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들이 만든 세상에서 우리가 이렇게 힘들게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나라를 바꿔 나가려고 하는데 왜 욕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욕을 하시려거든 먼저 이 나라를 더 좋게 바꿔 놓으셔야 그런 욕을 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 유투브 사용자가 지난 18일 올린 영상 속 학생은 '당차다'는 표현이 아까울 정도였다. 이
'박사모 막말에 이쁜 여고생 핵사이다, 핵주먹 날리다'란 영상에는 "박원순이 어린애들까지 (촛불집회에) 동원해서 햄버거 일주일 치 무료로 제공해준다"고 주장한 어느 보수집회 참가자의 '망언'에 반박하는 한 학생의 논리정연한 발언이 담겨 있었다.
"학생들 스스로 자기 의지대로 분노해서 나온 겁니다. 어이없네요. 돈을 받은 건 저희가 아니라 그쪽 아닐까요? 배후요? 배후는 아마 국민이 아닐까 싶습니다."어른들이 망친 이 나라를 아이들이 바꾸겠다는데 왜 욕을 하느냐는 이 학생의 말에 "너희는 공부나 해라", "가만히 있으라"고 답할 수 있는 어른이 얼마나 될까. 이른바 '세월호 세대'인 이 학생들이 광장으로 쏟아져 나온 것은 이번 국정농단 사태가 자신들의 '생존'과 직결돼 있음을 직감해서일 테다.
"학생들이기 때문에 정유라의 부정입학에 가장 분노하는 것 같습니다. 공부보다는 이 시국에 분노해서 나온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이 나라에서 공부해서 무슨 소용입니까. 지금 이 시국에서 공부를 해도 미래가 안 보이는데, 일단 미래를 먼저 만들어야 공부를 해도 소용 있는 나라가 아닐까 싶습니다. 저희가 (미래를)만들어 가야죠." 어버이연합·박사모, 구시대의 유물로 박제해야
그렇게,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오는 대학생들은 물론 중고등학생들까지도 초유의 국정농단 사태가 끼친 해악과 심각성, 그리고 향후 과제에 대해 공부를 하고 숙지를 하고 있는 상태라 할 수 있다. 8차에 걸친 촛불집회에서는 '청소년 연대'와 같은 깃발을 든 학생들의 행진과 시국선언이 이어졌고, 부모와 함께 소소하게 참가한 10대와 20대들을 매주 한가득 만날 수 있었다. 심지어 초등학생까지 연단에 올라 "박근혜 퇴진"을 외쳤고, "우리 안의 최순실"과 "우리 안의 박근혜"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매주 내고 있다.
보수단체의 맞불집회로 인해 충돌 우려가 제기됐던 지난 17일, 제8차 촛불집회에서 청와대 턱밑인 서울 종로구 삼청로 동십자각 북단까지 먼저 행진해 '박근혜 퇴진'을 외친 것도 중·고등학생들이었다. 하지만, '박정희 시대'를 겪었고, 박근혜 대통령을 여전히 "불쌍하다"고 하며, 종편이나 메신저 대화방의 유언비어, 보수단체의 일방적 주장 등 한정된 정보만을 가지고 이번 사태를 파악하거나 JTBC를 비롯한 특종과 단독보도들을 해석할 여력이 없는 일부 노년층의 행태는 목불인견 수준이라 안타까울 정도다.
정작 "햄버거 일주일 치 무료"라는 터무니없는 '무논리' 발언들을 내뱉는 저 보수집회 참석자들이 출퇴근 개념으로 움직이며, 돈을 받는다는 의혹들이 불거져 나오고 있다. 17일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 집회만 봐도, 그들이 휩쓸고 지난 자리에는 '쓰레기 장미'들과 버려진 태극기만 남았을 뿐이다.
식상하게 세대론을 들먹이고, 세대 간 대결 양상을 부추길 생각은 없다. 기본적으로, 이번 국정농단 사태와 박 대통령 탄핵, 변혁과 개혁의 요구는 지극히 상식적인 영역의 문제 아닌가. 그럼에도 그렇게 "나라를 망친" 일부 어른들의 경우, 반성은커녕 국민 95%가 반대하는 대통령을 두둔하고 나서며 아이들을, 학생들을 욕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박정희 체제'의 종식이라 일컬어지는 이번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 가결과 함께 노년층이 주를 이루는 '어버이연합'과 '박사모'는 구시대의 유물로 박제시킬 필요가 있다. 다행인 점은 이들 일부 노년층과는 달리 광장에 나온 10대와 20대 학생들이 빠르고 정확한 정보력을 바탕으로 건강한 목소리와 실천력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촛불집회로 촉발된 청년들의 목소리, 고맙고 다행이다
"박근혜 하야 집회에 거리로 나온 중고등학생들의 단체 '중고생혁명'과 2014년부터 2년간 교육제도 개혁을 위한 행동을 이어온 '중고생연대'가 2016년 12월 17일 통합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더욱 강력하고, 거대해진 힘으로 교육체제 개혁, 학생인권 보장, 청소년 선거권 쟁취 등 이 땅의 청소년들의 삶을 개선시키기 위해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의 활동을 통하여, 이 땅의 부조리한 교육체제를 개혁할 수 있고, 무너진 학생 인권을 다시 세워낼 수 있고, 여러분들의 삶을 바꿔낼 수 있습니다."지난 17일, 전국청소년혁명은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밝혔다. 이미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학생 회원 가입을 받고 있다. 단체의 주장에 따르면, 중고생혁명과 중고생연대의 회원을 합치면 2000명에 이른다고 한다. 1990년대 중후반 이후 명맥이 끊겼던 학생들의 자치 조직이 부활하는데 박 대통령이 혁혁한 공(?)을 세웠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지지율 0%의 굴욕을 안겨준 20대들의 움직임도 계속되고 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향한 국민적 공분에 불을 지폈던 이화여대 학생들은 지금도 특수 감금 혐의로 불구속 입건,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된 최은혜 총학생회장의 탄원 활동에 나서고 있다. 최 회장은 지난 7월 28일 이대 점거 사태에서 교수와 교직원 등 5명을 본관에서 감금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최 회장은 지난 16일 오후 서울 상암동 MBC 앞에서 열린 '비선실세 정윤회 아들 MBC 드라마 출연 특혜 비리 규탄 긴급기자회견'에 참석, "정윤회 아들은 권력자의 아들이란 이유로 MBC 사장과 드라마본부장 지시로 부정 캐스팅되고 주요 배역을 배정받았는데, 이는 정유라의 이대 부정 입학이나 학사 특혜와 똑같이 닮아있다"며 "오늘날 우리 청년들이 이렇게 힘든 이유는 권력자들이 권력을 사유화하고 대한민국 구석구석을 농단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한편, 이정현 전 새누리당 대표의 모교인 동국대 학생들의 남다른 '선배 사랑'도 눈길을 끌었다. 지난 16일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 앞을 찾은 '후배' 동국대 학생들은 "뻔뻔한 이정현 선배님, 손에 장 지질 시간입니다"라는 현수막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79학번인 이정현 선배의 '박근혜 사랑'을 비판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이들 10대와 20대들은 자발적이고 열성적으로 촛불집회를 참석하는 것을 넘어 이번 국정농단 사태와 박 대통령 탄핵안 가결 이후 한국사회를 어떻게 바꿔나갈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이고 개별적이고 세대적인 고민과 실천을 병행하는 중이다. 중고생들은 교육체제 개혁과 학생인권을, 동맹휴업을 성사시키기도 했던 대학생들은 촛불집회 참여와 함께 개별 대학을 기반으로 청년문제 해결에 천착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가는 중인 현 60대, 70대의 10대, 20대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는 정보력과 스펙을 지녔다. 윗세대들이 4.19와 5.18을 신문 한 줄로 접하거나 왜곡된 정보를 제대로 수정하지도 못했던 것과 달리 현 1020 세대는 '촛불혁명'과 '명예혁명'이라 일컬어지는 민의의 광장을 직간접적으로 '실시간 체험'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 '국민대통합' 시대의 언론을 통해 여론을 파악하고, 인터넷과 유투브, SNS를 통해 정보를 수집하며, 실시간 네트워킹으로 공동체를 구축한다. 그리하여, "박근혜 대통령이 싫어요"를 넘어 "우리가 미래를 만들어 가야죠"라며 참여와 연대를 도모하고 있는 것이다.
탄핵안 가결 이후, 보수층과 노년층을 주축으로 '박근혜 살리기'와 '보수대결집' 등이 고개를 들고 있는 형국이다. 박 대통령의 강렬한 저항이 이어지면서, 탄핵 가결 이후 이뤄내야 할 재벌·검찰·언론 개혁에 대한 열패감과 회의감이 언제 어떻게 여론을 장악할지 예측 불가의 상황이기도 하다.
그런 가운데 단 하나의 희망을 꼽자면, 바로 중·고등학생들을 비롯한 젊은 층의 실질적인 참여와 사회 변혁의 의지일 것이다. 일부 '세월호 세대'가 포함된 이들의 분노의 목소리야말로 이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든 어른들에 대한 제대로 된 죽비로 기능해 마땅할 것이다. "배후는 국민"이라고 당당히 말하는 아이들이, 학생들이, 청년들이 있어 다행이고,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