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크리스마스 이브를 수놓은 광장의 촛불은 사뭇 감동적이었다. 비록 개인적인 사정으로 10주 연속 참여할 순 없었지만, 영상으로 확인하는 방송인 김제동씨의 만민공동회와 헌법 강의, '너의 목소리가 들려'를 '국민의 목소리가 들려'로 개사한 에브리싱글데이를 비롯한 음악인들의 무대 등이 만들어낸 촛불집회 분위기는 오는 31일 촛불집회를 기약케 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에 앞서 두 눈을 의심할 만한 보도 사진이 있었다. 바로 '포승줄에 묶인 손석희' 사진이다. 지난 24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탄핵반대를 집회를 연 박근혜 대통령 지지자들이 '죄명 조작보도 내란선동'이란 글귀와 함께 푸른 수의를 입고 포숭줄에 묶인 JTBC 손석희 보도부문 사장의 합성 사진을 집회 내내 드높였다.
비단 손석희 사장이어서가 아니었다. 포승줄에 묶인 박근혜 대통령의 사진과 대구를 이뤄내려는 탄핵반대 집회 참가들의 노력이 가상해서도 아니었다. 같은 시각, 다른 공간에서 연출된 집회 현장에서의 영화 같은 교차야 박근혜 정권 이래 일상이 된 풍경이지만, 이날 탄핵반대 집회 참가자들이 든 피켓 구호는 특히 처절했다. 이들의 정치적 지향과 멘탈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깨끗한 놈 나와 봐라!""우리 대통령님은 하늘의 천사""내란 선동 탄핵 원천 무효""우리 대통령님은 하늘의 천사"라는 일부 노년층의 저항
일면으론 박 대통령이 역대 대통령 중에서 가장 깨끗할 수 있겠다. 외부에서조차 수시로 개인용 변기를 사용했다는 등 박 대통령이 화장실 청결에 집착했다는 주장이 속속 나오고 있지 않은가. 지난주 "박근혜 역대 대통령 중 가장 깨끗한 대통령"이라는 구호가 등장한 데 이어, 24일엔 "우리 대통령님은 하늘의 천사"라는 구호까지 등장했다. "비박은 신분세탁 변절자들"이라는 문구는 차라리 솔직해서 귀여울 정도다.
이쯤 되면, '친박교'나 다름없다. 안타까움을 넘어 걱정이 들기 시작한다. "깨끗한 놈 나와 봐라!"는 전형적인 정치혐오를 조장하는 구호가 아닐 수 없다. 이들의 구호에 근심이 들기 시작한 이유는 그저 탄핵반대를 외치는 것을 넘어 점점 과격해지고 '광신도'화 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어서다. '손석희 포승줄' 사진이나 "우리 대통령님은 하늘의 천사" 같은 구호를 보라.
이미 이들은 '친박교' 아니었느냐고? 전경련의 '용돈'에 동원됐다던 어버이연합이 박사모나 엄마부대로 이름을 달리한 것 아니냐고? 맞다. 부인하기 힘든 정황이나 보도도 지속돼 왔다. 그럼에도, 이 같은 과격화를 경계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촛불집회가 9차까지 이어지는 와중에, '4% 대통령'인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고립무원인 상태다. 탄핵소추안이 가결되고 직무가 정지되면서, '샤이 박근혜'를 염원했던 박 대통령 측의 기대도 무참히 깨졌다.
지난 23일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탄핵 정국 속 보수층의 박 대통령 지지율은 11월에 9%였다. 그나마 12월 들어 8%로 더 떨어졌다. 박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대구·경북(TK) 지역 역시 다르지 않았다. 11월에 7%, 12월에 9%를 기록했다. "TK가 대통령 박근혜를 버렸다"는 표현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새누리당 지지율 역시 11월에 16%를 찍더니, 12월엔 14%까지 내려앉았다. '콘크리트 지지층'은커녕 박 대통령의 일부 극성 팬 만이 남았고, 보수층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는 셈이다. 연령별로 봐도 참담하긴 마찬가지다. 전 세대 한 자리 수는 기본이요, 60대(9%)와 50(6%)를 제외하곤 1%(19-29세)~2%(30대, 40대)를 맴돌았다.
근심은 이들에게 향한다. 오로지 태블릿PC 보도는 물론 불과 1년 전, 아니 국정농단 사태 전까지도 박 대통령이 유달리 챙겨 봤다던 여론조사 결과까지 조작이라고 외치는 이 탄핵반대 집회 참가들과 그와 유대감을 갖는 일부 보수·노년층 말이다. 이들만이 박 대통령과 친박'을 옹호하고 있는 형국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들을, 이들의 정치적·정서적 취약함을 이용하는 세력들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점이다.
"종북 피해망상증" 김진태의 오늘
"안녕하세요? 김진태 의원입니다. 실물을 보니까 그렇게 무섭게 안 생겼죠? 대한민국에서 좌파들한테는 제일 많이 욕먹고 있지만 애국시민들한테는 응원도 제일 많이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맞습니까? 저는 촛불이 바람불면 꺼진다고 했다가 곤욕을 치렀습니다. 그럼 촛불에 타죽고 싶냐, 보수를 불태워버리자는 말은 막말 아니고 덕담이란 말입니까?"지난 17일에 이어 24일에도 탄핵 반대 집회에 참석한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의 연설문 서두다. 이날 김진태 의원은 연단에 올라 탄핵 기간을 장담하고, '세월호 7시간'을 생트집으로 몰아가고, '최순실 태블릿 PC'의 진위를 흔들고, 비박계의 탈당을 비토했다. 이날 탄핵반대 집회에 참석한 여당 정치인은 김진태 의원이 유일했다.
이 같은 김진태 의원의 '박근혜 탄핵 반대' 바라기는 같은 날 "박근혜, 김진태 모두 퇴진하라"며 촛불을 켠 본인의 지역구인 춘천 시민들의 목소리는 철저히 무시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이와 관련, 새누리당을 탈당한 하태경 의원은 지난 22일 방송된 JTBC <썰전>에서 이 김진태 의원을 향해 "종북 피해망상증"이라고 일갈한 바 있다.
"김진태 의원도 공안검사 출신이고, 저는 그들에게서 수사를 받던 운동권 출신입니다. 조사받을 때 보면, 공안검사들이 모르는 데 굉장히 열심히 하거든요. 그들의 진영 인식을 보면, 모두 촛불집회에 나온 사람들이 종북세력이거나 선동에 놀아난 사람들로 봅니다. 이건 종북 피해 망상증이에요. 김진태 의원도 '자나 깨나 종북 척결 외친 게 죄냐'고 했는데 그건 병입니다."'언론개혁' 필요성 온몸으로 증명하는 보수·노년층
김진태 의원이 "자나 깨나 종북 척결"을 외친 게 죄인지 아닌지는 역사가 판단해줄 것이다. 그에 앞서 유권자들이 현명하게 판단할 테다. 그러나, "문재인은 이미 대통령 다 됐습니다"라거나 "혁명"이란 표현에 집착하는 김진태 의원의 행태가 그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점은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탄핵안 가결 이후 격렬하게 저항하는 보수·노년층의 멘탈리티가 바로 여기에 집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12월 한 달간, <TV조선>을 비롯한 종편 토크프로그램에 출연한 패널, 특히 70대 이상의 패널들이 이러한 '무논리'에 가까운 막말들을 쏟아내고 있다.
"우리 오천만 민족을 가난에서 구해 주고도 비극적으로 돌아가신 박정희·육영수 여사의 따님이면 설서 과오가 있더라도 좀 봐줘야 되는 거 아닙니까." (지난 2일 TV조선 <뉴스를 쏘다>에 출연한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총선이 3년 이상 남았는데 그때쯤이면 다 잊어 먹어요. 그러니까 이 친박들이 힘이 나는 거겠죠."(지난 13일 연합뉴스TV <뉴스일번지>에 출연한 이영작 서경대 석좌교수)"(문재인 전 대표가 불출마 선언을) 해야 되죠. 빨리 해야 국민이 위로를 받지. 따르는 다른 사람들이 있고, 내가 여론조사 하면 1위다, 2위다, 3위다 그게 무슨 소용이 있어요. 아니, 미국 정치 보세요. 트럼프가 무슨 지지를 받았어요? 여론조사하면 늘 밀렸어요."(지난 7일 TV조선 <박종진 라이브쇼>에 출연한 김동길 단국대 석좌교수)'종편때찌'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민언련이 팟캐스트 <김어준의 파파이스>에서 밝힌 관련 발언들 중 일부다. 70대 이상 패널의 발언이야말로 종편과 보도채널 주 시청층인 60대 이상 노년층의 공감대와 이해를 겨냥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김진태 의원의 발언 근거도 이들의 논리와 대동소이하지 않은가. 사실 이들의 지난한 활약(?)은 결국 종편이나 보도채널, MBC와 KBS와 같은 방송이라는 근거지가 존재하고, 일말의 지지자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종편과 이들 출연자들 모두 소위 '떡고물'을 나눠 먹는 사이란 얘기다.
'샤이 박근혜'는 근거 없음이 명백히 밝혀졌다. 하지만,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 기간만 장기화된다면, 박 대통령을 지지하는 50대 6%, 60대 이상 9%의 국민들을 기반으로, 대선국면을 바탕으로 '박정희 체제' '친박 세력'의 부활을 시도하려는 세력들이 여전히 기세를 잃지 않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제 이익에만 충실한 정권 부역자들, 정권 바라기라 할 수 있다.
보수집회에 등장한 '손석희 포승줄'은 그래서 상징적이다. 탄핵안 가결 이후 한국사회의 전반적인 변혁을 위해 언론 개혁의 필요성이 강력하게 대두되고 있다. 여전한 종편이나 최근엔 종편보다 더 심각한 MBC와 KBS를 맹신하는 이들 보수·노년층의 각성을 위해서라도, 언론 개혁은 반드시 성취해야 낼 과제다.
결과적으로, '박근혜 살리기' '문재인 때리기' 몰두하는 종편과 MBC, KBS 양대 지상파도 그간 고수해온 제 이익만을 유지하려는 말 그대로 동종 '보수'세력 아닌가. 언론개혁을 재벌개혁, 검찰개혁과 함께 반드시 이뤄내야 할 필요성이 더 뚜렷해진다.
덧붙이는 글 | 위 기사에 인용된 여론조사 결과는 모두 한국갤럽에서 조사해 발표한 것이며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확인할 수 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