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
"올해의..."이렇게 시작하는 기사 제목이 신문과 방송을 수놓은 것을 보니 연말이 된 모양이다. 지난 해를 돌아보고 다가올 해를 설레는 마음으로 맞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해가 바뀌는 데 큰 의미를 두지 못하게 됐다. 해가 바뀐다고 삶이 새로 시작되는 게 아니라는 '아름답지 못한' 생각이 둥지를 튼 모양이다. 하지만 올해 본 사진 한 장 만큼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오마이뉴스> 권우성 기자가 지난 4월 찍은 사진이다. 이 속에는 박주민 변호사가 국회의원에 당선된 다음날의 모습이 담겨있다. '세월호 변호사'라는 별명에 걸맞게, 곁에서 그를 축하해 주고 있는 사람들은 세월호 유족들이다.
이 사진이 독특한 것은, 사진을 찍는 장면을 찍고 있다는 점이다. 유족들은 사진 밖 오른 쪽의 다른 카메라를 주시하고 있다. 사람들을 측면에서 보여주는 탓에, 사진은 오히려 각각의 표정과 제스처를 더욱 입체적이고 생동감 있게 보여준다.
이들은 분명히 웃고 있다. 손가락으로 '승리의 브이(V)'자를 그리며, 이를 드러낸 채 입을 크게 벌리고 웃고 있다. 일부는 카메라를 향해 과장되고 익살스러운 표정까지 짓고 있다.
그런데 왜 나는 이 사진을 볼 때마다 눈물이 날까. 처음 사진을 본 지난 봄에도 그랬고, 새 봄을 앞둔 지금도 그렇다.
올해의 가장 슬픈 사진사진을 잘 보면, 박주민 옆에 앉아 손으로 눈을 가린 사람이 있다. 일그러진 입 모양을 보아 울고 있는 게 틀림 없다. 하지만 기쁨과 안도의 눈물일 것이다. 사진이 카메라에 담긴 뒤, 그도 곧 눈물을 훔치고 미소지었을 것이다.
이렇듯 기쁨으로 가득 찬 사진이 슬프게 느껴지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 웃음이, 그 환한 표정이, 그 익살이 깊은 아픔과 맞닿아있기 때문이다. 유족들은 그날, 자식을 잃은 뒤 처음으로 환하게 웃었을 것이다. 자식을 되찾을 수 있는 가느다란 희망을 봤기 때문이다.
시신을 수습하지 못한 가족은 자식을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봤을 것이고, 시신을 수습한 가족은 살아 뛰던 아이들이 왜 시신이 된 까닭을 알게 될 희망을 봤을 것이다. 물론 보장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그 가녀린 희망이 그토록 큰 기쁨을 준 이유는, 그날 이전까지는 그 가녀린 희망조차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모라면, 사람이라면 당연히 느껴야 애정을, 분노를, 아픔을, 슬픔을 비웃고, 조롱하고, 저주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만 잊을 때"라고 했다. "세금 도둑들"이라고 했다. 심지어 "돈좀 그만 밝히라"고 했다. 감싸 안고 함께 울어줘도 부족할 이들에게 침을 뱉고 발길질하는 이들이 우리 중에 있었다.
지난 여름 망원역 앞을 지나다가 서명을 받고 있는 사람들을 만났다. 세월호 조사기간을 연장할 수 있게 특별법을 개정해 달라는 이야기였다. 서명지를 받아들고 이름과 주소를 쓰자, 그중 한 명이 내게 노란 리본을 내밀었다. 나는 등을 돌려, 메고 있던 배낭에 달려 있는 리본을 보여줬다. 그가 웃으며 말했다.
"조금 전 어떤 분이 우리에게 '지겹다, 그만 하라'며 욕을 하고 갔어요.""가족이 억울하게 죽은 원인을 밝히고, 시민들에게 더 안전한 삶을 보장하자는 요구인데, 그 사람에게는 그저 '지겨운' 이야기로 들리는 모양이군요."그는 답 대신 울음을 터뜨렸다. 눈물을 흘리던 그 분은 유족이 아니었다. 그처럼 다른 이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느끼던 눈물은 수백만 개의 촛불로 바뀌어 한국의 밤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유족 일부는 배 속에 갇힌 가족들을 만나지 못하고 있고, 유족 모두가 자식의 억울한 죽음의 이유를 알지 못하고 있다. 초에서 흐르는 촛농이 늘어날 수록 가족 눈에서 흐르는 눈물은 줄어들 것이고, 반성을 모르는 어리석은 지도자와 측근의 '피눈물'은 늘어날 것이다.
가장 기쁜 인터뷰박근혜 대통령의 피눈물이 꼭 박근혜 개인의 피눈물이 돼야 하는 건 아니다. 걸맞지 않는 자리, 자격에 맞지 않는 자리, 정당하게 성취하지 않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것은 되레 행복의 시작이 될 수도 있다.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존재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가 좋은 아버지는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는 애 티도 채 벗지 못한 딸을 '퍼스트레이디'라는 이름으로 내세워 권력유지의 소품으로 삼았다. 또래들과 깔깔대며 장난치며 자신의 삶을 만들어갔어야 할 딸은, 자신이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 연설을 원로들 앞에서 읊는 처지가 됐다.
지난 4년간 여전히 자신이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 연설을 읊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면서도 그 자리로 되돌아가고 싶어한다. 권력의 무대에 서서 남이 써 준 역할을 연기하는 것 이외에는 자신의 삶이 없기 때문이다.
생각이 이 지점에 이르자, 올해 가장 기쁘게 읽은 인터뷰가 떠올랐다. 경소영 시민기자가 쓴
"아버지 고승덕의 진실, 서울시민 위해 알려야 했다"는 기사다. 2014년 고승덕이 서울시 교육감에 출마했을 때, 그의 딸 캔디 고는 아버지가 서울시 교육감이 돼서는 안 된다는 글을 썼다.
기자를 만났을 당시, 캔디 고는 미국에서 법대를 다니며 '세월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모임'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그가 인터뷰에서 말한 한마디 한마디는 한국사회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어릴 적 아버지와 둘이 길을 걷다가 어떤 사람이 쓰레기를 줍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러자 그는 나에게 '저런 일 하고 싶지 않으면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 저런 불쌍한 인생을 살고 싶지 않으면'이라고 말했다. 늘 남을 자신보다 낮게 보고 그런 말들을 자주했다. 그 사람에겐 그 일이 중요한 일일 수 있다. 우리 각자 모두가 사회에 주어진 중요한 일이 있지 않나."감사해야 할 사람에게 감사할 줄 모르는 것, 나는 이것이 남과 자신을 불행하게 만드는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비슷한 시기에 인터넷에 '박명수의 어록'이라며 돌아다니는 글을 보고 좌절했기에, 그의 발언이 더욱 반가웠을 것이다.
"공부 안 하면 더울 때 더운 곳에서, 추울 때 추운 곳에서 일하게 된다."'더울 때 더운 곳에서, 추울 때 추운 곳에서 일하는 사람'이 있는 까닭은 그 일이 모두에게 꼭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을 볼 때 우리가 가져야 할 것은 '그런 사람이 되지 말자'는 다짐이 아니라, 그 어려운 환경에서 일을 해 줘서 고맙다는 감사의 마음과 합당한 보상을 받도록 함께 싸우는 연대의식이다.
박근혜, 캔디 고에게 배워라
캔디 고가 고승덕에 대한 글을 썼을 때, 사람들은 여러 반응을 보였다. 다수가 그 어려운 결정을 응원했지만, 일부는 '부모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자식의 도리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심지어 '패륜'으로 비난하는 이도 있었다.
캔디 고를 비난하던 이들 눈에는 아버지의 과오를 비판하고 바로잡기는커녕, 덮고 미화하기 바빴던 박근혜 대통령이 '자식의 도리'를 다하는 '인륜의 수호자'로 보였을지 모를 일이다. 물론, 개인적 관계와 사회적 역할을 구분하지 못하는 미성숙한 사고일 뿐이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 일부가 '아버지를 잃어 불쌍하다'는 이유로 대통령 표를 주었다. 지금 이 사회는 그 결과를 지켜보고 있다.
캔디 고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뉴스를 찾아보다가 아버지가 교육감에 출마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 아버지에 대한 글을 쓴 뒤에 그가 가장 걱정한 것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비난이 아니라, 자신의 글로 인해 세월호 사건에 대한 관심이 묻히는 것이었다.
"당시 한국 시민들은 한창 세월호 사건으로 희생된 아이들을 추모하고 있었다. 그런 기간 내가 쓴 글 때문에 세월호 뉴스가 묻히는 느낌이 들어서 굉장히 미안했다. 세월호 희생자 추모는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실이 규명되고, 유가족들에게 정확한 답변과 보상이 있을 때까지 나도 내가 있는 장소에서 계속 참여할 것이다."인터뷰를 읽고 난 뒤, 나는 처음으로 고승덕이 부러워졌다. 당당히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훌륭한 딸을 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캔디 고는 무척 행복해 보였다. 가장 큰 효도는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부모와 자식의 뜻이 일치하면 가장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자식은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한다.
최근 법률구조공단 이사장이 '엘사' 이야기를 하며 대통령의 '해피엔딩'을 기원했다. <겨울왕국>은 딸이 부모의 그림자를 벗어나 자신의 삶을 되찾아가는 이야기다. 그런 면에서, 엘사의 서사는 박근혜보다 캔디 고의 삶에 더 가깝다. 박근혜 대통령이 캔디 고에게 배워야 할 점도 바로 이것이다.
대통령이 불쌍하다면, 그를 걸맞지 않는 자리로 되돌려 보낼 게 아니라 자신의 삶을 찾도록 도와줘야 한다. 나는 그에게 죄의 대가를 치른 후, 홀로 먼 여행을 떠나라고 말해주고 싶다. 낯선 식당에서 주머니의 동전을 세어 밥값을 계산하고, 기차 창가에 앉아 수첩에 자신의 생각을 기록하기를 권한다. 남 앞에서 읽기 위한 메모가 아니라, 자신의 삶의 기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