 수호하는 신(神)으로서의 '대국주신 통령(大國主神統領)'이라는 말이 출현하고 있다.
또한 일본은 '통령'이라는 용어를 다른 나라의 직위를 설명하는 번역어로 이용해왔다. 이를테면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중국의<수호지>에 나오는 양산박의 두령 송강(宋江)을 '통령'이라 지칭하고 있고, 로마 시대의 '집정관(consul)'이라는 직위도 '통령'이라고 번역하며, 또 십자군전쟁 당시 '46대 베네치아 통령'이라고 부르고 있는 사례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통령'이라는 용어를 애용해왔다.
특히 나폴레옹이 쿠데타를 일으켜 '통령'에 취임하여 '통령정부'를 구성했다고 한 사실은 우리에게도 매우 잘 알려져 있지만, 이 모두 일본식 번역어이다.
일본은 'president'를 번역하면서 자신들에게 너무도 익숙한 '통령'이라는 용어에 "클 대(大)" 자 한 글자를 더 붙여서 '대통령'이라는 용어를 만든 것이다. 그리하여 최소한 1860년대 초부터 일본에서는 이미 '대통령'이라는 용어가 출현하기 시작하고 있다. <일본국어대사전>에는 1852년에 출간된 <막부 외국관계 문서지일(文書之一)>에서 처음 출현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대통령' 직함, 이승만이 스스로 처음 '무단' 사용"'통령'이란 중국에서 1894년 "청일전쟁 때 북양함대의 해군 丁통령과 육군 戴통령이 뤼순에서......"라는 문장에서 알 수 있듯이 청나라 후기 무관 벼슬의 명칭인 근위영 장관(近衛營長官)으로서 오늘날의 여단장에 해당한다. 당시 통령은 여단장급이고, 통제(統制)는 사단장급이었으며, 통대(統帶)는 군단장급이었다. 갑신정변 당시 조선에 진주한 청나라 위안스카이(袁世凱)의 상관이었던 우창칭(吳長慶)의 직위가 바로 이 '통령(統領)'이었다.
우리나라의 기록에서 '대통령'이라는 용어는 신사유람단으로 일본에 다녀온 이헌영이 1881년 펴낸 <일사집략(日槎集略)>이라는 수신사 기록에서 처음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글에서 일본 신문이 "미국 대통령"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는 것이다. 그 뒤 1884년 <승정원일기>에서도 고종이 미국의 국가 원수를 '대통령'이라고 호칭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이라는 용어를 본격적으로 사용하게 된 계기는 바로 상해 임시정부의 이승만이 스스로 대통령이라는 명칭을 사용한 때부터 비롯된다. 당시 상해 임시정부는 국무총리 제도였고 한성정부는 집정관 총재라는 명칭을 사용하여 대통령이라는 호칭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음에도 이승만은 '무단으로' 대통령이라는 직함을 사용하였다.
이에 도산 안창호가 이승만에게 대통령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말라는 항의 서한을 보내기도 하였지만, 이승만은 그 요청을 거부하였다.
대통령 명칭의 대안을 찾는 작업 계속 진행해야 '대통령' 용어의 대안으로서는 역사적으로 살펴보자면, 우선 임시정부의 원수(元首)로 사용되던 '국무령(國務領; 1926년 12월, 김구 선생이 임시정부 국무령에 취임하였다)'이나 '주석(主席; 1932년 9월, 김구 선생이 임시정부 주석에 취임하였다)'이라는 용어가 1차적 고려 대상으로 떠오를 수 있겠다.
그런데 '주석'이라는 호칭은 'president'의 본래 의미와 가장 가까운 장점이 있으나, 중국이나 북한 등 국가에서 사용하는 바람에 이미지가 좋지 않아 사실상 불가능하다. 한편 중국에서 사용하고 있는 '총통(總統)'이라는 용어는 박정희 정권 당시 영구집권 시도로서 총통제가 거론되었던 역사로 인하여 '총통'이라는 용어에 대한 이미지가 크게 훼손된 바 있다.
'president'의 본래 의미를 살려 단순히 '국가 의장'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좀 생소하지만, '수사(首事)'라는 용어도 고려할 만하다. '수상(首相)'의 '수(首)'와 '지사(知事)'의 '사(事)'를 합하여 만든 용어이다.
대통령 명칭의 대안을 찾는 작업은 계속 진행되어야 한다. 이 길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왜곡된 현실을 바로잡는 시작일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소준섭 박사는 중국 상하이 푸단대학에서 국제관계학 박사를 받았고, 그간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 등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해왔다. <직접민주주의를 허하라>, <대한민국민주주의처방론> 등 여러 권의 책을 펴냈다. 유신반대 운동으로 수배, 구속된 바 있고, 서울의 봄 때 다시 수배되어 광주항쟁 전 과정을 <광주백서>로 기록하고 지하에서 출판 배포하기도 했다. 시민이 만들어가는 민주주의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