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0일 이성계 철도노조 호남본부장이 SNS에 '감사의 글'을 올렸다.
"장기파업을 마치고 현장투쟁으로 전술전환을 하기로 결정한 바, 9일 오후 2시부로 업무에 복귀합니다. 우리 힘이 모자란 것이 아니라, 황당한 정국에 성과연봉제의 결판을 못보고 현장에 들어가는 조합원들은 만감이 교차합니다. 그동안 연대해 주시고 힘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철도노조의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2라운드 기대해 주십시오."2013년 겨울, 수서발 KTX 민영화 저지를 위한 23일간의 철도노동자들의 파업투쟁이 있었다. 2016년 9월 17일부터 시작된 74일 간의 파업은 2013년의 기록을 뛰어넘어 철도노조 사상 최장 기간 파업이었다.
무엇이 철도노동자를 그 긴 시간 동안 파업투쟁으로 이끌었는지, 그 투쟁 끝에 조합원들은 어떤 심정일지 궁금했다. 이성계 본부장을 만나 '감사의 글'의 속내를 들었다.
"철도에서 성과연봉제를 하겠다는 것은 철도를 돈벌이 수단으로 삼겠다는 것"- 이번 파업투쟁의 주요 구호는 '성과연봉제-성과퇴출제 저지' 였습니다. 국민들 입장에서는 공기업 이기주의라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이 문제가 공공철도를 지키는 것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요? "성과연봉제라는 것은 실적을 중심으로 직원들을 일등부터 꼴등까지 경쟁시키는 시스템입니다. 당연히 실적은 회사의 목표량이 되고, 실적의 기준은 회사가 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공공부문은 과연 어떤 실적을 낼 수 있습니까?
공공부문의 상품은 공공서비스입니다. 실적을 내라는 것은 돈을 버는 것으로 성과를 내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이번에 파업을 함께 한 서울대병원의 경우, 실적을 내라는 것은 의료보험 적용 안되는 진료를 많이 하고, 과잉진료를 하라는 말과 같습니다.
한전에서 실적을 내는 방법은 서민들에게 전기세를 많이 걷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올 여름 서민들은 전기세 누진세 폭탄을 맞고, 한전은 사상유례없는 흑자를 본 것입니다.
공공부문은 일반 사기업과 다릅니다. 대부분 공기업에서 회사 임원급들이 성과연봉제를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성과를 내기 위해 정규직 대신 비정규직을 사용하여 비용을 절감하고, 노사관계 점수 등으로 실적 기준을 매깁니다.
철도에서 성과연봉제를 하겠다는 것은 철도를 돈벌이 수단으로 삼겠다는 것이고, 직원들에게 경쟁을 시켜 연봉 몇 백만원 차이를 두겠다는 비인간적인 인권 침해 시스템을 도입하겠다는 것입니다."
"성과연봉제 도입은 곧 업무의 외주화, 민영화로 이어질 것"- 성과연봉제에 대해 조합원들의 체감 온도는 어땠는지요? "우리 철도 직원들은 직감으로 압니다. 성과연봉제 도입으로 철도가 할 수 있는 것은 업무의 외주화, 민영화이다. 이를 통해서 비용을 절감하고 돈벌이를 하려는 것입니다. 외주화, 민영화는 철도안전문제와 직결됩니다. 그러니 절대로 안되는 것이지요.
조합원들이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철도 선로작업을 5명이 협업해서 하는데, 성과연봉제가 도입되면 내가 선배지만 너한테 기술 노하우를 주겠냐?' 이런 말도 안되는 상황을 만들 수 없다고 합니다.
기관사들의 경우 정시율(제 시간에 기차가 역에 도착하는 것)과 사고율 등을 따져 물어 개인을 비교하고 소속으르 비교하고 본부를 비교해 평가점수을 내고 실적을 높이기 위한 크고 작은 사고를 은폐하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불편하지 않는 파업의 진실- 철도파업 초기에 '불편해도 괜찮아'를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다 열차가 거의 정상 운행되고 언론에 제대로 보도조차 되지 않은 모습을 보면서 '불편하지 않아서 문제다'라고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철도는 필수공익사업장입니다. 파업에 들어가도 필수유지업무 인원이 있습니다. 철도 노사의 필수유지업무 운영안에 따르면 노조가 파업을 할 경우 1만8372명의 출근 대상자 중 필수유지 인력인 8460명은 일을 해야 합니다. 즉 이번 파업에는 필수유지업무 인력을 제외하고 75백여명 정도가 참여했습니다.
특히 여객열차의 필수유지업무 인원은 60%, KTX의 경우 80% 가까이 됩니다. 노조가 파업에 들어가자 철도공사는 대체인력을 투입했습니다. 유사시에 대비한 기관차 분야 팀장, 소속마다 대기인원 관리자들을 엄청 뽑아 KTX 면허증을 따게 하고 훈련을 시켰습니다. 여기에 특전사 군인들에게 면허를 따게 하고, 훈련을 시켜 대체인력으로 투입했습니다.
필수유지업무 비율이 지나치게 높고 대체인력 투입이 가능하게 했다는 것 자체가 파업을 무력화하는 것입니다. 파업권을 제대로 보장하지 않기 때문에 노동기본권에 정면으로 위배욉니다. 이런 이유로 열차 운행률이 정상이고 '불편하지 않은 파업'이 진행된 것입니다.
"크고 작은 안전사고 은폐에 급급했던 철도공사"- 특전사가 기관사 대체인력으로 투입되었단 말이죠?"기관사가 되려면 예전에는 부기관사를 뽑아서 훈련과 경력을 쌓은 후에 자격을 얻어 기관사 시험을 봤습니다. 그런데 허준영 사장 시절에 면허제 발급으로 외부에 열리게 되었고, 철도파업에 대비해서 특전사 군인들에게 기관차 면허증을 따게 한 것입니다.
대체인력에 군이 투입되는 문제와 관련하여 국방부 내부 규정에 보면 '사회적 재난에 해당될 경우 군 인력을 투입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 문제를 국회입법조사처에 질의했고 '현재 철도파업은 사회적재난에 해당되지 않는다'라는 답을 받았습니다.
특전사의 면허증과 일명 '장롱면허'라고 부르는 관리자들의 면허증 등 국민 안전을 위협하는 대체인력 투입으로 '불편을 주지 않는 열차 운행율 90% 파업'이 된 것입니다. 더욱 큰 문제는 철도안전을 무시한 대체인력 투입으로 크고 작은 열차안전사고가 일어났지만 공사는 은폐하기에 급급했다는 점입니다."
- 현장투쟁으로 전환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우리 조합원들 정말 잘 싸웠습니다. 우리 투쟁의 정당성이 확보되었습니다. 아무런 문제의식도 없었던 국회의원들이 우리들의 파업으로 문제점을 인식하게 됐습니다. 성과연봉제는 노사합의에 의해 정당한 절차로 해야 한다는 인식까지 확산되면서 국회 차원 이슈화가 되는 상황에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졌습니다.
촛불 정국에 박근혜와 새누리당의 존재 자체가 실종되어 '공기업 성과연봉제 도입'이라는 정부 지침을 철회시킬 상대가 없어진 것과 같은 상황이 된 것입니다. 국정이 정상화될때까지 이 투쟁을 해야 되는 것인가? 조직을 정비하고 재충전하기 위한 현장투쟁으로 전환할 것인가? 많은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조합원들은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도무지 가슴으로 안 받아들여지는 것이죠"- 74일을 버틴 조합원들의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텐데요?"조합원들은 머리로는 이해하나, 가슴으로는 정리가 안되는 겁니다. 협상 상대가 사라져 현장투쟁으로 전환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74일간 보내왔던 시간들을 뒤로 하고 현장으로 들어가는 마음을 무어라 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정말 열 받죠. 이렇게 온갖 어려움을 이기고 열심히 투쟁했는데... 새누리당과 정부를 제외한 모든 세력들이 우리들 투쟁을 지지했고, 국정감사 기간 국회의 각종 상임위활동에서 성과연봉제와 관련한 국회의 입장 변화를 끌어냈습니다. 야 3당으로부터 '성과연봉제 전면 재검토하겠다. 불법 행위, 사고은폐 당사자, 장기파업으로 끌고 간 당사자. 기재부, 국토부장관, 홍순만 사장 등 국정 정상화 시 반드시 문책하겠다'라는 입장까지 끌어냈는데...
이렇게 들어가야 하는 허탈감, 속상함 등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들이죠."
"우리가 이런 세상을 물려줄 수는 없다! 싸워야 하지 않겠냐?"- 74일을 도대체 어떤 힘으로 이겨냈을까요?"조합원들에게 가장 큰 것은 '성과연봉제가 되면 우리는 끝이다' 라는 생각이었죠. '너는 얼마짜리 나는 얼마짜리, 너가 나가고 나면 내가 퇴출될 수 있겠구나' 이런 생각 가지고 사느니 싸워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아들뻘, 자식뻘 되는 애들도 들어오는데, 우리가 이런 세상 물려줄 수는 없다', '안봐도 훤하다. 정부는 공기업을 평가시스템 속에서 통제한다. 그 시스템이 얼마나 철도를 망치고 있는지 우리가 다 봤다. 파업 안가면 쓰겠냐?'라며 파업에 힘을 실어준 선배님들이 많았습니다.
조합원들은 다 아는 거죠. 현재 철도 상황에서 진짜배기 성과연봉제가 들어왔을 때 철도가 어떻게 될지 느낌으로 알기에 '철도도 끝이고 나도 끝이다'라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철도노조는 2000년도에 민주노조가 들어서고 나서 2001년, 2003년, 2006년, 2009년, 2013년 국가 정책에 대항해서 계속 싸워 왔습니다. 16년간의 역사 속에서 이렇게 저항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철도노동자만의 DNA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매번 수백명의 징계, 백억이 넘는 손배가압류, 해고에도 불구하고 또 싸우는 이유는 '그나마 싸웠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존재하는 거다' 라는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도 99명의 해고자가 있습니다. 조합비의 50% 이상이 해고자를 위해 쓰입니다. '해고자들이 있어 우리가 있는 것이다'라고 묵묵히 의리를 지키는 조합원이 있습니다.
다른 노조에 비하면 그 속에서 생긴 확인된 의리와 노조에 대한 신뢰도가 높기 때문에 74일을 이겨낸 거 같습니다. 특히 어용노조를 겪었던 선배들은 '민주노조가 있어 우리가 이만큼 존재하고 노조가 한다는데 밀어줘야 한다'는 마음이 강합니다."
"학원도 끊고 적금도 끊었지만 묵묵히 이겨냈다"
- 많은 사연과 감동적인 이야기들이 있었을 텐데요?"파업 조합원 생계 문제가 심각했습니다. 이런 어려움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 조합원들이 임금형평성 기금(필수유지업무에 배치된 조합원들이 자신들의 임금 일부를 파업 조합원 생계를 위해 내는 기금)을 결의했습니다. 이는 자기 월급의 절반에 해당하기도 하지만 90%가 동의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조합원들이 경제적으로 힘들다 보니까 아이들 학원도 끊고 적금도 깨고 대출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다들 아무런 내색하지 않고 묵묵히 견뎌냈지요. 어떤 지부에서는 정말 경제적으로 힘든 조합원을 위해 몇 천만원, 몇 백만원씩 대출을 받아 건네주기도 했습니다.
다들 힘들었지만 탓하지 않고 서로를 도와가며 함께 가기 위해 몸살을 친 것입니다.
농민회를 비롯해서 지역의 진보, 노동, 시민사회단체에서 쌀 640포대를 촛불집회때 전달해 준 적이 있습니다. 한 포대씩 파업 조합원들에게 나눠 줬는데 대부분 현장에서 일하는 조합원들을 위해 떡을 만들어서 돌리고, 시골에서 농사 안 짓는 조합원에게 몇 포대를 몰아주는 등 정말 훈훈한 소식들이 넘쳐 났습니다.
2013년 국민 파업에 대한 자긍심과 의무감이 조합원들에게 있는 것 같아요. 각종 봉사활동, 집단 헌혈, 농촌봉사활동 등 다양한 활동들도 열심히 하고, 촛불집회의 든든한 참여자로 파업투쟁의 나날을 이어갔습니다. 지역 차원에서 철도투쟁을 지지하는 격려와 후원금도 많이 들어와서 더욱 감사합니다."
- 성과연봉제 저지 투쟁의 2라운드를 준비하겠다고 했는데요?"철도공사는 성과연봉제를 노조와 합의도 없이 불법적인 이사회를 강행하여 2017년부터 일방적으로 시행한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직 우리의 투쟁은 끝나지 않았고, 성과연봉제를 저지하기 위한 제 2라운드 싸움을 지금부터 준비할 것입니다.
12월 넘어가기 전에 필수유지업무 인원 명단을 교체하고 투쟁을 준비할 것입니다. 현재 성과연봉제와 관련해 법원에 제기한 '취업규칙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 결과가 12월 말 나올 예정이기 때문에 가처분에 최대한 승소할 수 있도록 매진할 것입니다."
"더욱 많이 응원해 주시고, 74일 간의 투쟁을 기억해 주시라!"- 마지막으로 국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74일 동안 우리 조합원들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무노동 무임금 적용에 생계도 힘들었을텐데 묵묵히 함께 했고, 이번 파업으로 251명이 직위해제 됐습니다. 현재 철도노조 해고자가 99명입니다. 철도공사의 징계 절차가 시작되면 또 다시 해고자가 발생하게 될 상황이 올 거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간부들은 담담한 편입니다.
정말 잘 싸웠지만 현장투쟁으로 전환할 수 밖에 없었을 때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국민여러분이 많이 응원해 주시고, 위로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잊지 말아 주십시오. 전국 곳곳에서 철도노조의 깃발을 들고 국민촛불과 결합했던 철도노동자들을 기억해 주셨으면 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인터뷰 기사의 일부는 순천광장신문에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