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 부모모임이 '커밍아웃 스토리'를 연재합니다. 성소수자 자녀의 커밍아웃뿐만 아니라, 성소수자 자녀를 둔 부모들의 이야기도 함께 전합니다. 부모들이 성소수자인 자녀의 이야기를 하는 것도 일종의 커밍아웃이라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편집자말] |
이 기사 한눈에
- 꿈이 생겼다. PFLAG와 같은 모임을 한국에서 크게 성장시키는 것, 그리고 그곳에 어머니를 모셔오는 것.
- 한국 사회에서 나를 비롯한 수많은 성소수자들에게 가족을 향한 커밍아웃은 큰 짐일 수밖에 없다. 성소수자 부모모임의 진솔한 이야기들이 그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줄 수 있기를 희망한다.
"나는 아직 부모님께 커밍아웃 안 했어." 이렇게 말하면 누군가는 놀란다. 내가 주변 지인들에게는 전부 커밍아웃했기 때문일 수도, 성소수자 부모모임에서 활동한 지 2년이 다 되어가기 때문일 수도 있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성소수자로서 발언하고, 수많은 커밍아웃 사례들을 머릿속에 담고 있지만, 가족에게는 커밍아웃하는 것이 망설여진다. 내가 성소수자 부모모임에서 활동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2014년 12월, 우연한 기회로 미국의 성소수자 인권단체를 방문하러 갔다가 PFLAG(성소수자를 지지하는 성소수자의 부모, 가족, 친구들의 모임. 미국에만 50여 개의 지부가 있고, 회원수는 20만 명에 달한다) 뉴올리언스 지부를 알게 됐다. 마침 한 달에 한 번 있는 정기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정기모임에는 20여 명의 사람들이 참석했다. 엄마와 막냇동생과 함께 온 17살 FTM 소년, 몇십 년 동안 뉴올리언스 지부를 지켜 온 활동가, 게이 당사자, 게이 자식을 둔 어머니, 성정체성을 고민하는 손주가 있는 할머니, 손주가 넷이나 있는 50살이 넘어 트랜지션을 한 MTF 할머니, 8년간 연애하고 있는 게이커플, 오늘 PFLAG에 처음 온 사람, 결혼한 지 20여 년 된 부인에게 커밍아웃한 기혼이반 등.
그들 각각의 서로 다른 이야기들을 들으며 어떨 때는 한바탕 웃기도 하고 때로는 마음 아파하며 울기도 했다. 공통된 건,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이었다. 가족에 대한 사랑으로 사람들이 모였을 때 만들어지는 강력한 무언가를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그곳에서 어떤 희망을 보았다. 그리고 꿈이 생겼다. PFLAG와 같은 모임을 한국에서 크게 성장시키는 것, 그리고 그곳에 어머니를 모셔오는 것.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한국의 성소수자 부모모임을 찾아갔다. 함께하고 싶다고. 그 후로 지금까지 약 2년간 성소수자 부모모임의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처음 모임에 참여했을 당시에 열 명 남짓을 기록하던 참여자 수가 지금은 50여 명을 넘어섰다.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의 이야기는 대중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각종 언론에서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고, 행사에 게스트로 참여해 우리의 이야기를 대중에게 알렸다. 2년 전 미국에서 느꼈던 감동과 희망을, 지금 한국에서 느끼고 있다. 보람차고 벅찬 순간이다. 성장은 끝이 없는 법이고, 성소수자 부모모임이 가야할 길은 멀지만 차근차근 나아가면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전히 나에게 커밍아웃은 짐으로 남아 있다. 이 고민은 갑작스런 계기로 한순간에 끝날 수도, 평생 남아 있을 수도 있다. 그리고 많은 다른 이들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나를 비롯한 수많은 성소수자들에게 가족을 향한 커밍아웃은 큰 짐일 수밖에 없다. 성소수자 부모모임의 진솔한 이야기들이 그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줄 수 있기를 희망한다. 물론 나에게도.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성소수자 부모모임의 커밍아웃 스토리 다섯 번째 편입니다.
오소리 님은 성소수자 부모모임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허핑턴포스트에도 중복 게재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