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금촌 재래시장 오거리에서 대원뻥튀기 공장을 운영하는 김대원 사장(82)은 원래 전라남도 장성 백양사 인근 출신이다. 젊어서는 호남평야로 유명한 전북 김제에서 방앗간을 운영했다.
논 120마지기 농사를 짓고 방앗간을 하던 거부였다. 당시에는 쌀 1가마 빌려주면 이자로 1가마 더해서 2가마를 받았다. 고리사채업을 한 셈인데 재미가 쏠쏠했다. 하지만 박정희 대통령이 한때 농민들에게 고리채를 신고하라고 하여 피해 농가로 신고를 한 사람의 경우 안 갚아도 되도록 한 적이 있었다.
대신 정부가 갚아 주기로 한 것이었지만 공허한 말뿐이었고 설령 갚더라도 밀가루로 주는 등 이 일로 인해 김 사장은 완전히 알거지가 되어 버렸다. 어쩔 수 없이 호구지책으로 호남비료에서 근로자로 일하다가 비료공장일이 너무 힘들어 1979년에 파주로 올라왔다.
이때 일을 겪고 나서는 고리사채와 같이 불법적인 일을 하거나 남을 속여 먹는 일은 하지 않기로 맹세를 했다고 하니 전화위복이고 건강한 삶을 살게 만든 밑거름이었다.
김 사장은 뻥튀기 장사를 하며 손님들에게 맛보기를 주는 법이 없다고 한다. 사람을 속이는 것 같아 마음에 걸린다고.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한결 같은 일심으로 좋은 품질을 유지하겠다는 결심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싼 것을 경계하고 도리어 비싼 것이 내 것이라고 생각하며 사라고 충고했다. 뻥튀기만 해도 싼 것은 오래되어 냄새나고 맛이 없기 때문에 싸게 파는 것인데 사람들은 그것을 모른다고 안타까워했다. 오직 그런 일심으로 2006년부터 이곳 재래시장 오거리에서 장사를 했으니 올해로 12년째다.
뻥튀기의 미래는 밝다손님들 중에는 의외로 젊은 엄마들이 많은데 아이들에게 설탕 안 넣고 무당으로 쌀이나, 누룽지 같은 것을 튀겨 간식으로 먹이기 위해 많이 찾아오고 연세가 지긋한 분들은 주로 우엉, 연근, 돼지감자, 여주, 둥글레 같은 것을 차로 끓여 먹기 위해 튀겨간다고 했다.
재료마다 튀기는 시간이 다른데 가마가 식지 않았을 때는 15분 정도면 튀길 수 있다. 제일 시간과 공이 많이 들어가는 것은 현미라든지 옥수수 같은 것을 볶아 차를 만드는 것들인데 20분 정도 걸린다고.
반대로 밤 같은 종류는 볶는 시간이 단축되는데 조금만 실수하면 타버리기 때문에 신경이 간다고. 선반에는 무게를 다는 번쩍거리는 깡통들이 빼곡히 들어 차 있었다. 통속에 재료를 한 통 가득 채우면 3kg이 되는데 한 통 튀기는 가격은 콩이나 찹쌀, 썰은 가래떡을 튀기는 경우에는 5000원이지만 옥수수, 현미와 같이 차 종류는 6000원을 받고 있었다.
밤 10시가 되자 60대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찹쌀, 떡국 떡을 튀긴 뻥튀기를 2만원어치 사갔다. 조금 더 있자니 퇴근하며 집으로 가는 중년 남자가 2천 원짜리 쌀 뻥튀기 한 봉지를 사간다. 튀기는 방법도 제각기 다르기 때문에 맛도 다 다르다. 잘 튀긴다고 소문이 났는지 서울, 인천 사람들이 알고 찾아온다고 했다.
장인은 어디서나 빛난다뻥튀기 장사의 앞날을 염려하자 도리어 긍정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경기가 어려워 마땅히 할 것이 없는 때에 돈까지 꽤나 번다는 소문을 듣고 아무 생각 없이 너도 나도 뛰어든다고 한다.
기술이 필요한데 뻥튀기 튀기는 일을 쉽게 생각해 가게를 인수하고 차를 사고, 기계를 들이고 하지만 정작 수익을 내지 못해 문을 닫는 것이 부지기수라고 했다. 이 일도 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재료의 특성이 모두 달라 튀기는 온도, 시간 등을 숙지해야 하는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니라고. 김 사장은 튀기는 기술에는 한도가 없으며 한문공부보다 더 어렵고 알면 알수록 더 어렵다고 겸손해 했다.
하지만 뻥튀기 일은 앞으로 더 발전하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나이 올해 82살이지만 아프거나 힘이 들어 못하기까지는 계속하겠다고 했다. 가족을 묻자 아들만 셋인데 다 장성하여 공장 사장으로 대학병원의 기술 책임자로 근무하고 있다며 자랑했다.
정해 놓은 근무 시간은 없고 일거리가 있으면 언제라도 일을 한다고. 가게 오픈의 경우 장날은 아침 7시, 평일에는 8~9시 사이에 문을 열고 저녁에는 이곳에서 불을 켜 놓은 채로 잠을 자기 때문에 새벽 2~3시까지 손님이 있다고 했다.
그가 파주로 올라온 79년도 당시 사정을 묻자 그때 금촌시장 부근은 시골이었다고 했다. 주로 군인들을 상대로 하는 기지촌으로 미군을 포함한 군인들을 상대하는 술집과 여자들이 득실거려 장사하기는 좋았다고. 지금은 그때에 비해 경기가 없는 편이라고 했다.
험한 세월의 풍상을 겪어서 그런지 김 사장은 자기 생업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고 뭔가 모를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금촌 재래시장 오거리에서 뻥튀기를 튀기는 김대원 사장.
기자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 반짝이는 그의 눈에서는 지혜가 느껴졌고, 그의 입에서는 쉴 새없이 잠언이 튀어 나왔다. 그를 찾으면 정직과 신뢰를 담은 건강한 뻥튀기를 만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대원뻥튀기(공장)
경기도 파주시 금촌동 337-1(금촌재래시장 오거리)