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인권운동을 하며 중요하게 여긴 활동 중 하나는 '의무 복무 중 사망한 군인의 명예회복'과 관련 활동입니다. 한 해 평균 27만여 명의 청년들이 군대에 입대합니다. 그리고 이들 중 평균 150여 명이 다시 그들의 가족에게 돌아가지 못한 채 죽어가고 있습니다. 특히 평균 100여 명의 군인은 군 헌병대 수사결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자살'로 처리됩니다.
하지만 유족들은 군 헌병대가 내린 '자살'이라는 결론을 동의하지 않습니다. 자살할 이유가 없다며 반발합니다. 이들은 군 복무 중 다른 이유로 사망한 것이라며 진상을 밝혀달라고 요구합니다. 하지만 군대에서 이 같은 유족의 요구가 수용되는 일은 없습니다.
군 헌병대는 관행적으로 사병 개인적 문제점을 먼저 찾아내 그것을 자살의 사유로 삼습니다. 예를 들어 사망한 군인의 집이 가난했거나, 아버지가 실직했거나, 입대 전 대학에 떨어진 사실이 있다면, 그리고 무엇보다 애인과 헤어졌다면 그것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자살의 원인입니다.
병사의 유족들에게 국가가 주는 단 두 가지
심지어는 사망한 군인의 관물대에서 나온 친누나 사진을 가지고 "이 여자와 헤어져 자살한 것'이라고 주장한 사례도 있습니다. 그렇게 무작정 부대의 책임은 없다며 밀어 버리는 것입니다. 결국 이러한 부실 수사결과가 유족의 불만을 사고, 이후 군 헌병대 수사에 불신을 품게 되는 큰 이유입니다.
한편, 이렇게 자살로 처리된 군인에 대해 이 나라와 국방부가 유족에게 해주는 예우는 무엇일까요? 저도 이 사실을 안 후 많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놀라지 마십시오. 국방부는 군인이 자해로 사망할 경우 딱 두 가지만 내줍니다. 하나는 죽은 아들의 시신, 그리고 자살을 인정하는 경우에만 지급하는 '위로금 500만 원'이 전부입니다.
사람 목숨값이 고작 500만 원이라니요? 하지만 이조차도 사실은 2001년 이후에 생긴 제도입니다. 그 이전까지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단 1원도 위로금으로 지급하지 않고 그저 사망한 아들의 시신 한 구를 화장해 주는 것으로 책임을 다했습니다. 이것은 국가라는 이름의 '또 다른 폭력'입니다.
'가고 싶어 간 군대가 아니고, 보내고 싶어 그 부모가 보낸 군대도' 아닙니다. 국가의 부름에 싫지만 '거부할 수 없어' 국민의 의무로 응한 것입니다. 그런데 국가가 그런 국민의 죽음을 너무도 형식적으로 대하고 그 책임마저 회피해 버리는 것이 말이 되나요?
하다못해 거리에 주차되어 있는 차를 훼손했을 경우로 생각해 봐도 말이 안 됩니다. 실수로 누군가의 차를 파손해도 온전히 책임져야 합니다. 과실이든 아니든 완벽하게 차를 수리해 주는 것이 당연합니다. 만약 고의적 행위라면 재물 손괴죄까지 형사 처벌도 받아야 합니다.
이처럼 하찮은 쇳덩어리 조합물에 불과한 자동차에도 최선을 다해 그 피해를 보상하면서 어떻게 사람이 죽은 일에 대해 이처럼 무책임할 수 있나요? 어떻게 그런 사람의 죽음에 대해 중고차 한 대조차 구입할 수 없는 돈을 주면서 '나머지는 모르는 일'이라고 회피할 수 있단 말인가요?
저는 이러한 국방 정책에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다행히 지난 2015년 1월부터 국방부 장관의 위로금 500만 원에 약간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제가 일하던 국회 김광진 의원실에서 이 문제를 따져 생긴 변화입니다. 애초 김광진 의원이 요구한 액수에는 크게 미치지 못했으나 2015년 1월부터 기존 500만 원이 아닌 1500만 원으로 3배 인상된 것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멉니다. 위로금액 인상보다 더 중요한 일은 사실 '의무 복무 중 숨진 군인에 대해' 국가와 국방부가 책임지고 그 명예를 회복시켜 주는 겁니다.
그런데 제가 이런 주장을 하면 어떤 분들은 또 이런 말을 합니다. '요즘 군대가 참 좋아졌다'는 말입니다. 예전에 비하면 군대도 아니라고 합니다. 잠자는 것도, 밥 먹는 것도 너무 편해서 그야말로 호텔이고 또 캠핑가는 것이라고 침을 튀깁니다.
"그런 군대가 뭐가 힘들고 괴롭다며 죽냐? 다 부모가 자식 나약하게 키워서 벌어지는 일이다. 자업자득"이라며 독기 서린 표정으로 되받아 치는 경우도 봤습니다. 그럴 때마다 제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치밀어 올라오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좋다는 군대를 왜 우리나라 재벌들과 정치인, 그리고 언론인과 고위 공직자의 아들, 심지어 유명 연예인의 아들 역시 가지 않으려고 그렇게 안간힘을 쓰나요?"국회 김광진 의원실에서 일하던 2013년에 병무청으로부터 자료를 제출받아 분석해 보니 놀라웠습니다. 2008년부터 2012년 사이 5년 동안 우리나라에서는 국적 변경을 통해 병역을 면제받은 국민이 모두 1만7000여 명에 달했습니다. 대부분 미국이나 캐나다 등에서 태어난 이중 국적자로서 군 입대를 앞두고 대한민국 국적을 포기하는 방식으로 병역 의무를 회피한 것입니다.
이러한 1만7000여 명 중 절대다수는 소위 이 나라 '사회지도층' 자제입니다. 특히 박근혜 정부 하에서 고위 공직자로 일하는 자녀의 상당수가 여기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중에 가장 눈길을 끄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장남과 차남 모두 캐나다에서 낳은 후 국적을 선택하는 나이가 되자 모두 캐나다로 국적을 변경하여 병역을 면제받은 고위 공직자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러한 사람들을 비난하지 않겠습니다. 누구나 가기 싫어하는 군대이니 그런 합법적인 방식으로 군 입대를 회피한 것을 비난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만, 이것 하나만은 꼭 기억해 줘야 합니다. 그들이 회피하여 부족해진 병력 자원을 채우기 위해 이 나라 서민의 아들들이 가서는 안 되는 곳에 보내졌다는 사실 말입니다.
그래서 10년 전, 징병 기준이었다면 군 입대를 면제 받을 수 있었던 신체 조건을 가진 이들이 대거 군대로 끌려간 사실만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군대에 간 이들은 결국 신체적 한계와 고통 끝에 목숨을 끊으며 그들의 가족에게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평균 100여 명. 이렇게 잃게 된 아들의 시신을 붙잡고 오열하며 실신하는 또 다른 어머니들이 있음을 그들은 기억해야 합니다.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는 것은 '야만'
그래서 저는 '의무 복무중 숨져간 모든 군인의 명예회복을' 국가와 국방부가 책임져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합니다. 병역 이행이 당연한 국민의 의무라면, 국가 역시 그렇게 징병한 군인이 죽으면 그에 대한 책임을 분명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그것이 국가가 담당해야 할 '또 다른 신성한 의무'임을 인정해야 공정한 것입니다.
세월호 참사로 어린 학생들이 채 피어보지도 못한 생을 다했습니다. 그렇기에 많은 국민들이 더 아파하고 힘들어했습니다. 진심으로 위로를 전합니다. 지금 군에서 죽어가고 있는 그 군인들도 그렇습니다. 머리 깍고 군대에 들어가는 군인들은 고작 스무살에서 스물 한두 살에 불과합니다.
여전히 과자를 좋아하고 아이스크림과 핫도그를 좋아하는 천진난만한 나이. 하지만 세계에게 유일한 분단 국가에 태어난 죄로 군대에 끌려가 한 해 100여 명씩 자살로 처리되어 죽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군대에 간 아이들은 매일 사람을 죽이는 훈련을 합니다. 총을 쏘고 칼로 상대방의 목을 찌르는 훈련을 강요 받습니다. 어느 날은 자기 몸무게 절반에 가까운 군장을 메고 100킬로미터가 넘게 행군합니다. 이런 훈련이 누군가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을지 모르겠으나, 다 똑같은 체력을 가진 것은 아닙니다.
누군가에는 정말 죽음보다 더 고통스럽고 괴로운 일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 "나는 왜 이렇게 체력이 약한지 모르겠다. 나로 인해 연대 책임을 지는 소대원에게 미안하다"며 유서를 쓰고 목숨을 끊은 군인도 있었습니다.
이보다 더 심각한 것은 군대 폭력입니다. 국방부는 부인하지만 군대 폭력은 결코 사라질 수 없습니다. 고참과 쫄병으로 구성된 군대에서 드러나지 않는 하급자 구타와 가혹행위 속에서 절망에 빠진 군인들이 해결할 방법을 찾지 못해 죽음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지난 2012년 10월 서울 용산구에서 외박 나온 한 사병 역시 그래서 목숨을 끊었습니다.
군 헌병대는 이 군인 역시 개인적 요인으로 자살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죽은 군인의 여자 친구가 진실을 폭로했습니다. 고참 13명 중 9명이 일일 식단표를 외우게 했고, 이를 못 외웠다는 이유로 매일 원산폭격과 구타, 그리고 인격적 모욕을 가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죽음에 대해서도 국방부는 500만 원의 사망 위로금만 지급하고 끝냈습니다. 스스로 목을 맨 것은 자살한 군인 책임이라는 것입니다. 정말 그런가요? 이것은 '야만'입니다.
대한민국의 모든 군인은 우리의 아들입니다. 그런 아들이 제 삶을 다 살지 못하고 우리 곁을 떠나가고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죽어간 아들을 다시 살리지 못한다면 그 아들의 명예만이라도 다시 태어나게 하고 싶습니다.
그러려면 잘난 아들이든, 그렇지 못한 아들이든 그 아들의 명예를 우리 사회와 국방부가 책임져야 합니다. 오늘 저는 '푸른 군복'을 입고 죽어간 모든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그들이 흘린 마지막 눈물을 닦아주고 싶습니다.
연극 <이등병의 엄마>가 그 군인들의 이름을 무대에서 부르겠습니다. 마지막 순간에 외롭게 죽어간 그들을 생각하며 뜨거운 마음으로 엄마가 노래할 것입니다. 연극 <이등병의 엄마>는 대한민국의 모든 군인을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