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 한눈에
- 해외사례를 종합해볼 때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첫째, '수심이 37m이고 선박의 이동이 잦다' 하더라도 대형 핵잠수함조차 얼마든지 접근가능하다는 점이다.
'네티즌 수사대' 자로'의 <세월X>동영상과 이에 대한 군당국의 반박으로 여론의 관심이 뜨겁다. 외력의 개입없이 세월호의 전복을 설명할 수 없으며, 레이더에 나타난 괴물체 역시 작은 컨테이너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 동영상의 전제이다.
이후 괴물체가 잠수함이냐, 아니냐를 놓고 논란이 일자 자로는 29일 "사고 직후 갑자기 나타났다가 약 10분 후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는 물체는 제 상식으로는 잠수함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판단했을 뿐"이라며 "아직 단 한 번도 괴물체가 잠수함이라고 단정한 적 없다"고 밝혔다. 논란에 대해 군당국은 '맹골수도의 수심이 37m로 낮고, 어선의 이동이 빈번해 잠수함이 이용할 수 없는 여건'이라며 이 동영상의 논리를 부정하고 있다.
현재까지 공개된 정보만으로는 어느 주장이 맞는지 국민은 명료하게 납득하기 어렵다. '자로'의 주장대로 군당국이 보다 확실한 군당국의 레이더영상을 공개해 의문을 해소해야 한다.
필자는 현재처럼 군당국이 핵심적인 증거가 될 수 있는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가운데, 군당국의 '잠수함 진입 불가론'의 진위를 해외사례를 통해 검토해 확인해보고자 한다.
미 핵잠수함이 상시 운항하는 페르시아만, '평균수심 36m'
미 해군의 핵잠수함이 상시로 운항하고 있는 페르시아만은 '맹골수도 수심이 37m로 낮고 선박이동이 빈번해 잠수함 접근이 불가하다'는 군당국의 주장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만드는 물리적 여건을 갖추고 있다. 바로 수심이다.
미국 해양대기청 노아(NOAA)가 지난 1992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페르시아만의 평균수심은 36m이다. NOAA의 수심관측결과는 물론 이후 무수한 후속 조사연구들 역시 동일한 결과가 확인되어 관련 국제학회지에 게재된 바 있다(Reynold 1993, de Mora et al. 2010, Sale et al. 2011).
페르시아만과 세월호 사고가 발생한 병풍도 인근의 수심은 NOAA가 세계 수심측량결과를 공개하고 있는 웹사이트서도 확인된다. 먼저 페르시아만의 경우, 중앙을 제외하고 절반이상의 면적이 50m 이하로 표시된다(사진 1).
NOAA의 웹사이트는 커서를 통해 세부지점의 수심을 화면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기능이 있는데, 50m 이상의 해역에서도 깊어야 70~80m 수준임을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해외문헌들은 페르시아만의 최대수심을 약 90m 수준으로 보고하고 있다.
심지어 미 핵잠수함들이 수시로 정박하는 미해군 제5함대 기지가 위치한 바레인 미나 살만(Mina Salman)항구는 평균수심 25m 이하의 연안으로 드넓게 둘러싸여 있다.
물론 입항시에는 수상항해를 하겠으나, 미 해군의 핵잠수함들이 페르시아만 해역에서 상시적으로 운영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50m 이하의 수심이 절대적인 장애물이 될 수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일관된 비교를 위해 이번에는 세월호의 급변침장소인 병풍도 인근의 수심을 살펴보자(사진 2). 맹골수도가 수심등고선 50m와 25m사이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상으로 표시하기는 어려우나 NOAA 웹사이트 화면에서 커서를 통해 확인해보면, 세월호의 급변침과 침몰이 발생한 좌표의 수심이 35~50m 수준이며 국내 관련기관들의 측정치와 거의 동일하다. NOAA 측정치의 세부 정밀도를 떠나 동일한 기준으로 작성된 두 해역 수심의 비교는 국방부의 논리를 궁색해지게 만든다.
게다가 미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페르시아만을 들락거리는 대형유조선만 하루 평균 14척이며, 화물선 등 기타 다양한 선박들을 감안하면 세계에서 가장 번잡한 항로 중 하나이다.
지난 20여년간 세계 원유매장량의 약 65%를, 원유거래량의 약 1/3을 차지해온 이 지역의 전략적 중요성은 미해군 핵잠수함들의 페르시아만 상시 운항의 주요 배경이기도 하다. 페르시아만 사례는 낮은 수심과 빈번한 선박이동에도 불구하고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잠수함의 항해가 가능함을 보여주고 있다.
잠수함의 선박충돌사고는 의외로 빈번히 일어난다사실 잠수함과 선박간의 충돌사고는 세계적으로 잠수함 숫자가 얼마 안 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선뜻 상상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미 해군이 운영 중인 잠수함은 총 76척, 영국 해군의 경우 11척, 한국 해군의 경우 9척 정도이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잠수함의 선박충돌사고는 결코 적지 않으며 대부분 경미하지만 심각한 경우 인명손실까지 일으켰다.
CNN, BBC, 가디언 등 해외 언론에 공개된 잠수함-선박 충돌사고만 해도 지난 2000년 이후 최소 10건이다. 이중 미해군이 보유한 핵잠수함이 세계 원유거래량의 약 1/3을 차지하는 페르시아만에서 유조선 등과 충돌한 경우가 4건으로 가장 많았다. 해외언론에 공개된 이들 충돌사고의 목록은 아래와 같다.
최악의 인명살상사례, 그린빌-에히메마루 충돌사고 지난 2001년 2월 9일 일본 에히메현소속 수산고등학교의 실습어선인 에히메마루(약 7백톤)호가 하와이섬 인근에서 미해군 핵잠수함 그린빌(6천톤)호와 충돌하며 탑승 교사와 학생 등 9명의 사망자를 낸 사고가 있다.
당시 에히메마루는 그린빌 후미의 방향타(rudder)가 선체의 좌현부터 우현을 가르면서 선체가 손상되며 5분 후 침몰하기 시작했다. 당시 탑승선원들은 두 번의 굉음을 들었다고 한다. 실제로 사고후 미해군의 조사결과 그린빌호는 선체상부와 방향타가 손상되어, 이 두 지점이 에이마루호와 접촉했음이 확인되었다.
사고직후 비밀에 부쳐졌다 나중에 폭로된 사실은 사고 당시 그린빌호엔 귀빈초청행사로 16명의 기업경영진과 스포츠전문기자 등이 탑승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특히 미국, 일본 양측에서 공분을 일으킨 건 사고 당시 그린빌호의 함장이 민간탑승자들에게 긴급부상훈련을 체험시켜주기 위해 잠수함통제를 기업CEO와 스포츠기자에 맡겼다는 점이다.
해군 규정상 해수면으로의 긴급부상을 위해서는 주변 13km 반경내에 선박이 없음을 초음파탐색을 통해 확인했어야 했지만, 당시 그린빌호 승무원들은 귀빈초청프로그램에 정신팔린 나머지 이를 적절히 확인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LA 타임스의 당시 보도에 따르면, 그린빌호는 사고직후 해수면위로 부상한 이후에도 침몰하는 에히메마루호의 구조활동을 하지 않아 일본 희생자유족과 생존자들로부터 질타를 받았다.
이에 대해 미해군당국은 그린빌호가 당시 미 해안 경비대에 구조요청을 했고, 잠수함이 직접 인명을 구조하는 행위는 개방된 해치를 통해 잠수함의 침수위험을 높이고 잠수함 근처의 구조보트를 오히려 위험에 노출시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해군 규정상 금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물론 이 사고는 한국 서해안과 달리 수심 200~300m의 하와이 인근해역에서 발생했고, 그만큼 핵잠수함이 자유로이 긴급부상훈련을 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세월호 사고와 직접적으로 비교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그럼에도 잠수함-선박충돌사고로 큰 인명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 최고수준의 소나탐색장비가 있더라도 인적실수에 의해 얼마든지 선박충돌사고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 등을 확인할 수 있다.
대형선박과 충돌한 사례들
CNN 등 다수의 외신에 따르면, 지난 2009년 3월 호르무즈해협에서 미해군 핵잠수함 하트포드호(Hartford, 6천톤)와 미해군 상륙함정 뉴올리안즈호(New Orleans, 2만4천톤)간에 충돌사고가 일어났다.
군사전문매체인 Strategy Page에 따르면, 당시 충돌로 잠수함은 85도나 회전했으며, 승무원 15명의 경상과 잠수함 함교탑의 파손, 상륙함정의 경우 연료탱크 파손으로 10만리터의 경유가 유실되었다.
당시 하트포드호의 함장 및 승무원들이 무려 30건에 이르는 규정을 위반하며 발생한 인적오류가 사고의 원인으로 지적되었다. 예를 들어, 사고당시 해수면의 선박을 경계해야 할 소나탐색 담당자는 다른 승무원과 잡담하고 있었고, 항해사는 아이팟을 듣고 있었다. 사고직후 두 선박은 긴급수리를 위해 페르시아만 바레인에 위치한 미해군 제5함대 기지로 회항했다(사진3).
또다른 사례는 지난 2007년 페르시아만 입구인 호르무즈해협에서 미해군 뉴포트뉴스호(Newport News, 7천톤)가 일본 유조선 모가미가와호(Mogamigawa, 30만톤)와 충돌한 사고였다.
사고후 미해군 당국은 뉴포트뉴스호가 모가미가와호의 아래에서 안전하게 운항중이었지만, 거대한 모가미가와호가 고속으로 지나가면서 일시적으로 발생한 수중 압력변화에 잠수함이 선박에 끌려올라가는 이른바 '벤츄리효과(venturi effect)'가 원인이라고 지목했다.
Strategy Page에 따르면 당시 충돌로 인명피해는 없었으나, 잠수함의 함교탑 일부가 파괴되었고 모가미가와호의 경우 선체후미가 30미터 정도 찢겨져 침수가 발생했다.
군당국, 궁색한 주장과 협박 대신에 증거를 제시해야해외사례를 종합해볼 때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첫째, '수심이 37m이고 선박의 이동이 잦다' 하더라도 대형 핵잠수함조차 얼마든지 접근가능하다는 점이다. 핵잠수함의 절반이하 규모인 국내외의 디젤잠수함을 고려하면 접근성은 훨씬 더 커진다.
둘째, 세계최고수준의 소나장비를 갖추고도 인적오류에 의해 잠수함의 선박충돌사고가 이미 여러 차례 발생했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 사실을 감안할 때 군 당국의 주장에는 세월호의 잠수함 충돌 가능성을 배제할 만한 근거가 없다.
따라서 군 당국은 '자로'의 합리적 문제제기에 소송전으로 몰아세우기보다, 레이더영상 자료 등 국민들에게 객관적인 증거와 사실을 제시해 의혹을 해소해야 할 것이다.
<페르시아만 수심관련 인용논문>de Mora, Stephen, et al. "Distribution of petroleum hydrocarbons and organochlorinated contaminants in marine biota and coastal sediments from the ROPME Sea Area during 2005." Marine pollution bulletin 60.12 (2010): 2323-2349.
Sale, Peter F., et al. "The growing need for sustaina-ble ecological management of marine communities of the Persian Gulf." Ambio 40.1 (2011): 4-17.
Reynolds, R. M. "Physical oceanography of the Gulf, Strait of Hormuz, and the Gulf of Oman–Results from the Mt Mitchell expedition", Mar. Pollution Bull. 27 (1993):35–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