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쉼터는 새해라고 특별히 달라질 것도 없다. 쉬는 날이라고 쉼터를 찾은 이주노동자들은 그래도 올해는 뭔가 새로워지리라는 기대를 안고 있는지 저마다 새해 소망을 털어놓았다.
새해 첫날, 떡국을 먹던 베트남인 반투틔이가 물었다.
"지금 한국에서 계란 먹어도 돼요?""네. 익혀서 먹으면 돼요.""네~ 우리 외국인들 계란 많이 먹어요. 많이 비싸요."작년 연말 몇 주 동안 직장을 찾지 못해 힘든 날을 보냈던 반투튀이는 새해 첫 주부터 오산에서 일하게 됐다. 그가 일하게 될 회사는 베트남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이 있어서 같이 생활하게 되는데, 식사는 직접 해야 한다고 한다. 일자리 문제를 해결한 반투틔이의 새해 소망 중 하나는 계란 값 안정이다.
한국에 온 지 일 년이 안 됐지만, 높임말을 제대로 쓸 수 있을 정도로 한국어 실력이 양호한 태국인 조이는 "(한국어능력시험) 2급 따고 싶어요"라며 한국어공부를 좀 더 하고 싶단다. 말하는 것과 시험은 다르다며 시험에 불안감을 갖고 있는 조이는 올해는 꼭 도전해 보고 싶다고 한다. 조이에게 2급은 어려운 시험이 아닐 것이다.
조이 친구 쏨쏘이는 "사진 많이 찍고 싶어요"라며 백팩에 붙여 멘 삼각대를 툭툭 친다. 쉬는 날이 없어 한국에서 사진 찍을 기회가 없었다는 그가 한국에 온 지도 반년이 지났다. 올해는 그의 바람대로 출사할 수 있는 날이 좀 더 있기를 응원해 본다.
방글라데시 알롬은 "한국어교실 수업 빼먹지 않았으면 좋겠어요"라며 회사에서 휴일에도 일을 빼주지 않으면 어쩔 수 없다며 웃는다. 그래도 그는 작년에 한국어교실 초급반을 수료했다. 실력이 얼마만큼 늘었는지 모르지만, 태도만큼은 언제나 진지한 그는 올해는 좀 더 공부할 작정으로 사전까지 장만했다.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인도네시아인 바하리와 로작은 한국에 온 지 4년 5개월째다. 둘은 5월이면 근로계약이 끝난다. 입국 후 한 회사에서만 일했던 바하리는 성실근로자로 재입국하기를 원하고 있다. 회사에서는 근로계약 연장을 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껏 재입국한 사람이 없는 데다 작년 말에 담당 부장이 그만두면서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불안해하고 있다.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았으니 차차 말해도 된다는 말이 귀에 안 들어올 법도 하다.
반면, 로작은 마흔이 넘어서 재입국에 대해 크게 욕심내지 않고 있다. 그래도 회사에서 연장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은 갖고 있다. 그와 함께 귀국할 때 퇴직금 정산이 제대로 됐으면 좋겠다고 한다. 예전에 귀국한 선배들로부터 받아야 할 퇴직금과 실제 수령액에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었기 때문이다. 선배들은 퇴직금 성격의 출국만기보험을 한국에서 받지 못했다. 퇴직금을 인도네시아에서 받았기 때문에 제대로 지급되는지를 출국 전에는 알 수 없었다고 한다.
"올해는 아이를 갖고 싶어요" 어느 노동자의 꿈
다음 주면 한국에 온 지 만 3년이 되는 아리모꼬는 귀국을 코앞에 두고 있다. 그는 귀국에 앞서 서울 구경을 한번 하고 싶어 새해 첫날 여행용 가방에 짐을 싸서 쉼터에 들어왔다. 아리모꼬는 3년 동안 자동차 오일 필터를 만드는 한 회사에서 일했다. 귀국을 앞두고 회사에서는 "1년 10개월만 더 일하라"고 신신당부했다. 하지만 아리모꼬는 "올해 38살이에요. 너무 늙었어요"라며 손사래를 쳤다.
아리모꼬는 고향에 돌아가면 아내가 하고 있는 가게에서 쌀도 팔고, 설탕이랑 소금도 팔고, 닭이랑 기름도 팔며 살 생각이다. 귀국 후 계획을 묻자 "결혼하고 지금까지 아이가 없는데, 올해는 아이를 갖고 싶어요"라며 생각만 해도 좋은지 마냥 웃는다. 이미 아이들을 갖고 있는 고향 친구들에 비해 38살은 너무 늙은 나이라는 아리모꼬의 귀국에 응원을 보낼 수밖에 없다. 회사에서는 마지막 달 급여와 퇴직금 정산을 다음 달에 하겠다며 여전히 아리모꼬에게 근로계약 연장을 요구하고 있다.
매번 국적시험 떨어지고 실망했던 마음을 추스르고 올해 다시 도전한다는 결혼이주여성. 빚만 남기고 도망간 남편 뒷감당하는 이주노동자. 공부와 담 쌓은 딸 때문에 속 터지는 중국동포 아저씨. 항암치료로 다 빠진 머리카락이 자라기 전에 귀국할 수 있기를 바라는 이주노동자. 누구 하나 거창하지 않고 소박한 소망들이다. 한국어를 좀 더 잘하고 싶고, 직장생활이 편하기를 바라고, 가족들을 걱정하는 마음은 "이주노동자 인권도 인권이다. 이주노동자도 가족이 있다"는 말을 다시 한 번 떠올리게 한다.
소박한 소망으로 새해를 시작하는 이웃들이 있어 감사하다. 2017년은 그들의 소망이 이뤄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