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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퇴진 문화예술인 시국선언'(7,449명, 288단체 참여)이 11월 4일 오전 광화문광장에서 '우리 모두 블랙리스트 예술가다 예술행동위원회 주최로 열렸다.
'박근혜 퇴진 문화예술인 시국선언'(7,449명, 288단체 참여)이 11월 4일 오전 광화문광장에서 '우리 모두 블랙리스트 예술가다 예술행동위원회 주최로 열렸다. ⓒ 권우성

문화예술계에 대한 블랙리스트 파문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 중인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박근혜 정권이 자행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의 진상을 정조준하면서다. 지난 26일 특검팀은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집무실, 문체부 사무실 등 10여 곳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항간에 떠돌던 블랙리스트 문건을 확보했다. 또한 특검팀은 사건 수사 과정에서 블랙리스트 작성을 청와대 정무수석실이 주도했다는 관련자 진술까지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정무수석은 조윤선 현  장관이다.

애초 블랙리스트의 실체가 언론에 포착된 것은 지난 10월 경이었다. 당시 언론에 보도된 블랙리스트에는 세월호 시국선언 754명, 문재인 대선 후보 지지 선언 6517명,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지지 선언 1608명 등 문화예술계 9473명의 이름이 망라돼 있었다. 이와 관련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은 최근 CBS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 출연해 블랙리스트 작성의 배후가 김 전 실장과 조 장관이라고 지목한 바 있다.

방송에서 유 전 장관은 퇴임하기 한 달 전쯤 블랙리스트의 내용을 확인했고, 그 무렵 김 전 실장이 자신에게 "정권에 비판적인 문화예술인에 지원을 하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그는 당시 김소영 전 비서관이 A4 용지에 수백 명의 문화예술인 이름을 적어 조현재 전 문체부 1차관에게 전달하면서 "가서 유진룡 장관에게 전달하고 이걸 문체부에서 적용하라"고 지시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유 전 장관은 박 대통령이 블랙리스트를 알고 있었다는 내용도 폭로했다. 또한 조 전 차관이 김 전 비서관에게 블랙리스트의 출처를 묻자 "정무수석실에서 만든 것"이라고 답했다는 사실도 함께 폭로했다. 유 전 장관의 진술대로라면 블랙리스트가 김 전 비서실장의 지시로 정무수석실에서 작성됐다는 뜻이다. 이는 블랙리스트와 관련된 각종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있는 김 전 실장과 조 장관의 주장을 정면으로 뒤집는 것이다.

이와 관련 동아일보는 28일 대단히 흥미로운 사실을 보도했다. 특검팀이 블랙리스트의 작성 배후로 최순실씨를 주목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박영수 특검팀이 관련 혐의를 포착해 수사 중이며, 최씨가 박 대통령에게 블랙리스트의 필요성에 대해 말했고 박 대통령의 지시로 블랙리스트 작업이 진행됐다는 것이 그 얼개다. 정치·사회·경제 등을 막론하고 안 끼는 곳이 없는 '최순실'의 이름이 이번에도 여지없이 등장하고 있다.
특검 조사와 언론보도, 유 전 장관과 문체부 관계자 등의 진술을 종합해 보면 최씨가 자신이 진행하는 문화 관련 사업의 예산 확보와 원활한 사업 진행을 위해 블랙리스트 작성을 계획했고, 김 전 실장이 정권비판적인 인사들을 문건에 대거 포함시킨 것으로 추론해볼 수 있다. 여기에 김 전 실장의 지시를 받은 정무수석실이 블랙리스트 작성을 주도했던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박 대통령 역시 블랙리스트의 존재와 의미를 인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박 대통령의 헌법 위반 사례와 탄핵 사유가 또 늘었다는 얘기다.

유 전 장관은 김 전 실장이 등장한 2013년 8월 이후 청와대의 분위기가 급변했다고 전했다. 정부 비판적 인사에 대한 대대적인 검열과 제재의 중심에 김 전 실장이 있다는 의미다. 실제 김 전 실장이 부임한 이후 영화 <변호인>을 제작한 CJ에 대한 제재가 이루어지고, 세월호 정부 시행령 폐기 촉구 및 세월호 관련 시국선언, 야당 인사 지지 선언을 한 문화예술계 인사에 대한 블랙리스트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표현의 자유와 집회의 자유 등 시민권이 크게 후퇴한 시점도 바로 그 즈음이다. 유신시대를 관통하며 민주주의와 시민권을 말살한 구시대의 인물이 대한민국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고 있었던 것이다.

"나중에 아이가 크면 얘기해 줄 것이다. 아빠는 블랙리스트였다고. 그때 아이가 그게 뭐냐고 물었으면 좋겠다. 아이가 어른이 된 세상에서는" - 작곡가 김형석
"영광입니다, 각하. 일개 요리사를 이런 데 올려주시고" - 요리연구가 박찬일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중에 내 이름이 없으면 어떻하나, 하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명단을 살펴보았다. 참 다행이다" - 시인 안도현
"이거 참 송구스러울 따름입니다. 나도 넣어라, 이놈들아" - 가수 이승환

천인공노할 블랙리스트의 실체를 확인한 문화예술인들의 반응들이다. 정권에 의해 검열과 제재를 당하고, 표현의 자유와 정치적 자유마저 박탈당하는 엄중함 속에서도 저들은 위트와 반어로 현 상황을 역설적으로 꼬집고 있다. 그들의 '시크함'이 돋보이는 것은 시간을 거꾸로 돌리고 있는 권력의 횡포가 그만큼 천박하고 졸렬해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권력을 칼처럼 휘둘렀던 무지막지한 정권과 그들이 표적이 되었던 문화예술인들 사이의 간극이 이처럼 넗고 깊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분명한 사실 하나는 지금이 '불의'의 시대라는 점이다. 불의의 시대에는 그에 저항하는 사람들이 바로 '의인'이다. 기득권의 탐욕, 권력에 부역하는 공모자들의 거짓과 부정에 맞서기 위해서는 '나는 블랙리스트다'라는 아우성이 사회 곳곳에서 터져나와야 한다. 그것이 추악하고 추잡한 권력의 '생얼'을 깨뜨리기 위한 불씨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무도한 권력에 맞서는 문화예술계의 당당한 커밍아웃이 반가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블랙리스트#블랙리스트 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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